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그 후] '그 후', 시간의 로드무비
[2018 오늘의 영화 - 그 후] '그 후', 시간의 로드무비
  • 김시균
  • 승인 2018.09.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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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그 후'

  홍상수라는 영화에 <여성>이 차지하는 자리

  홍상수의 영화를 사랑한다. 그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에서부터 스물한 번째 영화 <그 후>(2017)에 이르기까지 모두. 특히나 지난 몇 년간 작품들에 이어 <그 후>는 필자를 꽤나 오랜 기간 매혹시킨 영화였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그 후>로 뻗어가는 일련의 필모그래피를 되짚건대, 그의 영화가 점점 더 편안하고 정갈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아름다웠다.

  여기서 편안하다는 건, 초기부터 지속되어온 홍상수의 견고한 형식과 패턴에의 실험들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실험은 조금씩 다른 방식과 형태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것은, 홍상수가 여성 캐릭터를 다룸에 있어 점점 더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기부터 극의 중심을 이루었던 그의 남성 페르소나들이 여성 페르소나의 강화로 모종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그의 영화들에서 여성은 하나의 시간축으로 기능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여성이 시간의 축을 이루면 남성들이 그 주위를 위성처럼 회전한 것이다. 그러다 짐작건대, 김민희가 처음 출연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기점으로 여성 캐릭터들이 차지하는 몫이 점차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춘수(정재영)에서 출발해, 희정(김민희)의 뒷모습으로 매듭지어지는 영화였다. 저절로 이루어진 사랑의 재귀라는, 그 기적의 순간을 보여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민정(이유영)이 자신이 민정임을 부인하며 민정 1, 민정 2 또는 민정의 언니로 여러갈래 분화했다. 그리고 지난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 감독에게서 실연당한 영희 (김민희)에서 시작해 강원도 해변가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으로 막을 내린 영화였다.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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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페르소나의 강화

  <그 후>는 조금 더 나아간다. 보다 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 서 있다. 그 자리는 저마다의 시간 선을 이루는데, 그 선이 만나고 뒤엉킬 때마다 봉완(권해효)은 고통에 겨워 흐느낀다. 영화는 강출판사 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봉완의 하루(현재)와, 그의 옛 연인에 대한 기억(과거), 그리고 시일이 얼마간 흐른 ‘그 후’(미래)를 다룬다. 그런데 실상 영화를 움직이는 것은 봉완이라기보단 그의 삶을 뒤흔드는 여성들이다. 봉완의 옛 연인 창숙(김새벽), 그의 현 아내(조윤희), 그리고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아름(김민희). 그 중 아름은 홍상수 영화의 여성 페르소나가 보다 강화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 페르소나가 강화된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초기작 세 편에서 김의성(<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백종학(<강원도의 힘>), 정보석(<오!, 수정>)을 비롯해 김상경, 김태우, 문성근, 이선균 등이 남성 페르소나로서 서사를 이끌었다면, 2010년대에 접어들고부터 여성 페르소나의 강화가 한층 본격화됐다. <다른 나라에서>(2011)와 <우리 선희>(2013) 속 영화학도(원주, 선희)를 연기한 정유미가 그러했고, 그 사이 개봉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또한 당돌한 여대생 해원(정은채)을 내세워 그녀 내면을 지그시 응시하는 영화였다.

  특히나 <우리 선희>에서는 선희를 좋아하는 세 남자가 그녀 주변을 회전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렸는데, <그 후>는 인물의 물리적 구성에선 <우리 선희>를 뒤집은 것처럼 보인다. 봉완이란 남자의 주변을 아름, 창숙, 아내라는 세 여성이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이 고정된 시간축으로서가 아니라 변모하는 유동적 시간축으로, 개별적 선으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구도와 배치는 홍상수 영화에선 이례적이다.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는 듯한 세 여성의 시제 유희, 그 역동적 윤무에 봉완은 완전히 붙들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한 마디로 <오, 수정> (2000)이 기억의 불완전함을 다루었고, <북촌방향>(2011)이 시간의 불확실함을 그렸다면, <그 후>는 양자 모두를 가로지르는 영화다. 

  특기할 건 <그 후>가 홍상수 영화로는 처음이라 할 플래시백이 반복적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봉완의 집에서 출발한다. 벽시계는 새벽 4시 29분을 가리키고, 그런 그가 아내를 마주한 채 아침밥을 먹는다. 봉완은 “만나는 여자 있는 거 아니야?”라는 아내의 추궁에 헛웃음을 짓더니 침묵하고, 이내 어두운 새벽길을 거닐며 출근한다. 그러면서 그의 시선에 비친 장소를 따라 그 자신의 플래시백이 끼어든다. 아파트 입구를 나설 때엔 어느 새벽 혹은 늦은 밤, 창숙과 비틀거리며 걷다 지하 주차장 계단에서 서로 포옹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지하철에 앉아서는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의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책을 읽더니, 창숙의 어깨에 기대어 졸던 지하철에서의 기억을 반추한다.

  여기서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책은 의미심장하다. 봉완이 그날 하루 직면할 사건을 미리 암시해주는 소품(실제로 강출판사가 펴냈다)이거니와,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표현 자체가 봉완의 외도 사실을 은근히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실제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눈사람 속에 감춰진 비밀이란 영원할 수가 없어서 반나절만 지나면 오후의 찬란한 햇빛 아래 만천하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봉완의 감춰진 비밀 또한 반나절만 지나면 오후의 찬란한 햇빛 아래 드러날 것이다. 과거 그가 창숙에게 보낸 연서가 아내에게 들통나는 것이다. 

  배경이 강출판사로 옮겨지면 이제 아름이 등장한다. 아름에겐 이날이 첫 출근일이자 마지막 출근일이다. 봉완의 내연녀로 오인받아 뺨을 맞는 봉변을 당하고, 봉완의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던 창숙이 현실에 불쑥 나타나면서 일자리마저 그녀에게 빼앗긴다. 말하자면 <그 후>는 아름의 하루 동안 펼쳐지는 수난기이자, 아름의 ‘그 후’를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플래시백은 두 차례 더 이어진다. 봉완과의 첫 대면에서 자신의 아픈 가족사를 끄집어낸 아름이 자리 잠시 비운 사이, 봉완은 그런 아름 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다음, 같은 공간에서 창숙에게 “점심 먹으러 가자”는 그의 플래시백이 끼어든다.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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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현재-미래, 원을 이루는 시간들

  재밌는 건, 이후 중국집 씬에서 아름과 봉완이 주고받는 대화다. 이 대화는 홍상수의 여성 페르소나(아름)와 남성 페르소나(봉완)가 팽팽히 맞서며 긴장하는 듯한 인상을 안긴다. 홍상수 영화에서 대사는 자주 의미 없는 기표처럼 화면 안팎을 미끄러졌는데, 이 경우엔 다르다. “왜 사세요?”라는 다소 뜬금없는 아름의 물음이 처음엔 웃음을 주지만, 이어지는 대화는 무심코 흘려듣기엔 무게감이 남다르다. 봉완은 홍상수의 남성 캐릭터들이 늘어놓던 보이지 않는 ‘실체’와 ‘진짜’에 대해 이번에도 강변하고, 아름은 이를 반박한다.

  아름은 ‘믿음’을 믿는 여자다. “안다고 전제하는 건 마음이 지어낸 허상”이라며 그것을 “비겁한 것”이라 일갈한다. 그런 그녀가 믿는 것은 “제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자 “모든 게 사실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름은 그렇게 세상을 껴안는다. 홍상수 영화를 통틀어 매우 당당하고 자립적인 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공박을 보는 듯한 저 씬은 그리하여 홍상수 영화의 무게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음을 짐작게 해준다.

  홍상수의 영화를 특징짓던, 반복과 차이, 대구의 형식 미학은 <그 후>에도 어김없이 변주된다. 주목할 건, 그가 이를 통해 과거-현재-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선형성을 재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 쇼트로 담은 아름과 봉완의 중국집 대화를 지나면 창숙과 봉완의 플래시백이 같은 공간 같은 구도로 연결된다. 현재의 아름이 봉완에게 “비겁하다”고 말한 것이, 과거 만취한 창숙이 봉완에게 “비겁해요”라며 울부짖는 장면과 포개진다. 그렇게 현재(아름)와 과거(창숙)의 대구로 홍상수식 ‘반복과 차이’가 변주된다. 그리고 극 후반, 그날 하루가 얼마간 지난 ‘그 후’의 아름이 봉완의 출판사로 다시 찾아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봉완은 한동안 아름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녀를 마치 첫 출근일 때처럼 대한다. 둘은 그렇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 날과 비슷한 대화들을 주고받는다. 과거가 된 현재, 현재가 된 미래의 만남이다.

  <그 후>는 그렇게 시간의 간극마저 아예 허문다. 세 가지 시간 선이 교호하더니, 종래엔 원을 이루며 하나로 수렴되는 것이다. 창숙이 과거를 뚫고 현재로 진입하는 그 순간이 이를 직접적으로 지시해주고 있다. 이 영화 러닝타임 45분 즈음, 봉완의 옛 기억에나 존재하던 창숙이 출판사 문 앞을 서성이며 불쑥 현 시점으로 소환된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도식화가 바로 이 순간 무화된다. <그 후>가 전작들과 달리 지역성이 바래어진 느낌이라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특정한 장소는 지나간 어제와 지나갈 오늘, 다가올 내일까지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조와 형식의 완결미를 지닌 <그 후>를 ‘시간의 로드무비’로 부르고 싶어지는 이유다.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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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 이름처럼 아름다운

  한 가지만 더 언급하며 이 글을 맺고 싶다. <그 후>에는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극 말미, 강출판사를 떠난 아름이 한 가득 책을 싸들고 택시를 탄 바로 그때, 우리는 홍상수의 영화로는 예외적인 한 장면을 목도케 된다. 책 한 권을 주섬주섬 꺼내 읽던 그녀에게 택시기사(기주봉)가 차창 밖에서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차창을 내리니 정말로 아름 앞에 우수수 눈송이가 떨어진다. 홍상수는 바로 이 순간 미소 짓는 아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았다. 그가 클로즈업을 거의 쓰지 않던 감독임을 상기한다면 이것은 이례적이다. 최근작을 중심으로 홍상수의 영화에 이처럼 아름다운 쇼트가 등장한다는 건 주목할 일로 다가온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정물화처럼, 모래사장에 가로로 누운 영희를 풀 쇼트로 담아낸 바로 그 장면. 아, 그의 영화에 일고 있는 이 같은 변화들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일단은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세상을 껴안겠다는 아름처럼, 이 모든 것들을 한껏 껴안아주고 싶다고.

김시균 _ sigyun3814@gmail.com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에서 영화, 문학, 출판, 문화재 부문 등을 담당했고, 현재는 영화, 문화재 관련 기사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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