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운명적 만남에서 예술로의 승화: 운보미술관 & 부부화가 김기창, 박래현
[미술관 탐방] 운명적 만남에서 예술로의 승화: 운보미술관 & 부부화가 김기창, 박래현
  • 김명해 (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1.10.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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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가을을 재촉하는 장마가 유난히 길다. 미술관 취재하러 가는 날에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비 소식이 오늘도 하루종일 예정되어 있어 어쩔 수 없었지만, 시원하게 더위를 날려주는 빗줄기는 소리조차 경쾌하고 나쁘지 않았다.

  청주 운보미술관은 운보(雲甫) 김기창(1914~2001) 화백이 노년에 별세 전까지 생활한 ‘운보의 집’ 바로 뒤쪽에 건립한 전시관이다. 운보미술관은 독창적이고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 발전에 기여한 김기창 화백의 업적과 예술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운보문화재단’에서 설립했다. 이곳은 위치적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산자락을 끼고 있으며, 화가가 작업하고 생활한 생가와 작업실, 박물관과 함께 있어 역사성 있는 표식(標式)으로 접근성이 좋은 문화공간이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니, 김기창 화백의 생애와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연보〉가 사진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있다. 작업하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 통일 염원을 백두산과 무궁화로 표현한 〈조국통일〉, 황소의 결투장면을 필선으로 습작한 〈투우〉 등의 대작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과감한 필력과 기운이 느껴진다. 안쪽 전시실은 김기창 화백이 평생 작업해 온 작품들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화풍은 변화의 폭이 크고 다양하여 시기별 작품성향의 구분이 쉽지 않다. 그것은 전통적 소재인 인물이나 주변 풍경을 입체구성으로 표현한 작품부터 시작하여 추상적 이미지표현, 풍속화풍의 청록산수, 민화풍의 바보산수, 문자도에 이르기까지 그림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늘 새로운 조형적 탐구를 추구하며 많은 작품을 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벗어나 실험적 작품 활동을 한 시기는 1950년대부터로 대상에 대한 근대적 변형이 추구되어 반추상적 입체파 경향이 나타난다. 대표작 〈복덕방〉(1950), 〈구멍가게〉(1952), 〈보리타작〉(1954)은 대상의 면을 분할하고 강한 필선을 활용하여 간략한 형태의 평면화 작업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동양화법에서 쓰는 선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는 추상적 경향의 작품을 선보이며 매우 암시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된 작품을 추구한다. 힘찬 필치와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아악의 리듬〉(1967)과 자연 생명력과 내적 힘을 극히 간략한 형태로 암시하는 작품 〈나비의 꿈〉(1968), 〈태양을 먹은 새〉(1968)는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전환점이 된 대표 작품이다.

  특히 〈태양을 먹은 새〉는 그가 시도한 새로운 추상화로 먹의 번짐과 뿌려짐에서 한국화 고유의 멋이 느껴지며, 이전의 분할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형태를 유연하고 빠른 필치로 그려냄으로써 화면 전체에 운동감을 부여한다. 필자가 청소년 시기 미술 교과서에서 늘 보아왔던 이 작품을 김기창 화백은 “내 분신같이 아끼는 작품이다. 우주로 비상해 우주 자체를 집어삼키고 싶은 내 심정의 표현이 기도하다”라고 고백했으며, 새가 품고 있는 생명력을 붉은 태양빛으로 표현하고 대상을 단순화하여 환원적 추상에 접근하였다. 새빨갛게 부풀어 오른 새의 몸통과 검은색으로 번진 날개와 다리를 보면 그의 말대로 우주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1970년에서 80, 90년대는 추상과 구상을 막론하고 민화와 풍속화에서 느낄 수 있는 미의식과 조형성을 현대회화로 재해석한 〈바보산수〉, 〈청록산수〉와 봉걸레에 먹물을 묻혀 행위의 극대화로 제작된 〈점,선 시리즈〉가 유명하다. 〈바보산수〉 화풍은 민화가 가진 예술성을 고취하여 풍부한 구성력과 화려한 색채, 여유와 꿈이 있는 해학성이 피어나는 독자적인 화풍으로 새롭게 발전시켰으며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의 민화는 아주 훌륭한 예술입니다. 서민들의 소박한 삶과 해학이 조금도 꾸밈없이 담겨 있어요.
〈바보산수〉는 그러한 민화의 정신을 내 나름의 작품세계에 담아보려고 한 것입니다.”

- 최병식, 『운보 김기창 예술론 연구』에서

ⓒ운보 김기창
운보 김기창ⓒ운보문화재단
ⓒ우향 박래현
우향 박래현ⓒ운보문화재단
ⓒ아악의 리듬 / 1967년작 / 비단에 수묵 채색 (운보문화재단 제공)
아악의 리듬 / 1967년작 / 비단에 수묵 채색 ⓒ운보문화재단

  이 시기 화풍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그림으로 김기창 화백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과감한 강조와 생략, 관념적인 운필과 의외의 대상 도입, 파격적인 배치, 웅장한 크기의 작품을 통해 한국화의 표현범위를 확장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시실 한편에는 김기창 화백의 부인이자 그림 동반자인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화가의 작품이 전시된 ‘우향관’도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부부가 화가로 활동하며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 경우는 매우 드물며, 해외전시를 포함 ‘운보-우향 부부전’을 18회에 걸쳐 개최했다고 한다. 박래현 화가 역시 남편 김기창 화백과 마찬가지로 한국화의 관념을 벗어나 면 분할에 의한 화면구성과 섬세한 채색으로 새로운 조형실험을 전개하고, 구상과 추상이 일부 가미된 작품 모두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예술가다. 김기창 화백이 필선을 중심으로 대상을 분석하여 활달한 필법과 호방한 스케일을 보여주었다면, 박래현 화가는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려 섬세한 채색과 정교한 형태해석으로 독자적 조형세계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작인 〈노점〉(1956)은 입체파의 조형적 특징을 기본원리로 삼은 부분이 있지만 6.25 전쟁 후 민중의 삶을 부드러운 색면으로 구성하고 모던한 감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면 겹치기가 여러 번 시도된 구성과 강하게 부각되지 않은 필선, 꼼꼼하게 처리된 마무리까지 사실적 표현을 기본으로 수묵효과를 주어 한국화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살린 작품이다. ‘우향관’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미국 유학 시절 추상화의 새로운 맥락을 확인할 수 있는 판화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붓으로 그리는 맑은 여백의 동양화를 하다가 뉴욕에서 판화와 만났다.
평소 화선지의 한계에서 벗어나보려던 나에게는 깊고 절실하게 구체적으로
손에 잡혀 표현되는 여러 가지의 판화기술이 매혹적이었다.
예술이라는 말과 곧잘 상반되는 단어로 쓰이는 기술이라는 것이
작가의 예술성을 깊게 해줄뿐더러 표현 방법에 의외의 확대를 가져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래현, 「나의 신작」 《조선일보》, 1974. 3. 9

ⓒ기원A / 1973년작(판화) / 50x36.5 (운보문화재단 제공)
기원A / 1973년작(판화) / 50x36.5 ⓒ운보문화재단
ⓒ시간과 인간 / 1972년작(판화) / 58.5x36 (운보문화재단 제공)
시간과 인간 / 1972년작(판화) / 58.5x36 ⓒ운보문화재단

  박래현 화가는 장르를 확대해 판화와 직물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표현 방법의 확대가 창조의 가능성과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생명현상의 단면들을 이미지로 합성한 작품 〈기원〉 시리즈와 순수한 추상적 패턴을 반복한 〈작품〉 시리즈가 이 시기 작품으로 유명하다.

  운보미술관은 1층 전시실 외에 지하에도 전시실이 있다. 이 곳은 김기창 화백이 연필로 드로잉하고 에스키스한 그림들로 당시의 아름다운 여인들. 베트남 참전 종군 스케치화, 5, 60년대 신문에 연재한 소설 삽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 드로잉 작품들은 각 시기별 화풍을 이끌어 낸 창작활동의 토대가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김기창 화백은 평생 청각장애의 고통을 안고 살았으며, 듣지 못하는 한과 소리에 대한 갈망이 그를 창작 세계로 이끌었다.

 기획전시실 한편에 쓰인 글을 조용히 읽어 본다.

“듣지 못하면 울부짖고 싶고 아무거나 때려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터질 듯한 가슴의 응어리들을 그림에 쏟았어요.
지금은 내 자신이 귀먹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어요.
사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계, 침묵의 세계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견딜 수 없어요.
내 경우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절망의 심연 속에서 몇 번이나 좌절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내 인생은 절망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지요…
8살 때 열병으로 청신경이 마비되어 귀머거리가 된 나를
예술에 전념토록 키워준 세 분의 여성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 분의 여성은 외할머니, 어머니, 아내로
그 분들은 자기희생적 봉사정신과 사랑, 그리고 의무감으로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운보, 침묵의 심연에서 붓을 잡고 말하다』 중에서

  끊임없이 조형을 탐구하고 풍부한 기량과 과감한 표현으로 20세기 한국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기창 화백, 묵묵히 남편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 창조적 변화와 실험적 확충을 통해 한국화 발전에 기여한 박래현 화가. 과감한 변혁의 방법으로 한국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창조적 조형예술을 지향한 부부 화가로의 삶과 예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미술관 주변은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조각품들과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조형석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며 자연과 잘 어울리도록 배치되어 있다. 화백의 생가도 정원, 정자, 연못과 함께 고즈넉하게 잘 어울리며,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운보의 집’은 김기창 화백의 어머니 고향으로 1984년 집을 완공하고 작품 활동과 함께 노후를 보낸 집이자, 자연생활에서 매일 보고 느껴온 주변 풍경을 바보화풍으로 즐겨 그리고 문자도와 봉걸레에 의한 자유분방한 표현의 세계를 펼쳤던 예술창작 공간이기도 하다.

  이 집은 보통의 한옥 구조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의 한옥집이다. 김기창 화백이 기거하신 방이랑 서재 겸 작업실도 신기하고, 3개의 방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왼편 툇마루 쪽 방에는 작업에 임하고 계신 두분의 사진과 실제로 사용한 붓, 벼루, 먹등의 미술도구들이 진열되어있고, 김기창 화백이 기거하신 방과 서재 겸 작업실도 신기하다. 예전에 TV에서 봉걸레에 먹을 찍어 행위예술을 하시고, 빨간 양말에 흰 고무신을 신고 계시던 화가 할아버지의 집을 실제로 와서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주인 없는 안방에 호젓이 앉아 비 오는 바깥풍경을 넋 놓고 감상하였다. 실내에서 본 바깥 풍경은 온통 선명한 연두와 회색 하늘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냈다. 마치 〈바보산수〉의 한 장면처럼, 감개무량하다.

 

 


참고자료
(재)운보문화재단 http://woonbo.kr/
오광수, 『김기창·박래현』 재원, 2003.
최병식, 『운보 김기창 예술론 연구』 동문선, 1999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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