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라이프 09] 이름에게; 그리고 남겨진 것들
[MZ 라이프 09] 이름에게; 그리고 남겨진 것들
  • 함은세(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1.12.02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어떤 ‘YES’

  여기, 어떤 청년이 있다. 아름다운 해안 도시 여수에 살며 자신의 길을 찾아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도모하며 살았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에 나갈 생각으로 착실히 생활해왔다. 아니, 어쩌면 이런 말들로 설명하는 게 조금은 낯간지러울 만큼 평범한 청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해야 할 일에 충실하던, 주어진 과제가 쉽지 않고 위험천만할지라도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던 우리 시대의 한 젊은이였을 것이다.

  그 날도 그는 맡은 바를 “다해야만” 했다. 수영도 할 줄 모르고 전문가 자격증도 없는 그는 자신이 안내받았던 실습 내용과 달리 잠수를 해서 요트 하부의 따개비를 청소“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왠지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모두로부터 ‘을’로 여겨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못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그 날도 그냥 ‘YES MAN’이 됐다. 그 외에 다른 선택권이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까. 그렇게 차가운 바닷속으로 들어가 실습과 무관한 요트 하부의 따개비를 홀로 청소하던 홍정운 군은, 끝내 본인이 재학 중이던 여수해양과학고등학교의 친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허망하게 별이 된 2021년 10월 6일, 그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0명, 해당 사항 없음

  10대 전후의 현장실습생이, 또는 젊은 청년 노동자가 기막힌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이런 케이스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이제껏 한국 사회는 수많은 노동자의 서글픈 죽음을 마주해왔다. 항상 똑같은 흐름이었다. 부재한 시스템과 부조리한 프로세스, ‘갑’들의 이기적 욕심이 청년들을 벼랑 끝에서 밀어버린 후에야 대중과 미디어는 관심을 가지고, 유족들은 어린 영혼의 억울한 죽음이 수면 아래로 침잠되는 것을 보며 슬퍼할 겨를도 없이 대신 투사가 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결코 우리 곁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잘못되었다고 말해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목놓아 외쳐도 그 물결은 한순간에 금세 사그라들어 결국 “남아있게 된” 자들만이 갈기갈기 찢긴 마음에 몸부림을 치며 꾸역꾸역 삶을 살아가는 게 우리가 여지껏 봐온 아주 전형적인 클리셰다. 그리고 치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칼날이 다시 다른 청년 노동자를 뒤에서 겨눈다. 그러다 떠날 필요가 없던 누군가가 또, 세상을 떠난다.

  이렇게 잊을 만하면 새롭게 발생해 사회를 ‘잠시’ 떠들썩하게 만드는 청년 노동자의 산재 사건을 자주 접할 수 있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더하면 그 수는 셀 수 없이 늘지만, 문제는 사회적으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산재 사건이 제대로 데이터화조차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산재 판정 적합 여부를 결정짓는 근로복지공단의 통계 자료에서는, 12~21년도 사이 특성화고 재학(출신) 중 현장 실습 과정에서 사망하여 산재 판정을 받은 학생 수가 0명, 즉 “해당 사항 없음”으로 정리되어 있다. 언론에 사망 소식이 알려져 공단을 통해 산재를 인정받은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마저 데이터 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산재제도가 만들어진 98년도부터 11년도까지는 자료 자체가 전무해 사건 발생 여부조차 확인 불가능한 상태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끔찍한 참사들 앞에서도 대중은 여전히 무감하거나 또는 무감해진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하냐고 몇 번이고 되묻다가도 바쁜 일상과 정신없는 삶을 핑계로 타인의 비극은 뒤로 묻어둔 채 갖은 피와 눈물이 얼기설기 뒤엉킨 혼돈의 21세기를 살아간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되뇌일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음을 매번 새삼스레 깨닫는다. 내가 지워버린 수많은 이름들이 어디선가 허공 언저리를 둥둥 떠다니고 있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좁아터진 시야마저도 나 자신으로 꽉 채운 어떤 날들 앞에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내 안의 정의와 양심에 지독한 괴리감을 느끼는 날들의 연속이다. 나에게 ‘해당 사항이 없어서’, 그들의 ‘해당 사항 없음’은 얄팍한 기억으로 압축되고 뭉개진다. 공장의 무거운 프레스기에 억눌린 한 노동자의 생의 마지막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남은 것들

  실로 인상적인 한 해였다. 특히 잠시나마 타국에 거주 중인 한국인으로서, 예상치도 못한 내 ‘조국’의 ‘문화적 성공’이 얼떨떨하게 다가왔다. K-POP 시장의 엄청난 글로벌라이징, 거대 OTT 플랫폼을 휩쓴 대한민국 콘텐츠 등 초록색 여권을 가진 사람에게 2021년은 일종의 ‘ICONIC YEAR’ 그 자체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청년’의 아이덴티티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한 해의 마지막 호에 그런 열광과 인기로 일렁이는 화려한 겉면을 얘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잃은 이들이 많다. 어찌 보면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무관심과 무지로부터 비롯된 이별이 넘친다. 평범해서, 성실해서, 아주 보통의 인간이어서 지워진 이름들은 이 거대하고도 비좁은 세상을 꽉 채우고도 남으리라. 그런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홍정운 군을 포함한 청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과 사회의 모순과 잘못된 판단, 사랑과 배려보다 더 크고 강력한 욕심 때문에 꺾여버린 청춘들을 생각하면, “동북아시아의 허리가 끊어진 존재감 없던 작은 반도 국가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중”이라는 번지르르한 프레이즈를 논하기에는 대한민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는 진정 이 사회를 굴러가게 만들,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어떤 청년들이 봄이 오기도 전에 짓밟히고 문드러지고 꺾이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현실을 감각하고 응당 반응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 다시 한번 열아홉의 홍정운 군을 떠올린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이들지 않고 멈춰있을 그의 마지막 문턱을 애써 꾸역꾸역 골몰한다. 얼마나 힘겨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어린 영혼들의 부서진 잔해가 덕지덕지 붙은 채 저물어가는 2021년 앞에서, 하늘을 향해 읊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의 잔해를 내 왼 가슴에 새기겠다고. 묻을 때 묻더라도 그곳에 묻겠다고. 그리고 세상에는 묻겠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그대들을 대신해 묻겠다고.

  대답은 없다. 남은 것은 ‘남은 자들’ 뿐이다. 

 

 


함은세
고등학교 자퇴한 걸 자랑하고 다니는 02년생. ‘인생 재미있게 살기 프로젝트’ 라는 명목 하에 삶을 모험하며 세상을 읽는 눈을 키우는 중이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