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브라보! 모차르트!
[클래식 산책] 브라보! 모차르트!
  • 한정원(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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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의 로마’라고 불리는 유럽의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는 어디서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빌려 만든 음악교육 기관 모차르테움Mozarteum에서는 일 년 내내 그의 작품들이 연주되기도 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기도 했던 이곳은 매년 여름이면 음악 축제가 열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수많은 애호가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곳이다. 잘츠부르크의 낭만을 더하는 다리 들이놓인 잘자흐Salzach 강을 따라 걸으면 강 왼편으로 구 시가지에 위치한 모차르트 생가가 보이는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벽에 걸린 가족 초상화들과 모차르트 가계도, 그가 사용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가 남긴 많은 편지들과 자필 악보도 만나볼 수 있다. 그곳에는 그의 머리카락 일부도 남겨져 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던 2006년에는 이 기념비적인 날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게트라이데가쎄 8번지에 위치한 그의 생가에는 축하 인사와 축배가 넘쳐났으며, 2미터 넘는 초대형 생일케이크 커팅식도 인근 카피텔 광장에서 행해졌다. 한 위대한 음악가에 대한 기억과 찬사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빈, 모차르트의 태반이자 광장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781년 빈Wien으로 온전히 자신의 거처를 정하기전까지 그는 가족과 함께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그는 열세 살 때부터 무보수로 궁정 악단의 악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했다. 그럼에도 각국 여러 도시로의 너무 잦은 연주 여행과 자유로운 성품 때문에 대주교와 불화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1781년 6월 악장 직을 사임하였다. 모차르트는 1777년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함께 뮌헨, 만하임을 거쳐 파리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으려 많은 노력을 하지만 이미 그의 나이 스물둘, 예전의 신동 타이틀을 내세우기에는 거리가 먼 때였다. 그는 여기서 생활고와 더불어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생애 큰 슬픔을 경험한다.

  1780년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였던 빈은 하루도 쉼 없이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릴 만큼 음악적 활기가 넘쳐났다. 귀족들은 윤택한 생활을 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높은 예술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듯 안정된 시기의 빈에서 모차르트는 최고 전성기를 보낸다. 빈은 일곱 살 신동이 생애 첫 연주 여행에서 성공과 인기를 얻은 곳이고, 성 슈테판 성당에서 콘스탄체를 아내로 맞이한 곳이며, 첫 아이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궁극에는 자신의 죽음까지 맞이한 곳이다. 그야말로 모차르트의 생애가 고스란히 새겨진 곳이었다. 빈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연주가, 작곡가, 선생님 등으로 칭송되며 모든 면으로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즈음 모차르트는 3년 동안 12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대체 악장들을 집중적으로 만들었는데, 아버지 레오폴드는 딸 난네를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주회와 작곡으로 정신없이 바쁜 모차르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역사적 만남도 1784년 빈에서 이루어진다. 음악 공부를 위해 모차르트를 찾아온 열네 살의 베토벤은 그의 앞에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한다. 모차르트가 놀란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이 젊은이를 잘 지켜보게. 머지 않아 세상을 놀라게 할 걸세.”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처럼 모차르트에게 빈은 스스로 거장으로 태어난 음악의 태반이자 많은 이들을 만난 음악의 광장이었다.

 

  내가 아는 작곡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모차르트는 교향곡, 오페라, 협주곡, 미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협주곡으로는 건반 악기를 위한 총 28곡의 협주곡과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 밖에 호른과 목관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남겼다. 그는 많은 피아노 협주곡을,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연주회용으로 작곡하였다.

  피아노 협주곡이 확립되고 오페라가 발전하고 완성된 시기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한 고전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모차르트 협주곡은 대사가 없는 오페라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정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융합하고 대조와 긴장의 모습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정교하게 짜여진 모티브와 테마의 전개로써 입체적인 드라마의 구조를 만들어낸다.이것은 협주곡이 아닌 그의 다른 작품에서나 또 다른 작곡자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모차르트 협주곡의 음악사적 공헌은 카덴차의 정형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카덴차Cadenza는 협주곡의 구성 요소 중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 모차르트 이전의 협주곡에서는 카덴차가 악곡의 진행 도중에 임의대로 나오지만, 그는 이를 재현부 끝과 코다 직전에 연주하도록 하였다. 화성적인 면에서 이전에는 카덴차를 준비하는 화성이 으뜸화음이나 딸림화음이었다면, 모차르트는 좀 더 과감한 4-6화음을 씀으로써 더욱 현대적인 울림 효과를 이루어냈다. 마지막으로 모차르트는 이전 연주 관행대로 카덴차 부분을 연주자의 기량과 즉흥적인 연주에 일임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작곡하여 텍스트화하였다. 그리하여 악곡 전체를 통해 연주자가 기량을 맘껏 발휘하면서도 작품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게끔 유도하였다. 이 세 가지는 모차르트가 자신의 협주곡을 통해 이루어낸 가장 큰 음악사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이루어낸 작품적 성취는 질과 양모든 면에서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원숙미의 절정을 담은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그가 피아노를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끝없는 예술적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많은 협주곡 중에서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제20번 d단조 K.466은 1785년 2월 11일 모차르트 연주로 초연되었다. 황제 요제프 2세와 아버지 레오폴드가자리한 연주회에서 황제는 “브라보! 모차르트!”를 연발했고, 이튿날 하이든은 모차르트 아버지에게 이런 극찬을 했다고 한다.

  “당신 아들은 내가 아는 작곡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인물입니다.”

 

한정원
피아니스트. 연세대학교 기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에서 독주와 실내악을 전공하고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이태리 디노치아니 국제콩쿨 특별대상을 받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하던 중 귀국하여 십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일송출판사에서 악보 해설집을 출간하였으며, 현재 국내외로 많은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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