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군함도] 군함도 혹은 지옥의 얼굴
[2018 오늘의 영화 - 군함도] 군함도 혹은 지옥의 얼굴
  • 홍용희(문학평론가)
  • 승인 2018.09.11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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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 '군함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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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1920년대부터 불리었던 번안곡 <희망가>의 첫 소절이다. 영화 <군함도>에는 이 노래가 두 차례 나온다. 이강옥 부녀가 군함도 한적한 달빛 아래에서 안무를 곁들여 한 번, 자막이 흐르는 엔딩곡으로 또 한 번. 두 차례 모두 너무도 처연한 ‘절망가’로 들린다. 혹독한 “풍진 세상”만 있고 “희망”의 출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함도는 조선인에게 지옥도이다.

  군함도軍艦島, 그 이름에서부터 섬의 낭만은 찾아지지 않는다.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 원래 이름은 ‘하시마端島’, 그러나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았다고 하여 ‘군함도軍艦島라는 별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섬의 둘레를 따라 제방이 솟구칠 때까지 시멘트를 쏟아 부으면서 하시마는 더 이상 자연의 땅이 아니라 기괴한 인공 함선이 된다. 축구장 2개 정도 크기의 섬에 석탄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하시마는 일본 근대화의 엔진으로 작동된다. 일본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고층 아파트가 건설될 정도로 메이지 산업 혁명의 상징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화의 표상은 아비규환의 엄청난 비극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1945년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과 그의 어린 딸 소희는 시모노세키행 관부 연락선에 몸을 싣는다. 일본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여객선은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최칠성, 기구하게 유곽으로 팔려 다녔던 오말년, 갓 결혼한 전라도 사투리가 심한 새신랑 등등 제각기 서로 다른 간곡한 사연과 꿈을 지닌 인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이들의 꿈은 바다 안개 사이로 엄습하듯 드러나기 시작하는 군함도라는 괴물에 의해 완전히 삼켜져버리게 된다. 일제는 하시마 광산 노역을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해 왔던 것이다. 여자들은 유곽에 감금시키고 남자들은 지하 탄광에 배치시킨다. 먼저, 여자들의 보건 검사를 진행한다.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도 창문으로 햇살이 비친다. 햇살은 공중의 먼지들을 하얗게 반짝거리게 한다. 어린 소희는 그 햇살을 잡으려고 작은 손을 펼친다. 맑고 천진스럽다. 그래서 관객들은 더욱 슬프고 안타깝다. 그들의 앞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배치된 갱도는 1천 미터 아래까지 파들어 가는 막장이다. 가파른 경사, 숨 막히는 무더위, 도처에서 뿜어 나오는 지하 가스 등등이 수시로 목숨을 위협하고 앗아간다. 안전모나 작업복은 처음부터 없었다. 좁은 갱도일수록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투입시킨다. 온종일 허리 한 번 펼 수가 없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리지만 식사는 형편없다. 식반에 굵은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기도 한다. 영양실조와 허기에 갈비뼈가 앙상해져 간다. 잠시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도처에서 감독관의 매질이 이어진다. 인간의 목숨은 석탄 채굴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시로 사고가 발생하고 비명이 이어진다. 죽임의 아비규환 그 자체이다. 

  바다 한 가운데 검은 지옥도에서 이강옥 부녀의 삶은 늘 애뜻하고 처절하다. 이강옥은 어린 딸 소희를 위해 더욱 생존 본능에 분주해진다. 일본인 관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타고난 광대의 임기응변과 연기력이 동원한다. 그의 어린 딸을 향한 부성은 군함도 전반에 걸쳐 비극적 정서를 배가시킨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소희만은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염원이 절박할수록 스크린은 애잔한 마음결로 젖어간다. 여기에는 이강옥 역을 맡은 황정민의 뛰어난 표정 연기들이 단연 크게 기여한다. 몸짓, 걸음걸이, 춤, 말투, 어깨 등이 모두 어린 딸을 걱정하며 지옥 속을 버티는 아비의 모습으로 절여져 있다.

<br>ⓒCJ엔터테인먼트<br><br> ⓒCJ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이처럼 어두운 지옥 섬의 가장 간절한 희망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탈출이다. 그래서 영화 <군함도>를 가로지르는 중심 서사는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군함도의 제방을 따라 수시로 파도가 들이친다. 밤낮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군함도의 외부 세계와의 아득한 고립과 단절의 공포를 극명하게 환기시킨다. 군함도에서 조선인의 탈출은 언제나 실패한다. 그래서 탈출은 모진 고문과 죽음의 전제가 되고 만다. “이 풍진 세상”에서 “희망”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일제가 이토록 조선인들의 파업이나 탈출을 견고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탈출의 시나리오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군함도의 신망 높은 조선인 지도자 윤학철이 사실은 일제 앞잡이였던 것이다. 그가 조선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조선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행동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였다. 군함도에서 파업과 탈출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면서 윤학철의 구출을 위해 군함도에 들어온 OSS 소속 광복군 박무영은 점차 이러한 비밀을 알아채게 된다. 일제는 조선인을 통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두고 그를 이용하여 다시 조선인을 관리하는 이중적 지배전략을 획책했던 것이다. 박무영은 분노로 외친다. “민족의 적과 내통한 죄, 인민들의 피를 빨아 사리사욕을 채운 죄, 지도자 행세를 하며 민중을 기만한 죄를 물어 너의 반민족 행위를 조선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그러나 박무영의 윤학철에 대한 공개 처단이 결코 통쾌하지만은 않다. 믿었던 자로부터의 배신이기에 분노도 두 배이지만 허탈함도 두 배이다.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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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무영의 윤학철 탈출 전략은 조선인 전체의 탈출 전략으로 전환된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군함도에서 행한 조선인에 대한 만행을 감추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모두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아챈 박무영은 지옥섬 군함도에서의 탈출 작전을 시행한다. 이때부터 영화 <군함도>의 스크린은 일본군과 조선인의 처절한 전쟁 씬으로 전개된다.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무서운 살육의 각축전이 펼쳐진다. 반은 죽고 반은 다친다. 투박하지만 인간적 의리를 지닌 최칠성, 면도칼처럼 날카롭고 강인해 보이지만 어린 소녀들을 어루만지고 품는 속 깊은 정을 지닌 말년도 전장의 광풍 속에 목숨을 잃게 된다. 이강옥도 치명적 부상을 당한다.

  전쟁 씬이 너무도 긴박하고 강렬해서 영화 <군함도>의 전반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 점은 <군함도>의 섬세한 정서적 결을 묻히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칠성과 오말년의 사랑, 윤학철의 인간적 번민, 일본인 관리들의 내면 의식 등이 좀 더 부각될 수 있었다면 <군함도>의 리얼리티는 훨씬 더 살아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특히 독립 지사였던 윤학철이 너무 평면적으로만 그려지면서 이강옥이 수시로 쏟아내는 “누가 조선종자 아니라고 할까봐.”라는 대사는 식민 사관을 방증해주는 듯한 아쉬움을 준다.

  그토록 갈망하던 군함도로부터의 탈출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화염에 휩싸인 군함도가 저만치 보인다. 그러나 지옥으로부터 멀어진다 해도 지옥의 그림자는 쉽게 떨쳐지지 않는 법. 이강옥의 배에 난 총상은 점차 그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강옥은 박무영을 향해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을 한다.

“저년 설탕 친 콩국수 한 그릇만 먹여줘. 그게 소원이래.”

  2015년 7월 5일, 일본은 군함도를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세계유산위원회에 등재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조선인 애비가 자식에게 콩국수 한 그릇 먹이는 것을 유언으로 부탁해야 했던 참담한 지옥의 땅이었다. 이것이 군함도의 맨얼굴이다. 영화 <군함도>는 이 점을 130여 분동안 웅변처럼 외치고 있다.

홍용희 _ chaenjan@naver.com
1966년 경북 안동 출생.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로 『김지하 문학 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등이 있음. 제 1회 젊은 평론가
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애지문학상 등 수상. 《시작》, 《쿨투라》 편집위원.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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