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제주라이프] 선욱아 뭐하니? - 비양도에 다녀오다
[1월 제주라이프] 선욱아 뭐하니? - 비양도에 다녀오다
  • 유혜영(방송작가)
  • 승인 2019.01.31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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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리가 좋겠어? 난 3마리.

그럼 좀 뿌듯함은 없을 것 같은데, 집에서 한림항 도선대합실까지 23km에 배타고 10여분 가야되니 기름 값에 뱃삯에…아무래도 5마리이상은 잡아야 되지 않을까? 한 마리에 얼마정도 하지? 킬로에 삼만 원. 그렇게나 비싸? 그럼 좀 적게 잡아도 되겠네~. 무슨, 자연이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며 다 받아와야지. 아 예감이 좋은데 열 마리이상 잡으면 어쩌지?

… 그렇게 우리의 비양도 여행이 시작됐다. 하루 네 번 운행하는 비양도천년랜드에 승선하기 위해 오후 1시 40분 한림항에 도착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바다냄새도 일조량도 적당한 기분 좋은 날씨였다.

어쩌면 조금은 냄새가 짙었을지도 조금은 쌀쌀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마음 상자에 담아놓은 흰 오징어 덕분에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넉넉했다.

 

흰 오징어를 잡으러 가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은, 여름 내내 우리를 설레게한 한치 때문이다. 본토처럼 마음먹고 달려가야 만나게 되는 바다가 아니라 차타고 동서남북 어디를 달려가도 1시간 남짓 그 끝이 바다인 제주에 살면서 낚시 한 번 안해 본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제주도민 3년차 6월의 어느 날, 노을을 등지고 서서 남편과 나는 나란히 낚싯대를 던졌다. 6살 꼬마가 옆에서 응원했고 운 좋게도 우리는 꾼들이 얘기하는 손맛을 볼 수 있었다. 한치였다.

그 날 이후 우리가족은 3년에 한 번 꼴로 한치 낚시를 했는데 그 중 지난여름이 가장 많은 한치를 잡은 해이다. 한치는 살아있는 미끼가 아니라 새우처럼 생긴 에기를 놀려 목표물을 잡아내는 낚시법을 쓴다. 장비가 워낙 간편하기 때문에 평소 차 트렁크에 낚싯대를 넣고 다니다 오늘 밥상에 올릴 식재료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바다를 만나면 주저 없이 던지면 되니 제주가 주는 특혜인 셈이다.

 

한 달 남짓 우리를 즐겁게 해준 한치는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는 에깅낚시의 로망인 흰 오징어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를 잡자마자 천년랜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쪽의 우도나 남쪽의 가파도, 마라도로 갈 때보다 왠지 소박한 느낌이 든다. 그리곤 이름처럼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을 주저 없이 무너뜨리고 10분 만에 비양도에 도착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2005년 배우 고현정의 복귀작이었던 ‘봄날’의 그곳이 눈에 펼쳐져있어 어제 다녀갔던 곳처럼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우리의 1박을 책임질 민박집이 배가 닿기도 전에 눈에 들어오니 마음이 턱 놓이는 게 이제 흰 오징어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숙소까지의 5분 걸음이 온통 설렘이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오후 5시가 채 안 돼 우리는 드디어 방파제로 향했다. 지나가는 섬 비양도를 닮아 제주도 서쪽에서 어디론가 우리의 목표물 또한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흰 오징어를 무늬오징어라고도 부르는 까닭은 살아있을 때 무늬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바다낚시 첫걸음에서 공부한 암수구별도 머릿속에 있는 터라 빨리 그 무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는 먹물자국이 많은 (이 자리는 이미 무늬오징어가 잡혔던 좋은 자리요~하는 표식이라 해석) 명당에 자리를 잡고 부지런히 낚싯대를 던지기 시작한다. 에기가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낚싯대를 빠르고 강하게 추켜올리면서 에기를 물속에서 뛰듯 움직이는 것이 전략이다, 올려치기를할 때는 2단이나 3단으로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족은 초보여서 모든 것이 어설프다. 그래도 한치 낚시의 경험을 떠올리며 열심히 던지고 또 던지고를 반복한다. 1시간 30분 경과.

어찌된 일인지 한 마리도 잡히지를 않는다.

또 1시간이 흐르고 사방은 어둠이 내려 앉고 있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남편은 현란한 에기들을 낚싯대에 장착, 목표를 문어로 바꾸고 나는 방파제 밑 바위로 내려가 바닷물이 돌아들어오고 나가는 지형을 찾아 가열차게 낚싯대를 던지기 시작했다. 어둠 안에서 고요를 보며 그렇게 간절한 바람으로 바다를 향한지 다섯 번. 왔다. 손끝에 묵직함이 느껴진다.

 

여보, 잡았어!

그렇게 나에게로 온 흰 오징어는 어찌나 무늬가 선명한지, 또 초록 눈은 어찌나 신비하던지, 손맛한 번 제대로 본 순간이었다.

첫 수의 안도감과 또 다른 기대감으로 흘러 보낸 두 시간. 우리는 팔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던지고 또 던졌지만 더 이상 흰 오징어는 찾아오지 않았고 아이가 잠들어있는 새벽녘 민박집 앞에서 재도전을 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 9시가 넘어 저녁을 마주했다. 잡겠다는 일념으로 일부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우리가족에게 한 마리 흰 오징어는 두고두고 기억할 맛을 선물해줬다. 반은 회로. 반은 라면에 넣어서 세 사람이 서로 양보하며 먹은 저녁 한 끼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나눈 아들과의 대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을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이 됐다.

 

엄마. 있잖아요… 없었으면 슬픈 거와 없어지면 슬픈 게 있잖아요? 엄마는 어떤 게 그래요?

13살이 된 아이의 질문에 먼저 픽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아들의 만 가지 생각을 지닌 얼굴이 막아선다. 그 밤 바다냄새와 바다 바람을 안으며 엄마에게 물어본 아이의 질문. 없었으면 슬픈 거도 흰 오징어, 없어지면 슬픈 거도 흰 오징어라고 말하려다 그건 바로 너. 엄마에겐 바로 우리 아들이 그래. 하고 말한 나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음 짓는다. 아이는 한 번씩 내게 화두를 던져준다.

문득 문득 생각나는 질문, 없었으면 슬픈 거와 없어지면 슬픈 게 무엇일까?

나는 나에게 매번 묻는다.

제주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진짜 시간. 곳곳이 걸음걸음이 순간순간이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시간. 비양도였다.

 

 

* 《쿨투라》 2019년 1월호(통권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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