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삶과 사랑, 예술을 위한 정직한 화공: 제주 이중섭미술관과 화가 이중섭
[미술관 탐방] 삶과 사랑, 예술을 위한 정직한 화공: 제주 이중섭미술관과 화가 이중섭
  • 김명해 (화가, 본지 객원기자) 사진제공_이중섭미술관
  • 승인 2022.01.05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맹한 호랑이 기운으로 임인년(壬寅年)을 맞이하고 싶어서 우리나라 제일 남쪽 제주도를 찾았다. 특히 제주에서도 더 남쪽인 서귀포시는 좋은 기운과 힘이 느껴지는 곳으로 많은 미술관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이번 제주행은 당일치기가 아닌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에 온 김에 미술관 몇 곳을 둘러볼 요량으로 계획을 잡았으며, 호랑이 기(氣)를 받을 첫 번째 목적지로 이중섭미술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필자가 20여 년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화가의 거주지였던 초가집과 이정표만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중섭 화가가 머물렀던 거주지를 중심으로 미술관과 공원, 거리, 화가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조성된 주변은 새로운 건물들과 함께 공방, 카페, 식당,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다. 거리 곳곳에는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만든 조형물뿐만 아니라 우수받이나 맨홀 뚜껑, 벤치,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의 바닥 돌에도 작품이 문양처럼 새겨져 있다. 가게 간판도 ‘중섭공방’, ‘중섭식당’이 있고, 제주와 이중섭과 관련된 기념품을 팔고 있다.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비운의 천재화가’, ‘소 그림 화가’, ‘은지화 작가‘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화가이자 열정과 자유로움을 지닌 예술가이다. 이중섭은 이북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했고, 월남 후 남한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기는 1950년에서 1956년 죽기 직전까지 고작 6년이었다. 당시 사회의 현실을 실감하며 살았고 가족과의 이별, 지독한 고독과 가난, 그리움으로 인한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고 그린 그의 그림들은 온전히 표현되어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이러한 그의 높은 창작 열의와 불멸의 예혼을 후대에 기리고, 제주를 찾아오는 분들과 시민들이 이중섭 화가의 예술적 발자취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서귀포에 2002년 전시관으로 개관하고 2004년 제1종 전문미술관으로 등록한 미술관이다. 1951년 이중섭 화가가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서 1년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역사성에 근거하여 초가 거주지 바로 뒤쪽, 서귀포 앞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들어선 미술관은 건물 디자인이 독특한데 누가 설계하고 지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건물 외형은 제주의 오름이나 한라산을 닮은 것 같고, 외벽은 현무암으로 구성, 건물 조감도를 보면 접이식 부채를 펼친 듯, 펼쳐진 새의 날개인 듯 부채꼴 모형이다.

  현재 전시는 이건희컬렉션 이중섭특별전인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으로, 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이중섭 작품 12점(유화 6점, 수채화 1점, 엽서화 3점, 은지화 2점)이 전시 중이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의 생애에서 피난 이후 가족과 함께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의 추억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이중섭이 서귀포 피난생활에서 늘 마주했던 섬을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70년 만에 드디어 서귀포의 품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미술관 3층 옥상에서 바다 쪽을 보면 작품 속의 섶섬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이중섭 화가의 시점에서 바라봤던 섶섬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물고기와 두 어린이"
"물고기와 두 어린이"
ⓒ이중섭미술관

  그 외에 자유분방한 선묘로 활달하게 그린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짙은 초록색 바다를 배경으로 새와 가족이 하나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 〈해변의 가족〉, 1955년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그려 보낸 그림 〈아이들과 끈〉, 일본에 있는 가족을 빨리 만나고 싶은 작가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현해탄〉, 아이들이 게와 놀고 있는 은지화 작품 〈게와 가족〉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현재 전시 중인 이중섭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는 것은 아이들과 가족이다.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물고기와 게를 잡으면서 놀고 있는 장면은 그가 서귀포에 피난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중섭은 원산시대부터 이미 아이들을 모티브로 다루었다. 닭과 아이들, 새와 아이들 같은 모티브의 작품은 원산시대의 연장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와 게의 등장은 서귀포 시절의 산물이다.
  - 오광수(미술평론가,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

"미술관3층에서 바라본 섶섭"
"미술관3층에서 바라본 섶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이중섭미술관

  2층 전시실에 이중섭의 40년 삶의 시간을 7기로 나누어 그의 삶의 여정과 작품세계를 아카이브 공간으로 전시 중이다. 그중에서 4기 제주 시기를 참고로 요약해 보자면,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에서 생활한 곳은 알자리동산의 마을반장 송태주의 집이다. 마을반장이 약 1.4평의 작은방 하나를 빌려주었고, 종교단체로부터 쌀과 고구마를 배급받고 게나 해초를 뜯어 죽을 쑤거나 반찬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또한, 이중섭은 아이들과 함께 자구리해안에서 게를 잡아서 놀다가 집으로 가져와 반찬으로 삼은 것이 미안해서 ‘게’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아이들과 물고기, 게 그림이 많이 등장하여 동화적이며, 배고프고 가난해도 가족과 함께 있는 행복함과 즐거움이 묻어난다.

  전시작품 마지막 코너에는 지금까지 이중섭작품기증자명단과 이번 특별전시회 개최를 축하하는 마사코 여사와 차남 야스나리(태성)의 축사(祝辭)도 있다. 마사코 여사가 올해 100살이신데 살아계시다니 놀랍다. 부인과 아들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좀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이중섭은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 「부인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포토존에는 누런 소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모습을 그린 〈황소〉가 있다. 원판이 아닌 복사본이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코를 벌름거리는 모습과 촉촉한 눈동자에 울분에 차 있는 황소의 표정은 마치 이중섭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듯 분노와 슬픔에 찬 감정을 황소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많은 평론가들이 ‘소’ 작품을 일컬어 강렬한 색감과 힘찬 선묘 위주의 독창성 있는 표현기법으로 한국적 표현주의와 향토성이 강하다고 평하지만, 작품 속의 소를 보고 있으면 이중섭 인생에서의 역경과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이 연상되어 화가의 마지막 생이 너무 애처롭고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지금 전시 중인 풍경화나 은지화, 엽서화가 오히려 정감 있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가족과 함께했던 제주 생활을 간략한 선과 맑은 색감으로 그렸고,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화가가 행복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까.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중에서, 시인 구상이 쓴 글

"해변의 가족"ⓒ이중섭미술관
"해변의 가족"ⓒ이중섭미술관

  이중섭과 절친했던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창작열을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이중섭은 화가이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주업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지탱시키는 원동력이자 구원자였기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예술에 대한 고뇌, 탐구,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그만큼 절실하였기에 화폭에는 그의 삶 전체가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술관 바로 앞쪽에 이중섭 가족(아내 마사코, 장남 태현, 차남 태성)이 서귀포로 피난 와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거주지가 있다. 초가집 형태의 이 집은 전체 다섯 칸 집이지만, 정작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곳은 1.9평의 부엌이 딸린 1.4평의 방 한 칸이다. 네 식구가 다리를 쭉 뻗고 제대로 잘 수는 있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살림방은 좁았고, 벽 한구석에 1951년 당시 실제로 이 방에 적혀있던 그의 자작시가 적혀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소의 말」, 이중섭

  한국근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의 끈을 놓지 않은 화가 이중섭! 그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작품으로 승화시켜 놓았으며 그의 작품들은 지금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아름다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

  오는 2022년은 이중섭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재 이중섭미술관은 전시장 규모가 워낙 좁아, 서귀포시는 기존 미술관 건물을 허물고 신축할 전망을 보였다. 서귀포시 한 관계자는 “본래는 증축 방향으로 잡고 기존 미술관과 연계해 추진하려 했으나, 삼성가家에서 원화 12점을 기증해 줌에 따라 미래를 위해 더 큰 규모의 미술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신축키로 가닥을 잡고 있으며, 향후에도 관련 작품들이 더 기증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여건이 되면 더 규모 있게 (신축)하려고 고민 중에 있다”고 답했다. 관람인원이 시간당 50명이라 미술관 규모에 비해 관람객이 너무 많아 시간 안에 작품 보고 사진 찍기가 곤란했는데, 정말 희소식이다. 협소한 공간과 함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부족한 인력과 예산 관련 문제들도 이중섭미술관이 신축되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 기운을 받아 발 빠르게 신축된 새로운 이중섭미술관을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서귀포문화예술포털 이중섭미술관 https://culture.seogwipo.go.kr/jslee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다빈치, 2003

 

* 《쿨투라》 2022년 1월호(통권 91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