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새해도 음악과 함께: 신년음악회와 바렌보임
[클래식 산책] 새해도 음악과 함께: 신년음악회와 바렌보임
  • 한정원(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06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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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na Philharmonic 공식 페이스북

  새해 첫날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어김없이 신년축하음악회가 열린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Wiener Philharmoniker는 수십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를 개최해왔다. 그들은 이 전통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예술적 자부심을 가진다. 1939년 첫 연주회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음악회는 새해 첫날 아침 전 세계 90여 개국으로 송출되면서 오늘날 가장 유명한 신년음악회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그 기원과 역사

  그동안 빈 필하모닉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유쾌하고 감동적인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들을 매료시켜왔다. 주요 레퍼토리는 빈 시민들의 자랑인 요한 슈트라우스가(家)의 왈츠와 폴카 등이다. 이런 전통은 빈 필 지휘자로 있던 클레멘스 크라우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크라우스는 1929년부터 5년간 잘츠부르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만으로 짜인 단일 프로그램으로 공연하였고 이는 신년 음악회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원은 1939년 12월 31일에 열린 첫 송년 자선음악회였다. 1954년 크라우스는 해외 순회공연 중 예기치 않게 타계했는데, 지휘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당시 빈 필 악장이었던 빌리 보코프스키가 지휘봉을 이어받게 되었다. 금세기 최고의 요한 슈트라우스 해석자인 보코프스키는 그로부터 25회나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다. 지휘로서는 최다 횟수인 셈이다. 1979년 10월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을 때, 그의 사임은 한 시대의 종언을 암시하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0년 신년음악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빈 필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프랑스 태생의 미국 지휘자 로린 마젤을 지휘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예술감독으로 1986년까지 머물렀다. 이후로 빈 필은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았다. 대신 매년 명망 있는 지휘자를 초빙하기로 하였다. 이 결정은 1987년을 기점으로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전 세계인의 가장 특별한 이벤트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의 신년음악회는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으로 유명한데, 이제까지의 레퍼토리가 관현악 일색이었다면 왈츠 〈봄의 소리〉에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을 기용하는 등 획기적인 장면들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카라얀 이후 해마다 초빙되는 지휘자들의 개성 넘치는 무대는 늘 화젯거리가 되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주빈 메타 등 매년 최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그 자리를 빛냈다. 이탈리아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는 작년까지 여섯 번째 빈 신년음악회를 이끌며 그 명예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가 지휘해야 할 2021년 신년음악회는 팬데믹의 깊은 시름에 처하게 되었다. 빈 역사상 처음으로 무관중 공연을 해야 할 상황에서 신년음악회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라이브 감상 기회를 부여하는 용단을 감행했다. 막간 관객의 박수는 녹음된 소리로 대체하여 연출하였다. 반면 관객 소음이 없어 오디오 측면에서는 레코딩의 완성도가 높았던 장점도 있었다.

ⓒVienna Philharmonic 공식 페이스북
ⓒVienna Philharmonic 공식 페이스북

  바렌보임과 함께하는 2022 신년음악회

  이번 2022 신년음악회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80세의 노장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봉을 잡는다. 2009,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다. 바렌보임은 1965년 피아니스트 협연자로서 빈 필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늘 우리의 삶에 커다란 이슈를 던지는 음악인으로 유명하지만 음악 해석에서 언제나 정통 클래식의 대명사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국적의 러시아계 유대인인 그는 1999년 바이마르에서 팔레스타인 문학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창단하였다. 원래 절친이기도 했던 그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중동의 아랍 및 북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온 청소년들로 구성하였다. 세상을 향한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웨스트이스턴 디반이란 이름은 괴테의 연작 시 『서동시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바렌보임은 “괴테의 시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음악인들을 함께 모으는 우리의 시도와 발상의 상징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를 모토로 하여 2005년 중동 주요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연주회를 개최하여 전 세계인에게 큰 감동과 과제를 안겼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음악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화해의 장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감동의 여정은 ‘Knowledge Is The Beginning. 아는 것이 시작이다. 2005’라는 제목으로 독일에서 114분짜리 음악 다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 안에는 만국 공통어인 음악으로 세상을 향해 나지막하게 외치는 작은 거인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 다큐 영화는 2012년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다. 2011년에는 오케스트라 단원 전원이 한국을 방문하여 비무장지대인 임진각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새해를 맞아 개최되는 ‘바렌보임과 함께하는 2022 빈 필 신년음악회’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의 전통을 따라 올해에도 메인 프로그램은 슈트라우스가의 폴카와 왈츠 그리고 여섯 개의 초연(初演)작으로 구성되었다. 메인 프로그램 후에 매년 의례적으로 연주하는 2개의 앙코르 곡도 준비되었다. 먼저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왈츠는 대부분 이 사람이 만들었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An derschönen blauen Donau〉이다. 이 곡은 전형적인 빈의 왈츠인데 지휘자와 빈 필 단원들은 이 곡을 연주하기 직전 청중들과 새해 인사를 나눈다. 다음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의 〈라데츠키 행진곡Radezky Marsch〉은 신년음악회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으로 오스트리아의 애국행진곡이라고도 불린다. 곡이 시작되면 지휘자는 청중들과 마주 보며 지휘를 하고 청중들은 그 지휘에 따라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흥겨운 분위기를 함께 즐긴다.

  인류애를 공유하는 열린 장

  음악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인류애를 공유하는 열린 장이기 때문이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제2차세계대전으로 어수선하던 시기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들에게 음악이 흐르는 공간은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따스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기 무섭게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인 오미크론의 출현에 많은 이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는 이때에, 새해 아침 신년음악회가 주는 메시지는 따뜻한 위안으로 다가올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우울한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희망 있는 새해를 만나게 할 것이다. 임인년 새해도 음악과 함께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정원
피아니스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교에서 독주와 실내악을 전공하고,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이태리 디노치아니 국제콩쿨 특별대상을 받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던 중 귀국하여 십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일송출판사에서 악보해설집 출간하였으며, 현재 국내외로 많은 연주 활동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1월호(통권 9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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