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자연과 영원으로 향하는 꿈
[Gallery] 자연과 영원으로 향하는 꿈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1.11.25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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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 화가 이성자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이성자(1918-2009) 작가는 우리나라보다는 프랑스에서 오히려 지명도가 높은 예술가이다. 1951년 도불하여 작고 때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하셨기에 우리에겐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Paris, Academie Grande Chaumiere)에서 미술공부를 시작으로 회화, 판화, 도자기, 모자이크, 테피스트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기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국 여성 최초의 추상 화가이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은 2008년 이성자 작가의 작품 376점을 기증받아 2015년 7월 16일 <은하수, 그곳에 꿈을 꾸다>전을 시작으로, 진주를 대표하는 이성자 작가의 전반적인 생애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정신을 알리고자 진주시가 개관한 1종 전문미술관이다.

  진주혁신도시 영천강변과 공원 인근에 위치한 이성자미술관은 주위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확 트인 시야와 넓은 공원대지가 미술관을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포근하다.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은 1층 상설 아카이브 전시실과 2층 주전시실로 이루어져있다. 주차장에서 미술관 진입로 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은하수’라는 아트숍과 안내데스크가 제일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하며, 강변 산책로와 경계 없이 연결된 1층 전시실이 바로 보인다.

혜성에 있는 나의 오두막, 12월, 98 / 1998년 / 캔버스에 아크릴릭 / 73x92
혜성에 있는 나의 오두막, 12월, 98 / 1998년 / 캔버스에 아크릴릭 / 73x92

  이곳은 <우주를 향한 끝없는 여정-이성자>라는 상설 아카이브 전시로 이성자 작가의 생애 사진과 전시도록 및 포스터 등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작가가 어떻게 창작 활동을 하고 어떤 흔적과 업적들이 기록되어 남겨졌는지를 보여주고, 예술가의 인간적인 삶의 단면을 추론할 수 있다. 특히 육면체 거울이 설치된 방에는 이성자 작가의 대표작 <대척지로 가는 길>을 재구성하여 LED 영상으로 펼쳐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우주를 겹겹이 쌓아 올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은 드넓은 우주에 무수한 별과 달, 은하수 등을 상징하는 추상적 기호들이 우주에 떠다니는 행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환상적인 우주여행을 실감하게 된다.

<대척지로 가는 길>은 한국으로 가는 길이다.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이다.
가장 긴 길이다. 가장 자유로운 길이다. 가장 순수한 길이다. 그리고 가장 환상적인 길이다.

- 이성자, <대척지로 가는 길> 중에서

  2층 전시실은 특별전 <이성자: 유영의 삶>으로 소장품 중 대표작을 선별해 총 60여 점의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크게 다섯 시기의 작품세계, 즉 ‘조형적 실험과 탐색’, ‘도시와 중복’, ‘판화’, ‘도자기’, ‘극지로 가는 길’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은 우주를 기점으로 우주를 떠도는 유영과도 같은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이성자 작가를 탐색해 보고,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그녀만이 구축한 독창적인 세계를 유영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 전시를 기획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유영인 ‘조형적 실험과 탐색(1954-1968)’ 시기는 1953년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회화공부를 시작하면서 구상과 추상 등 여러 조형적인 실험과 탐색기로, 유화로 그린 여인 누드와 암스테르담 항구 풍경 등의 구상작품과 단순한 형태를 바탕으로 두텁게 칠한 마티에르(Matiiere)를 느낄 수 있는 추상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부터 1968년까지 이어진 ‘여성과 대지(Femme-terre)’ 연작은 대지를 여성에 비유한 시리즈로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묵직하고 차분한 배경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대지를 연상시킨다. 또한 무수한 빗살모양의 직선들을 칠하고 긁어내고 또 덧칠하는 집중과 반복의 노동으로 질감을 극대화시킨 개성적이고 기하학적인 작품들이다.

사각형, 삼각형, 원에는 여러 뜻이 있어요. 전체가 하나로서 여성의 일생의 기록이 됩니다.
어떤 여성의 일생이 모티브가 되지요. 땅을 잘 가꾸어야 좋은 나무가 올라오지요.
그렇게 작품을 가꿨어요. 땅을 가꾸다 보니 기하학적인 성격이 보입디다. 붓하고 칼하고 같습니다.
그렇게 작품을 가꿨어요.
아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교육을 시키듯이 땅을 가꾸는 것도 그림을 가꾸는 것도 같습니다.
작품이 완성되면 우리 아들이 되는 거야.

- 2006년 이성자 인터뷰

  두 번째 유영인 ‘도시와 중복(1969-1994)’은 이성자 작가가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이어지는 도시 여정에서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며, 여성과 대지의 구성요소들이 모두 어우러지면서 ‘중복(Superposition)’의 시대가 펼쳐진다. 이 시기의 작품은 주제뿐만 아니라 작가의 기법도 함께 변화하는데, 촘촘히 화면을 채우던 붓질은 반복적인 선과 다양한 색채로 나아간다. 작품의 재료 또한 유화에서 아크릴로 바뀌면서 작품의 질감은 얇아졌지만, 색상은 더 밝고 다양해진다. 겹쳐지고 교차하는 선과 면이 화면을 구성하고 역동적인 작품으로 바뀐다. 1971년부터는 동양의 음양사상을 원용한 요철을 원의 형태로 분리 또는 합치, 중복 등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을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화면 구성과 선명하고 강렬한 장식적 평면색으로 조형화하였다. 요철관계의 도형은 이성자 작가의 조형세계에서 상징적 표상이 되며, 하나로 완결된 원이 아니라 둘로 나뉘어 합일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원을 통해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높고 낮음, 밝고 어두움, 직선과 곡선 등의 대립적인 요소들의 조화로운 결합을 갈망하는 상대성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세 번째 유영인 ‘판화’ 시기는 나무가 주는 따뜻한 질감과 생명력에 빠져들어 목판화에 깊은 매력을 느낀 때의 작품이다. 작가는 나무를 자르고 칼로 선을 파는 작업에서 자연을 접하고 목판화를 ‘친밀한 동반자로서 허물없이 비밀스러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로 평하고 평생 회화와 목판화를 병행한다. 세로로 자른 나무기둥 단면에 무늬를 새겨 찍은 판화는 전통 창살 문양과 부적 문양이 보이며 반원의 음양이 결합하는 요철문양과 우리의 색 ‘오방색’도 보여 매우 한국적인 분위기다.

  네 번째 유영인 ‘도자기’ 시기는 이성자 작가가 도자기 위에 조각, 그림, 판화도 하며 자신의 종합예술을 구현한 시기로 3점의 도자기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 백자는 특유의 백색 유약 광채와 세련된 자태, 극도의 섬세함, 비길 데 없이 견고한 내구성과 유리화에 기인한 질감 등 모든 것이 일상생활의 가장 검소한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 작가는 백자에 작품을 많이 표현하였다.

  마지막 다섯 번째 유영인 ‘대척지로 가는 길 그리고 우주(1980-2008)’는 ‘대지’를 벗어나 ‘하늘’에 고정된 시기의 작품들이다. 이성자 작가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과 프랑스를 오고갈 때 그 항로인 북극지역에서 내려다본 알래스카 만년설의 빙하와 황홀한 오로라를 주제로 작품화한 풍경이 바로 <극지로 가는 길>이다.

1965년 나는 처음 북극을 지나서 한국에 돌아왔다.
파리에서 에어프랑스의 새로운 항공로가 생긴 초기였다.
그 비행기로 북극과 알래스카를 거쳐 한국에 오는데 그렇게 너무너무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나의 작품 <극지로 가는 길>의 시리즈는 거기서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이성자, 「화가의 일기: 파리, 뚜레르, 북극항로」

  강렬한 붉은 색과 깊고 푸른색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설산과 대비되며, 그 위에 반달 모양 요철문양과 반고리 모양의 알록달록 색동무늬들이 우주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 이성자 작가에게 ‘우주’는 생명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영원한 움직임 가운데 지상과 천상의 아름다움 전체를 포용하는 총체적인 개념으로, 우주를 떠도는 삶을 살았던 작가 또한 우주계의 한 부분이라 말했다.

  전시장 한쪽에 이성자 작가의 남프랑스 아틀리에 전경과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투레트 쉬르 루(Tourrettes sur Loup)에 있는 아틀리에 ‘은하수’는 작가가 직접 설계하고 완성한 곳으로, 하늘에서 찍은 영상 속의 이곳 풍경은 음양을 상징하는 반원요철문양 두 개가 마주하는 형상의 건물이 보이며 아틀리에 주변은 마치 황량하고 조용한 시골로, 어딘가에서 흘러내려온 작은 개울물이 아틀리에를 휘감고 있어 작가의 작품 속 ‘우주 은하계’를 연상케 한다. 이성자 작가는 낮에는 아틀리에의 양(陽)쪽에서 물감을 쌓아 올리는 회화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음(陰)쪽에서 판을 파내는 판화작업을 주로 했다고 한다. 

즐거웠던 추억이며 가슴 아픈 기억들, 모든 것이 태평양 한가운데 파묻혀 사라져갔다.
평화로운 나라 프랑스… 프랑스어 단어 하나 모르는 채로,
가진 것 없는 무일푼의 무명의 처지로서 이국땅에서 다시 태어난 셈이다.

- 「58년 이방인의 삶-동서양을 품다」, 《동아일보》(2009. 3. 11.)

  ‘비참한 시대에 도착한 파리는 딴 세상, 그곳의 생활은 힘들고 두렵고 비참하고 슬프기만 했다’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낯선 나라에서 치열하게 예술가로 살아야 했던 작가의 고뇌가 느껴진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미셸 뷔토르(Michel Butor)는 이성자 작가를 ‘동녘의 대사(大使)’라고 칭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동서양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경계를 해체하고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킨 작가의 폭넓은 작업에서 비롯된 애칭이라 한다.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 소속 유일한 한국 화가로, 끊임없는 자기 검증과 변화를 모색하며 예술에 대한 일관성 있는 신념을 추구하고 오로지 작품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성자 작가! 동녘의 대사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오랜 예술적 고뇌를 통해 이루어진 작가의 작품은 힘찬 에너지로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머물게 한다.

참고자료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https://www.jin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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