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영화 월평]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을 좇으며
[1월 영화 월평]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을 좇으며
  • 윤성은 (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1.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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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 '부다페스트 로큰롤', '레토'까지, 음악영화 춘추전국시대

 

 그저, 퀸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흥행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더 무엇이 있겠는가. 영화 자체로만 따지면 진부한 구석이 많고,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을 대단히 심도 있게 다뤘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에서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나 솔로 데뷔에 대한 내적, 외적 갈등이 치밀하게 그려진 부분이 있었던가. 그러나 퀸의 앨범을 듣고 자란 세대부터 퀸을 잘 몰랐던 세대까지 모두가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 내내 흐르는 그들의 히트곡 퍼레이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실황 재연 신이 그 절정이다. 관객들에게 원래 익숙했던 곡들이 연주된다는 것, 영화가 아니라 공연을 보는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는 것이 <비긴 어게인>(존 카니)과 <레미제라블>(톰 후퍼)을 뛰어넘어 음악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이 작품의 독보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봉 이후 두 달간, 네 번이나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하며 800만 관객을 동원한 ‘신드롬’을 뒷받침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분석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은 사실, 2018년 영화계의 트렌드 중 하나인 ‘팬덤’ 현상과 맞물려 있다. <아수라>(김성수), <불한당>(변성현)에 이어 <미쓰백>(이지원)까지 한 영화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열성 팬들은 본인들의 N차 관람은 물론이고, 입소문에 앞장설 뿐 아니라 영화관을 통째로 대여해 관람을 유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팬덤 활동이 보다 대중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N차 관람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재관람 열풍은 뜨거웠다. 스크린 X, 스크린 MX, 싱어롱 상영관 등 특화된 극장 마케팅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공연장과 유사한 사운드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관이 관객들의 호기심과 참여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그 밖에도 방송사들이 줄줄이 퀸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영화는 장기흥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연말연시 극장가에 더욱 중요해진 이슈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보헤미안 랩소디>신드롬이 이후 개봉하는 음악영화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는 순제작비 150억을 들인 블록버스터로 그 화두에 있는 작품이다. 1929년부터 시작된 <브로드웨이 멜로디> 시리즈,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콤비의 뮤지컬 영화들, <사랑은 비를 타고>와 진 켈리를 기억하 는 관객들이라면 한국에서 시도한 첫 탭 댄스 영화에 무조건적으로 환호할 수밖에 없다. <레미제라블>이나 <라라랜드> 등과는 달리,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가 필요로 했던 배우들은 고난도의 춤과 노래를 소화할 수 있어야 했는데, 현란한 탭 댄스 솜씨는 기본이었다. 바야흐로 한국영화에서도 탭 댄스를 추는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 게 된 것이다.

 <스윙키즈>는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배우며 이념의 장벽을 허물어뜨려가는 네 명의 댄스단원들과 그들을 이끄는 미군,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의 이야기를 담은 수작으로,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한국 음악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골수 공산주의자인 ‘로기수’(도경수)가 심리적 갈등 속에서도 탭 댄스에 빠져들어가는 동안 관객들도 그 경쾌한 소리와 리듬에 절로 몸을 맡기게 된다. 로기수와 ‘양판래’(박혜수)가 다른 장소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교차 편집 시퀀스는 ‘스윙키즈’팀의 마지막 공연장면과 함께 이 영화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갑갑하고 절망적인 시대를 온몸으로 떨쳐내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미 <과속 스캔들>, <써니> 등에서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낸바 있었던 강형철 감독은 본격적인 음악영화 <스윙키즈>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단, 잭슨을 제외한 댄스팀이 모두 총살당하는 결말부는 불만스럽다. 그렇 게 해야만 전쟁의 비극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겠으나 가장 높은 수준의 각본은 철저히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아쉽게도 <스윙키즈>는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을 스스로 표명한 작품이지만, 국내산 음악영화라는 관점에서 이미 그 가치가 충분하다.

 <스윙키즈>보다 하루 늦게 극장에 걸린 <부다페스트 로큰롤>(게르게이 포뇨)은 조금 늦게 도착한 헝가리 영화로, 아주 작은 규모로 개봉했지만 이번 연말연시를 장식한 음악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60년대 중반, 냉전체제하의 경직된 헝가리 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스윙키즈>와도 맥을 같이 한다. 미국에 잠시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미키’(타마스 사보 킴멜)는 로큰롤의 매력에 푹 빠져 있지만 공권력의 방해로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다. 이 때, 억압된 젊은이들을 조금은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정부의 유화정책 하에 경연대회가 만들어지고, 미키는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과 함께 이 대회에 출전한다. 본격적인 뮤지컬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신나는 로큰롤 리듬과 중독성 강한 멜로디로 시종일관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레토>(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1981년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국계 러시아가수, ‘빅토르 최’의 데뷔 시절이 담겨 있다. <레토>의 고혹한 흑백 화면, 은근한 스토리텔링 등은 컬러풀하고 시끌벅적하게 과거를 묘사하는 <부다페스트 로큰롤>과 정반대 지점에 있지만, 암울했던 동구권의 한 때를 배경으로 청춘들의 연애담 및 음악에 대한 진심과 열정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상통하는 바가 있다. 빅토르 최의 노래나 삶을 잘 모르는 이들이라 해도 전체주의적 사회를 우회해서 비판한 그의 음악들이 어떻게 당대 젊은이들의 공감을 샀는지 영화를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레토>에는 상상 속의 내레이터가 펼쳐놓는 몇 번의 뮤지컬 신들이 삽입되는데, 대체적으로 차분한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이 작품을 아주 독특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스윙키즈>, <부다페스트 로큰롤>, <레토>에는 모두 공교롭게도 정치적 억압에 맞서 음악과 춤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 음악영화의 인기가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이런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잇달아 개봉하는 것은 어떤 징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 동구권의 어두운 역사가 현재에도 지구 한 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인지하라는 의미는 아닐까.

 <보헤미안 랩소디>의 후광을 얻기에는 영화의 성격도 다르고, 각기 다른 색깔을 갖고 있지만, 음악영화의 매력에 빠져 있는 관객들에게는 모두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 《쿨투라》 2019년 1월호(통권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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