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에세이] 가짜 뉴스의 역설?
[사회문화 에세이] 가짜 뉴스의 역설?
  • 설규주 (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4.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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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러리 클린턴이 워싱턴 DC에 있는 피자 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중에 페이스북 등을 통해 널리 확산된 가짜 뉴스 중 하나다. 이른바 ‘피자 게이트’라 불리는 이 뉴스를 접한 한 남성은 그 사실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그 피자 가게를 찾았고 거기서 총을 난사하다가 붙잡혔다. 소셜 미디어를 떠도는 가짜 뉴스 때문에 우리 삶이 진짜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는 기이한 현상에 주목하여 옥스퍼드 출판사는 2016년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탈진실)”을 선정한 바 있다.

  가짜 뉴스는 fake news를 옮긴 말로 원래는 주로 풍자 뉴스나 패러디를 가리켰다. 풍자나 패러디는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재미로, 때로는 현실 비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풍자나 패러디를 보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보면서 그냥 웃고 말거나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나라에서는 fake news를 ‘가짜 뉴스’로 옮기고 있는데정확한 번역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진짜가 아니니까 가짜 뉴스라고 하기보다는, 대중을 속이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다는 점에서 ‘날조 뉴스’, ‘조작 뉴스’라고 부를 때 그 의미가 더 잘 와닿는다. 이 점에서 가짜 뉴스는 취재 부족 등으로 인해 사실을 잘못 알린 오보(誤報; misreport, misinformation)와는 구분된다. ‘피자 게이트’도 오보가 아니라 클린턴의 당선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가공해 낸 날조 뉴스였다.

  가짜 뉴스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로 연예계 쪽에서 가짜 뉴스가 많았다. 누구와 누구의 파혼설, 출산설, 학력 조작설, 마약 복용설 등등. 이런 뉴스는 해당 연예인의 팬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다고 볼 수없다. 연예인은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일뿐 공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공인公人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다 공적인 이슈와 관련된 가짜 뉴스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한 방송사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최악의 가짜 뉴스로는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설,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보상설, 5·18 당시 북한특수군 침투설이 나란히 1, 2, 3위로 꼽혔다. 2018년에는 대북 쌀 지원으로 인한 쌀값 폭등설, 남북정상회담 당시대통령 전용기의 태극기 삭제설, 예멘 난민 신청자에게 월 138만원 지급설 등이 주요 가짜 뉴스로 선정되었다. 북한, 정치, 민생, 이민 등과 같이 우리 삶에 직접 관련되며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민감한 이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가짜 뉴스는 단지 생산과 유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의 진위 때문에 생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재판이 열리기도 하고, 가짜 뉴스에 동조하거나 항의하는 사람들이 거리 집회에 나서기도 한다. 가짜 뉴스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인데...
어찌 보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가짜 뉴스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일단 가짜 뉴스는 우리 시선을 확 잡아끄는 솜씨가 뛰어나다. 제목은 자극적이고 내용은 충격적이다. 개가 사람을 문 것은 뉴스거리가 아니지만 사람이개를 문 것은 뉴스가 된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우리나라에도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난민 신청자에게 월138만원씩 준다는 뉴스가 있다면 누구라도 한번쯤 눈을 비비고다시 한 번 그 기사를 유심히 보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가짜 뉴스는 제법 정교하게 실제 뉴스처럼 보이게 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가짜 뉴스는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가상의 언론사 이름과 기자 이름을 달고 등장하기도 하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어떤 전문가의 인터뷰를 인용하기도 한다. 실제 그랬는지 확인은 해볼 수 없는 해외 어느 나라의 관련 사례라도 한두 개 덧붙여지면 그 기사에대한 신뢰도가 쭉쭉 올라간다. 이러니 어지간한 사람은 다 속아 넘어갈 수밖에. 게다가 가짜 뉴스는 쉽게 만들어지고 금세퍼진다. 출처나 근거 따위는 별로 중시하지 않는 유튜브 개인채널이나 단체 카톡방 등에서 뚝딱 만들어진 ‘뉴스’는 소셜 미디어의 퍼나르기 기능에 힘입어 수백 수천 명의 손 위에 순식간에 배달된다.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도 않고 ‘가짜’라는점에서 그 자체로 옳지도 않은 가짜 뉴스는 도대체 누가 왜 만들어 내는 것일까?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가짜 뉴스를 통해 누군가 이익을 얻거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획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특정 정당, 세상은 성큼성큼 저만치 변해 가는데도 자신의 교리와 가치만큼은 불변의 유일한 가치로 주입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특정 종교 단체, 공익은 훼손되더라도 소속 구성원의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특정 이익 단체, 다른 문화나 집단을 혐오하고 비하함으로써 자기가 속한 집단의 우월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개개인 등등...

  이들에게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포 행위에 대한 성찰이란 게 있을까. 성찰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머뭇거림이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들은 가짜 뉴스는 좋기도 하고 옳기도 한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어떤 가짜 뉴스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 사회야 어찌되든 마냥 좋은 것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지지하는 신념이나 가치가옳다고 믿고 있으니 그것을 편들어 주는 뉴스도 마냥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짜 뉴스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것도 얄미운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것, 옳은 것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이르면 암울해진다.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증오, 범죄, 질병, 고통 등이 모두 나가 버리고 마지막으로 ‘희망’이 하나 남아 있었던 것처럼, 가짜 뉴스의 범람 속에서도 애써 그 ‘희망’에 해당하는 걸 한 가지 찾아보는 것으로 위로를 얻고 싶다.

  ‘국민의 대표’라는 무거운 이름을 너무나도 가볍게 써먹는 일부 국회의원의 입에서도 가짜 뉴스에 해당하는 내용이 줄줄 새어 나오는 것이 요즘 풍경인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것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곤 한다. 상당수의 언론사나 관련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팩트 체킹fact checking 덕분이다. 화제가 되고논란이 되는 발언이나 통계치 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내기 위해 사실을 들이대면 금방 답이 나온다. 팩트 체크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정말 사실fact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팩트 체크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그냥 넘어가거나 잊어버렸을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해악 투성이인 가짜 뉴스가 가져온 역설적인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까...

 

설규주
서울대 사회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플로리다 주립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방문 교수로 연구하였다. 저서로는 『청소년을 위한 정치학 에세이』 『시민교육론』 『다문화교육의 이해와 실천』 등이 있고 인권, 다문화 등의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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