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목숨보다도 소중한, 그리고 연기처럼 희미한 진실에 대하여: 리들리 스콧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영화 월평] 목숨보다도 소중한, 그리고 연기처럼 희미한 진실에 대하여: 리들리 스콧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 라이너(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02 0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컷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컷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갖은 애를 쓰지만, 어쩌면 진실이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진실이 지닌 속성 때문이기도 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우리의 도구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언어는 불완전하고 우리의 기억은 증발되고 왜곡되며 각색되는 성질을 지녔다. 이런 도구로, 진실을 포착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리들리 스콧의 신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사극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은 〈결투자들〉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고, 이후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과 같은 사극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가치관으로 다루는 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SF 장르는 물론, 〈델마와 루이스〉, 〈블랙 호크 다운〉 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리들리 스콧의 작품 세계는 ‘다채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리들리 스콧은 이번 작품에서 서양의 ‘중세’를 스크린에 세세하게 그려내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의 질문을 담았다. 우리가 믿는 ‘진실’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 안에는 진실도, 진실을 믿는 과정도, 치정도,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풍랑에 휘말리는 인물들의 선택도 있다. ‘결투’라는 행위에 진실과 명예와 생명을 모두 담아내는 리들리 스콧의 노련함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14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제 결투 재판 사건으로 떠난다. 결투의 주인공은 기사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 분)와 지주 자크 르 그리(애덤 드라이버 분)다. 1386년 12월. 장 드 카루주는 자크 르 그리가 자신의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코머 분)를 강간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결투를 벌여 르 그리를 살해하고 진실을 밝혔다고 역사는 전한다. 영화는 이 사건을 세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각기 바라보는,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사연을 보다 상세히 들여다본다.

  카루주의 입장에서 르 그리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인물로, 그는 자신에게 목숨을 구원받았으며, 전장에서 감사를 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카루주의 집안은 늘 재정 문제에 시달렸고, 영주인 피에르(밴 애플렉 분)는 카루주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르 그리를 총애한다. 명예로운 카루주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용맹을 증명하려 했고, 그런 카루주에게 한때 잉글랜드를 배신했던 가문에서 혼사가 들어오고, 아내 마르그리트를 얻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영주 피에르는 결혼지참금으로 지정된 영토를 빼앗기도 한다.

  영주와 카루주의 갈등은, 카루주가 아버지의 성을 상속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피에르는 성을 르 그리에게 주었고, 카루주는 분노를 표출한다. 시간은 흘러 카루주는 전장에서 공을 세워 기사 작위를 받았고, 현명한 아내의 조언에 의해 르 그리와 화해하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때 벌어진다. 파리에 볼일이 있어 잠시 집을 비운 카루주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다. 아내 마르그리트는 카루주가 집을 비운 사이 르 그리가 집에 침입해 자신을 강간했다는 걸 고백한다. 이에 카루주는 격분하여 르 그리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자 한다. 고소를 해봐야 르 그리를 총애하는 영주 피에르가 판결을 내릴 것이고, 상고를 해봐야 피에르의 사촌인 국왕 샤를 6세가 판결할 것이다. 이에 카루주는 신에게 맡기기로 한다. 바로 신성한 결투 재판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르 그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뉘앙스를 띄게 된다. 뉘앙스. 진실이 아닌 뉘앙스의 문제다. 사건은 동일하게 벌어진다. 전장에서 카루주의 돌격으로 영지를 잃게 되는 사건은 같지만, 르 그리의 기억에 카루주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일은 없다. 오히려 혼자 죽을 뻔한 카루주를 언제나 그렇듯 르 그리가 도와줬을 뿐이다. 그뿐이랴, 르 그리는 언제나 영주에게 미움받는 친구 카루주를 위해 변호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속 좁고 아둔한 카루주가 언제나 일을 망쳤을 뿐이다. 르 그리는 자신을 풍류를 알고 라틴어를 구사하는 교양있는 인물로 생각하며, 영주의 고상한 취향에 맞는 인물이라 여긴다. 또한 마르그리트는 카루주와 같은 무식한 남편의 곁에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신처럼 교양과 지성을 갖춘 인물에게 어울리는 여성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르 그리는 마르그리트의 집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했고, 마르그리트는 싫은 척하면서도 르 그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마르그리트의 시점에서, 모든 진실은 드러난다. 카루주는 무식했고, 르 그리는 교활했다. 르 그리는 폭력으로 마르그리트를 제압하고 강간했으며, 카루주는 아내가 강간당했다는 말에 아내의 목을 조르며 아내를 먼저 의심하는 사내였다. 또 르 그리와 결투를 벌이는 이유도 진실과는 무관했다. 그저 르 그리를 죽이고 싶다는,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벌인 일이었다. 카루주가 패배하면 마르그리트는 화형을 당해 죽게 된다. 카루주는 그런 중요한 사실조차 마르그리트에게 알리지 않았다.

  진실을 둘러싼 세 사람의 시각과 기억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지점이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한다. 화해를 위해 건넨 중요한 말을, 자기가 했다고 기억하게 된다. 이러한 기억의 왜곡은 무척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더라도 각자가 기억하는 중요한 지점이 달라지면서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에 미묘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각자가 믿는 진실에 목숨을 바치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이는 퍽 우스우면서 또 허망하기까지 하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자기 합리의 그 단단한 벽을 깨지 못하는 것일까.

  중세 시대를 드러내는 고증과 미술이 압도적이다. 이제껏 영화로 구현된 어떤 중세보다도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스크린에 표현된 중세의 모습에서 마치 냄새가 느껴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특히 긴장감 넘치는 진행과 마지막 결투 장면의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는 내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처절한 싸움을 그려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결투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세 기사들의 싸움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운명에 흔들리는 마르그리트도, 고집스러운 카루주도, 비열한 르 그리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이 한바탕 연극에 동원된 인물들에 불과하다. 승리의 영광은 허무하고, 수호한 진실의 가치는 금방 잊히고 만다. 그토록 치열했던 싸움의 끝에서, 마르그리트가 얻은 작은 평안만이 마음을 달래주는 전리품일 뿐이다. 오랜만에 영화에 압도당해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났다. 며칠이 지나도 영화의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다. 이래서 영화를 보는 일을 행복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라이너
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매경 ECONOMY》에 영화 칼럼 연재 중. MBC 〈섹션TV 연예통신〉, KBS Cool 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KBS 1Radio 〈주진우 라이브〉, 인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글쟁이로서 계속 글에 파묻혀 살며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한다. 

 

* 《쿨투라》 2021년 11월호(통권 89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