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Journey to Peru Journey] 아마존의 정글
[Photo Journey to Peru Journey] 아마존의 정글
  • 이기식(고려대 독문과 교수)
  • 승인 2018.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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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미터가 넘는 아나콘다 뱀이 거구를 자랑하며 나무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곳이다. 무시무시한 이빨을 자랑하는 악어가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곳이다. 거대한 독뱀인 보시마스터가 언제든 달려들어 한방에 생명체를 끝장내는 곳이다. 그뿐이 아니다. 흡혈 박쥐가 있고, 물 속에는 사나운 물고기인 피라냐가 산다. 물론아름다운 노래와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금강앵무새가 살기도 한다. 온갖 종류의 원숭이가 이 나무에서저 나무로 돌아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이 아마존 정글의 모습이다.

  사실 생각만 해도 겁이 덜컥 나는 곳이 정글이다. 정글의 온갖 무서운 장면은 이미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익히 보지 않았던가. 언제 어디서 맹수가 뛰어나올지 모르는 곳이다. 좌우만 살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바라보아야 한다. 높은 가지에 매달린 뱀이 언제 내 목을 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글의 온갖 무서운 광경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괜히 내 목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발목을 한번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래도 지구의 정반대에서 날아 왔는데, 한번은 보아야지 하면서 용기를 내본다. 용기를 애써 내다가도 다음 순간이면 다시 망설여진다.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닌데 하면서. 여행 안내서를 다시 한번 더 읽어 본다. 정글의 위험은 그뿐이 아니란다. 온갖 독거미와 모기, 거기다 풍토병과 말라리아도 위험스런 놈이다. 어쩌나 하면서 또 며칠을 보낸다. 다른 사람들도 다녀간 곳인데, 나라고 가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을까 하면서또다시 용기를 내본다.

  아마존 유역의 정글에 가려면 이키토스라는 도시에 우선 가야 된다.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이키토스는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없는 세계의 도시 중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밀림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은 도시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해발 130미터인 이 곳에 무려 40만여 명이 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부네 집처럼 옹기종기 붙어서 산다. 큰 나라 사람이라고 모두 큰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사람들, 인도 사람들도 나라는 크지만 대개 작은 집에서 산다. 건축 자재가 비싸기 때문이다.

  이키토스도 마찬가지이다. 정글에서는 흔하고 흔한 것이 나무이지만 이 곳은 사정이 다르다. 리마에서 비행기를 한 시간 남짓 타면 이키토스에 도착한다. 리마를 떠난 비행기가 조금 날아가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눈에 들어온다. 풀 한 포기 없는 산 정상에 만년설이 쌓여 있다. 그 하얀 눈꼬깔에 넋을잃고 창 밖을 내다본다. 그러다 어느 새 진한 검푸른 색깔의 숲이 눈에 띈다. 이 숲이 아마존 유역의 정글이다. 짙은 황토빛의 강이 그 정글을 가르고 지나간다.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능구렁이가 잔디 위를 지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정글에 겁먹은 내 눈에, 그 강마저 정글의 뱀을 연상시킨 것이다. 혼자서 문득 겁이 나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정글은 하늘을 찌를 듯한 온갖 종류의 나무들과 넝쿨이 뒤엉켜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곳이다. 그 나무들 아래로 크고 작은 나무들과 풀들이 우거져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이키토스에서 배로 약 한 시간 걸려이 정글로 들어왔는데, 이젠 어떡하랴. 그냥 부딪혀 보는 수밖에. 가이드를 앞세우고 정글 속으로 들어선다. 인기척 하나 없는 정글의 어느 곳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울어댄다. 물론 새 울음이라고 추측한 것이다.새 울음인지 맹수 울음인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온다. 잔뜩 겁먹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앞과 옆을 부지런히 살펴본다. 물론 나무 위도 살핀다. 언제 어디서 못된 짐승들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정글 속에 있는 사람은 가이드와 나뿐이다. 잔뜩 겁에 질린 나를 더 무섭게 만든 것은 짐승이 아니라 가이드다. 1미터나 되는 칼을 내 앞에서 이리저리 휘두르며 나뭇가지를 자르며 앞으로 나간다. 혹시 저 녀석이 저 칼로 내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나는 당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무기를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그 녀석이 내 물건을 차지한다면 적어도 몇 년은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에는 카메라 세 대와 돈이 몇 백 달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의 보통 사람들은 죽자고 일해도 한 달 수입이 수십 달러도 채 안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천불에 불과한 나라가 아닌가. 그 중에서도 가난한 지역인 이 곳 사람이 아닌가. 아, 그래도 다행히 여행사를 통해서 가이드를 구했으니 별일이 있으랴 하면서 애써 위로를 해 본다. 내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여행사도 책임을 져야 할테니까.

  “뱀이다! ”라고 가이드 녀석이 갑자기 소리친다. 다리가 그만 땅에 착 얼어붙는다. 도망갈 준비를 해야될 텐데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몇 초가 지났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못된 가이드 녀석이 나를 놀린 것이다. 못된 자식, 그렇지 않아도 잔뜩 겁먹고 있는데, 가이드란 녀석이 그런 장난을 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겁먹은 내 얼굴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 녀석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앞으로 나간다. 얼마를 갔을까. 저것 좀 보라고 가이드 녀석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또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건가. 그 녀석의 신용도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도 어쩌랴! 그래도 믿을 놈은 그녀석뿐이지 않은가. 앞을 바라본다. 아니 저런, 커다란 이구아나가 우리 앞길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어쩌나, 오금이 저려온다. 보통 큰일이 아니다. 온몸이 허수아비처럼 굳어 버렸다. 저건 안심해도 된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애써 안심을 하고서 바라보는 사이에, 이구아나란 녀석이 얼른 정글 속으로 달아난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자기가 겁을 먹다니. 하긴 고맙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상의와 하의는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덥기는 왜 이리도 더운지.

 

 

* 《쿨투라》 2018년 9월호(통권 5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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