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80년대 바이브를 두르고 돌아온 존 메이어의 《Sob Rock》
[음악 월평] 80년대 바이브를 두르고 돌아온 존 메이어의 《Sob Rock》
  • 서영호(음악가)
  • 승인 2021.10.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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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존 메이어 페이스북 페이지

  존 메이어는 세계 팝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자랑하는 21세기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이러한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당연히 출중한 음악적 능력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인데, 기본적으로 블루스/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로서 걸출한, 아니 세계 최정상급의 연주 실력을 지닌데다가 그럼에도 이 기타 실력에 빠져 장르 음악에만 맴돌지 않고 팝 시장에도 통할만 한 대중성 있는 곡을 써내는 송라이팅 능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거기다 데이브 매튜스를 잇는(지금은 이런 얘기 하는 사람 없지만 데뷔 때 많이 언급되었다) 걸걸한 소울 풀 허스키의 차별성 있는 보이스 톤, 그리고 마지막으로 꽤 중요한, 훤칠한 키에 썩 훌륭한 비주얼까지 갖추었으니 스타로서 필요한 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다시 음악적인 측면에 좀 집중해서 보면, 열광하는 여성 팬들 만큼이나 그를 추종하는 후대의 음악가들도 꽤나 생겨났으니 기타 치고 노래 부르겠다는 팝 싱어송라이터 지망생들 중에 그를 레퍼런스로 삼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년간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고군분투하던 참가자들이 종종 불렀던 곡이 존 메이어의 <Stop This Train> 같은 것들이었다. 이처럼 많은 새내기 음악가들이 존 메이어를 모델로 삼는 것은 특히 그가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이를 대중성 있는 송라이팅에 영민하게 담아내며 대중적 입지까지 확보한 몇 안되는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흔히들 말하는 평단과 대중, 그리고 음악가에게 두루 지지받으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거머쥔 블루스 록 기타의 히어로이자 팝 스타인 셈인데 이런 경우는 20세기로 치면 에릭 클랩튼 정도가 있을 뿐이다. 팝 음악사 전체에서도 많지 않다는 얘기다.

  시대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들, 혹은 그런 싱어송라이터들이 포진하고 있는 밴드들의 음악적 행보는 다른 음악가들과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오로지 차트에서의 히트만이 최고의 지상과제인 이들 말고 음악가로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라이브러리를 추가하는 자기 음악에 대한 존재의 당위성을 고민하는 음악가들에게 존 메이어 같은 이의 세상과 시장에 대한 음악적 대응은 일종의 잣대나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번째 스튜디오 정규 앨범을 내놓는 존 메이어의 대응은 2021년의 블루스 록, 컨트리, 그리고 팝 펑크 사운드에 80년대의 바이브를 여기저기 흩뿌려 놓음으로써 자신의 스타일 속에 저 뉴트로적 트렌드를 녹여내는 것이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첫 트랙 <Last Train Home>은 80년대의 토토나 티어스 포 피어스, 브루스 혼스비의 음악들이 떠오르는 신디사이저 소리를 앞세워 《Sob Rock》의 지향점을 선포한다. 특정한 음원이 주는 옛 시절의 추억은 그 이외에도 몇몇 곡에서 그 의도가 명백히 드러날 정도로 감지되고 <Why You No Love Me>나 <Shot in the Dark>가 보여주는 화성전개와 멜로디, 이를 뒷받침하는 사운드 편곡에서도 충분히 느껴진다. 수록곡 대부분에 적용된 리버브나 딜레이로 연출된 공간감 역시 중요한 효과로 작용하는데 <Shot in the Dark>에서의 림샷이 울려퍼질 때의 그 울림의 정도 같은 것, 아는 사람은 다 알거다. 작년에 싱글로 먼저 발표되었던 <Carry Me Away> 같은 경우 다소 모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드럼머신의 사운드 대신 스트레이트하고 찰랑거리는 컨트리 사운드의 리얼 드럼 비트로 새로 편곡되어 전체 콘셉트에 더 그럴싸하게 융화되었다.

  《Sob Rock》가 두르고 있는 80년대적 어떤 것은 음악 외적인 장치들을 통해서도 보충되고 있는데 앨범 커버아트에 드러난 그 시절 유행하던 폰트라던가 매장에서 음반에 붙여 놓았던 가격할인 스티커 등을 이미지화해서 넣은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이번 앨범을 위해 새로 꾸린 밴드에 80년대 토토나 마이클 잭슨의 앨범에 함께 했던 레전드 건반 주자 그레그 필린게인즈를 섭외해 뮤직비디오나 각종 라이브 영상을 통해 노츨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훌륭한 연주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에 환호할 음악 마니아들을 위한 깨알 포석으로도 보인다. 특히 영상으로 시각화된 <Shot in the Dark>의 뮤직비디오에서의 조명, 색감, 존 메이어의 연주모션과 춤사위, 여성 출연자와의 연출 등은 이 레트로 혹은 뉴트로적 유희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기실 《Sob Rock》의 절반 정도는 이미 최근 몇 년간 발표한 싱글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곡들이 조금씩 가지고 있던 복고적 색채가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곡들이 정확히 80년대라는 일관된 코드 하에, 혹은 이 해석이 과하다면 최소한 앨범커버나 뮤직비디오를 통해 드러난 어떤 복고적 콘셉트를 위해 정확히 계획되었거나 품어지는 곡들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볼 때 결과적으로 이 콘셉트는 시장에 새로운 음반을 내놓기 위한 하나의 포장지로 해석해야 한다. 꼭 이 앨범의 커버 아트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상품의 포장지와 디스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하면 이를 단순히 저열한 상술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먼저 포장지로 시선과 관심을 끌고, 이제 내용물의 안정적인 질을 통해 구매자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감과 안도감을 안긴다. 이 단계에서는 포장지 속 본품의 내용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는 이미 설레는 마음으로 구매하고 포장지를 뜯는 과정에서 그 즐거움을 누렸으며 내용물이 딱히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상품, 즉 음악 본연의 기쁨을 충실히 제공해주고 있다면, 그 구매는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후회 없는 것이고 그 음악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만의 사운드와 목소리, 음악적 정체성과 완성도가 확보된 음악가라면 포장지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새 시대의 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의 새로운 앨범이 꼭 새로운 스타일을 담고 있기 때문에 듣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멜로디, 가사, 편곡의 조합으로 만들어 낸, 고개가 끄덕여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이기에 듣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 이미 뜯어 버린 포장지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서영호
음악가, ‘원펀치’와 ‘오지은서영호’에서 활동.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 주요 앨범으로 <Punch Drunk Love>, <작은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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