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80년대식 느와르로 변주한 믿음과 배신의 절묘한 쌍곡선
[2018 오늘의 영화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80년대식 느와르로 변주한 믿음과 배신의 절묘한 쌍곡선
  • 임정식
  • 승인 2018.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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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CJ 엔터테인먼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 이하 <불한당>)은 ‘좋은’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좋은’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형용사의 일반적인 스펙트럼 안에서는 관객들이 <불한당>을 ‘좋은’ 영화로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매력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면, <불한당>을 2017년의 가장 ‘매력적인’ 영화로 꼽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불한당>은 사건의 개연성이나 인과 관계가 헐겁고, 교도소 내 ‘짝짝이 대회’처럼 몇몇 장면은 과장돼 있거나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똥폼”임을 숨기지 않는 개성적인 스타일은 톡 쏘는 맛이 있다. 

  <불한당>은 굳이 ‘좋은’ 영화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이 그저 상업적인 장르 영화라는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즐길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줄 따름이다. 이때 여러 장르의 특징들을 뒤섞고 변주해서 밥상에 올려놓은 점이 색다르다. 전반부의 교도소 액션 장면은 조명이 대체로 밝고 왁자지껄하며, 후반부는 느와르 풍으로 어둡고 음울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그래서 <불한당>이 입맛에 안 맞거나 불편할 수도 있지만, 모름지기 장르물이라면 이만한 배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불한당>에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잡종’의 향기가 난다.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어긋나 있으면서도 절묘하게 어우러져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의 장르만 해도 그렇다. <불한당>은 범죄, 액션, 느와르이면서도 각 장르의 속성을 조금씩 변주하고 있다. 장르의 혼종성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불한당>은 또 <무간도>나 <신세계>와 같은 언더커버 계열로 묶을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언더커버 영화의 일반적인 서사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 

  <무간도>와 <신세계>에서는 위장 잠입한 인물들이 자아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신분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 노심초사한다. 비밀 유지의 긴장감이 서사의 중심축이 된다. 그러나 <불한당>의 현수는 비교적 초반부에 재호에게 “형, 나 경찰이야.”라고 말해버린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 순간 매듭이 풀려야 한다. <무간도3>에서 유건명은 조폭 출신임이 드러나자마자 최후를 맞이하는데, 그 장면은 결말 부분에서 나온다. <불한당>에서는 현수가 고백한 순간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이후 상황도 상식을 위반한다. 경찰의 비밀 요원 현수와 조폭의 2인자 재호는 매우 친밀하게 지낸다. 이런 관계는 교도소 안에서도, 출소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럼 두 사람은 정말 친구가 된 것일까? 그리고 동성애 코드로까지 발전한 것일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현수는 재호에게 “나는 형 믿어.”라고 말하는데, 그의 이 말은 진심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현수는 여전히 경찰이다. 그는 천 팀장의 지시를 받으며 움직이고, 사상 검증(?)까지 통과한다. 재호는 현수를 챙겨주지만, 현수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다. 이 상황이 명쾌하지 않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는 투명한 막이 쳐져 있다. 

ⓒCJ 엔터테인먼트

  <불한당>은 믿음과 배신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배신이 일상적이고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배신하지 않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현수가 경찰임을 털어놓은 것은, 상사인 천 팀장에 대한 배신이다. 그렇다고 현수가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재호의 품에 안기는 것은 아니다. 재호는 현수를 ‘감기’(제 편으로 만드는 것) 위해서 현수의 어머니를 뺑소니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인다. 재호는 나중에 “그런 일 없었으면 니가 지금 내 곁에 없었겠지.” 라고 에둘러 자백하지만, 그뿐이다. 재호는 또 고병철 회장을 ‘작업’함으로써 그를 배신한다. 그 전에 고병철이 재호를 ‘작업’하기 위해서 김성한이라는 조폭을 교도소에 들여보낸 것도 배신이다. 조연인 고병갑, 천 팀장, 고병철 회장도 모두 누군가의 뒤통수를 친다. 특이한 점은, 각 인물들의 성격이 배신하거나 배신을 당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재호와 현수 사이에는 끈적끈적한 동질감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버려진 새끼들”이라는 정서적 일체감이다. 효자인 현수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박탈감, 천 팀장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으로 괴로워한다. 이때 재호가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준다. 열두 살 때 엄마가 독극물로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건이다. 그러고 나서 “나랑 일해 볼래?”하고 유혹한다. 현수는 이 순간에 자신이 경찰임을 고백한다. 현수는 그만큼 착한 놈이다. ‘어머니의 부재’라는 똑같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다. ‘착한 놈’인 경찰과 ‘나쁜 놈’인 조폭의 브로맨스가 유지되는 배경이다.

  그래서 재호와 현수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바로 여기에 <불한당>의 묘미가 있다. 재호와 현수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재호는 현수를 믿고 챙겨주지만, 교통사고의 기획자이다. 현수가 재호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이중적이다. 그는 재호를 믿지만, 조폭의 심장부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물의 이중성과 이중성이 교차하고, 여기에 배신과 배신이 사슬처럼 이어진다. 정서적 동질감과 인간적인 믿음, 서로를 이용하려는 현실적 목표가 뒤엉켜 있다. 게다가 <불한당>은 잦은 플래시백으로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이로 인해 배신과 믿음 사이의 줄타기가 더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불한당>이 지닌 이중성, 부조화 속의 조화라는 특징은 생선회 에피소드를 통해 선명하게 제시된다. 어느 항구의 노천 테이블. 병갑은 생선의 눈알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무서워서 회를 못 먹는다고 말한다. 권총이 돌이나 칼보다 ‘작업’의 죄의식을 줄여준다고도 말한다. 곧이어 병갑의 테이블 건너편에서 회를 먹던 조폭이 권총으로 사살된다. 병갑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몸을 떨면서 깻잎으로 생선의 눈알을 가린다. 몇 분 후에 죽일 조직원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생선 눈알에 대한 감정과 ‘작업’ 도구의 변천사를 떠들다니, <불한당>의 인물과 서사가 지닌 특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오프닝이다.

ⓒCJ 엔터테인먼트

  <불한당>에는 몇 가지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인물의 내면과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언어들이다. 재호는 죽어가면서 현수에게 “나 같은 실수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재호는 사람을 믿음으로써 파국을 맞이한다. 재호는 현수가 자신을 둘만의 아지트로 불러낸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호는 현수를 만나러 간다. 재호가 사람을 믿은 대가는 죽음이다. 그래서 유언으로 말한다. “사람을 믿지 마라.” 이때 현수의 내면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호와 현수는 서로를 파국에 이르게 만든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내면을 찬찬히 더듬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수의 행동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현수는 천 팀장을 향해 총알이 바닥날 때까지 총을 쏜다. 그런 후에 차가운 길바닥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는 재호의 입을 틀어막아서 숨을 거두게 만든다. 평범한 경찰이었다면, 쓰러진 사람이 재호가 아니었다면, 현수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섣부른 추측일 수 있지만, 현수는 아마도 훗날 재호의 길을 걷지 않을까 싶다.

  재호와 현수의 주변 인물을 검토하면,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병갑과 천 팀장은 재호와 현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신분만 다를 뿐, 두 사람에 미친 영향은 똑같다. 재호와 고아원 동기인 병갑은 갈대와 같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고병철과 재호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 천 팀장은 목표 달성과 출세만 추구하는 냉혈한이다. 재호와 현수는 병갑과 천 팀장에게 없는 면모를 서로에게서 발견하고, 똑같은 상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서로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 연민이 믿음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현수는 어머니의 죽음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재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현수는 ‘재호나 병갑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는’ 착한 놈이다. 재호는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나쁜 놈’이다. 

  그런데 현수에게만은 착한 놈이 되어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재호의 비극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영화는 권선징악의 틀을 벗어난다. <불한당>이 재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결말의 페이소스가 조금 더 진해졌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불한당>은 지금보다 덜 ‘매력적인’ 영화가 됐을 것이다. 

  <불한당>의 영화적 매력을 보여주는 소품의 하나는 빨간 스포츠카이다. 현수가 교도소 문을 열고 나온 황량한 들판. 조폭들이 병풍처럼 도열해 있고, 밝은 햇살 아래 멀리 빨간 스포츠카가 서 있다. 깔끔한 수트에 포마드를 발라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선글라스를 낀 재호는 또 어떤가.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스타일인 것을 고백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빨간 스포츠카는 “<불한당>은 당신의 허를 찌르는 영화입니다.”라고 알려주는 표지판 역할을 한다. 이처럼 <불한당>은 복고풍 스타일 속에서 각 장르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보기 드문 매력을 뿜어낸 영화이다. 

임정식 _ dada88 47@naver.c om
영화평론가. 스포츠조선 연예부장·문화팀장, 고려대·한경대 강사. 『대중스타 이미지 탐구 ①장동건, ②김혜수』>(공저), 『스포츠영웅의 비밀』 등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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