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작사가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벤치위레오 "투우(Corrida de Toros)" 작사 노트를 바탕으로
[음악 월평] 작사가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벤치위레오 "투우(Corrida de Toros)" 작사 노트를 바탕으로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1.12.02 0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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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사를 제법 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 생각이 썩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명곡으로 불리는 곡들의 가사들을 보아도 이것이 과연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곡들의 가사들을 살펴볼 때나 어디선가 계속 들어봤음 직한 사랑 이야기의 가사들을 들어 볼 때, ‘이 정도면 나도 한 번쯤 작사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하게 음절수에 맞춰서 무의미한 가사를 적어내는 곡들도 많다. 그러나 그 외의 많은 가사들은 작사가들의 상당한 고뇌가 들어 있는 치열한 예술의 장이다. 

  그렇다면 작사가 우리들의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음악, 특히 대중음악이 필연적으로 형식과 의미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음악에서는 형식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음이라는 형식의 토대 위에 작사라는 의미를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에, 음악에서는 언어로 전달되는 의미보다는 음의 형식이 선행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먼저 작곡이 선행된다. 그 음에 어울리는 가사를 찾는 것이 작사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작곡과 편곡이 완성된 상태에서 작사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스케치가 된 상태에서 작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어떻든 중요한 것은 음이 만들어진 이후에 작사가 후행된다는 것이다. 스케치 역시도 어느 정도 그 곡의 흐름이 담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작곡의 경우에도 크게 두 가지 과정이 있다. 하나는 곡의 전체적인 부분들, 코드의 배치나 진행을 통해서 곡을 전반적으로 구성하는 작곡 과정, 다른 하나는 이 토대 위에 가창자가 부를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멜로디가 만들어지고 나면 이 멜로디에 들어갈 음절의 개수를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둠이 빛을 빛을 비추네. 태양이 검게 타들어가네”라는 가사의 음절은 “OOO OO OO OOO. OOO OO OOOOO”라는 음절수의 빈칸을 가지게 된다. 이제 이 빈칸을 채우기 위한 작사자의 사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작사자는 그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맞춰서 대주제를 잡는다.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주제이다. 그것은 작곡가의 요청에 의해서 주어졌을 수도 있고, 자유로운 작사의 경우 그 곡의 스케치를 듣고 떠오른 연상 작용에 의해 작사자에 의해 새롭게 창작될 수도 있다. 이러한 대주제 아래에 그 대주제를 표현할 수많은 기호들을 추려 낸다. 그 대주제의 어떠한 면을 ‘어떤’ 표현을 통해서 표현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우〉라는 곡을 작사했을 때, 작곡자가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대주제는 이미 ‘투우’로 정해져 있었다. 투우장의 분위기, 그리고 그 비장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단어들을 추려내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모래’, ‘칼날’, ‘붉은 피’, ‘새빨간 천’, ‘조롱’과 같은 최초 단계의 스케치 단어들이 선택되었다.

  이렇게 선택된 최초의, 아직 큼지막한 상태의 연상 기호들은 곡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마디에 배치된다. 때론 서사가 일관되지 않아도 되는 시 장르와 다르게, 작사를 포함한 음악은 곡이 진행됨에 따라 나름의 일관된 ‘서사’를 갖는다. 따라서 거칠게나마 생각하고 있는 곡의 이야기 흐름에 맞춰서 기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OOO OOOO”과 같은 음절 빈칸들이 다시 소환된다. 선택된 대주제, 그리고 대주제에 맞춰 또 선택된 큼지막한 기호들을 사용하면서 이 빈칸을 메우는 작업이 시작된다.

  쏟아지는 OOO 칼은 하늘 위를 가르네
  OO 붉은 피를 OOO
  새빨간 천 뒤에 사라지고선

  위의 가사가 〈투우〉의 프리코러스 파트 부분을 작사했을 때, 만들어졌던 최초의 빈칸 넣기 과정이었다. ‘칼’, ‘붉은 피’, 그리고 ‘새빨간 천’이라는 주제 요소들을 각 마디에 배치하고 위와 연관된 형용사나 동사들의 살을 붙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드문드문 섞인 뼈와 살의 덩이에 남은 살을 붙이는 연상 작용이 시작된다.

  “쏟아지는 OOO”에서 대체 무엇이 쏟아져야 할까. 소의 살덩이일 수도 있고, 찔린 상처에서 나오는 피일 수도 있다. 혹은 ‘쏟아진다’라는 표현에 맞추어 비가 쏟아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추가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소의 살덩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면 다소 뻔한 전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은 선택되지 못했다. ‘피’와 관련된 3음절을 선택한다면, 바로 다음 소절에 나오는 ‘붉은 피’와 그 의미적 중복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이것 역시 선택되지 못했다. 쏟아지는 ‘비’ 역시 첫 번째 안과 비슷하게 ‘쏟아지다’와 너무 강렬한 연관 관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선택되지 못했다. 대신 이 ‘비’와 관련된 아이디어는 아래 소절의 ‘붉은 피’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발음이 유사할뿐더러 은유적 속성을 추가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래 소절로 이동했다. 2소절의 붉은 피는 ‘붉은 비’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OOO”의 OOO은 ‘봄 안에’로 정해졌다. 가장 따뜻한 생의 봄날에 최후를 맞이하는 아이러니의 의미가 이 속에 녹아든 것이다. 

ⓒJoan Belec @Karakolero
ⓒJoan Belec @Karakolero

  그러나 작사의 마지막 단계가 아직 남아 있다. 위처럼 작사된 내용을 가창자가 직접 불러봤을 때 생기는 문제가 마지막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사는 그 의미가 그 곡의 대주제와 정말로 찰떡을 이룰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 불러보았을 때 그 작사의 어떤 음절이 부르기가 어렵다거나, 강하게 발음해야 할 부분에서 너무 약한 발음이 나는 음절이라거나,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너무 부드러운 발음이 나는 음절이 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그 경우, 작사자는 눈물을 머금고 그 최초의 의미에 가장 근접하면서도 음에 어울리는 단어들을 다시 한 번 찾아야 한다. 어떤 단어가 바뀌면 동사나 형용사가 달라질 확률도 높아진다. 다시 한 번 그것들을 뜯어고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투우〉의 마지막 가사 작업은 곡의 음과 분위기, 형식에 맞춰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쏟아지는 봄 안에 칼은 하늘 위를 가르네
  -> 쏟아지는 봄 속에 칼은 하늘 위를 가르네
  맑게 붉은 피를 뿌리네
  -> 밝게 붉은 비를 뿌리네

  작사의 과정은 다시 한 번 ‘음의 문제’, ‘형식의 문제’로 최종 회귀한다. 작곡된 음의 형식에서 출발하여, 그것들이 작사자의 연상을 통해 대주제와 소주제들로 산출된다. 이러한 소주제들은 곡의 서사 흐름에 맞추어 각각의 마디에 뼈대로서 배치된다. 그리고 이 뼈대의 음절 수에 맞추어 의미의 살을 붙여나간다. 그러나 가창할 때 그것의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다시 살을 붙여야 하는 과정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하나의 곡이 최종 작사된다. 결국 작사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아이디어의 영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조립 과정을 거쳐 나오는 하나의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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