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5] 꿈의 사제, 조용필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5] 꿈의 사제, 조용필
  • 유성호 (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9.01.31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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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꿈을 알까 – ‘화려한 도시’와 ‘고향의 향기’

 조용필이 1991년에 펴낸 13집 앨범은 《The Dreams》다. 그야말로 ‘꿈들’이다. 여기에 그는 <꿈>, <꿈꾸던 사랑>, <꿈의 요정>, <지울 수 없는 꿈>, <꿈을 꾸며>, <어젯밤 꿈속에서> 등 일련의 ‘꿈’ 노래들을 실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꿈>은 이 가운데서도 단연 대표곡으로서, 조용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싱어 송라이터로 각인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조용필의 시대였던 1980년대가 저물고 새로 열린 1990년대에 그가 던진 시대적 화두로서의 <꿈>, 우리는 그가 열창한 이 노래를 통해 그를 ‘꿈의 사제’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이 작품 안에는 ‘눈물’, ‘길’, ‘숲’, ‘늪’, ‘별’, ‘노래’, ‘고향’ 등 이른바 ‘원형 심상’(archetypal image)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미지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여기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온 한 사내가 있다. 그러나 화려함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도시는 오히려 “춥고도 험한 곳”이었다. 정착할 곳 없이 헤매다가 “초라한 문턱”에 앉아 “뜨거운 눈물”을 먹는 사내의 모습에서 우리는 차디찬 비정의 도시를 느낀다. 여기서 ‘화려함/초라함’, ‘추움/뜨거움’의 확연한 대위對位는, 1990년대초 기우뚱하게 발전해가던 거대 도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1980년대 내내 성세聲勢를 이어갔던 박노해나 백무산의 화자들이 좀 더 감각적 진정성을 가진 채 작품 안에 들어 앉아 있고, 1970년대 이후 도도하게 이어지던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거대한 물결이 이 현란한 후기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 점에서 이 노래는 당시 한국사회의 정직한 축도縮圖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물결을 가능하게 한 것이 ‘꿈’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청년들은 머나먼 길을 찾아, 꿈을 찾아, 괴롭고도 험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머나먼 길” 곧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은 ‘화려함’을 찾아오게끔 한 직접적 동력이었지만, 결국 청년은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어디가 늪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이 두려운 격절의 감각 속에서, 상상 속에서나마, 아니 꿈을 통해서만, 청년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간다. 물론 현실에서의 그는 빌딩 숲(혹은 늪) 속에 “홀로 남아서” 뜨거운 눈물을 먹고 있을 뿐이다.

 바로 그 순간, 사내는 춥고도 험하고도 초라하고도 괴로웠던 시간을 훌쩍 초월하여 ‘별’의 심상을 찾아간다. 과연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나의 꿈을 알까” 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이 “마음=꿈”은 빌딩 너머, 초라한 문턱 너머, 화려한 도시의 외관 너머, ‘별’에 이르는 청년의 순수하고도 외로운 지향을 잘 알려준다. 여전히 고통이 엄습할 때 그가 부르는 “슬픈 노래”는 조용필이 우리에게 들려준 노래들과 등가일 것이고, 그 슬픔이 꿈을 적실 때 비로소 “나 홀로/눈을 감고” 듣게 되는 “고향의 향기”는, <고추잠자리>에서처럼, <못 찾겠다 꾀꼬리>에서처럼, 유년 시절의 환하고도 무구했던 기억을 환기하는 오롯한 환각이 아니겠는가. 이 곡을 쓴 조용필은 “고향의 향기”를 ‘맡으면서’라고 쓰지 않고 ‘들으면서’라고 매듭지었는데, 이른바 공감각적 표현이 참으로 이채롭다. 옛말에도 ‘향음香音’이라 하여 향기에도 소리가 있고, 관음觀音이라 하여 소리를 듣기도 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조용필은 ‘청향聽香’의 공감각으로 가장 근원적인 ‘고향의 향기’를 완성한 것이다.

 유명한 방송진행자 김제동이 언젠가 이 곡에 대해 조용필에게 물었다. 노래를 만들 때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혹시 없었느냐고 말이다. 그때 조용필 이 답했다.

 “<꿈>이라는 노래는 그 가사가 메시지를 그대로 드러내죠. 꿈이 너무 허황될 필요도 없지만, 꿈이 없다면 죽은 인생이기도 하죠. 당시 지방에서 도회지로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면서 농촌엔 남자들이 없던 시기였어요. 도시로 나오는 것은 꿈을 위해서잖아요.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작사해서 만든 노래예요.”

 이렇게 조용필은 세상이 ‘나의 꿈’을 알아줄까를 노래했다. ‘화려한 도시’와 ‘고향의 향기’의 확연한 대위법 속에서 그 향기를 듣는 그의 품이 ‘시인 조용필’에 단호하게 육박해간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대는 청년들이 화려한 도시를 찾아왔지만, 춥고도 험한 그곳을 등지고 꿈속에서나마 고향의 향기를 온몸으로 들으려 했던 그런 때였지 않은가. 조용필의 시대 감각이 얼마나 견고하고 또 풍요로운가를 알려주는 실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노래의 제목인 ‘꿈’은 그로부터 8년 전에 이미 세상을 적신 바 있다. 온국민을 그의 친구로 만든 노래 <친구여>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 슬픔, 기쁨,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

 이 노래는 1983년 5집 앨범 《산유화》에 실렸다. 하지영이 노랫말을 쓰고 이호준이 곡을 입혔다. 잘 알려진 대로 하지영은 조용필에게 무려 열네 곡이나 노랫말을 준 작사가이다. 양인자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작곡가이자 유명한 건반연주자였던 이호준은 조용필 노래 가운데 아홉 곡을 만들었다. 이 또한 김희갑 다음 숫자다. 그는 1979년부터 ‘위대한 탄생’ 멤버로 활약했으며, 조용필의 전성기라 할 1980년대 중반까지 함께하였다.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1987), 김종찬의 <토요일은 밤이 좋아>(1987),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1990) 등을 작곡하기도 한 그는 1950년생 조용필과 동갑내기였으며 지난 2012년 폐암으로 타계하였다.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애잔한 친구의 마음이 그의 선율을 따라 움직여간다.

 이 노래의 첫 단어도 ‘꿈’이다. 그 ‘꿈’은 앞에서 본 <꿈>에서의 ‘꿈’과 한편으로는 닮았고 한편으로는 다르다. 우선 둘의 ‘꿈’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거나 만날 수 없는 불가능성에서 닮았다. 그리고 <친구여>가 낭만적이고 회상적인 데 비해, <꿈>은 그보다 좀 더 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기도 하다. 어쨌든 <친구여>는 하늘에서 잠자는 ‘꿈’을 구름 따라 흐르는 ‘추억’과 병치시킴으로써, ‘꿈=추억’의 회상 문법을 상정한다. 작품 속 청자인 ‘친구’는 꿈과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제는 만나기 어려운, “모습은 어딜 갔나”라는 말을 되뇌게 하는 “그리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자로서는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를 꿈속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기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은 바로 그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던 친구를 꿈속에서 만나는 행위일 것이다. <꿈>에서 조용필은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눈을 감고 싶어/고향의 향기 들으면서”라고 함으로써, 눈을 감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 가 닿는 순간적 행위임을 노래하였다. 두 작품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꿈’의 노래들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굳센 약속은 사라지고 없지만, 꿈처럼 추억처럼 다가오는 “그리운 친구”는 화자의 삶을 가능케 해주는 오랜 동력으로서 영원할 것이다.

 이처럼 그의 노래에는 숨길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 안에 짙은 슬픔이 배어 있다는 점이다. 아닌게 아니라 조용필의 ‘꿈’은 슬픔으로 아득하게 젖어 있다. 슬픔에 아늑하게 감싸여 있다. 조용필은 우리 모두가 꿈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를 노래했고, 꿈을 찾아왔지만 더 깊은 꿈은 근원적인 곳에 이미 있었노라고 노래한다. 그 안에 슬픔, 기쁨,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꿈’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다른 속성이 숨어 있다. 하나가 어떤 대상이나 상태를 강렬하게 염원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하나는 그러한 소망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느낌에서 발생한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라고 말할 때는 앞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꿈같은 소리 말라.”라고 할 경우에는 후자가 강하게 부각된다. 이처럼 우리가 꾸는 ‘꿈’은, 현실 가능성이 보장된 것을 달성해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던 것에 대하여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에서 완성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꿈’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신성神聖이 사라져버린 시대, 문명과 자본의 속도가 영성과 지성의 독립성을 앞질러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허무주의와 실용주의의 그늘을 드리우고 살아가는 시대, 모든 생각과 표현의 결과가 자본이 지령하는 교환가치로 호환되는 시대, 이러한 풍요롭고도 빈곤한 시대에 사제적 경건성과 예언자적 지성으로 살아갈 책무를 부여받은 이들의 ‘꿈’은 어떤 형식과 내용이어야 하는가?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회귀적 질문이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황폐한 시대에 정결한 ‘꿈’을 꾼, 그 ‘꿈’의 완성을 위해 시대 한복판에서 노래해온 영혼을 통해 ‘꿈’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는 결국 미완의 ‘꿈’을 노래했지만,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마음으로 남아, 그 미완의 힘으로 오히려, 지금도 완성을 꿈꾸게끔 한다.

 조용필은 1971년에 배성문 작사, 변혁 작곡의<하얀 모래의 꿈> , 김미성 작사, 최이철 작곡의 <꿈을 꾸리>라는 곡으로 데뷔하였다. 데뷔곡부터 키워드는 ‘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곡들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고,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지나 1976년에 펴낸 두 번째 앨범의 삽입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그는 가수로서의 꿈을 이루어가기 시작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 2절에도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 날의 꿈이었지”라는 표현에 ‘꿈’이 깃들여 있다. 그 “긴긴 날의 꿈”을 안고 그는 우리 가요사에서 실험정신과 시대정신 어느 것도 놓지 않은 채 그만의 ‘꿈의 예술’을 구현해갔다.

 지성과 행동의 결합을 추구했던 프랑스의 행동주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가 남겼다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유명한 말을 기억해본다. 조용필은 자신의 “긴긴 날의 꿈”을 넘어,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시간을 지나,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나의 꿈을 알까”라면서 우리 시대의 우울하고도 아름답고도 절실한 꿈을 노래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갔다. 그를 일러 ‘꿈의 사제’라고 불러도 좋을 까닭이다.

 

 

* 《쿨투라》 2019년 1월호(통권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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