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케이팝, 케이의 자아 찾기
[음악 월평] 케이팝, 케이의 자아 찾기
  • 서영호(음악가)
  • 승인 2022.01.01 0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타쉽 엔터테이먼트

몬스타엑스의 새 앨범 《더 드리밍The Dreaming》을 듣는데 언뜻 들어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여느 팝 음악과 다를 바가 없다. 문득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음악들에 굳이 케이팝이라는 장르명을 붙여 음악의 생산지 혹은 출처를 의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 아니면 아직도 서구의 팝 음악과 뭔가 다른 게 있어서 ‘코리아로부터의 팝’이라는 이 딱지가 필요한 걸까? 그러고 보니 이 앨범을 벗어나 해외에서 인기 있는 여러 케이팝 음악들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떠올려보면 또 서구의 그것과 완전히 같진 않다. 그렇다면 케이스럽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코리안 스타일은 우리만의 고유한 어떤 것일까, 고유한 것이라면 한민족의 어떤 무엇? 그리고 그게 무엇이던 케이팝에 케이만의 독자적 색이 없다면 영미의 팝음악과 차별성이 없어서 가치가 없어지나?

케이팝이 케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간은 그것이 세계 음악시장으로부터 ‘케이팝’이라고 호명된 데 기인한다. 이제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칭하는 말이 아닌, ‘해외에서 인기 있는 한국 대중음악’ 즉, 주로 아이돌 음악 중심의 한국 가요를 한정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인 케이팝은 타자에 의해 라벨링 된 이름이다. 알튀세르가 ‘호명이론’을 통해 설파한 것처럼 주체는 누군가에 의해 ‘무엇’으로 불리는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 케이팝에 대한 정체성 탐색은, 어쩌면 단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던 한국 가요계의 산업 논리가 빚어낸 결과물일 뿐이었던 케이팝이 해외수출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마주하게 된 존재론적 고민이다.

한국 가요가 서구에서 전례없던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흥분한 일부는 역시나 케이팝의 고유성이 한민족(韓民族)의 무엇인가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애써 휘모리장단을 읽어내려 했고, 원더걸스의 〈텔 미〉에 구사된 멜로디를 블루스의 펜타토닉 음계에서 찾기보다 굳이 경기 민요의 음계로 해석하려 했다.(사실 국악의 5음계가 블루스의 5음계-펜타토닉 음계와 결과적으로 같긴 한데, 흑인음악에 심취해 음악을 시작한 70년대 생인 박진영의 〈텔 미〉 멜로디 창작의 발로를 어느 쪽에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일까)

ⓒphoto by Thitirat Lee
ⓒThitirat Lee

한국계 재미 사회학자인 존 리(John Lie)를 필두로 하는 일각에서는 케이팝의 ‘케이’를 한국 문화산업의 철저한 수출지향적인 자본논리로 이해하며, 서구팝을 맹목적으로 재현하거나 모사하려는 것으로 케이팝에서의 ‘팝’의 지향점을 해석한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특히 대중문화에서 서구화를 지향해온 한국대중음악사는 결국 전통과의 단절, 혹은 결별을 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주체라고 할 만한 것도 상실되었으며, 케이팝을 추동하는 정신적인 것이라곤 결국 비즈니스 논리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요지다. 이들의 논의에서 특히 정체성은 오리지날러티(originality) 즉, 본래성이나 고유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데, 여기서 본래성은 곧 진정성과 중요하게 맞닿아 있으며 따라서 케이팝에는 본래성, 고유성, 진정성이 부재하다 규정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케이팝의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한국 전통문화나 한민족적인 무엇인가를 음악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BTS나 블랙핑크 등을 선봉으로 하는 최근의 케이팝의 글로벌 성취와 그 성공요인을 보자면 케이팝의 정체성 규명에 대한 관점 역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필요로 하는 듯 보인다. 이제 ‘케이팝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데 있어 한국적 전통문화와의 접점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케이팝의 정체를 알기 위한 중요한 질문은 수정을 요한다. 즉 “나는 어디서 왔나? 나의 근본은 어디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지금 누구이며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케이팝의 진정한 정체성 규명을 위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

케이팝이 ‘서구의 팝을 따라하기에 급급한 유사품’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팝의 본고장에서의 케이팝의 현재 인기는 설명이 불가하다. 한국 대중음악이 전통의 감성과 결별하고 서구의 그것을 닮아가려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한국은 미국이 아니며 우리가 백인, 흑인이 아니기에 그들의 것을 받아들여 우리식으로 해석한 결과물은 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K라는 필터를 거쳐 재탄생한 팝, 케이팝은 기본적으로는 한국만의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거기에 음악적인 면에서는 물론, MV, 퍼포먼스, 스타일링, 멤버 구성, 팬덤 문화와 소통, 소비, 그리고 이 전반에 깃든 일종의 도덕주의적 규범성까지 이 모든 것을 통해 드러나는 케이만의 독특한 감각을 구축하게 되었다. 나아가 케이팝은 이전까지 다분히 백인이나 흑인문화 중심이었던 서구 문화권에서 일종의 대안 문화로서 부상하고 있으며 케이팝이 지향하는 ‘도덕주의’나 ‘올바름의 추구’ 같은 정신은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1세기 한국’이라는 토대에서 탄생한 케이팝은 과거 펑크나 힙합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하위문화로서 범지구적 국제화의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따라서 이제 케이팝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음악 내적인 논의만으로는 부족하며 하나의 하위문화로서 총체적 경험이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서영호
음악가. ‘원펀치’와 ‘오지은서영호’에서 활동.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 주요 앨범으로 《Punch Drunk Love》 《작은 마음》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1월호(통권 91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