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지옥'의 유아인…압도적인 너무나도 압도적인!
[범 내려온다] '지옥'의 유아인…압도적인 너무나도 압도적인!
  • 전찬일(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22.01.02 2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대체 유아인 연기의 한계는 어디쯤일까?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에 이어 ‘한류’의 위력을 또다시 입증한 넷플릭스 6부작 웹드라마 〈지옥〉(연상호)을 관람하며 자문했던 물음이다. 목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스타 배우이자, 〈소리도 없이〉(홍의정, 2020) 같은 마음에 드는 영화라면 몸값 따윈 아랑곳없다는 양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 흔치 않은 연기자!

  천사로부터 사망 ‘고지’를 받은 인간의 죽음을 ‘시연’하기 위해 등장해 요란할 대로 요란하게 살해하고 사라지는 세 사자(使者) 캐릭터가 하도 억지스럽고 짜증나 보기를 중단했던 시리즈를 끝내 시청케 추동한 결정적 변수는, 다름 아닌 유아인의 인물 해석력과 그 거대한 존재감이었다. 3부까지 출연하고 종적을 감추지만 그는 영락없는 사이비 종교 단체인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 역을, 말 그대로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 누구도 흉내내기 불가능할 그 특유의 표정과 몸짓, 대사로 말이다. 그 톤앤매너가 어찌나 ‘압도적’인지, 어안이 벙벙해지고 비교의 예를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시쳇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연기력을 뽐냈다거나, 생애 최고의 열연을 구사했다는 상투적 의미는 아니다. (고)히스 레저의 조커도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란, 2008)에서 그랬듯 그런 연기는 이미, 희대의 악당 캐릭터도 치명적 매혹(Attractions)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입증했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015)에서 선보이지 않았는가. 최근 자신의 입으로 큰 사랑은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할이 스스로를 프레임에 가두기도 했다, 고 밝힌 문제적 수작.

  〈소리도 없이〉는 또 어떤가. 내게는 한국영화사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자 역대 베스트10 안에 자리하고 있는 걸작. 제목이 시사하듯 유아인은 대사 없는 태인 역으로, 2020년 제41회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2021년 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과 30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등을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로 한정하자. 내가 아는 한 벙어리 캐릭터로 그와 같은 예외적 쾌거를 일궈낸 스타-연기자는, 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을 통해 1965년 제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과 8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1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안은 김진규 정도밖에 없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한국 배우사의 그 거대한 산맥은 〈피아골〉(이강천, 1955)을 필두로 〈하녀〉(김기영, 1960), 〈박서방〉(강대진, 1960), 〈오발탄〉(유현목, 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잉여인간〉(1964, 유현목), 〈마의 계단〉(1964, 이만희), 〈귀로〉(1967, 이만희), 〈삼포가는 길〉(이만희, 1975) 등 한국영화사의 빛나는 걸·수작들의 주인공이다. 그러고 보니 두 배우는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손자뻘이긴 해도 유아인은 매력적 남성성을 자랑하면서도 다분히 ‘지적’이기도 하고, ‘진중한 이미지’에 ‘부드럽고 섬세’하며 ‘우수 어린 푸근함과 비애감’까지 배어있다는 점에서, 그 거목의 적자로 손색없다. 물론 330여 편의 다작 스타였던 거인에 비해 그는 TV 포함 20편도 채 되지 않는, 갈 길이 한창 남은 ‘미래의 거인’이지만. 그렇다면 유아인에 그토록 압도당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 그의 연기를 설명할 언어를 마땅히 찾을 수 없어서였다. 영화 보기 50여 년에 영화 스터디 근 40년, 영화 글쓰기 30여 년에 난생처음 맛보는 당혹스러운 경우라면 이해될까. 말이 되는가. 제아무리 범상치 않을지언정 클린트 이스트우드같은 90대의 위대한 노거장도 아니고, 명색이 비평가라면서 고작(?) 30대 중반 배우의 연기를 평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니! 훗날 수정하긴 했어도 20세기 최고 천재 (분석)철학자로 간주되곤 하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한때 언어로 규명할 수 없으면 당장 입을 닥치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일까. 기껏해야 “압도적”이란 진부한 표현밖에 동원하지 못한 건 그래서다. 현재로서는 그 이상의 어휘 이상을 끄집어낼 능력도, 자신도 없다. 고백컨대 어느 특정 배우의 연기를 향해 이런 경우는 최초다. 위에서 〈지옥〉에서의 유아인이 생애 최고 연기를 펼쳤다, 고 말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그만큼 그는 다른 차원, 다른 경지의 연기를 구사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배우의 연기는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늘 역설해왔다. 그러나 〈지옥〉은 예외다. 단언컨대 유아인의 연기는 감독 연상호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게 내 판단이)다. 〈부산행〉(2016)에서 〈염력〉(2018)과 〈반도〉(2020)에 이르는 실사 영화들에서 연상호는 최고의 연기 연출을 도출해낸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유아인의 타고난 연기력의 결과물이라고 진단할 수도 없다. 그가 늘 최상의 연기를 선보였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살아있다〉 (2020, 조일형)나 〈국가부도의 날〉(2018, 최국희)같은 근작만 봐도, 인상적이되 무난한 선에 그쳤지 않았는가. ‘압도적’과는 거리가 멀었지 않았는가….

ⓒNETFLIX

  문득 밀려드는 생각. 2022년이 호랑이해고 유아인이 1986년생 범띠라는데, 혹 말로 형용키 불가능한 〈지옥〉 연기는 그의 호랑이적 기질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새끼 시절이 있기에 당연히 다른 생물과의 싸움에서 절대적일 수는 없으나 다 자란 뒤엔 야생에서 확실한 천적이 없으며, 많은 먹이와 영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다른 동물과의 충돌도 매우 심하지만 그 어느 곳에 살아도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는 강력한 맹수(이상 나무위키 참고·인용)라는데?

  평론가로서 내게 유아인이 각인된 계기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이한 감독의 〈완득이〉를 오픈 시네마에 초청하면서였다. 그 전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 노동석), 〈좋지아니한家〉(2006, 정윤철),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민규동) 등에서 호연을 펼쳤고, 인기 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로 스타덤에 올랐어도 주목은커녕 별다른 관심조차 기울이질 않았다. 나는 21세기 최고의 국산 성장영화 〈완득이〉를 통해 비로소 유아인을 발견했다. 그 이후 그와 연관돼 자동 연상되는 단어는 ‘개념 배우’라는 규정이다. 이한부터 홍의정까지 그를 말하는 모든 감독들은 으레 ‘개념’이라는 용어로 그를 극찬했다. 그런 배우가 이 땅에 또 있을까, 싶다. 혹시 그 개념성도 호랑이 피와 관련된 것일까……

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 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정책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