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빅토리아시대 예술의 아름다움: 빅토리안 레디컬스
[Gallery] 빅토리아시대 예술의 아름다움: 빅토리안 레디컬스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2.01.01 0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동부의 가을이 깊어진 11월 초, 강철도시(Steel City)로 불리는 피츠버그에 탐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 속 예술의 이상적 역할을 추구했던 영국 빅토리아시대 예술이 우아하게 안착했다. 더 프릭 피츠버그 프릭미술관Frick Art Museum, The Frick Pittsburgh에서 만나는 19세기 중후반 영국미술의 급진적이고 아름다운 유산. 《빅토리아 급진파: 라파엘전파에서 예술공예운동까지(Victorian Radicals: From The Pre-Raphaelites To The Arts & Crafts Movement)》(이하 빅토리안 래디컬스)를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 이 전시는 서로 다른 두 국가, 도시들, 역사, 시간, 문화 예술 배경이 교차하고 중첩되는 영국발 미국행 투어 기획전이다. 버밍엄시가 소장하고 있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의 60여 년, 삼 세대에 걸친 회화와 드로잉,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텍스타일, 장식품 등 당대 예술공예운동에 따라 제작된 작품 140여 점이 처음으로 미국 감상자들과 조우하는 여정이다. 2018년 말 오클라호마 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뉴헤이븐의 예일대학 영국미술센터 등 미국 전역의 미술관 6곳을 돌았고,1 피츠버그 프릭미술관이 그 대미를 장식한다.

따라서 프릭미술관의 《빅토리안 래디컬스》에는 다음과같은 객관적 사실들이 압축돼있다. 미국 피츠버그와 영국 버밍엄, 21세기 현재와 19세기 역사, 20세기 후반 석탄 철강 산업의 쇠락으로 큰 위기를 겪었지만 최첨단 IT산업과 교육 투자로 재생에 성공한 현대 도시 피츠버그와 산업혁명으로 본격화된 모더니즘시기에 전 산업(pre-industrial) 사회의 미학과 이상을 주창했던 급진적 예술유파로 대별해서 말이다. 서술만으로도 이미 꽤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빅토리안 래디컬스》는 이렇게 풍부하면서도 갈래가 여럿인 내용들을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고요하고 의미심장한 시각 질서로 구축했다. 그렇기에 높게 평가받을 전시다. 우리 감상자 입장에서는 농축된 원액을 풀듯 전시를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용해하고, 성좌의 이름과 유래를 새기듯 작품들의 미적 가치를 이해해나가면 되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한 지역에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 및 문화유산을 전시로 만나는 일은 그리 큰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한국 서울만이 아니라 글로벌 시티 어디서든, 심지어 지방의 작은 미술관에서도 다른 나라의 역사적 예술작품이나 현대 미술 기획전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분명히 팬데믹 이전까지는 그랬다. 글로벌리즘이 그나마 최고 선한 영향력을 보인 지점이 바로 나라, 민족, 종교, 정치 등 온갖 대립으로 분열된 세계를 문화와 예술의 다양한 교류와 열린 협력을 통해 밀접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은 그 선한 영향력을 방역을 위한 극도의 배타성과 좁은 삶의 반경으로 변질시켰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는 최근 2년간 어디를 자유롭게 오갈 수도 없고,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종의 박스 안에 갇힌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한 과거의 중요 예술 운동 및 관련 작품들을 다른 국가나 지역에서 감상할 기회란 얼마나 귀한 것인가. 나는 그 귀해진 경험을 피츠버그 현지에서 누렸기에 나눌 수만 있다면 독자와 기꺼이 나누고자 이 글을 쓴다.

더 유토피아적으로, 더 급진적으로

《빅토리안 래디컬스》는 미국 예술 연맹(American Federation of Arts)과 영국 버밍엄 뮤지엄 트러스트(Birmingham Museums Trusts)가 주관하고 미국 국립예술기금위원회(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후원 및 여러 개인 자선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만큼 중요한 전시임을 보여준다. 이는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았던 라파엘전파의 전위성을 지금 여기서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 과거 산업화의 강제적 흐름에 저항하면서 독자적으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모색했던 빅토리안 예술공예운동으로부터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 유의미한 방향과 방법론을 구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피츠버그뿐만 아니라 세계 전반이 제조업으로 먹고살던 세기를 지나 사회의 핵심 동력이자 먹거리로서 문화와 예술의 시대에 도달한 이때, 예술과 사회의 관계가 보다 중요하고 복합적이 된 동시대의 공동체로서는 그것만큼 의의가 큰 전시 가치도 없다.

그럼 라파엘전파와 예술공예운동은 어떠했기에 그런 잠재성의 동시대적 발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프릭 피츠버그 컬렉션 디렉터이자 수석큐레이터인 던 브리언(Dawn R. Brean)의 말에 많은 단서가 있다. 인용하자면 그들은 “진정으로 예술의 선한 사회적 영향력을 믿었다 (…) 그들은 진실, 자연, 진정성, 그리고 수작업을 소중히 했다. 산업시대에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탐색한 점은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질문을 생성”2하는 것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를 비롯해 포드 매덕스 브라운, 에드워드 번존스,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윌리엄 모리스, 엘리자베스 시달, 케이트 엘리자베스 번스 등이 이 빅토리안 아방가르드의 선구적인 예술가들이자 제작자들로 꼽히고 전시작품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라파엘전파는 당시 고삐 풀린 산업화에 반대하는 영국 최초의 미학적 반응으로서, 동시에 매너리즘에 빠진 미술 아카데미즘에 대한 비판으로서 초기와 중기까지는 르네상스 이전 ‘중세를 향한 동경’을 주창했다. 물론 삼 세대를 거치면서 그 같은 지향은 점차 희석되었고 연대기를 따라 기획된 전시는 그러한 줄기의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하지만 사실에 입각한 조형의식과 자연주의적인 묘사를 우선시하는 미적 태도, 문학적인 주제와 당대의 삶을 교직하는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생생한 색채, 정교한 디테일, 탐미적 조형 언어를 구사하는 양식은 지속되었다. 예컨대 《빅토리안 래디컬스》의 간판 작품 격인 엘리자베스 번스의 유화 〈음악(Musica)〉(1895-97)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정면을 응시한 채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그런데 라틴어 제목과는 달리 그림 속 여성은 당시의 공예술로 만든 꽃문양 드레스, 목걸이, 반지를 착용한 현실의 모습이고, 그림 전체의 색채는 원색을 피했던 아카데미 회화와는 달리 녹색과 붉은색이 강렬한 대조를 이뤄 화려한 면모다. 또 다른 작품으로 밀레이의 〈눈 먼 소녀 (The Blind Girl)〉(1856)를 보자. 이 그림은 기법 면에서 라파엘전파가 선호했던, 물감을 옅게 펴 바른 후 섬세한 필체를 쌓아올려 정교한 세부를 완성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가령 거지 소녀의 목에 걸린 ‘맹인 동정’ 글자나 그녀가 손에 쥔 잡초가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은 화가가 눈멀고 궁핍한 당대 세속의 소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그녀의 무릎에는 아코디언을, 스카프에는 나비를, 후경에는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두 개의 무지개를 그려 넣음으로써 작품을 통해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과 유토피아적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함께 웅변했다는 것이다. 버밍엄대학의 한 사회과학자는 개인적으로 40여 년간 이 그림에 주목했고 특히 “시각장애인의 교육과 사회구조”에 관한 연구의 중요 원천으로 삼았을 정도다.3 라파엘전파의 이 같은 예술 정신과 태도는 자연스럽게 수작업을 바탕으로 한 생활 디자인, 수공예품의 제작 및 사업으로 이어졌고 전시에서는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벽지부터 이름 모를 장인이 만든 여성복까지 두루 선보여 그 점을 읽어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아마도 《빅토리안 래디컬스》를 보는 오늘의 감상자 눈에는 그러한 그림들, 공예품들, 장신구 등이 하나같이 고전적이고 낭만적이며 세속적 일상과는 거리가 먼 아름답고 럭셔리한 오브제로 비칠 것이다. 특히 물결치듯 곱실거리는 머리칼, 하얀 피부와 푸른 눈동자, 화려한 문양의 드레스로 묘사된 라파엘전파의 여인 초상들은 우리에게 반대의 착각을 일으킬만하다. 이 유파와 예술공예운동이 보수적이라고, 여성을 대상화했다고, 지나치게 유미주의적이라고. 그러나 역사의 시차가 인식의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실제 라파엘전파의 남녀 예술가들은 미술과 자연의 관계, 계급과 젠더 정체성의 문제, 수공예와 기계 생산의 가치, 산업사회의 기계화에 맞서는 인간 창작의 아름다움에 대해 탐구했다. 그러기 위해 빅토리아시대의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거스르며 급진적인 예술을 실행에 옮겼다. 지면의 한계로 더 나아갈 수도 없지만, 내가 여기 굳이 지목하지 않더라도, 그 예술가들이 탐구한 문제들 속에 오늘 우리 사회, 우리 자신이 풀어야 할 이슈들이 포개져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이미 포착했으리라.

 

 


1 https://www.amfedarts.org/victorian-radicals/
2 〈Victorian Radicals〉 보도 자료에서 인용, The Frick Pittsburgh, November 6, 2021-January 22, 2022
3 Graeme Douglas, ““Pity the blind”? Hidden stories of empowerment and inclusion in John Everett Millais’ The Blind Girl (1856)”, Midlands Art Papers 3 (2019/20), University of Birmingham. https://www.birmingham.ac.uk/schools/lcahm/departments/historyofart/ research/projects/map/issue3/douglas-pity-the-blind.aspx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발표. 2021. 6. 1. ~ 11. 30 미 국무부와 한미교육위원단의 풀브라이트 미드커리어리서치 프로그램 Visiting Scholar로서 카네기멜론대학 로보틱스 인스티튜트에서 연구.

 

* 《쿨투라》 2022년 1월호(통권 91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