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K-드라마 공식과 〈오징어 게임〉: 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계급"
[드라마 월평] K-드라마 공식과 〈오징어 게임〉: 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계급"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12.0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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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스틸컷
〈오징어 게임〉 스틸컷

  2021년은 세계 축구 4강 신화를 이뤄낸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인의 심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K’의 이름을 단 많은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유독 뜨겁다. 전 세계 시청 가구 1억 명을 넘어서며 K-드라마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기록은 자체 갱신 중이다. 아, 대한민국.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오징어 게임〉이 지금의 꽃길을 걷기 전에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 드라마들이 있었다. 한국 드라마의 넷플릭스 랭킹을 살펴보면 그 순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결국 그 상승세를 타고 〈오징어 게임〉은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미국을 포함해 94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미래는 드라마 제작진과 함께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K-드라마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징어 게임〉의 초대박 흥행에는 여러분의 적지 않은 공로가 있었다. 크게 만끽하시라. 은근슬쩍 나도 한몫 단단히.

  아, K!

  한동안 한류를 이끌던 K-드라마 목록을 훑어보면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로맨스가 자주 다루어졌다. 지극히 상투적이고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폄하되던 바로 그것.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별을 지우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부유한 (남자) 사람과 가난한 (여자) 사람이 만나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툭탁거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랑의 연대를 형성한다. 성별이 지워진 자리에 보이는 계급은 한국식 로맨스가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K-드라마에서는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고 좀비도 그냥 좀비가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도 서양 좀비물과는 결이 다르다. 미드 〈워킹데드〉에서 좀비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갑자기 발생하여 폭발적으로 퍼져나간다. 드라마는 좀비화가 된 인간을 중심으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그리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한국식 좀비를 다룬 〈킹덤〉은 좀비의 기원부터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2021년 공개된 〈킹덤: 아신전〉에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생사초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초식동물인 노루가 생사초를 먹고 좀비가 되고, 다음엔 노루를 먹은 포식자 호랑이가 좀비가 되고, 다음엔 호랑이를 잡은 인간이 좀비가 된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조선 시대가 계급사회라는 걸 고려해보면 노루가 그냥 노루가 아니고 호랑이가 그냥 호랑이가 아니다. 인간이 좀비가 되는 과정인 약육강식의 생태계는 사회 불평등과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부정부패가 결합하였을 때 발생하는 문제 상황의 알레고리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세계관이다.

  K-드라마 성공 공식

  〈오징어 게임〉, 〈킹덤〉, 〈이태원 클라쓰〉, 〈보이스〉, 〈D.P.〉 …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5가지 공식이 있다. 첫째, 세계는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를 토대로 형성된다. 둘째, 그 세계는 영원불변의 시스템이다. 셋째, 갑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자 악의 축으로서 사이코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다. 넷째, 을은 동정과 연민을 자아내는 슬프고 굴곡진 사연을 가진 사회적 소수자다.

  이렇듯 K-드라마는 절망적인 현실 인식을 토대로 갑과 을의 위계 서열이 중심축을 이루는 지극히 한국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리고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이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이슈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때 드라마와 실제 현실이 갈라지는 지점이 있으니, 바로 다섯 번째 공식이다.

  드라마 주인공은 반드시 을이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갑이 갑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을이 현실의 을로서 드라마의 갑이 된다. 이로써 K-드라마는 현실을 전복하는 상상력을 토대로 공감을 넘어 전폭적인 지지와 열띤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나는 그냥 나가 아니고 너는 그냥 너가 아니다. 나는 을이고 너는 갑이다. 그렇게 우리는 헬조선, 또 하나의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킹덤: 아신전〉의 ‘아신’과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하여 K-드라마에는 수많은 ‘성기훈’들이 살고 있다.

  갑과 을의 세계관

  〈오징어 게임〉은 K-드라마가 구축한 한국적 세계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는 설정 자체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된 빈부 격차와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리고 절망과 패배 의식에 잠식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매우 닮았다. 이 극악무도한 데스 게임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부자 노인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것, 그래서 가진 자가 분노유발자로 맹활약한다는 것 또한 그동안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K-드라마 속 현실 세계와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 이주노동자, 탈북자, 신용불량자, 성 노동자, 여자, 노인 등 가진 자에 의해 하찮게 죽임을 당하는 다양한 유형의 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 유일한 생존자 ‘성기훈’이 다시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복수를 꿈꾸는 결말까지 〈오징어 게임〉은 가장 전형적인 한국적 세계관과 한국적 캐릭터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K-드라마의 성공 공식을 데스 게임이란 장르에 접목해 영리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아, K!

  국내외 언론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현대사회의 계층 갈등과 계급 단절,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전 세계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K-드라마 속 한국적 세계관이 얼마나 사회비판적이고 현실 참여적인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성과 대중성을 주요 특장점으로 삼는 드라마란 장르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음음.

ⓒ오징어게임 스틸컷
ⓒ오징어게임 스틸컷

  세계관의 근원

  대중예술로서 〈오징어 게임〉의 차별점은 한국적 세계관 구축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K-드라마의 자가복제란 측면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열광적인 해외 반응과 달리, 한국적 세계관에 대한 누적 시청 경험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클리셰적인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오징어 게임〉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다시 말해, 〈오징어 게임〉의 가치는 K-세계관을 재현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의 근원을 되짚어갔다는 점에 있다. 그냥 드라마를 볼 뿐인데, 삶과 사회구조에 관한 깊은 성찰의 순간을 만들어냈다고 해야 할까. 갑과 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납작해진 평면적 세계가 본래의 부피감을 되찾고 입체적인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해야 할까.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게임은 모두 어린 시절 누구나 해봤을 법한 놀이다. 즉, 게임 참여자들이 하는 모든 데스 게임은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즉 그것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가 옛날 교과서에서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영희’라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영희라니! 아, 나의 깐부.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징어 게임〉 속 456명의 참가자가 참여한 게임 세트장은 우리가 다니거나 다녔던 학교를 연상시킨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치열한 생존 게임. 그렇게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연대보다는 경쟁을 학습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내면화한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기훈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참가자이면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죽음을 딛고 혁명가의 삶을 선언한 ‘성기훈’은 성기훈이면서 성기훈이 아니다. 성기훈이란 이름의 ‘강새벽’이며 ‘알리’이며 ‘조상우’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우리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꼭 제작되어야 한다. 19금이 아닌 전체관람가로.

 

 


김민정
'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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