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 안진용(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 승인 2022.01.0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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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크

  외국인들은 어떻게 한국을 배울까? 자국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을 찾아갈 수도 있고, 대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전공하는 등 방법은 여러 갈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각자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통상적으로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의도치 않게 부지불식간 빠져들곤한다. 한국인들이 영화 <라라랜드>를 보며 막연히 LA를 동경하고 <코코>를 본 후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듯, 외국인들은 BTS를 보며 그들의 나라인 한국이 궁금해지고, 넷플릭스 <킹덤>을 접한 후 조선시대의 복식과 갓이라는 새로운 패션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으로 외국인들은 얼마 전 ‘범’을 배웠다. 한국관광공사의 해외 홍보영상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에 참여한 국악 퓨전밴드 이날치밴드가 부른 <범 내려온다>와 이에 맞춰 안무를 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힘은 대단했다. 전국 6개 도시를 돌며 각 지역을 알릴 목적으로 만든 영상물의 유튜브 누적 조회수는 6억뷰가 넘는다. 전 세계 인구를 약 60억 명으로 봤을 때, 10명 중 1명은 이 콘텐츠를 접했다는 의미다.

  범은 호랑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대한민국 역사 대대로 신성시 되는 동물로 산을 지키는 산군(山君)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반도의 모습이 용맹스러운 호랑이와 닮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범 내려온다>를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물론 의미 있고, 일리있는 분석이다.

ⓒ하이크

  하지만 21세기 아닌가? 이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접근이다. BTS 이후 블랙핑크라는 새로운 글로벌 스타가 탄생하고, <기생충>의 배턴을 이어받아 <미나리>, <오징어 게임>등이 주목받았듯, K-콘텐츠가 글로벌 콘텐츠로 진화하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범 내려온다>는 왜 성공한 것일까?

  이날치밴드는 지난해 5월 첫 번째 정규앨범 <수궁가>를 발매했다. 판소리 <수궁가>를 완창하려면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당연히 한 앨범에 모두 담긴 어렵다. 그래서 이날치밴드는 여러 대목을 발췌한 후 11곡으로 만들었고, <내려온다>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수궁가>의 내용은 전래동화 ‘별주부전’과 맞닿아 있다.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에 온 별주부의 이야기다. 그는 토끼를 꾀기 위해 ‘토생원’을 부르려다 실수로 ‘호(虎)생원’을 부른다. 그러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로 착각한 거대한 호랑이가 뛰어 내려오고, 이 모습을 본 별주부는 깜짝 놀라 잔뜩 몸을 움츠린다는 것이 <범 내려온다>의 가사 속 이야기다.

  여기서 묻자. 외국인들이 이 가사의 의미를 알고 즐겼을까? <범 내려온다>의 가사는 현대 표준어와 다소 표현이 달라 언뜻 들어서는 한국인들도 재깍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수궁가>에 뿌리를 둔 <범 내려온다>의 해학을 즐겼을 리 만무하다는 의미다.

ⓒ하이크

  결국 <범 내려온다>가 글로벌 콘텐츠로 뻗어나가게 된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다. 멜로디와 안무, 그리고 플랫폼이다. 음악 감독으로도 유명한 장영규가 중심이 된 이날치밴드는 베이스 2명과 드럼 1명, 소리꾼 4명으로 구성됐다. <범 내려온다>를 부르는 소리꾼들은 정통 국악 전공자들이다. 국악을 흉내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팝’이라는 기본 장르에서 벗어난, 월드 뮤직으로서 <범 내려온다>는 음악 좀 듣는다는 외국인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또 다른 예로 지난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NPR에 출연한 소리꾼 이희문의 씽씽밴드의 무대는 7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악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웅변한 셈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손을 잡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소위 말하는 MZ세대(밀레니언+Z세대)는 영상 세대다. 이들은 궁금한 것이 생겨도 포털사이트에 묻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검색해 영상으로 모든 것을 접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여하는 콘텐츠’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독특한 안무는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유튜브에는 <범 내려온다>를 좇은 숱한 커버 영상이 올라왔다. 직접 퍼포먼스에 동참하는 ‘챌린지’의 일종이다. 단순히 ‘보는 콘텐츠’를 넘어 ‘참여하는 콘텐츠’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하이크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의상 선택도 탁월했다. 전통 문양을 넣은 슈트에 갓을 쓰고, 붉은색
정장 차림에 장군 투구를 쓰는 등 외적으로도 대단한 타격감을 줬다. 평범한 것을 거부하고, 천편일률적인 것에 환멸을 느끼는 MZ세대에게 국악인 <수궁가>를 새롭게 변주한 <범 내려온다>와 그에 걸맞은 안무 그리고 패션은 아주 유니크한 존재였던 셈이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 했던가. 이날치밴드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라는 구슬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니 보배가 됐다. 하지만 나만 보는 ‘가문의 보배’가 무슨 소용인가. 이 보배가 전세계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 진출을 눈곱만큼도 노리지 않았으나 코믹한 뮤직비디오가 말춤과 함께 히트를 치며 강제로 한류스타가 된 <강남스타일>의 싸이, 황동혁 감독이 12년 전에 처음 기획했지만 외면 받고 서랍 속에 묻혀 있었으나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에 소개된 후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과 궤를 같이 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범 내려온다>의 성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흉내내서는 아류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것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고 <범 내려온다>는 웅변하고 있다.

안진용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저서로 『방송연예산업경영론』(공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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