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노무현입니다] 역설적 시네마 베리떼의 힘
[2018 오늘의 영화 - 노무현입니다] 역설적 시네마 베리떼의 힘
  • 김시무
  • 승인 2018.09.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재 감독 '노무현입니다'
ⓒ영화사 풀, CGV 아트하우스
ⓒ영화사 풀, CGV 아트하우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Our President, 2017)는 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후보 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 2017년 5월에 개봉을 한 이 영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 더불어 그를 사모하는 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1백 8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무현 전前 대통령은 1946년 9월 1일 태어나서 2009년 5월 23일 서거逝去했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탄압彈壓의 귀결이었다. 경상남도 김해 출신인 노무현은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고시高試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일하다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立志傳적 인물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각종 선거에 출마했다가 번번이 낙선했던 정치 신인 노무현이 1998년 종로구 보궐선거로 어렵사리 얻은 국회의원의 프리미엄을 과감하게 버리고 2000년 부산지역의 국회의원 후보로 새롭게 정치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당시에 찍은 기록 필름을 통해서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노무현은 대한민국 정치일번지라고 불리는 종로구를 뒤로하고 부산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참모진과 지지자들은 극구 말렸지만 노무현의 의지는 단호했다. 노무현의 참신함이 먹혔던지 처음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당시 한나라당 적폐積弊 후보 허태열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는 비열한 술수術數를 쓰는 바람에 결국 선거에 패하고 말았다. 이때 노무현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고, 지지자들은 그를 ‘바보같은 노무현’이라고 책망하면서도 그에 대한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랬다. 기득권을 포기했던 그는 바보였지만, 바로 그 같은 미련함과 우직함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를 사랑했던 지지자들이 ‘노사모’라는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고 그를 적극 후원하기로 결의를 다진 것이다.

때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했는데, 노무현이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경선에는 대세로 떠오른 이인제를 비롯해서 한화갑, 김근태, 정동영, 김중권 등이 출마하여 서로의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노무현의 정치적 기반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경선 초반 그에 대한 지지율은 고작 2%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주를 비롯해서 전국 16개 도시에서 순차적으로 치러진 대국민 이벤트인 경선에서 노무현은 조직 및 자금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주 경선 3위를 시발점으로 하여 울산 경선 1위, 그리고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거센 노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대한 선풍이 불기 시작한 이유는 그가 구호로 내걸었던 ‘동서東西 화합和合’이라는 모토가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경남 출신인 그는 부산에서의 패배를 교훈으로 삼아서 지역 감정의 골을 메울 적임자는 자신뿐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당원들이 그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된다. 대세론을 내세우며 후보 중 선두주자였던 이인제가 총선 때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가 써먹었던 케케묵은 지역 감정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야비하게도 한술 더 떠서 색깔론까지 들고 나왔다. 노무현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의 부친이 좌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서 빨갱이에게 대권大權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같은 당내 경선 후보자로서 도저히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인제는 본래 그런 파렴치한 인간이었다. 그는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하고 당적黨籍을 바꾸어 민주당에 입당했던 전형적인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였던 것이다. 초록은 동색同色이라고 했던가?

이인제는 인천 등 수도권 경선에서 색깔론을 제기한데 이어서 “노무현이 대권을 잡을 경우 조중동 등 주요 일간지들을 국유화國有化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를 듣고 있던 노무현은 또 다시 참담한 심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까지 들먹이며 흑색선전黑色宣傳을 일삼는 이인제의 막가파식 행동에 분노가 치밀 지경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감정을 억제하고 정공법正攻法으로 반격에 나섰다. 연단에 선 그는 당원 청중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아내의 아버지인 장인께서 좌익 활동을 한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아내를 버려야만 하겠습니까?” 그는 아내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임으로써 당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결국 그는 최종 경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고, 마침내 그해 겨울 대선에서 유력 후보였던 이회창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개혁改革과 통합統合을 부르짖었던 그의 외침에 국민들이 화답을 한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반전反轉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영화사 풀, CGV 아트하우스
ⓒ영화사 풀, CGV 아트하우스

이상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여느 다큐멘터리들이 그랬듯이 기록 필름들 중간 중간에 노무현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삽입하여 생생한 증언을 곁들이고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대목 몇 가지만 들면, 우선 무엇보다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멘트가 귀를 쫑긋하게 한다. 당시 그는 선거 참모로 일하면서 알게 된 고 김근태 의원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노무현을 ‘사랑스런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에게는 무언가를 해주고픈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만큼 노무현에게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의 정치철학을 한마디로 집약한 셈이었다. 한 정치적 야심가의 사심섞인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 그는 자신이 모종의 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세간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자신을 “동업자이자 동지”라고 거들어 준 것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한 인터뷰이interviewee는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고나서 재래시장에서 어묵을 먹는 쇼를 벌였고, 박근혜도 역시 대통령이 되고나서 떡볶이를 먹는 쇼를 벌였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영혼 없는 제스처’로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을 달래줄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2년부터 노무현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노수현씨는 자신의 신혼여행 때 노무현 변호사가 자기 부부를 뒷좌석에 태우고 손수 운전을 해주었다는 가슴 따뜻한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 가운데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화춘)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는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일하던 이른바 ‘요원’이었는데, 당시 요주의 인물이던 네 명의 운동권 변호사들을 사찰査察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가운데는 문재인 당시 변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화춘은 노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가 어느새 그의 인간적 면모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한다. 특히 그는 노무현이 건네준 ‘광주사태’ 관련 비디오를 몰래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오히려 노무현을 보호하는 처지에 서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빈번했던 시위현장에 나타난 노무현을 어떻게 해서든 경찰의 강압으로부터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노무현은 그 누구라도 그의 인간적 면모에 끌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逝去 사흘 전 자신을 찾았다는 그의 증언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 중 벌어졌던 극적인 순간들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던 이 영화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환희歡喜의 순간을 미쳐 만끽할 새도 없이 곧바로 국장國葬으로 넘어간다.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일부러 감상을 피했다. 나는 노사모의 회원이 아니었지만, 그가 당시 다수파 야당의 횡포로 탄핵彈劾을 당하고, 퇴임 이후 사지死地로까지 내몰렸을 때 분개하고 절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위대한 인간의 비극悲劇,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을 새삼 반추反芻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했던 탓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 마냥 피할 수만은 없었다. “왜 이 시점에서 다시 노무현인가?”라는 질문을 이 영화는 던지고 있다. 특히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遺産을 이어받고 있는 문재인이 현직 대통령이 된 오늘날의 시점에서 이 영화는 시사를 하는 바가 많다.

이 영화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노무현의 재임 중 업적業績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언급도 없다. 그것에 대해서 말하려면 또 다른 다큐멘터리 내지 극 영화 한편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다루지 못한 것들이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 채워 넣고 완성해야할 공백空白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려하기보다는 그것을 해체하려한 미완未完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리하여 그가 해결하려고 했던 적폐積弊가 여전히 산적해있고, 그것을 청산해야 할 과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겨진 것이다. 한나라당의 잔재殘滓인 자유한국당의 홍대표는 여전히 지역 감정 조장과 색깔론으로 문재인 정부를 헐뜯고 있다. 우리가 동서화합을 넘어서 남북화합이라는 지상 과제를 이룩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노무현이 외친 개혁과 통합의 정신을 오늘날 새롭게 조명해야한다고 이 영화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는 미학적으로 볼 때, 완성도가 그리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이유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과 죽음’이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이 이상의 내러티브가 또 있을까? 이 영화를 본 한 네티즌은 “마지막 연설장면은 소름이 끼친다. 노무현을 다시 생각하고 미래를 봐야할 때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또 한 네티즌은 “먹먹하고 울컥하던 영화. 중간 중간 나오던 탄식…, 아! 그만큼 후회되고 죄송하던 영화였다”라고 적기도 했다. ‘사랑스런 바보 노무현’이 우리 곁을 떠나고 강산江山이 한번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유언遺言대로 ‘자연의 한 조각’이 되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평론집 『영화예술의 옹호』(2001년). 감독론 『Korean Film Directors: Lee Jang-ho』(Kofic, 2009(영문판)). 부산국제영화제연구소 소장과 책임연구원, 한국영화학회 회장 등 역임. 이장호영화연구회 회장. kimseemoo@daum.net

 

*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