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 게임〉, ‘한류’ 콘텍스트의 마지막 축을 완성하다
[리뷰]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 게임〉, ‘한류’ 콘텍스트의 마지막 축을 완성하다
  • 전찬일(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21.11.0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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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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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하 가입자 수 2억 1천만 명에 달한다는 세계 최강 OTT(Over The Top) 기업 넷플릭스가 200억 원을 투자했고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 등을 통해 그 남다른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황동혁 감독이 각본에 제작에까지 참여한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456명의 루저(패자)들이 목숨을 건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9부작 넷플릭스 드라마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https://flixpatrol.com)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17일 첫 선을 보인 드라마는 10월 11일(이하 미국 시간 기준) 현재 세계 83개국 가운데 덴마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한국, 대만, 태국, 베트남 9개국을 제외한 74개국에서 드라마와 예능 등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는 ‘톱 10 TV 쇼’ 부문 정상에 올라 있다. 놀라지 마시라. 덴마크 아닌 나머지 8개국에서 1위에 마크돼 있는 TV 프로그램은 역시 한국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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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의 역사적 성공은 단언컨대, 이른바 ‘한류’(K-Wave)가 일궈낸 화룡점정적 성취다. 전통적 관점에서 대중문화의 삼각 축은 영화-팝-TV 드라마일진대 그 축을 마침내 완성했기에 내리는 진단이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4관왕 등을 이뤄낸 〈기생충〉(2019)과, 〈다이나마이트〉에서 최근의 〈Permission to Dance(퍼미션 투 댄스)〉에 이르는 5곡을 미국 빌보드 차트 꼭대기에 등극시킨 BTS에 이어서 말이다. 오죽하면 감독이 자신의 입을 통해 “BTS가 된 건가 하는 기분도 들고, 〈해리포터〉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밝혔겠는가.

  봉준호의 〈기생충〉과 BTS, 〈오징어 게임〉 세 기념비적 텍스트에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우선은 다채로운 주목에 값하는 미학적 수준이다. 하지만 그 수준들 간에는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50여 년의 영화 보기, 40년에 가까운 영화 스터디, 30여 년의 영화 글쓰기로 판단컨대 〈기생충〉의 영화적 경지는 가히 역대급, 이라 평하지 않을 길 없다. 필자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와 나란히 역대 한국영화 1위에, 세계영화 베스트 10 안에 위치시키는 것은 그래서다. 제아무리 후하게 평한다 한들 그러나, BTS와 〈오징어 게임〉의 음악적, 영화적 차원을 〈기생충〉과 동급에 놓을 수는 없다. 가사나 인기, 영향력 등에서는 BTS가 비틀즈를 능가한다손 치더라도 작곡에서는 비교될 수 없으며, 〈오징어 게임〉이 〈도가니〉나 〈남한산성〉에 견줄 순 없다는 것이 내 최종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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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 공통점은 우리네 나라(Local)에서 비롯·출발했을지언정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숱한 나라들, 달리 말해 인류 사회(Global) 전반으로 확장돼 나아간 체제비판·고발적 글로컬(Glocal) 메시지와, 그로 인해 가능해진 범세계적 공감대다. 그 비판·고발의 주 대상이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게 삶이요 자본주의 원리, 라는 등의 핑계를 내세우며, 부익부빈익빈으로 인한 양극화를 당연시하는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세계 체제(World System)….

  기회 있을 때마다 강변해왔듯, 〈기생충〉은 재미 만점의 가족 희비극이란 장르영화를 통해, 지상의 부르주아적 삶만이 아니라 반지하, 지하의 사람들도 엄연히 삶이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역설하며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향해 통렬한 화살을 날린 역대급 수준의 휴먼드라마다. 월간 《르몽드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서 음악평론가 임진모도 짚었듯, BTS가 데뷔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온 것은 메시지다. “그것은 헝클어진 시대에 시름 하는 젊은 세대를 향한, 같은 높이에서 건네는 위로다. 〈Permission to Dance〉의 경우 장애인들을 위해 수화의 동작을 동영상에 구현하고 ‘춤추는 데 허락이 필요한가?’라는 의도를 곡에 이입한 것은 실로 절묘했다. BTS가 가공할 퍼포먼스 외에 전 세계의 아미 팬덤을 빠르게 증식시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시대반영 메시지에 기인한다.” 〈오징어 게임〉 또한 마찬가지다.

  감독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징어 게임〉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경쟁사회’를 반영한다. 다 루저에 관한 이야기다. 멋진 게임을 돌파하는 히어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성”이다. 표절 논란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을 테건만 감독은 털어놓는다. 쌍용자동차해고사건 등을 참고해 가져왔다고. 아니나 다를까, 이정재가 분한 기훈은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 그 놈의 신자유주의라는 만병통치적 처방에 의해 구조조정, 즉 ‘잘린’ 하층민이다. 그보다 훨씬 더 열악한 처지에서 목숨을 건 이들도 수두룩하다. 당장 탈북녀 새벽(정호연), 외국인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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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 게임’이란 극적 설정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 구호 등을 근거로 〈신이 말하는 대로〉(2014, 미이케 다카시) 등의 일본 영화나 동명의 일본 원작 만화를 표절한 것 아니냐, 고 의심하는 것은 그럴 순 있어도 설득력은 크지 않다. 지력이나 상상력 테스트를 넘어 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일본산 제품들에 비해 〈오징어 게임〉은 그 사회적 메시지가 워낙 강렬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기훈과 알리나, 1번을 달고 나온 노년의 일남(오영수), 극중 비중은 작아도 임팩트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지영(이유미) 등 적잖은 인물들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네 삶의 어떤 가능성·희망을 제시하는 걸 잊지 않는다. BTS는 말할 것 없고 암울한 결말이긴 해도 기우(최우식)를 통해 〈기생충〉이 그랬듯….

  〈오징어 게임〉의 기록적 대성공과 연관해 이 지면에서 새삼 강조하고픈 것은 그 성공을 가능케 한 맥락들(Contexts)이다. 크게 두 가지만 들자. 무엇보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최근, “우리는 이제 모두 K-팬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라며 적절히 제시한 ‘한류’라는 콘텍스트다. 또 다른 하나는 넷플릭스가 투자·배급·유통을 하고 있다는 바로 그 콘텍스트다. 2백억 전후의 ‘푼돈’(?)과, 한국의 투자자들은 아랑곳없는 창작 자유 내지 재량을 부여·제공함으로써 28조인가, 2천 몇 백배의 자산 가치를 늘렸다는, 그러면서도 계약 이외의 별도 인센티브는 한 푼도 더 주지 않는다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거대 자본 기업! 『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신이다 - 컨텍스트를 수집하고 파악하고 대응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박창규, 클라우드나인, 2018)라는 저서도 말하듯, 이 기초적 맥락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상술은 다음 기회를 봐야겠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대학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 ㈜문화광장 대표 등도 맡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2008) 등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11월호(통권 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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