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사적 복수의 은밀한 사생활: 〈마이네임〉, 〈지옥〉
[드라마 월평] 사적 복수의 은밀한 사생활: 〈마이네임〉, 〈지옥〉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1.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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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한국 다크 히어로의 신화는 〈열혈사제〉(2019) 김해일 신부님의 순결한 발끝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너 때리래.” 불의에 맞서 검은 사제복을 휘날리며 분노의 발차기를 날리는 신부님이라니, 얼마나 멋있는가. 그 후 김 신부님의 후예들이 줄지어 나타나 사회 각 분야의 부정의와 불공정의 문제를 청산했는데…

  문제는 악이 아니라 선이었다. 〈빈센조〉(2021)에서 빈센조는 “쓰레기 치우는 쓰레기”를 자처하며 악의 무리를 불에 태워 죽이고, 천천히 고통을 느끼며 죽도록 심장에 구멍을 뚫는다. 선은 악과 함께 싸우는 동안 진화한 게 아니었다. 악화하고 있었다. 악의 전염성이 좀비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울 줄이야.

  신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배워 잘 알고 있다. 역시 문제는 악이 아니라 선, 드라마 안이 아니고 밖,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다크 히어로의 잔혹한 행보를 보고 ‘속시원한 엔딩’이라며 뜨거운 환호를 보내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대한민국이 세계 드라마 역사가 아니라 진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오지 않는가. 아.

ⓒ넷플릭스 마이 네임 스틸컷
ⓒ넷플릭스 마이 네임 스틸컷

  〈마이 네임〉과 사적 복수 

  공권력에 기댈 수 없는 무력한 현실에서 ‘그럼에도 폭력은 나쁘다’고 고리타분한 설교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넘어갔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에 대해 상상해보자.

  공공의 법이 의미하는 건 단순히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 아니다. 그것은 자율적인 진화와 퇴화의 과정을 거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로서 사회구성원의 행동 척도가 되어주는 중요한 기준점이다. 법은 일차적으로 우리 개개인의 삶에 질서를 부여해 잘못된 선택을 방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회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는 그다음 문제다. 안녕한 개인이 있어야 안녕한 사회와 안녕한 국가가 있을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2021)의 ‘윤지우’는 아버지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생각해 언더커버 경찰이 되어 사적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뒤늦게 아버지가 언더커버 경찰이었고 조직에서 활동하다 정체가 발각돼 조폭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 동천파를 상대로 또 한 번의 사적 복수를 시도한다. 아. 아.

  잘못된 선택으로 두 번의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동안 윤지우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청춘을 살인 병기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으로 보낸다. 그리고 언더커버로 활동하며 자신을 믿고 아껴주던 사람들을 배신하는 정서적 학대까지 감내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인내의 끝엔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한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다.

  언더커버를 모티프로 한 <마이 네임>은 조폭과 경찰 사이의 죽고 죽이는 장르적 관습을 통해 사적 복수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세계에서 윤지우의 사적 복수는 또 다른 사적 복수를 불러오는데…

  극 중 윤지우는 남자들로 가득 찬 조직에 들어와 그들과 싸우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버지 친구인 조직 보스에게 개인 교습을 받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계급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조직 내에서 불공정 특혜로 여겨지고 이는 윤지우를 향한 조직원들의 폭력과 강간 시도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작은’ 사적 복수가 실패로 돌아가고 역으로 조직에서 쫓겨나자 그들은 동천파 전체를 향한 ‘큰’ 사적 복수를 감행한다. 아, 사적 복수의 악순환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는 것일까.

  〈지옥〉과 사적 복수의 일상화

  사적 복수의 배경에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있다. 현 체제 안에서 공적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개인이 나서서 직접 악을 심판하는 것이다. 불공정과 부정의에 관한 이슈는 늘 사적 복수의 시작에 놓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불공정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사적 복수가 일상화된 가상 사회를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이 괴생명체에 의해 지옥행 선고를 받고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상황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집단적 혼란에 빠진다. 이때 종교단체 새진리회는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불안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을 현혹한다. 인간이 만든 법이 죄인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니까 신이 나서게 된 거라고 말이다.

  극 중 예고 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살인자, 폭력범, 사기꾼, 강간범으로 밝혀진다. 폭력적인 죽음 방식에 경악하던 사람들도 점차 익숙해지면서 직접 사적 복수에 나서기 시작한다. 사적 복수의 실천은 화살촉이라는 새진리회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소수의 집단에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빠르게 확산한다. 10대 청소년 ‘희정’은 엄마를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인다. ‘불’지옥이 하늘이 아닌 땅에서 인간에 의해 재현된 것이다.

ⓒ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지옥 스틸컷

  절대성이 사라진 세계

  4년 후, 신의 개입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인구의 절반이 새진리회 교인이 된다.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가 죽음 고지를 받는 일이 발생한다. 죄를 지어 지옥행을 선고받은 것이라는 새진리회의 해석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이때 지옥행 고지를 받은 신생아를 두고 두 그룹이 대립한다. 새진리회는 자신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 아기를 죽이려 하고, 그와 라이벌 조직인 ‘소도’는 아기의 죽음을 생중계함으로써 대중에게 예고 살인의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두 그룹은 표면적으로 정반대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유사한 행보를 보이는데…

  모두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시즌1의 엔딩에서 부정한 여자라고 비난받으며 죽임을 당한 미혼모 박정자가 부활한다. 죽은 박정자의 부활은 신의 아들 예수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 역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한 그 시대의 미혼모라는 점을 깨닫게 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절대성의 이면을 폭로한다. 이로써 드라마 〈지옥〉은 죄와 벌, 선과 악, 미와 추, 귀와 천, 시와 비 이 모든 것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사는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복잡해서 모르겠어.”라고 신에게 절규하는 지옥행 고지를 받은 화살촉 회원, ‘원칙 없는 세상은 종말’이라며 집단적 멘붕에 빠진 새진리회 사제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배우 유아인과 박정민의 죽음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주연과 조연 사이에서 의지할 곳을 찾아 방황하는 화면 밖 시청자들까지… 절대성의 세계는 드라마 안과 밖에서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다.

  상대성의 두 얼굴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지옥〉에서 신은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신에 관한 모든 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덧붙인 해석일뿐. 그러니까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다. 신은 그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사건이고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신이란 이름의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그곳은 모든 가치가 뒤섞인 위태로운 카오스의 세상일까. 아니면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일까. 아, 상대성의 두 얼굴이여.

  지금 이 순간, 연상호 감독은 우리가 쓴 드라마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 〈지옥〉이란 하나의 사건을 목격하고 우리가 느끼고 생각한 것. 세상의 모든 드라마 리뷰가 연상호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테니까 말이다. 세상에 대한 개개인의 해석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세계의 얼굴이다. 극 중 지옥행 고지를 받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인 그 아기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손거울을 들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 다음 시즌 이야기는 우리 손끝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의 연상호다.

 

 


김민정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1월호(통권 9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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