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헤어짐을 짓지 않겠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년 9월 9일 출간)
[문학 월평] 헤어짐을 짓지 않겠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년 9월 9일 출간)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1.12.0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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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작별’이다. 유의어로 송별이나 이별 등이 있지만 곰곰 들여다보면 이들과 작별은 다른 점이 있다. 송별이나 이별은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는 반면, 작별은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영역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작별의 한자가 그렇다. 작별은 지을 작(作)+헤어질 별(別)로 이루어져 있다. 그대로 풀이하면 ‘헤어짐을 짓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헤어짐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겨난다. 한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도 이러한 맥락 안에서 사유해야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선언처럼 들린다.

  이는 2부 ‘밤’의 1장 제목이기도 하다. 본문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경하와 인선이 같이 하기로 한 프로젝트의 제목으로 소개된다. 경하는 자신이 꾸는 검은 통나무들에 관한 꿈 이야기를 인선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함께 통나무들을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리길 기다려 그걸 영상으로 담아”보자고 제안한다. 그 뒤에 이를 준비하던 인선은 프로젝트의 제목을 경하에게 묻는다. 그때 경하는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답을 한다. 인선은 경하에게 다시 질문한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이에 대한 대답을 경하는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대신 한강은 소설 바깥에서 말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작가의 말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2014년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로 5·18 광주를 소환하여 응시한 한강의 역사 윤리를 계승하기 때문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예지에 2019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전반부가 연재되었고, 이후 후반부 작업을 더해 올해 9월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5·18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 경하이다. 한강의 분신처럼 보이는 경하는 작품을 집필한 이후 내내 앓고 있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경하—한강은 쓰고 있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은 작가는 집필하는 동안 학살과 고문의 현장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작가는 스스로 떠맡을까. 심지어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쓸 때, 제2차 세계 대전,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내전, 미국 원주민 대학살에 관련한 자료까지 검토했다. 2017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나는 무엇이 인간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드는지, 또 그 폭력에 직면해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나는 야만과 존엄성 사이의 벌어진 틈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더듬어 찾고 싶었다.” 이번 소설도 그러한 목적에 닿아 있다. 그것은 키우던 새를 돌봐달라는 인선의 부탁으로 경하가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제주에 내려가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목공 작업을 하던 인선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상황이다. 인선의 거처로 향한 경하는 그곳에서 인선의 가족—특히 인선의 어머니 정심과 얽힌 제주 4·3과 마주한다.

  1999년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진상 조사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제주 4·3은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 국가가 국민을 수만 명 학살한 만행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종결된 역사는 아니다. 제대로 논의되고 애도된 적 없어서다. 한강은 1990년대 후반 제주에서 방을 얻어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 주인 할머니와 길을 걷다가 경험한 일화를 고백한다. “골목길을 걷는데, 할머니가 별안간 멈춰서더니, 이 담이 4·3 때 사람들이 총을 맞아서 죽었던 곳이야, 라고 설명하더라고요. 눈부신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생생한 실감으로 다가왔어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기억과 자신이 자주 꾸던 꿈을 연결 지어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때 꿈은 소설 속 경하가 꾸는 꿈이자 인선과 같이 진행하려고 한 프로젝트 ‘작별하지 않는다’의 모티브가 되는 꿈이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산등성이까지 심겨 있다. 묘지가 있었나, 생각하는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른다.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지 못한 채로 깨고 마는 꿈이다. 꿈에서 하지 못했던, 그러나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그 일을 경하—한강은 제주 4·3을 끌어안는 소설 쓰기로 수행한다. 

  이것과 대면하기는 소설 읽는 독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고 포기해서는 곤란해진다. 그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있다. 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은 인선의 회복 과정이다. 잘린 손가락을 이어붙였다고 치료가 끝나지는 않는다. 신경을 살리기 위해 봉합된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야 한다. 수술 부위가 썩지 않도록 간병인은 3분마다 인선의 손가락에 소독한 바늘을 찔러 넣는다. 하루에 480번씩 3주 동안 해야 하는 일이다. 통증에 통증을 더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나날을 인선은 견뎌내야 한다. 이 장면은 제주 4·3에 대해 쓰고 읽는 행위의 알레고리처럼 읽힌다.

  예컨대 인선이 독자, 간병인이 작가와 겹친다. 인선의 손가락 신경이 죽지 않도록—독자의 역사 윤리 감각이 부패하지 않도록, 간병인은 바늘로—작가는 소설로 아픈 자극을 가한다. 인선—독자와 간병인—작가 둘 다 고생스럽고 못할 짓이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테다. 그런데 단념하면 신경이 죽어 봉합한 손가락을 절단해 환지통에 시달려야 한다. 3주 동안의 극심한 아픔과 평생의 지속적인 아픔 가운데 무엇을 택해야 할까. 답은 알겠는데 결정과 실행이 어렵다. 다행히 우리의 역사 윤리 감각이 부패하게 놔두지 않는 대처 방안은 이보다 괜찮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 되니까. 바늘보다는 책이 낫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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