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9] 아이들의 가슴에 시심詩心을 ‘쑥쑥’ 심어주는 선생님
[강형철 시인의 군산통신 9] 아이들의 가슴에 시심詩心을 ‘쑥쑥’ 심어주는 선생님
  • 강형철(시인)
  • 승인 2021.09.0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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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서해초등학교 송숙 선생님을 찾아서

  살다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지니고 있던 사유체계가 확연히 변화하는 순간과 계기를 갖는다. 내게는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 우주에 대해 가르쳐주셨던 순간이 그렇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설명하면서 은하계에 속한 한 별무리인 태양계를 설명하고 화성·수성·지구·목성·토성 등을 설명하셨는데 그 별의 하나로 지구를 거론하는 순간 나는 내 몸이 먼지 하나도 될 수 없는 지극히 하찮은 존재임을 실감했다.

  그 실감의 순간은 내가 세상에서 살고 일하는데 멀지만 깊은 인식으로 작동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50여 년이 지난 일인데 그 순간을 환기하는 것은 군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학급의 화단을 만들고 가꾸면서 시를 쓰게 만드는 송숙 선생님(별명:쑥국 선생. 이하 쑥국 선생으로 적음) 때문이다. 지금 선생님과 함께 화단을 가꾸고 시를 쓰는 아이들에게 쑥국 선생님은 내게 가르침을 주셨던 중학교 때 선생님과 같이 결정적 가르침을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내게 깨우침을 주셨던 선생님은 한 명의 학생을 은밀하게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하셨다면 쑥국 선생님은 학생들 전체를 시의 세계로 안내하고, 지금 최고의 세계 인식으로 통칭되는 ‘생태적 세계인식’으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구체적인 생활 혹은 삶의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화단을 만들고 가꾸면서 수많은 야생의 풀과 꽃은 물론 거기에 날아들거나 사는 곤충들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생기는 놀랍고 재미나는, 때론 징그럽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한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때 생기는 느낌과 생각을 학생들에게 글로 쓰게 하면서 이를 어린이 시로 확장시켜 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시똥누기’ 화단으로 명명한다. 자연을 보고 느끼며 그것을 시로 쓰는 일을 누가 이렇게 발랄하게 명명할 수 있을까?

  그의 학급 학생들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2017년부터 그는 학생들의 시를 모아 어린이시집 『시똥누기』(시와 에세이, 2017), 『분꽃 귀걸이』(학이사 어린이, 2018), 『호박꽃 오리』(학이사 어린이, 2019), 『질경이 씨름』(2020), 『감꽃을 먹었다』(학이사 어린이, 2021)를 냈다. 또한 그는 아이들과 함께 화단을 가꾸며 생겨난 유쾌하고 재밌고 뭉클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교실이야기 『맨드라미 프로포즈』(학이사, 2019)라는 책도 냈다.

  아이들이 쓴 시를 책으로 내면서 가능하면 아이들의 입말을 살리기 위하여 그대로 싣고 그 아래에 주석을 달아 맞춤법이 틀린 것은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되 지역 방언들은 표준어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실제로 아이들이 쓰는 말이나 감정을 그대로 실감하게 된다(소설가 채만식의 『탁류』를 신문 연재 당시의 말로 편집하여 책을 내고 거기에 주석을 달고 있는 군산 <마리서사>판 『탁류』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 김용택은 김이찬 어린이가 쓴 「날벌레」를 꾸미지 않고 쓴, 저절로 나온 재미난 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시를 읽어 보자.

  내가 그냥 걷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날벌레가 나타나더니/내 코에 들어갔다/그때 난/강한 콧바람으로 날렸다. (『시똥누기』, 23쪽)
  너무 자연스럽다.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아이들의 순수하고 거침없는 생각과 행동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게 된다. 또한 그 모습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 단순하면서도 즉자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같은 책에 실린 박규린의 「웅덩이」를 읽는다.
  비 오는 날 생기는 웅덩이/다른 사람들은 그냥 피해가지만/난 아니다/밟고 지나가거나/웅덩이에 나뭇잎을 띄우거나/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하루를 반성하고/나에게 칭찬한다/웅덩이는 나에게 특별하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불편하거나 없어져야할 대상인 ‘웅덩이’, 비가 오면 오목한 그 자리에 물이 고인다. 쑥국 선생과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흘러가는 구름도, 날아가는 새도 허투루 보지 않고 관찰하며 사유를 하게 된 아이에게는 길거리에 비가 올 때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웅덩이 하나, 아니 천하 미물의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거나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대상이 된다.

  2017년 작은 베란다가 딸린 특이한 교실을 만나게 되면서 쑥국 선생님은 아이들과 화단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아이들이 시의 세계와 더불어 자연의 세계로 성큼 들어가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아이들에게 굳게 닫혀졌던 빈 공간을 개방하여 화분을 들이고 꽃과 채소 모종을 사 아이들과 심었다. 차 트렁크에 삽과 비닐봉지를 싣고 다니면서 흙을 퍼오기도 했고 시골에 갈 때마다 씨를 받아 그 이듬해 심었다. 꽃집에서 파는 꽃보다 봉숭아, 맨드라미, 족두리꽃(풍접초), 분꽃, 접시꽃, 사루비아(샐비어), 얼굴 큰 해바라기, 채송화 등 어렸을 적 보았던 꽃들을 심었다. 낯선 외국이름을 가진 꽃들보다 정다운,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는 우리의 꽃들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질경이, 도꼬마리, 엉겅퀴를 ‘모셔다가’ 심기도 하고, 고추, 오이, 호박, 수세미, 감자, 배추, 무를 심었다, 고무 자배기를 사다 논흙을 채우고 벼도 심었다. 흙이 그득 담긴 채 방치돼 있는 보기 흉한 커다란 고무 자배기엔 물을 채우고 수생식물을 심어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그러자 금붕어를 가져오는 아이가 생겼고 실잠자리가 알을 낳아 애벌레의 유충을 관찰할 수 있었다. 쑥국 선생님은 화단의 모든 것들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이를 사진을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만져보게도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참 특별한 선생님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그 내력의 일부분은 『맨드라미 프로포즈』나 아이들의 책을 엮으면서 비치기도 했으나, 그에 대해 글을 쓰게 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2년 동안 휴직을 했는데, 휴직하기 직전 2년간 학교폭력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 기간이 교사로서 가장 힘들고 지친 시간이었다. 5년의 근무를 마치고 다른 학교로 발령받아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했지만, 몸과 마음이 방전되었음을 느끼고 휴직했다. 그러면서 대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교수들의 안식년과 같은 휴식일반과 재충전의 시간이 교사 모두에게 절실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깊이 공감했다.

  학교와 집안일 등의 고정적이고 단조로운 일들 사이에서 기계적으로 살다가, 휴직 기간에 시와 꽃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야생화를 보러 다니는 일과 꽃 사진을 찍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꽃을 보러 가는 길에 대한 설렘과 꽃에 대한 느낌을 짤막하게 쓰는 일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시인들을 알게되면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읽던 시를 마지막으로 읽지 않았던 시를 조금씩 읽게 되었다.

  휴직 기간을 끝내고 2016년에 복직하여 만난 아이들은 무척 드세고 힘든 아이들이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랴, 아이들과 씨름하랴 녹초가 되었던 어느 날 지인이 선물해주었던 동시집에서 재미있는 시를 하나 골라 칠판에 써 두고 퇴근을 했다. 아침에 학교에 온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칠판에 쓰인 시를 읽고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편씩 시를 보여주자 개구쟁이 남학생이 일기장에 시를 써온 것이다. 아이들이 시를 써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그는 깜짝 놀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자 반 아이들 전체가 시를 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의 시가 점점 발전하는 것을 느끼며 혼자 보기에 안타까워 궁리 끝에 정식 시집을 내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일 년 동안 쓴 시들을 모아 어린이시집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화단을 가꾸면서 함께 웃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고, 시를 통해 아이들과 교감하면서 반 아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교사로서 자신이 더 치유 받고 행복해졌다고 쑥국 선생님은 고백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즐겁고, 즐겁기 때문에교직에 있는 한 이 두 가지 일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쑥국 선생님과 만나면서 듣고 본 이야기들을 학교 사회의 한 미담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 또한 쑥국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에 공감하는 선생님과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부의 취득 수단으로 자연이 소비되고 그 자연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근대 문명 일반이 작동되고 있는 한, 그리고 그러한 삶을 재생산하는 일에 학교와 학생들이 한 개의 나사못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한 그것은 자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란 제목의 책을 낸 염무웅 선생님처럼 일반 도시의 ‘아파트 숲’ 속에 세워진 학교에서라도 유례없는 더위에 말라 죽을지 몰라 물조리개를 들고 조바심내며 물을 주는 쑥국 선생님 같은 분들이 세상을 향해 들이는 마음과 정성들은 세상에 또 다른 꽃과 향기를 전해줄 것이라는 사실도 또한 명백하다.

 

 


강형철
1955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철학과, 동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환생』과 평론집으로 『시인의 길 사람의 길』, 『발효의 시학』 등이 있다.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사)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장착과에서 시를 가르치다 정년하였으며, 현재 고향 군산에서 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9월호(통권 8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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