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요가하는 마음: 김혜나,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문학 월평] 요가하는 마음: 김혜나,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1.10.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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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랫동안 단전호흡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단전은 해부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체 기관이다. 기(氣)가 모여 있다는 단전을 상상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거기에 집중하여 호흡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경험도 독특했다. 기를 모아 장풍을 쏘는 무협지 속 캐릭터 같은 초인이 되고 싶다는 공상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당시 나는 무협지 애독자였다.) 하지만 단전호흡을 꾸준히 하면서 이것이 기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근원적인 세계를 탐색하는 수련법임을 알게 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아에 대한 성찰이다. 쉽게 말하면 단전호흡은 ‘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호흡에 몰두하는 환경에서 관심을 기울일 대상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해본 적 없으나 요가 역시 이와 비슷한 수련법이 아닌가 싶다. 핫요가·플라잉 요가 등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가 센터는 건강 관리를 위한 목적이 크지만, 고대 인도에서 발원한 요가는 건강 관리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는 훈련과 명상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을 개발하고 물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핵심어는 ‘자유’이다. 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설명으로 보충 가능하다. 요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요가 철학을 체계화한 『요가—불멸과 자유』(1954년)를 출간했다. 그 책에서 엘리아데는 ‘시간성’에 사로잡힌 인간의 조건을 언급한다.

  무엇인가 하면 인간은 지금을 살 수밖에 없고, 지금 을 사는 존재로서 닥쳐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누구도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시간에 붙잡혀 있는 셈이다. 엘리아데는 간명하게 서술한다. 인도에서는 요가를 통해 “시간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진정한 자유를 인식하는 자의 의식에 대한 발견”(김병욱 옮김, 이학사, 2015, 14쪽)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려는 그러한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장편소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의 주인공 메이(정윤희)도 바로 이 점을 고민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요가 강사로 활동하다 현재는 인도에 와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홀가분하게 인도행 비행기를 탄 것은 아니었다.

  부모는 얼마 전에 이혼했고, 오빠는 회사에서 해고당해 집에 있었으며, 메이는 연인과 헤어진 상태였다. 그녀가 인도로 떠난다고 했을 때 가족 반응은 싸늘했다. 메이 혼자만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탓이다. 물론 그녀 입장에서는 현실 도피가 아니었다. 메이는 본인 마음의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 “매일 요가를 수련함으로써 그녀 내부의 지옥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천국을 들어앉힐 수 있지 않을까?”(107쪽) 요가는 메이를 구원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요가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 이유를 스스로 납득해보려고 그녀는 인도행을 택했다. 한편으로 메이는 요가 자체에 내재된 해방의 가치로부터 실제 요가 수련자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비판한다

  “저는 요가 수련자들의 세계가 결국 이 사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돼요. 많은 사람들이 요가 강사라고 하면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하게 평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줄 알죠. 하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이곳이 더 철저한 계급 사회 같아요. 연예인이나 모델처럼 멋진 몸매의 요가 강사들이 고난도 아사나를 수련해야만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인정받아 많은 물질과 명예와 혜택을 누리잖아요. 그런 요가 강사들만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니까, 그래서 다들 그들을 우러러보며 그들처럼 되기 위한 어려운 아사나는 잘 못하고, 외모도 그저 그런 요가 강사들은 이 안에서도 무시당하고 외면당한 채 작은 수업의 강사 자리 하나도 얻기 어려운 게 진짜 현실이고요. 그런데 아무도 이 세계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아요. 심지어 자기들이 이런 사회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요.”(141~142쪽)

  이와 같은 따끔한 통찰은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을 집필한 작가 김혜나가 요가 강사라는 사실과 결부돼 있다. 그녀는 오늘의작가상(『제리』)과 수림문학상(『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을 수상하는 등 문단에서 이름을 알린 소설가인 동시에, 요가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인도에서 요가 공부를 한 요가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김혜나는 여전히 요가도, 소설도, 삶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끝맺는다. “그래서 매일 요가를 하고 / 그래서 매일 소설을 쓰고 / 그래서 매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소설에서는 메이와 인연을 맺었으나 이별을 고한 요한과 케이와의 에피소드에 눈길이 간다. 한데 그 에피소드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대목이 본문 뒤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이다. 김혜나는 뭔가를 아무리 해도 잘 모르겠으니 그것을 차라리 그만둬버리겠다고 하지 않는다. 잘 모르니까 계속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어려운 아사나는 잘 못하고, 외모도 그저 그런 요가 강사들은 이 안에서도 무시당하고 외면당한 채 작은 수업의 강사 자리 하나도 얻기 어려운 게 진짜 현실이고요. 그런데 아무도 이 세계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아요. 심지어 자기들이 이런 사회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요.

  나는 어땠나. 단전호흡을 하다 자꾸 대면하게 되는 자아를 똑바로 보기 싫어 도망쳐버렸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단전호흡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메이가 꼬집는 요가 수련자들처럼, 공공연하게 계급 사회를 용인하는 단전호흡 수련자들의 세계에 실망도 했으니까. 적어도 자아를 둘러싼 문제가 요가나 단전호흡을 한다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안다. 설령 그럴듯한 답을 얻었다 해도 이것이 모든 사안의 마스터키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어떤 존재와 나의 존재가 합일하는 순간 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다면”(129쪽) 하는 소망이 실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듯이. 그리하여 이른바 ‘존재론적 고독’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겨난다. 이와 연동해서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요즘 특히 어울리는 소설이라 할 만하다. 바람이 불고 가을은 쳐들어온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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