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칡의 길」 외 2편
[제14회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칡의 길」 외 2편
  • 김정희
  • 승인 2020.04.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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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칡의 길

김정희

 

낭떠러지에 길을 내고 있다

가시덤불 속 줄기 걷어내자 옹송그려 붙은 칡뿌리
비틀린 돌 품고 있다
등골 배기던 땅속 견뎠던 뿌리들, 휘감고 엉킨 길 튼다
벼랑 끝에 매달린 어둠 햇빛을 훔친다

입술 터지고 찢기며 붙잡은 길 놓을 수 없는 오직 하나의 끈,
질척이는 발목 빠지고
목마른 햇살 밟으며 보낸 접질렸던 어둠이 디딘 뿌리다

가파른 흙과 돌이 내통한 자리
두껍고 달착지근한 등짝 차곡차곡 어둠의 결 꽉, 물고 있다
다독이고 쟁이며 환한 길 뚫고 있었던 것

절벽 위의 비틀린 살
햇살 세례 받으며 눈부신 땅 내딛는다
벼랑이 일어선다
비로소 한 그루 나무로 선다

 

벚꽃 얼룩

저 무한한 공력功力이면 무엇을 못하랴
바람의 침묵 후에 꽃은 왔을 것
가쁜 숨결 가다듬고
온몸 치닫으며

꽃은 왜 뭉텅뭉텅 읽히나

별빛의 숨죽인 심호흡
깊은 밤 뼈저린 어둠의 산맥 더듬으며
색色을 토하는 새벽의 뭉친 근육 떨며
쌀뜨물 가라앉듯
민낯 핥는 햇볕의 이마로 벚꽃은 뿌옇게 진을 친다

벚꽃이 오는 만큼 천지는 하얗게 조각난 눈물
사월의 얼룩 아득하게 번지는 몸
밥물 끓어오르듯 벚꽃은, 숨을 토하네

슬픔도 잊을 준비가 필요한가
나는 느닷없이 내려앉는 벚꽃 무거워,
가슴으로 지는 벚꽃의 얼룩
허망한 속살 어쩌지 못해
내내 꽃을 앓는다

 

돌아보다

싱크대 한 쪽 내려앉았다
처진 어깨 추켜세우듯 쉽게 수습할 일 아닌
의심의 지점은 있어,

삐걱이고 금 가는 동안 썩어 문드러진 안쪽
소통하지 못한 단절의 악취

어긋난 기회 돌아보고
꿰맬 겨를 주지 않은 네 삐끗한 발목

발은 더 지치고 꺾이지 않아도 될 것

네 시간의 톱
뜯고 치고 덧대고 이어봐도
차라리 친근했던 빚의 덫,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본다

싱크대와 함께 끌려 나온 쉰셋 살림살이
연탄 한 장으로 타오른 간곡한 발버둥

따뜻하게 덥히고 어루만졌을 젖은 구멍의 언어들

 

 


김정희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독서치료사로 독서. 논술지도를 하고 있다. 제14회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 수상.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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