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오랜 세월이 만든 간극을 해결하기: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게임] 오랜 세월이 만든 간극을 해결하기: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 김규림(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 전공)
  • 승인 2021.12.0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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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오래도록 사랑받은 게임이 가진 고민, 시간의 흐름

  세계적인 게임쇼 중 하나인 ‘E3’에서 2년만에 추가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E3 2021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하게 한 게임이 있다. 바로 〈젤다의 전설〉이다. 올해로 35주년을 맞이한 닌텐도의 대표 게임 프랜차이즈인 〈젤다의 전설〉은 오는 2022년에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속편을 발매 계획 중임을 발표하며 많은 게이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30주년 기념―이 될 뻔했으나 개발 지연으로 1년 뒤인 2017년에 발매된―신작이었던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속편으로 다시 한번 35주년 기념 신작의 자리를 꿰찼다. 이는 속편으로는 최초이다. 이렇게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한 관심을 받아온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게임이 발매되는 시간이 길어지며 플레이어의 경험 정도가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35년, 처음 〈젤다의 전설〉이 발매된 시기에 태어난 사람도 35세라는 생산 인구이자 게임 향유 가능 연령층이 되어 있는 기간이다. 본편 타이틀만 18개1인 〈젤다의 전설〉을 전부 플레이하려면 최소한 8가지2의 기기를 구비하고 있어야 하지만, 이 사이에 생산이 중단된 게임을 즐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게임을 접하는 후발 주자들이 아무리 빨리 게임기를 집는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즐길 수 없는, 극복이 불가능한 기간이 생겼으며 시간이 계속 흐를수록 이러한 절대적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젤다의 전설〉 개발자들은 그동안 이 상황을 ‘구작의 신(新)기기로의 리메이크 혹은 이식’으로 해결해왔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방법이다. 아무리 최신 기기에 예전 작품을 옮겨와도 이것마저 절대적으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 ‘리메이크의 리메이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꾸준히 신작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전 작품을 새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재리메이크는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젤다의 전설〉의 세계관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각 타이틀마다의 대략적인 스토리 틀은 ‘납치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악당과 맞서는 용사’이지만, 이것이 진행되는 배경이나 상황 전개 등의 디테일한 설정들이 타이틀마다 모두 다르며 이들이 모여 이어지며 〈젤다의 전설〉 전체의 스토리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먼 옛날 세 명의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들의 힘을 담은 ‘트라이포스’를 여신 ‘하일리아’에게 넘기고 떠난다. 그런데 이 힘을 노린 악당 ‘종언자’가 나타나고 여신은 생명체들을 하늘로 대피시킨 후 맞서 싸워 악당을 봉인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봉인은 불완전했기에 이것이 풀릴 때를 대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할 ‘용사’와 직접 현신할 ‘신체’를 만들어둔다. 그리고 이들은 정말로 봉인에서 풀려난 종언자와 다시 싸우게 되고 결국 패배한 종언자는 두 사람에게 윤회의 저주를 걸게 되고 이후로 용사와 여신, 악당은 계속 환생하며 싸움을 반복하게 된다〈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 2011년).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부활한 악당을 막기 위해 용사는 여신의 힘이 담긴 검 ‘마스터 소드’를 가지러 가지만 아직 어려 제대로 봉인할 수 없다며 그를 7년 동안 재워버린다. 잠에서 깨어난 용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오카리나를 사용해 악당과 맞서 싸우게 된다(〈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1998년). 이 전투를 기점으로 〈젤다의 전설〉의 시간선은 3개로 쪼개진다. 바로 ‘악당에게 패배한 시간선’, ‘승리한 용사가 본래의 시간(7년 전)으로 돌아가버린 후의 시간선’, 그리고 ‘승리한 용사가 돌아온 7년 전의 시간선’이다.

젤다의 전설’ 타이틀을 세계관 순서대로 나열했다.ⓒ‘[스토리] ‘젤다의 전설’ 세계관/스토리 총정리 1부’, 루리웹, 나하도르 작성, 2019.02.10.
‘젤다의 전설’ 타이틀을 세계관 순서대로 나열했다.
ⓒ‘[스토리] ‘젤다의 전설’ 세계관/스토리 총정리 1부’, 루리웹, 나하도르 작성, 2019.02.10.

  승리한 용사가 돌아온 시간선의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거울 세계이다. 용사가 7년 전 세계로 돌아와서 한 일은 악당이 활동하기 전에 미리 다시 봉인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거울 세계에 봉인되는데, 이후 원래 세계를 탐내는 악당과 맞서 싸우는 구도이다.3

  용사가 승리하고 7년 전으로 떠나자, 이 세계에는 용사가 없이 여신과 봉인된 악당만이 남게 된다. 결국 용사의 부재로 다시 풀려난 악당을 막을 수 없었고 이에 떠났던 3명의 신이 나타나 그를 땅에 묶어두고 대지를 바다로 채워버린다. 그래서 용사가 떠난 시간선의 작품들에서는 엄청나게 광활한 바다를 배로 누비게 된다.4

  마지막으로 완전히 용사가 패배한 시간선에서는 날뛰는 악당을 어둠의 세계에 간신히 가두게 된다. 하지만 악당은 본래 세계까지 힘을 뻗치게 되고 용사는 두 세계를 오가며 악당을 봉인하게 된다.5

  이렇게 세계관이 여러 작품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젤다의 전설〉의 작품 중 한 가지라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개별적인 스토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이미 모든 작품을 플레이해본 유저들은 차기작이 기존에 형성된 스토리 라인과 연결되어 있어야 〈젤다의 전설〉 전체의 스토리가 진행된다고 느낄 수 있고 개발진 역시 이 큰 흐름을 이어나가는 작품을 개발해야 하기에 점점 ‘전작을 알아야만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렇게 아는 사람들만의 세계가 형성되면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이 끊기는 ‘진입 장벽’이 형성돼 신규 유저의 유입을 버겁게 만든다. 기존의 유저들이 언제까지나 이후의 작품들을 구매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고착화는 게임의 수명을 갉아먹는 일이고, 〈젤다의 전설〉이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무언가 타개책이 필요했다.

닌텐도가 2021 E3에서 공개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속편 트레일러. 하늘에서 아래의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를 연상시킨다.ⓒ한국닌텐도 공식 유튜브 채널, 2021.06.15.
닌텐도가 2021 E3에서 공개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속편 트레일러. 하늘에서 아래의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를 연상시킨다.
ⓒ한국닌텐도 공식 유튜브 채널, 2021.06.15.

  〈젤다의 전설〉이 찾아낸 돌파구, ‘동일한 출발선’

  그렇게 30주년을 맞은 〈젤다의 전설〉은 엄청난 강수를 둔다. 바로 기존의 세계관과 완전히 동떨어진 시간선에서의 신작, 바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였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주인공 ‘링크’가 잠에서 깨어나며 시작된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후에야 링크에게 아주 기초적인 상황 설명이 제시된다. 링크는 사실 용사였고 대재앙 ‘가논’과의 전쟁에서 질 듯하자 그를 빼내어 100년 동안 재워뒀으며 다시 가논이 활동할 듯하니 그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게임을 통해 새로이 〈젤다의 전설〉의 세계에 발을 들인 사람은 이 시리즈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니 주어진 짧은 설명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게임 속 세계에 녹아들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수많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접해 본 유저들은 당황하게 된다. 이 세계에는 거울도, 어둠의 세계도 없고 바다를 누비며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땅이 하늘 위에 있지도 않고 시간을 돌릴 오카리나도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용사, 공주, 악당의 존재와 함께 공주를 구해야 한다는 시리즈 전통의 큰 스토리 틀은 제시된다. 결국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플레이어들은 모두 무지의 상태라는 똑같은 출발선에서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은 플레이어들만이 아니다. 용사도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젤다의 전설〉이라면 악당과 맞서기 위해 아무리 해도 부서지지 않는 칼을 누군가에게서 받고 이를 가지고 싸우게 된다. 하지만 이곳의 링크에게는 오로지 빈손뿐이다. 세상을 구할 용사라는 사람이 넓은 월드를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무기를 주워서 써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내구도를 가지고 있어 사용하다 보면 부서진다. 그렇게 용사는 계속해서 무기를 얻어가며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또한 용사 링크가 돌아다니는 세계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전까지의 젤다의 전설은 게임 진행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얻게 되는 순서가 정해져 있어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정해둔 루트를 따라 진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서는 잠에서 깨자마자 대충 무기만 챙겨 가논과 바로 싸우러 가도 된다. 유저가 플레이 순서를 직접 정하고 게임 속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당연함을 과거에 의문을 제기하다

  이런 과감한 설정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게임 개발진은 이번 작품의 메인 컨셉을 ‘당연함의 재검토’라고 말한다.6 이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게임 진행을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모든 것을 부정한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유구한 밈(meme)이 있다. 필드의 풀을 베거나 그릇 등을 부수면 ‘루피’라는 게임 속 화폐나 ‘하트’라는 체력 회복 수단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닥치는 대로 제초하고 NPC의 집 안 집기를 다짜고짜 부수는 행위는 플레이어들 사이의 농담거리이자 경험에 의한 행동 관성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반복되지 않는다.

  게임이 정해둔 스토리 라인이 아닌 ‘유저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흐름’ 역시 개발진의 기획한 의도이다.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최종 보스와 맞서 싸우는 것도, 드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것도, 그 어떤 게임 플레이 방식도 자유롭게 가능하다. 게임의 방식에 유저를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그 자유로움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발미 이후 각종 유저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사진은 이 기록을 보여주는 공식 트레일러 ‘The Legend of Zelda: Breath of the Wild - Nintendo Switch Accolades Trailer’.ⓒNintendo 공식 유튜브 채널, 2017.04.15.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발미 이후 각종 유저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사진은 이 기록을 보여주는 공식 트레일러 ‘The Legend of Zelda: Breath of the Wild - Nintendo Switch Accolades Trailer’.
ⓒNintendo 공식 유튜브 채널, 2017.04.15.

  젤다의 전설 유니버스’는 계속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자유로움 추구’라는 기존의 컨셉트가 속편에서는 변경되었다. 〈젤다의 전설〉 세계관을 잇는 스토리 제시로 회귀한 것이다. 이번 2021 E3에서 공개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속편 영상에서는 2021년에 리마스터한 〈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와 유사한 지점이 등장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발매 전에는 기존 스토리를 알고 있는 유저층과 듬성듬성 아는 유저층, 그리고 아예 모르는 신규 유저층으로 완전히 갈라서 있었다. 새로운 유저들에게는 기존의 방대한 스토리 양이 너무 부담스럽고, 스토리의 일부를 아는 유저들마저도 각기 접해본 작품들이 달라 이 모두를 완벽하게 채워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을 시리즈에 완전히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이전까지의 과거를 과감히 잘라내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라는 하나의 작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이 작품을 배경으로 한 후속 시리즈를 제시하는 데에 부담이 없어졌다. 그렇기에 전작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동시에 그보다 더 이전작과도 연결점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을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 완전히 정착시킬 수 있는 고리를 만든 것이다. 스토리 흐름을 제시하다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이를 큰 틀 안으로 연결 짓는 것. 제작진들을 ‘젤다의 전설 유니버스’의 지속 가능성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는 2022년에 공개될 속편이 이 기획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발매 순서대로 젤다의 전설(1986), 링크의 모험(1987), 신들의 트라이포스(1991), 꿈꾸는 섬(1993), 시간의 오카리나(1998), 무쥬라의 가면(2000), 이상한 나무열매(2001), 바람의 택트(2002), 4개의 검(2002), 4개의 검+(2004), 이상한 모자(2004), 황혼의 공주(2006), 몽환의 모래시계(2007), 대지의 기적(2009), 스카이워드 소드(2011), 신들의 트라이포스2(2013), 트라이포스 삼총사(2015),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2017)
이는 리메이크나 이식 발매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이다. 패밀리 컴퓨터(약칭 패미컴), 슈퍼 패미컴, 닌텐도 64, 게임 큐브, 게임 보이 어드밴스(약칭 GBA), Wii, 3DS, Switch. 이식, 리메이크로 재발매된 경우를 고려했을 때에는 GBA, Wii, 3DS, Switch 4개로 줄어든다.
대표적으로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2006)가 있다.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2002), 〈젤다의 전설 몽환의 모래시계〉(2007)이 대표적이다.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1991),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1993)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조영준, “2017 유력 GOTY 후보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와일드〉 한글화 발매 확정”, 동아닷컴, 2019.09.27, ‘아울러 한국 닌텐도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아오누마 에이지 프로듀서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는 “‘젤다의 당연함을 되돌아보다’를 키워드로 제작한 이번 새로운 젤다를 세계 많은 분들께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즐겨 주시고 계신 점에 대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게임 텍스트의 한국어 대응 작업을 진행 중이며, 한국의 많은 젤다 팬분들께서도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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