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클래식 산책] 완벽한 창조물로서의 랩소디
[1월 클래식 산책] 완벽한 창조물로서의 랩소디
  • 한정원 (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3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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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창조물로서의 랩소디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

 “천재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프란츠 리스트)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장안의 화제다. 지난 10월말 개봉한 후 40일 만에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나 또한 일찌감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젊었던 시간을 추억하며 영화를 감상했다. 평소 좋아하던 영국 록밴드 퀸의 노래를 두 시간 동안 정말 아무런 방해 없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인이 아닌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잔지바르에서 온 이민자 아웃사이더라는 점이었다.(현재 이곳은 독일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탕가니아와 더불어 탄자니아 공화국이 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오랫동안 꼭 해보고 싶은 곡이었다. 그 전에 앨범들을 만들 때에는 그렇게 많은 생각을 쏟지 않았다. 하지만 네 번째 앨범 정도 되니까 해낼 수 있다는 의지에 찬 나를 느낄 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

 영화 제목이기도 한 퀸의 작품 는 여러 면에서 신기원을 이룬다. 머큐리는 이미 1960년대말부터 피아노를 이용해 곡을 쓰기 시작하여 1975년 여름 런던 서부의 캔싱턴 자택에서 그 대부분을 완성했다고 한다.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6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아카펠라로 시작하여 피아노,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이어지고, 곡 중간에 오페라를 본뜬 간주곡이 나오다가 마지막에 록으로 끝을 맺는다. 24개의 아날로그 트랙 머신을 이용하여 여러 파트들을 각각 녹음하였고, 그것을 한 번에 덧입히는 메가 믹싱 작업(노래를 메들리와 리믹스를 같이 한 형태)이 이루어졌는데, 그 당시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또한 곡의 전반을 프레디의 벡슈타인 피아노 연주로 총괄하고 있으며, 이 6부작의 비트를 일치시키기 위해 드럼 메트로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뮤직 비디오의 효시로서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연 사건이었으며, 오페라 록이라는 새 장르를 선보인 것이기도 하였다. 2002년 기네스북 세계기록 조사에서는 영원한 영국 애창곡UK’s favorite hit of all time에 선정되었으며,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서의 퀸 연주는 역사상 최고의 공연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하필이면 이 획기적 작품에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보헤미안 판타지’, ‘보헤미안 발라드’라고 했다면 오히려 곡의 구성상 더 잘 어울렸을 듯한데 말이다.

 랩소디Rhapsody는 흔히 광시곡이라고도 한다. 악곡 형식 중 하나로서 비교적 자유롭고 서사적이고 영웅적인 민족적 성격을 지닌 환상적 기악곡을 뜻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은 문학에서 시작되었다. 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과 욕구를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절제와 균형에서 탈피하여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열망하였다. 소나타, 교향곡, 변주곡 등이 형식을 중요시 여기던 고전음악 레퍼토리라고 한다면, 길이가 짧고 자유로운 구성의 성격소품Character Piece은 낭만주의 시대의 새로운 음악계를 상징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품들은 대개 A-B-C 구성의 단순 형식을 가지는데, 특정 인물이나 이미지, 시, 문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한 시대를 조명하는 예술로 조화롭게 발전해갔다. 성격소품에는 랩소디, 발라드, 왈츠, 녹턴, 즉흥곡, 인터메조, 무언가, 스케르초, 로망스 등 아주 다양한 장르가 있다.

 의외로 우리는 생활 속에서 클래식에서의 랩소디 곡들을 많이 접한다.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 ,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를 위한 랩소디>, 샤브리에의 <스페인 랩소디>, 도흐나니의 <랩소디>등은 듣는 순간 바로 무릎을 칠 정도로 우리의 귀에 익숙한 곡들이다. 그 중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와 헝가리 광시곡으로 더 잘 알려진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2번>은 대중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작품으로 손꼽힌다.

 애초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만들어진 <랩소디 인 블루>는 1924년 현대음악의 실험이라는 음악축제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편곡되었다. 초연은 거쉬인의 피아노 협연으로 이루어졌다. 재즈의 요소가 강한 이 곡이 교향악적 재즈로서 클래식에 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미국이 그들만의 예술 문화적인 전통이 없어 시대적으로 교향악적으로 갖추어진 음악을 간절히 대망하였고, 그에 걸맞게 20세기 전반의 가장 미국적인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음악가 거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2번>은 감히 불멸의 광시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에는 브람스나 하이든, 슈베르트 등 여러 음악가들이 헝가리의 곡조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리스트는 도시적인 헝가리 민속 음악 멜로디를 사용하여 느리고(lassu) 빠른(friss) 리듬을 살려 매력적인 멜로디를 창조해 냈다. 곡의 도입 부분은 어둡고 무거운 선율로 시작하여 라수는 트릴과 현을 튕기는 등의 G음을 내는 소리를 모방하며 점점 빠른 리듬으로 노래를 고조시켜간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비바체의 빠르고 명쾌한 춤의 음악으로 빠져들어 간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렇듯, 리스트가 <헝가리 랩소디>라는 창조물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여러 면에서 크다. 그가 헝가리 민속음악과 집시음악을 구분 짓지 않은 잘못은 크지만, 그의 음악에서만 보이는 자유로움과 아름다움, 신랄함과 기괴함, 거의 환각에 가까운 감수성 상태로 몰아넣는 재주에는 그야말로 경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헝가리 음악가 바르톡은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든 간에 랩소디, 특히 리스트의 는 그것 자체로 완벽한 창조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존재이자, 일찍이 음악의 왕처럼 군림하던 리스트는 후에 신부가 되어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다. 종교에서 영감을 얻었든, 더없이 세속적이어서 때로 세상의 질타의 대상이 되었든, 지금껏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탱해온 것들이라면 모두가 귀한 유산이 아닐까?

 

 

* 《쿨투라》 2019년 1월호(통권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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