[10월 Theme] 탈조선 세대
[10월 Theme] 탈조선 세대
  • 류연웅(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3학년)
  • 승인 2018.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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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션샤인
ⓒtvN

  21세기 전까지, 한국인들을 지배하는 희망은 탈출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의 사회 문제, 계층의 불평등 간의 문제를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라 믿으며, 한국을 저버리는 것을 통해 자신이 이 사회에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열심히 일해서 내 자식만은 미국에 보낼 거야.”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 지긋지긋하게 듣던 말. 그들은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는 듯했다. 적어도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
  그렇다면 이 희망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아마 <미스터 션샤인>의 시대. 19세기 후반 즈음부터가 아닐까.
  극 중 주연들의 대다수는 조선을 저버렸다. 그 ‘저버리는 방식’은 인물마다 다르다.
  유진은 생존하기 위해서 조선을 저버렸다(선택권이 그것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미국에 도착해서도 생존은 녹록치 않았다. 이 계층 사회에서 동양인인 자신은 여전히 ‘하층민’이었고, 유진은 이 계층 사회 속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군인이 된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맞아죽는 걸 봤던 유진은, 자신을 거둬준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처참하게 죽였고, 그 덕에 성공한 군인, 장교이자 공사로서 조선으로 돌아온다.
  고종 앞에 당당하게 서게 된 유진. 자신이 조선에 남아 있었다면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유진은 고종에게 자신은 천한 노비 출신이었다고 말하고, 고종은 유진에게서 이 나라에 대한 분노를 읽는다.
  그 자리에는 틈만 나면 조선을 팔아먹으려던 대신들이 틈만 나면 러시아를, 일본을, 프랑스를, 영국을 주인으로 섬겨 ‘지극히 조선적인 문제들’로부터 탈출하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자, 그렇다면 21세기. 워킹홀리데이와 어학연수가 일상이 된 2018년의 우리에게 외국이란 그런 식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일테면, 이 시대에서 ‘미국 가기’, 그것은 애신이 꿈꾸는 ‘미국 가서 러브하기’와 느낌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미국이란 새로운 희망이 아닌 그냥 서열화된 성공의 기준의 상위권일 뿐이란 것이다.
  왜 더 이상 탈출은 희망이 될 수 없어졌을까. 탈출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그것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게임, 영화 등 대체제가 많이 있기 때문에?
  아니, 탈출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딜 가도 이 구축된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세계는 더욱 더 정교하게 구축되고 있다. 
  사극을 보면 종종 자신의 신념, 새로운 희망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대라면?
  “그대를… 보고 싶을 거요…” 이병헌이 분위기 잡아도 “그러면 페이스 타임 할까요?” 김태리가 발랄하게 분위기를 부숴버릴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가 점차 하나로 합쳐지면서, 뉴욕의 유니클로, 도쿄의 유니클로, 서울의 유니클로에 같은 옷이 들어서면서 우리에겐 더 이상 탈출할 곳이 남아있지 않아졌고.
  자, 다시 19세기로 돌아가서 러시아를, 일본을, 프랑스를, 영국을 주인으로 섬겨 ‘지극히 조선적인 문제들’로부터 탈출하라는 대신들을 보며 유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알았을 것이다. 이곳의 문제들 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아닌, 그냥 ‘인간적인 것’이란 걸. 그래서 결코 없어질 수 없다는 걸. 희망은 욕심을 낳고, 욕심은 돈을 낳고, 돈은 배신을, 배신은 복수를 낳는다. 이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히나가 커피를 두고 했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유진은 어떤 구원이나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는 냉소주의에 빠진 채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무정한 상태로 여생을 보내게 될까?
  그렇다면 조선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애신의 주변에 기웃거리면서 츤데레의 정석을 보여주는 저 사내는 누구인가(결국 조선을 떠나지 않고, 그가 그냥 자리만 지킬 거라고 하는데도, 좋아라 하는 고종을 보면서… 얼마나 조선이 위기 상황이면 미국인이 그저 자리만 지켜줘도 좋다고 할까. 그만큼 자신의 편이 없다는 거잖아 싶어 슬펐다. 뒤통수만 안 쳐도 감지덕지인 인간관계라니).
  나는 김은숙 작가님이 이 드라마를 통해 결국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진은 애신과의 ‘러-브’를 통해 자신이 증오하던 것들로부터 탈출한다. 그 탈출은 즉, 자신을 억누르던 과거로부터의 해방이다. 애신도 마찬가지다. 조선에서 양반집 여성으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거절하고, 유진과 함께 ‘이정문’을 구하러 일본으로 떠나게 되는 애신.
  우리는 <미스터 션샤인>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이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위로 받고, 사람 때문에 외로워하고, 사람 때문에 살아가는, <미스터 션샤인> 속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드라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다만…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몰입을 방해했던 것이… 이병헌이 우리 엄마보다 7살 많고, 김태리가 나보다 7살 많더라.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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