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Journey to Peru Journey] 잉카제국의 수도 쿠코스와 잉카 시장
[Photo Journey to Peru Journey] 잉카제국의 수도 쿠코스와 잉카 시장
  • 이기식(고려대 독문과 명예교수)
  • 승인 2019.01.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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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반드시 페루를 들러가게 된다. 페루는 남미 관광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잉카의 고도 쿠스코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쿠스코를 거쳐 마추피추에 가려고 한다. 그러므로 마추피추는 남미 관광의 백미다. 물론 쿠스코 자체만으로도 관광객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세상의 배꼽”이라는 의미를 지닌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이 곳에는 잉카 이전, 잉카 제국 시대, 식민지 시대 그리고 현대 건물이 함께 어우러진 고도이다. 모든 관광객들의 동경을 받고 있는 쿠스코지만, 이 곳에 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백두산보다 더 높은 해발 3326미터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에게는 언제든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모든 여행안내서에는 점차 고도를 높여 쿠스코에 갈 것을 권고한다. 고산병을 피하려면 이처럼 천천히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면 그 위험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아레끼빠를 거쳐 쿠스코에 간다. 그러나 필자는 마추피추를 보고 싶은 조급함에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직행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조급함 말고도 필자의 그간 경험이 좀 건방진 생각을 갖게 했다. 쿠스코보다 더 높은 3800미터의 일본 후지산도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또 그보다 더 높은 4300미터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도 다녀왔지 않던가. 그보다 1천미터나 낮은 곳인데 어떻겠느냐는 건방을 떨었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해안도시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에 내리는 순간 곧 시건방진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고도가 갑자기 3천미터 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질어질하고 숨이 가빠진다. 머리도 띵하다. 이것은 고산지대에서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고산병이다. 신체에 산소 공급이 부족하여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머리도 아프고 어질어질하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좀 심하면 구토까지 하고, 더 심하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고산병이다. 이럴 때는 조금 낮은 지대로 이동하면 대개 해결이 된다. 그곳에서 몸이 적응을 하면 천천히 다시 높은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번거로워 그냥 버티기로 마음을 먹는다.

제일 먼저 잉카 후손들이 모이는 장터로 갔다. 쿠스코의 뒤편으로 해서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간다. 택시 뒤 편에 앉아 금붕어처럼 물만 마신다. 그래도 걷지 않으니 견딜만 하다. 길옆에는 돼지를 몰고나와 풀을 뜯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곳 돼지들은 우리나라 돼지보다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광경을 보면서 더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갔다. 택시에서 내려 주위 풍경과 고산지대 마을을 살폈다. 걷기가 더 힘들어진다. 고도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시 건방진 마음을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좀더 올라가니 고지대에 평지가 펼쳐지고 풀밭이 전개되었다. 그 뒤로 만년설을 뒤집어쓴 아우산가테 산이 6380미터의 그 큰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지대의 평지에는 넓은 풀밭이 펼쳐진다. 그 풀밭에는 목동이 산양을 방목하고 있었다. 어린 목동은 낯선 이의 방문을 신기해하면서 어린 양을 안고서 자랑해 보인다. 또 어린 소녀는 조랑말을 타고 달리면서 말타는 실력을 자랑했다. 이 아이들의 피부들은 검다. 때를 씻지 않아서 그런지 손도 팔도 피부가 아주 거칠다.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한번도 세탁을 한 적이 없어 보인다. 옷과 피부가 온갖 때와 먼지로 덮혀 있는 것 같다. 필자의 논산 훈련소 시절보다 더 심한 것 같다. 머리카락은 우리처럼 아주 까맣다. 그렇지만 철사처럼 딱딱해 우리 방식으로 해석을 하면 모두가 고집불통인 것 같은 모양이다.

 

드디어 잉카 시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고 번잡스럽다. 모두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자신들이 손으로 만든 온갖 물건들을 땅바닥에 늘어놓고 팔았다. 잉카시절의 전통악기도 팔고, 그들의 의상도 판다. 모자와 옷감도 팔고 가방도 판다. 모두가 화려한 색상이다. 그리고 한쪽 옆에서 음식도 팔았다. 물고기를 기름에 튀겨 팔기도 하고, 콩 같은 것을 불에 익혀 팔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막걸리 같은 것도 판다. 좌판이 없이 모두가 바닥에 자리를 깔고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을 연상시켰다. 차이가 있다면 사람 생김새가 다르고, 모두가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 곳에서 거래되는 물건들의 색깔이 아주 화려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자극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여기서 팔리는 물건뿐이 아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도 팔고 있는 물건과 잘 어울렸다. 모자 색깔도 마찬가지였다. 시장답게 거지들도 있었는데, 늙은 노인 두세 명이 구걸을 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있는 아주머니에게, 가족사진을 한번 찍자며 온갖 아양을 떨어본다. 아주머니는 뜨개질을 하고있었다. 뜨개질한 모자와 가방 등을 판다. 아주머니에게 겨우 승낙을 얻어 사진기를 꺼내는 순간, 누군가가 “캔 아이 메이커 어 픽춰 오브 유(사진 한 장 찍어도 됩니까)?” 하면서 셔트를 눌렀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 《쿨투라》 2019년 1월호(통권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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