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박경리 10주기 기념 길림대학 초청 국제학술대회] 중국에서 한국문학의 번역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
[2018 박경리 10주기 기념 길림대학 초청 국제학술대회] 중국에서 한국문학의 번역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
  • 권혁률(길림대 교수)
  • 승인 2018.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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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에서 한류(韓流) 및 한국문학의 수용양상
  1992년 한국이 드디어 중국인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을 때 국가적인 이미지에 관한 용어는 확실치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 이미지에 관한 공인받는 용어가 없었다. 생각보다 잘 사는 나라다,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던 나라다, 88올림픽 또는 <손에 손잡고> 등등, 당시 한국은 중국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이미지로 접근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 1999년에 한국은 드디어 중국사람들에게 ‘한류’라는 공인을 받는 이미지로 자리매김을 했다.
  “한류”라는 낱말이 중국 내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대체로 1999년 클론, HOT 등의 베이징공연 이후 현지 일부 매체에서 “한류”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따라 일파만장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데 일치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한국의 여러 영역에 걸친 교류에서 “한류”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사용되는 “한류”는 주로 한국의 영화, 드라마, 가요등 대중예술을 지칭하는 주요 용어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중요한 이미지로 부상되면서 한국의 기타 여러 분야, 특히 한국의 산업이 중국에로 진출하는 데도 일정한 역할이 있었던 점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개혁개방이후 문화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면서 중국 내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문화로 무대를 만들고 경제가 주역을 맡는” 모드와 일치를 이루면서 “한류”열풍은 중국에서의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다면 문화의 가장 중요한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문학, 한국문학은 이 “한류”의 열풍과 어떠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음미해볼만 하다.

  "한국소설은‘한류’와 같은 유행의 물결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한류’의 밑바닥에 흐르는 한국인의 심성과 정서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김치수, 「한국소설의 몇 가지 모습」, 「제3회 한·중작가회의 발표작품집」, 소설·산문분과 기조발제문, 2009 .07. 9일-10일, 중국 칭하이성 씨닝.)

  여기서 말하는 한국소설은 비평의 중개 없이 독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대중문학과 구별되는, 고급문학 또는 엘리트 문학을 지칭한다. 중국 내의 용어로 말한다면 엄숙문학(嚴肅文學)이다. 대중문화가 “한류”의 열풍을 타고 중국을 강타하는 가운데 지성인들은 그것을 단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그 심층적인 의미를 발굴하고자 한다. 바꾸어 말한다면 “한류”현상을 한국의 내면, 즉 한국의 전통문화, 역사, 풍속습관 등을 이해하는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단지 대중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류”보다는 오히려 고차원적 문화현상에 속하는 문학의 역할이 기대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중대한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중국과 한국 간의 여러 영역에서의 교류와 관계의 증진이 기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에게 한국의 정확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문학이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정에 맞추어 중국에서 한국문학의 번역은 정부적인 차원과 민간적인 차원에서 공동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학의 외국어 번역과 마찬가지로 한국문학의 중국어번역 또한 나름대로의 일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2. 번역 기교에 관련되는 문제점

  1) 동일단어의 다의적인 번역
  중한 수교 전 KBS라디오방송국의 사회교육방송에 당시의 북방권을 대상으로 하는 이산 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 로고송의 첫 구절은 “아름답다 서울은, 태양의 거리”로 시작된다. 이 구절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만약 단지 문자와 문장의 형태에 맞추어 “美丽啊, 首尔, 太阳的街道"가 되는데, 결과는 그대로 요령부득이다.
  먼저 가사의 진수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혐의가 있다. 당시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북방권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서울, 나아가서는 한국의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 이 로고송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경쾌한 멜로데이로 한국의 아름답고 명랑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이 가사를 위의 사례처럼 번역한다면 오역까지는 운운하지 않을지라도 일단은 실패적인 번역이 되고 만다.
  다음은 가사로서 생략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다. 이 가사의 내용은 분명 ‘아름다운 서울, 태양이 가득한 거리’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악보나 운율에 맞추기 위하여 생략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 따라 앞의 번역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번역된 ‘太阳的街道’는 중국어에서 자칫 ‘태양 속의 가도’ , 즉 ‘태양나라에 속해 있는 거리’로 읽히기 쉽기에 독자를 오리무중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이 구절에서 ‘태양’은 ‘밝음, 명랑, 활기 등이 가득하다’는 뜻이 담겨 있기에 단지 ‘태양’에만 집착한다면 원문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따라서 ‘태양’은 단지 고립된 단순명사 보다는 ‘햇빛 찬란한, 햇빛 넘치는’의 뜻으로 이해하고, ‘거리’ 또한 ‘도시’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원문의 뜻을 제대로 전달한 중국어 번역은 ‘아름다운 서울, 햇빛 찬란한 도시(美丽的首尔, 阳光明媚的城市)’로 되어야 마땅하다.
  본고에서 위의 사례를 든 것은 중국어 번역 실천에서 자주 나타나는 동일단어의 다의적, 심지어 확장된 의미 또는 다른 단어로의 교체까지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街道’가 ‘도시’로 된 것이 그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 이와 같은 다른 한 예를 보기로 한다.
  김주영의 <멸치>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나는 어느덧 덧없는 상실감과 무력감을 상상력의 업적으로 대치하거나 메우는 습성에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는 셈이었다."

  작품에서 아들인 화자는 종종 어머니가 다시 돌아올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상상에 빠지는 것 등으로 어머니에 대한 금할 수 없는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이 구절 에서 나오는 ‘상실감’은 ‘失落感’으로, ‘무력감’은 ‘無奈’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두 단어 모두 새로운 낱말로 교체한 것 같지만 사실은 다의적인 면으로 이해되는 사례이다. ‘상실’은 문자 그대로 중국어 ‘喪失’로 번역될 경우, 진정 무엇을 잃어버렸을 경우에 많이 쓰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상실’은 마음의 ‘허무, 허전’함을 표현하는 뜻이 짙다. 따라서 중국어에서의 ‘失落感’이 더 정확한 번역이 된다. ‘무력감’의 경우 본문에서 ‘힘’보다는 ‘개인적인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느낌(심경, 처지)’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중국어의 정확한 표현은 ‘無奈(무가내)’가 더 적합하다. 따라서 이 문장의 중국어 번역은 ‘我在不知不觉之中, 渐渐习惯于用想象力来慰籍无尽的失落感和无奈的心境’으로 하는 것이 본문의 뜻을 훨씬 더 잘 살리게 된다.
  동일단어의 다의적인 번역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까운 예로 ‘가슴’을 들어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가슴 속에 담아두다’, ‘가슴속의 격동’, ‘가슴이 넓다’, ‘가슴을 맞았다’ 등 구절에서 ‘가슴’은 중국어로 번역될 경우 각각 ‘心里, 內心, 胸襟(胸懷), 胸部 ’등이 된다. 이러한 점 을 감안하여 번역실천에서 동일단어일지라도 그 사용의 환경에 따라 다의적인 번역, 또는 유사한 기타의 단어로 교체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속담의 다양한 비 대응적 번역
  
문학작품의 번역에서 속담의 번역은 기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속담의 번역에서도 꼭 문자나 단어의 형태적인 면에 맞추려는 것을 삼가야 한다. 이는 중국어(漢語)의 특성에 따라 중국어번역은 의미의 전달에 그 주력점을 두어야지 형태적인 대응에 초점을 맞추면 그 정확한 번역을 기할 수 없다는 이치이다. 따라서 한국 문학작품에서 사용되는 속담은 중국어권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속담을 선택하되, 두 언어권에서 그만큼 그 이미지가 바로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령, 한국 속담 ‘쥐 죽은 듯 고요하다’는 중국어의 번역에서 그 형태와 완전 다른 ‘鴉雀無聲(갈가마귀와 참새조차 조용하다)’이 대등된다. 여기에 억지로 속담에 등장하는 ‘쥐’를 넣고자 한다면 중국어로 번역된 문장은 어색하거나 독자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리게 된다. 또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범도 제 말하면 온다’는 중국어 번역에서 한국어 속담의 형태와 전연 상관없는 ‘조조(曹操)’가 등장하는데, ‘說曹操, 曹操到(조조이야기를 하니 바로 조조가 나타난다)’가 대응된다. 
  속담은 민족의 언어 특징과 풍속, 생활습관 등에 관련되는 것으로서 해당 민족이 장시기에 걸쳐 이룩한 문화의 응집물이다. 속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 식물과 상관없이 이러한 경우에는 다양한 비대응적 번역이 필요하다. 동일한 동물이 등장하거나 유사한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연 다른 속담도 적지 않다. 가령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를 예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자칫하면 이 속담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初生牛犊不怕虎’로 표현하기 쉽다. 모두 ‘갓 태어난 동물(강아지와 송아지)’이 ‘범 무서운 줄 모 른다’의 직관적 형태이기에 같은 뜻으로 이해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는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았다’ 류의 부드러운 표현으로 대상의 폄하에 사용되지만, 중국에서 ‘初生牛犊不怕虎’는 ‘활력과 패기로 넘치는’ 사람이나 그러한 정신을 표현할 때 쓰이는 바, 긍정적인 대상에게 적용되는 속담이다.

  3. 문화적 이해의 부족 또는 문화적 습관에 따른 문제점
  
최근 중국 내에 번역 방송되고 있는 한국의 드라마에 ‘인천(仁川)’이란 지명을 중국의 ‘은천(銀川)’으로 번역된 경우를 보았다. 번역자는 물론 중국인이었고 그는 한국의 ‘인천’보다 는 중국 서부지역에 위치한 닝쌰회족자치구의 구정부 소재지 ‘은천(銀川)’에 더 익숙해져 있음이 분명했다. 따라서 ‘인천’이란 지명을 접했을 때 무의식간에 떠올린 것이 자신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은 ‘은천(銀川)’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중국어 번역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신호이다. 13억이란 중국인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인가는 차치할지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분명 한류의 일환인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대한 감성적인 인식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경우 그네들은 한국에도 중국과 같이 '은천’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번역자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 또는 문화적 습관에따른 오독으로 이러한 오해를 야기하는 것이다.
  문화의 유사성, 장기간 공유한 부분의 방대한 량은 번역에 도움이 될 수도, 또는 피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번역자의 언어수양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터이지만, 한국어의 한자어 또한 하나의 객관적인 원인으로 된다. 가령 구어에서 <6.25(육이오)>라고 할 때, 한국의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이 돈독하지 않는 번역자가 자신이 더 익히 알고 있는 듯한 ‘유교(儒敎)’를 떠올리는 경우를 목격한 바 있다. 실제로 한국문학의 중국어번역 실천에서 ‘유신체제(維新體制)’를 ‘체제를 개혁하는’ 뜻으로 오독, 오역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어는 그 과학성, 특히 그 문자의 과학성으로 입문이 아주 쉬운 언어의 하나로 꼽힌다. 특히 ‘한류’의 열풍과 함께 중국 내에 한국어 공부의 열풍이 일고 있는 요즘 대학교에서 한국어 정규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한국어 구어 실력은 상당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더구나 두 나라 대학교들 사이의 활발한 교류, 특히 3+1, 2+2식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힘입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 가운데 한국어 발음이 놀랄 정도로 정확하고 표준적인 학습자가 적지 않다.4) 하지만 필경 외국어로서의 의사소통실력의 양성에 주력하던 교육단계를 거친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 언어가 속해 있는 문화, 말하자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현 단계 언어소통실력과는 쌍벽을 이룰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한국문학의 중국어번역의 주력군으로 부상될 것임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문학의 중국어 번역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시되고, 그 실천이 활성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문화 및 한국문학에 관한 일정한 교양을 갖춘 번역자의 양성이 급선무이다.
  문학은 언어예술이고 해당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언어의 예술로 이루어진 정교한 ‘항아리’로서 문학은 구성물 전체가 모두 유기체를 이룬다. 여기에 언급하고 싶은 점이 문학작품의 제목의 번역이다. 많은 작품들은 그 제목에 작품의 내용을 집약시키거나 함축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제목과 작품 전반과의 이러 한 유기적 연관성을 무시하고 제목을 단순한 하나의 단어로 취급하는 것 또한 번역실천에서 삼가야 할 일이다. 이 또한 한국문학의 중국어 번역실천에서 이러한 사례들이 이미 나타났다는 점을 감안하여 짚고 넘기지 않을 수 없는 점이다. 

4. 한국문학의 중국어권의 올바른 진출을 위하여
  
서로 다른 문화의 교류는 번역을 떠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번역이 그 교류의 성공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과 질적인 면을 떠나 다른 언어권의 번역에 비해 한국문학의 중국어 번역은 이제 걸음마를 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사회발전과 민중의 생활에 깊이 천착하면서 그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한국문학은 우수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우수한 한국문학이 중국에 정확하게 소개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번역자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한 번역자들의 책임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목표와 효과를 기해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시행하는 <번역아카데미 단기 집중과정>은 의미 있는 사업이다. 그리고 금년 하계 방학기간 한국문학번역원과 주중한국문화원에 의해 시행되는 <중국대학생 한국문학 독후감 공모대회> 또한 영향력 있는 행사로 꼽힌다. 이러한 행사는 중국어권의 예비 번역자의 양성 및 한국문학 중국어 번역사업의 홍보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위의 두 행사가 예비 번역자의 양성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현재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는 번역물에 대한 심사, 선발제도 또한 주목되어야 할 부분이다. 한국 엄숙문학의 올바른 중국어권 진출을 위해 책임성 있는 수준급의 번역이 필요한 바, 제도적 장치의 뒷받침이 주목된다.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기관의 심사와 선발에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교류의 활성화에 따른 더욱 많은 기타 루트는 그렇다할 보장이 확실치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그 심사나 출판여부의 판정을 권위적인 기관에 의뢰하는 방식 등으로 한국 문학의 중국어 번역의 질을 보장하는 지도성적인 조치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걸음마를 타는 한국문학의 중국어 번역에서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현재 그 질적 보장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오직 한국문학의 정확하고 올바른 중국어권의 진출만이 한국의 정확한 이미지의 전달, 중국과 한국의 모든 영역에서의 보다 건전하고 활발한 교류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모든 상업적인 밝은 미래, 즉 그 지속적인 성공 또한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 《쿨투라》 2018년 9월호(통권 5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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