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아티스트 박찬욱 사진전] “사진은 내가 숨 쉬는 자유 공간… 하찮은 것들을 중요하게 부각”
[Gallery 아티스트 박찬욱 사진전] “사진은 내가 숨 쉬는 자유 공간… 하찮은 것들을 중요하게 부각”
  • 장재선(시인)
  • 승인 2021.11.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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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Face 6" ⓒ국제갤러리
박찬욱 "Face 6" ⓒ국제갤러리
박찬욱 "Face 16" ⓒ국제갤러리
박찬욱 "Face 16" ⓒ국제갤러리

  “휴가를 즐기기 위해 부산의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라는 안내문이 있네요. 그런가보다 하며 돌아서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막 도착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요. 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의 일부이다. 글쓴이가 부산에 오면서도 영화제 기간인 것을 몰랐다니 영화광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도 한 눈에 박찬욱 감독을 알아보고 그 조우의 기쁨을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다. 하긴, 내가 박감독의 사진 개인전을 취재하기 위해 부산에 간다고 하니까, 한 시인은 “그분 팬이니 사인을 받아달라”고 했다. 박 감독이 대중스타처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가 이른바 예술성과 대중성을 적절히 조화시킨 작품을 만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 그의 작품들은 상영 때마다 큰 관심을 받았다.

  칸느 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영화의 작품성을 우선으로 하는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심사위원을 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일군의 평자들이 그를 작가주의 감독 반열에 올릴 정도로 독특한 미학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그러면서도 상업영화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않는 절묘한 균형을 이뤄왔다. 그 성취가 작품마다 다르긴하지만, 그가 선구적으로 문을 열어놓은 덕분에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박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미셸 푸코의 책 『광기의 역사』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관객이 박 감독과 함께 대화한 이 행사는 전 객석이 예매 첫날에 매진되는 인기를 누렸다.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인기는 고맙고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영화제에 앞서 개막한 그의 사진전 간담회에서 박 감독의 그런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는 첫 사진 개인전 <너의 표정(Your Faces)>을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고 있다. 10월 1일부터 12월 19일까지이다. 지난 2012년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중 30점을 골라 선보인다. 그 이전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작품들은 나중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그는 전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서 동명의 사진집도 함께 나왔다.

박찬욱 "Face 107" ⓒ국제갤러리
박찬욱 "Face 107" ⓒ국제갤러리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따로 갖고 있다고 느끼며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는 “오늘만큼은 사진하는 사람으로 왔다”고 했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여행지, 사무실, 집에서 꾸준히 촬영을 해 온 사진작가로 봐 달라는 당부였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인 두 살 아래의 동생 박찬경 작가에 이어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가 됐다.

  그는 개인전을 처음 열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계기를 통해 사진 작품을 틈틈이 선보여왔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이사는 간담회에서 박찬욱의 사진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엮은 사진집 『아가씨 가까이』를 출간했고요, <오! 라이카, 오프 더 사진전> 등 다른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그룹전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습니다. 서울 용산 CGV 아트하우스에 박찬욱관이 있다는 건 많이들 아실 텐데요. 이 입구에서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사진을 만날 수 있는 <범신론>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매일 열리고 있습니다(여기서는 넉 달에 한 번씩 그의 사진 여섯 점을 교체 전시한다). 그뿐 아니라 동생인 박찬경 작가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그룹 파킹찬스(PARKing CHANce)로 광주의 ACC에서 사진전도 개최했고요, 서울시립미술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에도 참여하는 등 그동안 본인만의 방식으로 영화, 사진, 그리고 미술의 경계와 영역을 살피고 또 실험해왔습니다.”

박찬욱 작가가 작품 "Face 183"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볼품없는 나무 관목이 사진 조명을 받고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가 아끼는 라이카 모노크롬. ⓒ장재선
박찬욱 작가가 작품 "Face 183"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볼품없는 나무 관목이 사진 조명을 받고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가 아끼는 라이카 모노크롬. ⓒ장재선

  윤 이사가 이렇게 소개를 하는 동안, 그는 고개를 약간 들고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견 오연해 보이는 표정이었으나, 자신에 대한 언술을 견디는 자세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그로서는 면전에서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면구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나, 쇼맨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외향적이지 못한 성격으로 인해 영화감독 일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영화는 여럿이 함께 한다는 점이 참 저는 행복하기도 하지만… 손발이 잘 안 맞을 때는 한없이 힘든 일이죠. 저는 정말 그런 성격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여러 가지 의견을 조율하고 결론을 잘 도출해서 끌고 가는 그런 리더십이 강한 사람도 아니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감독 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영화 일을 포기했었단 말이죠. 영화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갔던 이유도 그거고. 그만큼 여럿이 함께 일하는 일의 어려움을 항상 느낍니다. 제가 늘 작업하는 사람이랑만 계속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하지만 계속 같이 하던 사람과 작업을 해도, 그건 그것대로 힘들어요. 10년을 해도, 역시 또 생각과 의견 차이가 있고, 상대방에게 상처 줄 때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 뭐 다 아시겠죠. 그게 얼마나 힘듭니까. 게다가 또 큰돈이 들잖아요, 영화는. 몇십억, 몇백억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운 일이에요. 생각하면 잠이 안 와요.”

  그는 사진은 영화에 비해 홀가분하고 자유롭다고 했다. 영화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사진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라고 했다.

  “카메라로 하는 작업은 저 혼자 책임지는 일이고, 제 시간만 날리는 일이고, 그래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사진만 하신 분들에 비하면 제가 더 즐겁게 일을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사진 작업이 그의 “부캐(‘평소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편집자 주)”라고 여길 수 있으나, 그는 동등하게 애정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영화 공부를 하기 전 사진부터 시작했어요. 대학 신입생 때부터 동아리에서 열심히 배우고 찍었거든요.”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던 추억을 되돌아봤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구도에 신경을 썼는데, 그게 자신의 예술에 영향을 미친 듯싶다고 했다.

  그는 사진 작업을 위해 여행을 하진 않는다. “저는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비행기도 싫고, 차 타는 것도 싫어요.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은데. 이 직업 때문에 할 수 없이 촬영도 해야 되지… 영화제도 가야 하지… 하기 싫은 여행과 호텔 생활을 해야 하고. 그런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데요. 그래서 사진을 더 열심히 찍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하기 싫은 일을 좀 어떻게든 즐겨 보려는, 그나마 거기서 보람을 느껴보려는 그런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면 하루 정도는 주최 측에 시간을 빼달라고 요청을 해서, 더 돌아다니고, 그때 이런 사진들을 항상 찍는 거죠"

  꽉 짜인 일정에서 숨 쉴 수 있는 자유의 통로 역할을 사진이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영화 작업에서 철저히 계획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디자인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사진은 정반대다. “그냥 카메라를 메고 이어폰을 통해 노래를 큰소리로 들으며 미친 듯이 걸어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서 막 두리번거리며 마주치는 그 찰나의 만남을 찍는 거지요.”

  이번 전시는 그 만남이 세계 각 지역에서 두루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미국, 영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등 한국인들이 흔히 가는 지역뿐만 아니라 모로코, 인도네시아, 크로아티아 등의 도시를 고샅고샅 살핀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외할머니의 묘지, 겨울 들녘의 허수아비, 변산반도의 암벽 등 한국의 풍경도 있다.

박찬욱 사진전 전시 전경 ⓒ쿨투라 박영민 기자
박찬욱 사진전 전시 전경 ⓒ쿨투라 박영민 기자

  그는 사진 한 장 한 장의 촬영 과정을 설명했다. 낮지만 진지한 음성으로 상세하게 촬영, 인화 때의 심정을 전했다. 그런 모습은 그가 ‘세계적 감독’이라는 명성에 갇히지 않고 세상 사람과 열심히 소통하는 선량한 심성의 사람임을 느끼게 해 줬다. 픽션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내면의 중층을 탐구하는 예술가이지만, 그런 자부를 코에 걸고 다니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의 도리와 예의도 중시 여기는 게 역력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중요한 것처럼 부각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저 풀 위에 놓여 있던 돌이 사진을 통해 무덤의 상석이나 고인돌처럼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사진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수많은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사진에선 그 외의 피사체를 담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웜홀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모습의 하늘 등 자연 풍광 혹은 영화 홍보를 위한 GV 중 쉬고 싶을 때 만났던 가죽 의자처럼 무생물이 주인공이다.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해 질 무렵 산책하다가 발견한 파라솔들은 하얀 유령들이 검은 눈을 한 것처럼 보인다. 사진이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한 셈이다. “모든 사물, 풍경과 교감하며 그들의 표정을 발견하고 1대 1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사진전 제목을 ‘너의 표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스피리추얼(Spiritual)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했으나, 사진 작품들은 우주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Pantheism)’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촬영 후 후보정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그가 또 하나 강조한 것은 “사진은 상상의 폭이 크다”는 것이다. 동영상에 비해 시간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 그래서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람객이 자신의 사진을 다양하게 해석하며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영화는 자리가 하나도 남지 않고 꽉 차 가지고 함께 봐도 재밌는데, 갤러리는 꽉 차면 또 재미없고, 적당히 띄엄띄엄 서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부산영화제 기간에 그의 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띄엄띄엄 보라고 권했던 그이지만, 많은 사람이 사진을 봐 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작업에서 자유를 느낀다는 그가 갤러리 전속으로 활동하며 전시를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의 시선과 알게 모르게 타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그런 모순을 갈파하고 절묘하게 담아내는 게 그의 예술이다.

  그는 사진전을 준비하며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박해일과 탕웨이가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차기작으론 미국 ‘HBO’ 드라마 <동조자>를 만들 계획이다. 모호필름 대표로 제작 활동도 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방위 예술가로 활약하는 모습을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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