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라이프] 친애하는 호랑이 여러분
[MZ 라이프] 친애하는 호랑이 여러분
  • 함은세(본지 객원 기자)
  • 승인 2022.01.06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너희가 MZ를 알아?

  어디선가 으르렁 소리가 들리면

  어느덧 2022년이다.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2021년을 지나 찾아온 트리플 2의 해이지만 신년에게 반갑게 첫인사를 건네기에는 필자 자신도, 사회에도 어째 뒤숭숭함과 어색함만이 감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스물을 역병 앞에 머리를 싸맨 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기묘한 형태로 떠나보낸 동갑내기 친구들은 나름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어안이 벙벙하다.(흙바람 날리는 운동장에서 빠삐코를 먹으며 키득대던 시절이 아직도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나는 이제 반년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언뜻 보면 무언가 완전히 마무리를 짓고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는 느낌이지만 실은 전혀 반대다. 닫혀있던 모든 것이 열리고 차마 모양을 잡지 못하던 모든 것들의 틀을 설계하는 시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아니, 확신할 수 없음에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나 자신과 이제야 조금씩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왠지 처음 만난 내 자신의 눈동자가 신기할 만큼 선연해서 픽 웃음이 난다. 그 빛이 어째 호랑이의 그것을 닮은 것도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청년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 다음의 도약을 그리는, 그 사실 앞에서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을 안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나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그리고 내 또래 친구들에게 다독임을 건네기 위해. 가끔은 자기애로 가득 찬 나르시스트가 되어도 나쁘지 않다고 주먹을 굳게 쥐면서 말이다. 

 

  순간을 산다는 것

  학교를 그만두고 ‘성인’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기까지 지나온 과정은 매 순간 지난함의 연속이었다. 좀 행복하다고 생각할만하면 좌절하고, 잘 걷고 있다 싶을 때쯤 크게 고꾸라지고, 나 자신이 보이다가도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어서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사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주목에 어깨가 으쓱해지던 예전과 달리, 모든게 버거웠고 그 앞에서 나를 증명하려는 초라한 발버둥만 쳤다. 나 자신까지도 기대하게 만들던 나는 함께하면 할수록 작고 하찮은 일말의 먼지와 다름 없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쉽게 해이해지고 툭하면 놀고 싶어 머리를 굴리기 일쑤였다. 특히 2021년이 되고 책 계약과 미국행 준비, 그 외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나의 한계가 너무나도 또렷이 다가왔다. 그래도 나 자신이 나름 성실하고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왔건만 전부 오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이 내가 2021년을 살며 얻은 가장 큰 성과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의문’의 의미는 “너 뭐하냐? 네가 잘하고 있는 것 같아?”라며 구박하고 힐난하는 문장들을 던진다는 뜻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나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이전에도 그래 오지 않았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표면적인 직면과 이해였는지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 건 11월 즈음이었다.

  11월 초는 학교를 자퇴하고 겪었던 모든 형태의 고립감과 우울함 중에서 손에 꼽힐 만큼 심각한 침잠이 이어진 시기였다. 미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절반이 지난 동시에 때때로 방문해 길게 체류하며 향유하던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도시이자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뉴욕이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닌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후부터 나의 괴로움이 시작됐다. 이 도시에서 일상을 즐기고 순간을 만들어가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잘 알았지만, 날이 갈수록 이 삶이 ‘완전한 매일’이 되는 기분을 꿈꾸다 못해 갈망했다. 내가 선택한 삶이니 굳건하고 멋지게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홀로일 수 있는 곳,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극단적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공존으로 인해)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곳, 이상과는 거리가 멀고 곪은 부분과 섬뜩한 피폐함이 넘실대는 혼돈의 도시이지만 그 속에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다양성과 꿈을 찾을 수 있는 곳, 어쨌든 결국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예술과 생각과 열정이 모여드는 곳. 병든 상처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허무조차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원천이었다. 나를 뉴욕으로 인도한 스승 역시 이 도시가 얼마나 나에게 잘 맞는지 선명히 확신하고 계셨다. 그런 감정이 커질수록 더더욱 아팠다. 내가 나의 장점이라고 여겨왔던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할 줄 아는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자꾸만 더 크고 높은 세계를 열망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다. 머리로는 나고 자란 서울이 나의 집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소름 끼치는 해방감과 모험심을 놔두고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혀 매일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아이처럼 울었다.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나 자신이 마치 허상처럼 무너지는 건 무엇에도 비하기 어려울 만큼 아픈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지금까지 내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게 ‘진짜로’ 나 자신이었을까?” 하는 물음이 찾아왔다. 나는 곰곰이 이제까지의 나를 곱씹으며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노력했다. 너 ‘진심으로’ 이걸 좋아하니? 너 ‘진심으로’ 이걸 원하니? 너 ‘진심으로’ 이게 하고 싶니? 너 ‘진심으로’ 만족스럽니? 그러자 예상 밖에도 완전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게 손에 꼽았다. 물론 내 마음 가는대로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최소한 나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확실히 인지하는 일을 절대로 뒷전으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게 내가 3년간 얻은 중요한 배움 중 하나였다.

 

  배움

  그러고 보니, 세상이 나에게 알려준 게 셀 수 없이 많았다. 부딪히고 몸부림치고 애를 쓰며 얻어낸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억세게 재수가 좋은 내게 선물처럼 나타난 기회와 순간, 사람과 경험들이었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격언이 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항상 골몰하고 노력해왔다. 아무리 갈 길이 멀고 부족할지언정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장의 나이테가 겹겹이 새겨진 사람이 되려고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니 전과 같은 것들만으로도 만족하는 건 불가능한 게 당연했다.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전에 비해 훨씬 넓고 유연한 시야를 가진 존재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뇌하고 이뤄내 왔나.

  그렇구나. 난 결국에는 나의 힘으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삶을 살아왔구나.

  작고 작은 나 자신의 보이지 않는 미래에 관한 일주일간의 고통스러운 투쟁이 만들어낸 눈물은 그제야 비로소 멎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내 울음을 그치게 만든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우리 안의 호랑이

  어쨌든 지금은 속이 좀 후련하다. 돌아갈 날이 정확히 한 달 남은 시점에 이 글을 쓰는 중이고 아쉬운 마음은 매일 부풀어 오르지만 괜찮다. 내가 갈망하는 것,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 내가 나일 수 있게 만드는 것,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나는 내가 원하면 아무리 어려운 과정일지라도 물러서는 대신 이를 악물고 노력해 해내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끝끝내 나는 나의 깨달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이끄는 삶의 손길을 따라가고, 그 삶에게 내가 도리어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와 달리 호랑이는 홀로 산기슭을 헤치며 사냥을 하고 생을 이어간다.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지만 맹수의 왕이라는 이름을 잃는 법이 없다. 물론 그런 호랑이와 달리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삶의 색채와 그 색채를 그려내는 이들을 만날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나이고 싶다. 나의 모습으로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뚫고 계속해서 전진하고 싶다. 반짝이는 내 눈 안의 빛을 온전히 간직하면서.

  그리고 모두가 그러길 바란다. 내가 나이고 당신이 당신이기를, 우리의 세상이 우리의 것이기를, 우리 안의 호랑이가 언제나 망설임 없이 포효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온 마음을 다해서 말이다.

  그럼 어디 한 번 힘차게 외쳐볼까? 어흥!

 

함은세
고등학교 자퇴한 걸 자랑하고 다니는 02년생. ‘인생 재미있게 살기 프로젝트’ 라는 명목 하에 삶을 모험하며 세상을 읽는 눈을 키우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