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잔혹한 복수의 서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나: 〈랑종〉
[영화 월평] 잔혹한 복수의 서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나: 〈랑종〉
  • 라이너(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08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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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 스틸컷
ⓒ쇼박스

  호들갑도 이런 호들갑이 없다. 영화 〈랑종〉이 개봉하기 전부터 이 영화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영화를 둘러싸고 나온 반응은 대개 비슷한 말들의 메아리였다. 뭐가 그리 무섭고 휘몰아치는지… 미디어는 쉬지 않고 나홍진, 곡성, 공포 같은 단어들과 ‘휘몰아친다’, ‘숨이 멎을 듯하다’ 같은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며 〈랑종〉을 묘사하느라 갖은 애를 쓰는 듯 보였다. 결국은 마케팅이었을까? 예고편의 영향인지, 입소문의 영향인지, 어쨌든 〈랑종〉은 화제가 되는 데에 성공했다. 기세등등하던 〈블랙 위도우〉보다도 화제성에서는 앞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속담이 생각보다는 자주 들어맞는다는 데에 있다.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나홍진의 〈곡성〉과의 연관성은 희미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나홍진의 영화처럼 보이는 부분도 적었다.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라는 후반부의 공포 장면은 흔한 B급 공포 영화의 클리셰에서 더 나아간 지점도 없었다. 과연 〈랑종〉은 소문처럼 수작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자꾸만 들게 되는 대목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을 의미하는 단어다. 영화는 태국의 외지인 ‘이산’ 지역의 ‘바얀 신’ 신앙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 찾아온 촬영진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신내림의 대물림이라는 기현상을 취재하기 위해서,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님(싸와니 우툼마 분)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이들이 믿는 신앙은 일본의 ‘신토(神道)’를 연상케 하는 애니미즘 사상이다. 세상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이들. 그들은 마치 우리의 무속 신앙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님의 조카 밍(나릴야군몽콘켓 분)에게 집중한다. 밍의 아버지가 사망한 순간부터 밍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님은 그런 밍의 변화를 알아채지만, 님이 밍을 랑종으로 만들기 위해 접근한다고 생각하는 님의 언니이자 밍의 어머니인 ‘노이’에 의해 저지된다. 하지만 밍의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결국 노이는 님의 말을 듣지 않은 채 밍에게 내림굿을 받게 만든다. 그 잘못된 내림굿의 결과는 참혹했다.

ⓒ'랑종' 스틸컷
ⓒ쇼박스

  영화에서 벌어지는 대학살극의 배경에는 ‘원죄’가 있다. 밍의 친가는 ‘아싼티야’ 가문으로 원래 방적공장을 운영하던 집안이었다. 밍의 공장에서는 많은 학대와 고통스러운 착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보험금을 노린 방화에 의해 공장이 불탔고, 그 안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다. 그것이 바로 밍의 친가가 지닌 원죄다.

  반면 밍의 외가는 대대로 내림굿을 받는 랑종 집안이다. 이중 밍의 어머니 노이는 바얀 신을 거부하고 천주교에 귀의해, 신내림을 동생인 님에게 미룰 수 있었다. 신내림을 거부한 노이의 죄가 바로 밍의 외가에 존재하는 원죄인 것이다.

  그렇게 밍은 희생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밍의 죄 역시 드러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밍은 랑종을 믿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그는 랑종들을 흉내낼 수 있다면서 그들을 조롱한다. 귀신도 믿지 않고 바얀 신도 믿지 않는 밍은, 애초부터 믿음이 부족한 존재였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꿈에 나타난 어떤 존재, 아마도 바얀 신으로 보이는 존재의 경고를 듣지 못한다.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믿음의 문제는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벌어지는 일이다. 바얀 신을 모시는 님은 끝내 바얀 신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조차 의심하고 회의감을 느낀다. 그리고 님은 의문의 죽음을, ‘라이따이’를 맞이한다. 편안한 죽음이지만, 결국 그는 조카인 밍을 도와주지 못했다. 이는 노이도 마찬가지다. 본인은 천주교의 신을 믿으면서 신내림을 피했지만, 정작 밍이 신병에 걸렸을 때는 천주교의 신을 믿지 않았다. 어설픈 내림굿으로 일을 키우기만 할 뿐이다.

ⓒ'랑종' 스틸컷
ⓒ쇼박스

  전반부의 진행과 서사는 나쁘지 않다. 가끔씩 흔들리는 카메라가 문제고, 주변 인물들의 연기가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흐름에 따라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을 지나 가속하기 시작한다. 마치 퇴마사 싼티가 밍을 비유한 ‘열쇠가 꽂힌 차’처럼, 종횡무진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처음의 의문은 바로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 과연 이 영화는 ‘무서운’ 영화인가? 하는 물음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먹먹한 공포와 긴장감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후반부에 진행되는 것은 클리셰로 가득한 평범한 공포 영화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보는 것 같은 CCTV 화면들, 〈엑소시스트〉 등을 통해서 많이 봐온 ‘귀신들린 사람’의 행동양식, 〈그레이브 인카운터〉나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특히 카메라맨이 극에 개입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파운드 푸티지로 모습을 바꾸고, 마치 영화 〈REC〉나 게임 〈아웃라스트〉에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이 연거푸 이어진다. 카메라를 들고 달아나는 장면이며, 좀비처럼 덤벼드는 남자들과 잔혹한 비명, 그리고 야간 촬영 모드와 같은 장면들이 그것이다.

  대부분이 기성품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포를 느낄 여력이 없다. 점프 스케어도 밋밋하고, 작품의 상황도 예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토록 화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지닌 자극과 폭력은 선을 넘고 있다.

  물론 선정적, 자극적, 폭력적 장면들, ‘고어’한 연출들이 문제라는 건 아니다. 아리 애스터의 〈유전〉이나 〈미드소마〉에서도,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들에서도 기괴한 장면은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 장면들이 어떤 목적으로 연출되었는가 하는 대목에 있다. 인간의 이면을 보이기 위해서, 어떤 경외감이나 혹은 두려움이나, 또는 예술적 목적으로 연출되는 잔혹한 장면에는 분명 우리가 얻어갈 부분이 있다. 하지만 〈랑종〉에서는 그런 부분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무의미한 섹스 장면을 길게 보여주거나, 기르던 강아지를 산 채로 삶아서 잡아먹는 장면, 영아를 납치하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살해하고 식인하는 장면들, 창자가 쏟아지는 장면을 굳이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메스꺼움 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반려동물과 영아에 대한 잔혹한 표현은 쉬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장면으로 얻어내려고 했던 건 뭘까? 믿음에 대한 문제인가? 아니면 아싼티야 가문을 향한 방적공장 귀신들의 저주와 집념이 그만큼 무섭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일까?

  연출의 측면에서도 의구심이 많이 드는 영화다. 영화 초반 여자 화장실로 따라오는 카메라맨의 윤리 문제나 관음적인 시선은 민망할 정도다. 후반부의 작위적인 연출, 개연성이 부족한 진행, 죽음을 앞둔 카메라맨이 굳이 카메라를 돌려서 자신을 촬영하는 괴이한 장면에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에 남겨놓은 ‘한 방’도 여운이 깊지는 않다. 이래서야 유사 스너프 필름이라는 혹평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곡성〉에는 치밀하게 구성된 플롯과 소름끼치는 연출이,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랑종〉은 플롯도, 연출도, 공포도 〈곡성〉에 미치지 못한 아류작에 불과하다. 밍을 연기한 나릴야 군몽콘켓의 열연만이 공허한 영화를 울리는 조용한 메아리였을 뿐이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복수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폭력 장면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라이너
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매경 ECONOMY》에 영화 칼럼 연재 중. MBC 〈섹션TV 연예 통신〉, KBS Cool 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KBS 1Radio 〈주진우 라이브〉, 인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글쟁이로서 계속 글에 파묻혀 살며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한다.

 

* 《쿨투라》 2021년 8월호(통권 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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