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쏜애플과 ‘쏘지 못한 애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쏜애플 〈서울〉
[음악 월평] 쏜애플과 ‘쏘지 못한 애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쏜애플 〈서울〉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1.10.0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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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MG MUSIC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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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쏜애플THORNAPPLE은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폐부 사이사이에 숨겨둔 아픔을 가감 없이 끄집어냄으로써 ‘날선 우울’을 노래하고 있다. 날카롭고 서늘한 보컬과, 그 보컬에 정교하게 들어맞는 날선 밴드 사운드가 바로 쏜애플 음악의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토해내는 이들의 우울이 씬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언제부턴가 비슷한 스타일들이 씬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부터 프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밴드들이 쏜애플의 날선 감각의 사운드를 카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쏜애플과 쏜애플을 카피하는 밴드들의 차이점을 찾아내려 했고, 말해내려 했다. 하지만 사실 미묘하게 비슷한 사운드의 흐름으로는 이 차이를 찾아내기 어렵다. 물론 음악에서 사운드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사운드는 어찌되었건 음악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그 음악의 궁극적인 의미를 배가시켜주는 조연이다. 그렇다면 사운드보다도 그 음악이 보여주고자 하는 기의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선 기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가사이다.

  일반적으로 쏜애플의 가사들을 보았을 때, 그 가사를 보는 것만으로는 직관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가사 각각의 단어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문법적으로 조합이 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 단어마다 서로의 이미지들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이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고 파편이 튀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쏜애플과 유사한 방식으로 곡을 만들려 하는 밴드들은 쏜애플 가사의 어렴풋한 느낌까지도 비슷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조합되지 않는 단어들, 이미지들이 서로 합쳐지지 않아 무의미하고 마치 안개에 가려진 것 같은 흐릿함을 주는 단어들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MPMG MUSIC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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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쏜애플의 가사는 완전히 부서진 파편이 아니다. 쏜애플의 가사는 파편화된 단어들을 독자들에게 쥐어 주지만 그것을 독자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조합하고 의미를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적인 가사’들이다. 그러나 쏘지 못한 애플들의 가사는 전혀 조합될 수 없는 이미지들의 파편만이 남는다. 그저 안개 속에 쌓인 느낌만을 카피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그 음악 속엔 기의가 없다. 무의미의 안개 속을 걸을 뿐이다.

  〈서울〉은 쏜애플이 리스너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사들의 파편을 쥐어주며, 어떤 방식으로 독자 나름의 의미를 조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 / 바람이 몹시도 불었네
그대론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 몇 개의 다리를 끊었네
너와 난 잠투정을 부리는 억양이 달라서 / 농담밖에 할 게 없었네
노래가 되지 못했던 이름들이 나뒹구는 거리에 / 내 몫은 없었네


오래전에는 분명 숲이었을 탑에 올라가
매일 조금씩 모은 / 작은 슬픔들을 한 줌 집어 / 멀게 뿌렸어

(중략)

마음만 먹으면 / 새까맣게 칠한 밤을 넘어서
너를 만날 수 있는 세계란 걸 알고 있지만 / 그게 참 어려워

수 없이 나를 스쳐 간 어떤 이에게도 먼저 / 손을 뻗어 준 적이 없네
우리는 결국 한 번도 / 서로 체온을 나누며 / 인사를 한 적이 없었네

  〈서울〉의 화자가 살고 있는 곳은 분명 지도에 위치한 서울이지만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다. 분명 그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 서울에 있지 않다. 지도에는 많은 것들이 표시되고 명명된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화자가 살고 있는 위치인 그 자신만의 서울은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노래가 되지 못했던’ 즉, 이 도시 속에서 표시되고 명명되지 못했던 이름들이 도시에 나뒹굴고 있고, 화자에게도 그 몫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몇 개의 다리를 끊었네’라는 부분에서 독자는 필연적으로 한강의 다리들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곡의 제목이 서울이라고 주어졌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이미지 조각들이 한강 다리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며,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 한강 근처를 배회하는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리를 끊었다’는 상당히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어디로인가 가려 한다면 오히려 다리를 연결해야 논리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리라는 것은 원래 나누어져 있는 것을 인공적으로 연결한 인위적인 건축물이다. 나 자신이 위치한 곳을 찾기 위한 여정이 오히려 그 인위적인 관계를 끊고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리’라는 단어는 서울의 실재하는 다리의 이미지와, 상징적 이미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면서 두 가지 이상의 연상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화자는 서울의 탑들이 분명 예전에는 하나의 숲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숲과 탑이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내비친다. 여기서의 탑은 서울의 다리들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관계 속에 높이 치솟아버린 도시 서울 속의 인간관계들을 상징한다.

  곡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너’는 화자에게 어떤 특정한 관계 즉, 화자의 연인이나 친구라는 구체적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에 대한 지칭이다. 독자는 화자의 자리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수없이 많은 구체적인 ‘너’, ‘수 없이 나를 스쳐간 어떤 이’들을 도출할 수 있다.

  곡 전체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지도에 없는 곳으로 / 가려고 집을 나선 날’의 가창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면서도 재미가 있다. 보컬 윤성현은 이 부분을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 / 고집을 나선 날’로 부른다. 화자가 자신이 부재하는 서울 공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려는 이 여정을 마치 ‘고집’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처럼, 이 곡은 형식적으로도 풍부한 중의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쏜애플의 가사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그려내지 않는다. 대상의 이미지들을 그려낼 수 있게 하는 작은 파편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할 뿐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파편들을 하나 둘 모아 손에 쥐고 따라갔을 때,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열쇠가 동시에 제시된다. 연결되지 않을 듯 연결되면서 독자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를 주는 가사 위에, 탄탄한 사운드의 기표가 올라가기에 쏜애플의 음악은 독보적이다. 그들의 음악의 독특함이 사운드에만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없는 파편화의 흉내만을 내는 ‘쏘지 못한 애플’들. 아마도 그들이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것은 쏜애플 겉면의 사운드가 아니라 시적인 가사를 전달하는 부분이 아닐까.

 

 


이준행
음악가. 록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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