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Theme] 영혼체인지에서 증강현실까지 국내 판타지 드라마의 진화
[1월 Theme] 영혼체인지에서 증강현실까지 국내 판타지 드라마의 진화
  •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9.01.31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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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로 미국 지상파 방송에서 리메이크작이 방영된 (SBS), 그리고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공통점은 무얼까? 답은 판타지 드라마다. 2017년 미국 ABC가 리메이크 방영한 <신의 선물-14일>은 엄마가 딸을 되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스릴러, 2019년 1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킹덤>은 조선의 왕세자가 원인 모를 역병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은 판타지 미스터리 사극이다. 두 작품은 글로벌 포맷으로서 한국 판타지 드라마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장르가 로맨스였다면, 앞으로 특정 지역을 넘어 세계 시장을 내다 볼 것으로 주목받는 장르는 바로 판타지다. 세계 영화 시장에서는 이미 판타지 블록버스터가 패권을 쥔 지 오래됐다.

 과거에는 마이너 장르였던 판타지 드라마가 국내에서도 주류 장르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2010년대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도 <M>(MBC), <태왕사신기>(MBC) 등 선구적 작품들이 등장하긴 했으나, 한해 한두 편 정도에 그쳤다. 2010년대 들어 판타지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비슷비슷한 신데렐라 로맨스, 막장드라마 등에 지친 시청자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향한 욕구, 해외장르물과 웹콘텐츠 등의 부상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드라마 환경, 그리고 상상력을 생생한 화면으로 옮기는 특수효과의 발달이 주 요인이다.

 이러한 가운데 2010년 차례로 등장한 두 편의 판타지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SBS)와 <시크릿 가든>(SBS)의 흥행이 이 장르의 유행에 불을 붙였다. 두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에 각각 전통 설화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 요소를 더해 친근함과 신선함을 모두 만족시킨다. 이들의 성공은 판타지 드라마의 대중적 가능성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뒤이어 등장한 타임슬립 드라마들은 이 장르를 안방극장에 완전히 안착시켰다. <옥탑방 왕세자>(SBS), <인현황후의 남자>(tvN),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tvN)과 같은 작품들은 SF에서나 보던 타임슬립을 로맨스, 사극, 미스터리, 메디컬 등 기존의 주류 장르에 결합했다. SF의 과학적 개연성 대신 환상성을 강화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써 판타지는 다양한 장르를 독특한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국내 드라마는 판타지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서사의 새로운 차원을 연 것이다.

 드라마의 대안으로 떠오른 판타지 장르는 2013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SBS)와 <별에서 온 그대>(SBS)를 통해 새로운 한류의 동력으로까지 주목받게 된다. 전자는 사실성이 강조되는 법정드라마와 초능력 판타지를 결합시켰고, 후자는 로맨스, 미스터리, 사극, SF 판타지 등 이질적으로 보이는 장르들까지 하나로 녹여냈다. 중국 투자 열풍을 일으킨 두 작품을 계기로, 판타지 드라마는 더욱 다양한 소재와 장르적 요소들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신의 선물-14일>(SBS), <시그널>(tvN)처럼 스릴러, 사회극과 결합한 판타지가 나오는가 하면, <도깨비>(tvN), <화유기>(tvN)처럼 신계의 존재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나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은 증강현실을 끌어들여 가상, 초현실적 세계 위주로 펼쳐지던 판타지 서사의 지평을 한 차원 더 확장했다.

 이처럼 다채롭고 신선한 한국 판타지들은 연이어 해외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스케일을 더욱 키워 글로벌 콘텐츠로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수백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도깨비>, 같은 판타지 대작이 등장하면서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일컫던 ‘텐트폴’이라는 용어가 드라마에도 사용되는 추세다. 실제 두 작품은 세계 각국에서도 동시방영되며 스케일에 걸맞은 기록을 세웠다.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슈퍼히어로물과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대서사극이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미국과 경쟁하기엔 힘겹지만, 다양한 소재를 유연하게 결합하는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매력인 한국형 판타지 드라마는 나름의 승부수를 지닌다. 여기에 충분한 제작비로 형식적 완성도까지 보완한다면 경쟁력은 한층 높아진다. 역대 한국드라마 편당 최고 제작비를 들인 <킹덤>(넷플릭스)과 송중기, 장동건을 주연으 로 기용한 <아스달 연대기>(tvN) 등 2019년 판타지 대작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지금 판타지는 한국 드라마의 대안에서 희망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 《쿨투라》 2019년 1월호(통권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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