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환 문명을 선도하는 통찰과 포월包越의 여정: 조인원, 『희망하는 인간, 전환의 길을 묻다』
[서평] 전환 문명을 선도하는 통찰과 포월包越의 여정: 조인원, 『희망하는 인간, 전환의 길을 묻다』
  • 홍용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1.12.0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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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원은 대학의 공적 소명과 실천을 추구하는 교육 행정가이면서 인간, 정치, 문명, 미래, 평화 등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지평을 전위에서 탐색하고 확장해 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이번 저서 『희망하는 인간, 전환의 길을 묻다』는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 행사 중심의 기념사, 연설문을 통해 보여준 전 지구적 차원의 위기와 혼돈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통찰과 포월의 여정이다. 그의 통찰과 포월의 여정은 문명적 전환기의 위기와 혼돈에 대한 올바른 직시, 초월적 역량을 지닌 인간의 재발견, 지구고등교육을 구현하는 대학의 소명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구적 위기와 전환의 시대

  이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오늘날 근대 산업 문명의 발전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실존적 위협’의 수준으로 엄습하고 있는 인간 소외, 양극화, 불평등, 생태계 파괴, 기후위기 등의 현상에 대한 자각적 인식이다. 산업 문명의 성장 신화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별적, 배타적 관계는 물론 인간의 자연에 대한 약탈적 지배를 가속화시켜 온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종말론적 혼돈에 대해 ‘전환의 시대’로 규정하고 근본적인 문명적 성찰과 초극을 위한 의식 혁명, 실천 혁명을 강조한다.

  한편, 그의 이러한 전환시대의 담론은 자연과학 이론은 물론 정치, 문화, 철학, 예술 등의 분야를 폭넓게 넘나들며 전개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폭넓은 학문적 통섭은 문명적 전환기의 드러난 세계뿐만이 아니라 드러난 세계를 추동하고 변화시키는 드러나지 않은 세계의 역동을 인지하고 감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의 지구적 ‘전환의 시대’에 대한 진단은 매우 긴급하고 절박하다.

  수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렇게 독백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이 실존의 독백을 지금 이 시대로 불러오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인간과 우주의 초연결성에 주목해온 과학철학자 어빈 라즐로(Ervin Laszlo)의 표현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진화인가, 절멸인가.’ 그것이 우리의 선택지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전환의 시대’가 ‘진화인가, 절멸인가’ 하는 가파른 변곡점에 놓여 있음을 설파한다. 그는 2021년 세계원자과학자협회가 지구 운명의 날 시계를 ‘23시 58분 20초’로 설정한 충격적 사실에 주목한다. 인류 사회가 ‘자정 100초 전’으로 상징화되는 긴급성에 처해 있다는 사실의 자각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존적 위협을 가장 직접적으로 몰고 오는 것은 지구 온난화이다. 지구 온난화가 전례 없는 가뭄, 폭염, 산불, 대규모 폭풍과 홍수 등의 재앙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 엄습한 코로나 팬데믹 현상도 극심해지는 기후 위기의 전조로 이해된다. 산업 문명의 성장이 여전히 지속되면 가까운 미래에 ‘인류문명의 기능적 붕괴’ 나아가 지구행성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는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을 피할 수 없다.(「‘긴급성의 시대’, 희망의 또 다른 지평」) 인류는 지금 그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매우 큰 변화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Global Collaborative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이제 인류는 이러한 ‘지구적 삶의 붕괴 가능성’ 앞에서 굴복이냐, 희망이냐 하는 갈림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월과 미래의 회상

  저자는 이러한 대전환의 시대에 ‘희망하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지구적 차원의 결단의 방법론으로 ‘포월’의 정치학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포월의 정치 구상은 이 공간 속에 현대사회, 현실정치에 착근된 절대지(絶對知)의 폐쇄회로를 거둬내는 대안적 사유입니다. 끊임없이 넘어서고 벗어나고 포괄하는 성찰적 창조를 통해 보편 간 소통, 창조적 보편에의 접근을 시도합니다. 성찰적 창조와 함께, 변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아줄 ‘변형적(transformative) 제도와 구조’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정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포월의 세계입니다.
- 「균열의 현대사회, 포월의 정치세계」

  포월이란 ‘지금, 이곳’의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부터 벗어난, 그래서 ‘지금, 이곳’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불가능의 가능성’의 인식론이며 방법론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관습적인 사고나 상상의 틀을 타파하고 ‘인간 내면의 양심과 가치, 진리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현재는 물론 다가올 미래를 새롭게 깨우고 인도하고 구원하는 초월적 역량의 실현과 연관되는 것이다.

  따라서 포월의 세계관에는 과거 속에 현재가, 현재 속에 미래가 내재한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경험된 현재이며 미래는 다가올 현재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과거와의 회귀적 대화’ 또는 ‘미래의 회상’ 등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가능해진다.

  다음은 ‘미래의 회상’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설명이다.

  함께 만들 희망의 지평을 여는 일입니다. 미래를 오늘로 불러오는 일입니다. 저는 이를 ‘미래의 회상’이라고 말합니다. 전망되는 미래의 가능성을 ‘지금 이곳’에 불러와 오늘의 현실을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미래를 축으로 상상과 실천의 세계를 펼치는 일입니다. 지금 관점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 그래서 내키지 않는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 그런 일들의 미래를 예찰하면서 오늘의 인식과 행동을 재구성할 때, 도래할 위기와 파국의 가능성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 「기후변화와 동북아 평화번영의 길」

  메시아란 미래에 강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기획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것은 미래의 가능성에 입각해 현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속에서 미래를 기획하고 구원하는 방법론이 가능해진다. 메시아는 현재 속에 내재한다는 인식론이다. 현재의 역할과 권리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우주적 인간의 재발견

  한편, 이러한 논법은 자연스럽게 포월적 세계관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인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기 구원의 주체로서 인간, 즉 ‘우주적 인간’ 존재의 재발견과 ‘공적 실천’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우주 속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의 세계, 우리 안의 세계는 사회로, 자연으로, 우주로 연결돼 있습니다. 고금(古今)의 철학은 그런 전일적(全一的) 상호연결의 통찰을 전합니다. 우주 창성과 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유 또한 유사한 세계관을 말합니다. 그런 ‘위대한 발견’과 함께 인간은 무심한 자연의 냉정한 현실 속에서도 공감과 공명의 지대를 넓혀왔습니다. (중략) 지구적 차원의 특단의 조치 없이는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인류사회의 미래. 그리고 기회와 위기를 더 나은 미래로 승화시킬 연결과 초월의 미학. 이 모두 우리가 지금과 다른 인간의 인간세계를 찾아 나설 때 숙고해야 할 ‘인간적 변인(變因)’이자 ‘지구적 과업’입니다.
  - 「우주적 인간의 공적 실천」

  ‘새로운 나와 세상을 부르는 영감.’ 그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 우리 내면 깊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이든, 예술가든,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개성과 세대, 직업과 시대를 초월해 우리는 ‘하늘의 선물’인 영감, 그 무한한 가능성의 수혜자입니다.
  - 「앎의 세계, 모름의 세계」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 강조되고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우주적 자아이다. ‘내 안의 세계’는 ‘우주 창성과 변화’ 과정의 집적물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새로운 나와 세상을 부르는 영감’으로 ‘지구적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포월적 사유와 실천의 주체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주적 자아로서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지구적 차원의 공적 책무를 감당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 ‘지구사회의 각성된 의식은 미래역사의 새로운 방향성을 말’하고 ‘성찰과 창조를 통해 공유해야 할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갈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의식과 지구시민의식의 함양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의식은 ‘편견의 벽, 차단의 경계를 넘어’ ‘국가와 사회, 문명, 자연을 이어주는 새 가능성’이고, 지구시민의식은 ‘국가적 전통의 패러다임을 넘어 미래의 가치를 오늘의 현실로 불러오는 역사발전의 새로운 동력’(「역사와 희망- 지구의식의 문명미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사명, 포월의 인재 양성

  한편, 이 책에서는 조지프 피어스의 『우주안의 균열』이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그리고 바츨라프 하벨 등이 빈번하게 호출된다. 그것은 여기에서 닫힌 울타리를 벗어나서 초월적 역량을 실현하는 포월적 세계관의 한 전범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우주적 존재성을 각성하고 실현하는 포월적 인간형이 ‘전환시대의 대학의 책무’와 인재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대학은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향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이 처한 자연과 환경, 세계와 문명을 이해하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실천해야 할 가치와 소임의 범주를 넓혀야 합니다.
  - 「전환의 시대: 현실, 진실, 학문의 길」

  개인과 나라의 경쟁력 외에도, 대학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 창조를 위한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시대의 가치, 시민의 가치, 상상과 창조의 무궁한 세계를 탐색하면서 학문 세계로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가야 합니다. 긴 호흡으로 개인과 사회, 문명과 세계의 미래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 대학의 근간입니다.
  - 「시민적 가치를 위해」

  대학은 새로운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과 나라의 경쟁력”에 갇힐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 세계, 문명에 대한 이해의 지평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실천해야 할 가치와 소임을 자각한 인간이다. 그래서 대학은 인류의 역사와 문명창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구적 전환기에 대학의 ‘지구고등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의 역할과 소명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파하게 된다.

  대학과 고등교육의 미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제 무엇을 더 할 것인가. 몇 가지 과업이 중요해 보입니다. 현대문명의 성취와 함께 ‘우리가 마주한 구원과 파멸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말하는 일.’ ‘인류가 공동 번영할 수 있는 열린 가치를 찾아 나서는 일.’ ‘이를 위한 꿈과 열정, 실천 의지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일. 이들 과업에 ‘지구사회 집단지성’의 용기와 도전이 함께 할 때, 인류 역사의 또 다른 미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965, 그 회상의 미래」

  대학은 포월의 인간형을 양성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전환기에 ‘우리가 마주한 구원과 파멸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말하’고 ‘인류가 공동 번영할 수 있는 열린 가치를 찾아 나서’고 ‘지구사회 집단지성’을 담대하게 구현하여 인류사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인원이 대학 행정가로서 세계시민의식을 강조하는 후마니타스 교육을 강화하고 지구봉사단을 추진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대학의 미래가 인류의 미래라는 신념과 소명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조인원의 통찰과 포월의 여정은 우주적 지평 속에서 인간-문명-철학-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 과정이 마치 물결무늬의 파장처럼 동심원을 그리면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이론과 실천, 현실과 초월, 이성과 상상의 역동적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전일적 세계관은 점차 더욱 강한 빛을 발할 것이다. 종말론적 위기와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차원의 질서를 열어가야 하는 당위적 과제가 지구 사회 전반에 더욱 절실하게 대두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용희
1966년 경북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저서 『김지하 문학연구』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꽃과 어둠의 산조』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등이 있음. 젊은 평론가상, 애지문학상, 시와시학상, 김달진 문학상, 유심문학상, 편운 문학상 수상.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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