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1987] 1987이 2017년 ‘최선의 영화’인 이유
[2018 오늘의 영화 - 1987] 1987이 2017년 ‘최선의 영화’인 이유
  • 박유희
  • 승인 2018.09.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준환 감독 '1987'
ⓒCJ엔터테인먼트

  1. ‘역사성과 대중성’이라는 해묵은 화두

  <1987>은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 전두환 독재정권과 싸웠던 기억을 30년 만에 재현한 영화다. 대한민국이 2017년 광장을 경험한 직후에 나온 영화라서 이 영화에 대한 각계의 관심은 각별했다. “6월항쟁의 완성은 촛불항쟁”이라는 말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까지 영화를 관람하면서, <1987>은 <택시운전사>에 이어 장기흥행하는 2017년의 ‘정치적 역사영화’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기대와 반응은 다양했다. 정치적 입장, 세대,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 <1987>을 바라보는 시각과 심정이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예상하고 대응한 듯 <1987>에서는 사실의 재현, 극적 요소의 첨가, 스타의 활용 등에서 주의 깊은 균형감각이 발휘된다. 관람객 평점이 9점을 넘기고 기자·평론가 평점도 8점을 상회하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적실한 시의성과 치밀한 짜임새, 이를 통해 성취된 폭넓은 공감대에 대한 화답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던 탓인지 한편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애초에 ‘비호감’이었던 대중은 차치하고라도, 1987년 광장의 주역이었고 이 영화에 가장 관심이 컸다고 할 수 있는 386세대도 만족스러워하지만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2017년 광장에도 참여했던 시민들로 자신들의 젊은 날이 영화화되었다는 것에 감동했고 이런 ‘정치 영화’가 편안하게 개봉될 수 있는 현실에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결과를 아프게 기억하고 있기에 이 영화가 지닌 신파적 과잉과 희망적 국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젊은 세대의 경우에는 사회에서 기득권을 지닌 386세대들이 자기들 시대를 자축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반응에는 1987년의 광장과 2017년의 광장을 역사적으로 연결시키며 <1987>을 현재의 정치 상황과 겹쳐놓고 바라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여기에서 영화의 역사성과 대중성에 대한 해묵은 질문이 새삼 제기된다. 이 영화에는 약 145억이 투자되었고 15세 관람가로 개봉하였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의 취향을 두루 충족시켜 400만 이상을 동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폭넓은 관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영화에서 성공을 거듭해온 관습적 요소를 활용하기 위해 사실성을 희생할 수도 있다. 올해 영화로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그러한 선택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런데 <군함도>는 역사의식 논란에 휘말려 흥행이 저지된 데 반해, <택시운전사>는 사소한 일로 용납되며 ‘천만 영화’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역동적인 시의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차피 도긴개긴, 복불복이려니 하며 손 놓고 바라볼 수만도 없는 화두이기도 하다. 영화 제작비가 높아지면서 대중성과의 조응 문제가 영화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고, 성공한 관습 안에서 움직이려는 경향 또한 강해지고 있다. 민주화가 진전되며 영화 재현에 대한 반응과 평가에서 계급과 세대는 물론 각자의 트라우마, 정치적 견해, 현재의 소망 등이 착종되어 나타나는 개인의 현시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성과 대중성, 그 임계는 어디이며 비평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2017년에 쏟아져 나온 역사영화들은 이러한 질문을 계속 불러일으켜왔다. 그리고 연말에 개봉한 <1987>이 그 질문들의 집열판이 되어 해답을 일단락 지은 것처럼 보인다.

ⓒCJ엔터테인먼트

  2. 혁명 드라마, 그 이상의 잉여

  <1987>은 사건, 장르, 코드가 정교하게 직조된 영화다. 사건은 1987년 1월 박종철 죽음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에서 시작하여, 당해 6월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정권이 최루탄을 직사해서 이한열이 쓰러지기까지로 구성된다.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는 스릴러, 다큐멘터리, 멜로드라마가 결합되어 있다. 우선 박종철 죽음의 진상을 은폐·조작하려는 측과 캐내서 알리려는 측이 맞서는 전반부에서는 스릴러 문법이 기조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범죄자들과 탐정들이 겨루는 형국인데, 범죄자는 ‘청와대’를 정점이자 배후에 두고 안기부, 남영동 순으로 위계를 이루는 집단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탐정 역할을 하는 기자, 운동가, 종교인을 비롯해 탐정 편에서 증언자로서 일조하는 인물들—의사, 검사, 유족 등—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는 개인들로 나열된다. 그들의 행동은 역사의 한 장면을 이루며 바통 터치하듯 배치되어 거대한 그림의 퍼즐 조각이 된다.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실명과 직책이 타이프 소리와 함께 화면에 각인되는데, 이는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실감을 불러일으킨다.

  박종철의 죽음을 알리는 데 ‘비둘기’ 역할을 하는 87학번 연희(김태리)를 매개로 이한열(강동원)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후반부로 넘어간다. 이때 1987년 항쟁 주체로서의 대학생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 부분부터 젊은이의 고민과 로맨스를 골조로 하는 청춘물과, 악의 축이 무너져가는 파국이 교직되며 영화의 리듬에 완급이 뚜렷해진다. 시대 분위기를 환기하는 음악, 패션, 어투 등이 보다 관습적으로 활용되고, 정서적 공감을 유도하는 멜로드라마 문법이 전면화된다. 그러다 이한열의 죽음을 계기로 이 영화가 구축해온 이야기의 겹들이 6월의 함성으로 수렴된다. 마지막에 두 청년의 죽음이 시민의 항쟁으로 이어지는 비계飛階가 놓이면서 <1987>은 멜로드라마의 기원을 상기시키는 혁명 드라마가 된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에 대한 개괄적인 구조 분석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석연치가 않다. 다 말하는 순간, 다 못한 이야기들, 분석 사이로 빠져나간 잉여들이 눈앞에 삼삼해진다. 이 영화를 수많은 혁명 주체들이 일구어낸 승리의 서사로 읽어내는 순간, 박처장(김윤석)의 참혹한 가족사, 박처장과 조한경(박희순)의 숨막히는 충돌, 심심치 않게 카메라가 멈추었던 전두환의 사진, 그리고 실제 발표 시기와 상관없이 삽입된 유재하의 음악 등이 매직아이처럼 떠오른다. 이 잉여 아닌 잉여들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우선 이 영화를 보고났을 때 기억에 가장 오롯하게 남는 인물이 박처장이며, 실제로 이 영화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인물 또한 박처장이라는 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는 장준환 감독의 전작인 <화이>(2013)에서 유괴한 아이를 양자로 키우고 그 아이로 하여금 친부를 살해하게 했던 석태(김윤석) 캐릭터와 겹치는 면이 크다는 점에서 감독의 복심으로 읽히기도 한다. 박처장을 시작점으로 하여 이 영화를 읽으면 혁명 서사에서 미처 포용하지 못하는 잉여들이 제자리를 찾고 보다 흥미로운 그림이 떠오른다.

  3. 실질적 주인공 박처장과 폭력의 생리

  박처장은 평남 용강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인물이다. 그는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치안감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의 책임자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지주였던 아버지가 양아들마냥 키웠던 머슴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학살했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자신은 대청마루 밑에 숨어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는 그가 공산주의자를 잔혹하게 대하는 이유이자 격멸해야 하는 명분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막는 자는 모두 ‘빨갱이’이라는 단순논리로 비약한다. 이러한 억설이 가능했던 것은 분단 상황을 강조해 국가를 ‘예외상태’로 둠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려는 독재정권이 그러한 복수심을 부추기며 ‘애국’으로 치환해 주었기 때문이다. 박처장은 청와대-안기부-남영동의 라인을 통해 승승장구하며 치안본부의 실세로 군림한다. 치안본부장은 물론이고 장관들까지 그의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그런데 이 골리앗과 같은 완강한 인물이 무너진다. 이 영화는 치명적인 악인 박처장이 무너지며, 그의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를 무너뜨리는 것은 다윗과 같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니다. 용감하고 양심적인 사람들만도 아니다. 물론 해직기자 이부영(김의성), 기획자 김정남(설경구), 함세웅 신부(이화룡),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같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시신 보존 명령을 내려 박종철 고문치사를 알리는 시발점이 된 최검사(하정우)는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다. 안기부장(문성근)과 박처장이 마시는 술병에서 최검사가 동일한 술을 마시는 것으로 화면이 전환되며 등장하는 것은 그가 권력의 하수인임을 시사한다. 박처장이 부검 명령서를 찢어버리자 미국 기자와 88올림픽을 들이대며 박처장을 설복시키는 것 또한 그가 권력의 생리를 꿰고 있는 인물임을 말해준다. 그러한 그가 상부의 명령에 불복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공처가 검찰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진상 은폐에 동조했다가 검찰이 ‘독박을 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울대생이 죽었는데 8시간도 안 되어 화장을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던 것도 한 이유다. 요컨대 그가 대공처의 행보에 딴지를 거는 것은 검사로서의 자존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철저한 엘리티즘의 소치이다. 최검사가 업무시간에도 노상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나 반말을 일삼아도 될 만큼 검찰조직은 호형호제로 돌아간다.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기자에게 처음으로 흘리는 이검사(서현우) 또한 최검사의 직속후배로서 대공처의 버릇을 가르치기 위한 일에 담합할 뿐이다. 여기에서 최검사의 행동은 이미 ‘권력의 개들’—대공처와 검찰—간에 균열이 생긴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낸다. 

  윤기자는 특종을 잡고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직업의식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진상 규명에 매달린다. 박종철의 시신을 처음 확인한 의사 오연상(이현균), 부검의 황적준(김승훈) 또한 증거가 너무 확실하여 의사로서 더 이상 거짓을 말할 수 없었기에 진실을 말한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위증이었기 때문이다. 교도소 보안을 맡은 안계장(최광일)은 대공형사들의 무법한 행동을 묵과할 수 없어서 민주화운동 세력에 협력한다. 그는 ‘가두고 지키는 것’에 충실한 교도관이었지만 그가 지키려는 원칙을 대공형사들이 무너뜨리자 고문경관 명단을 세상에 알린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다는 점, 혹은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최검사와 동궤를 이룬다. 이와 같이 최소한의 자존심 내지 직업윤리를 지키고자 했을 때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협력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권의 만행이 이미 도를 넘어섰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폭력적 권력 내부가 무너지는 것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스릴러에서 멜로드라마로 기조가 바뀌며 연희가 등장하는 후반부에서는 고문치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된 고문경관들과 정권 간의 갈등이 대두하며, 폭력적 권력이 유지되는 생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처장의 충직한 부하인 조한경은 자신이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채면서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저질러 온 잔혹한 행동에 회의를 품는다. 이에 그가 박처장에게 반발하자 박처장은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그에게 맛 보게 해주겠다고 협박한다. 그는 박처장과 온갖 만행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한층 더 잘 알아듣고 굴복한다. 이는 자신의 피학에 매몰된 이가 어떻게 가해자가 되는지, 피해자가 왜 폭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피학이 가학으로 전승되는 폭력의 연쇄 고리를 드러낸다. 폭력의 두려움을 맛본 이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괴물이 되어야 괴물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애국’이라고 자위하며 쉬지 않고 미친 듯이 폭력에 몰입해야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거나 의심하면 그들은 무너진다. 그들이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관은 무조건 약속을 지켜 부하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명분은 의리와 충성이다. 의리는 부하가 잡혀가자 박처장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가는 것으로, 충성은 부하들이 한결같이 사용하는 표현 “받들겠습니다!”로 상징된다. 그런데 상관이 부하를 지켜주지 못하여 의리-충성에 균열이 발생하자 바로 그들 관계의 민낯이 드러난다. 박처장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부하를 잘라내고 부하가 반발하자 협박으로 굴복시키는 방식은 ‘청와대-안기부장-박처장’으로 이어지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박처장이 고문치사의 책임을 지고 잘려나갈 때 박처장이 사진 속 전두환을 노려보는 가운데 두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은 박처장 권력의 본질, 즉 전두환의 개였던 박처장의 실체를 폭로한다.

  4. 변혁의 원동력으로서의 청년 감성

  영화에서 인물들은 박처장과 대치하는 전열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그 중에서 박처장과 가장 먼 대척을 이루는 인물은 박종철-이한열-연희로 이어지는 청년들이다. 후반부에서는 박처장을 위시한 대공형사 조직 내부가 드러나면서 한병용이 고문당하는 과정, 박처장의 가족사, 박종철의 최후, 이한열이 쓰러지는 장면이 길게 처리된다. 이에 대해서는 전반부의 사실감을 깨는 과잉이라며 비판이 집중되기도 했다.1 그런데 들여다보면 후반부에서는 박처장으로 대표되는 폭압적 권력과 청년들의 순수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데 이 영화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코스타 가브라스의 <계엄령>(1973)에서 필립 산토레(이브 몽땅)는 남아메리카 독재정권을 배후조종하는 미국 정보부 거물인데 반정부 세력에 의해 납치된다. 그는 납치되어 이송되면서 복면을 쓴 반군 젊은이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느냐고. 그러자 젊은이는 “나약함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나약함은 강인함과 대비되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개발독재기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나약함은 악덕 중의 악덕이었다. 나약함은 순하고 부드러워서 약한 것을 가리키고 그래서 쉽게 무너지고 흔들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단국가에서 순해서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분법 이외의 것을 상상하며 흔들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박처장이 조한경의 머리를 발로 짓누르며 “애국자야? 월북자야?”라고 다그치자 조한경이 어쩔 수 없이 ‘애국자’를 선택하는 것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화이>에서 아비 석태가 아들 화이(여진구)에게 괴물이 두려우면 괴물이 되라고 다그치는 것의 국가 버전이다.

  <1987>에서 연희는 물론이고 박종철과 이한열이 가지는 이미지는 <계엄령>에서 젊은이가 말한 ‘나약함’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신념에 찬 투사가 아니다. 그들은 착하고 여린 청년들일 뿐이다. 선배의 행방을 말하지 않고 고문 끝에 숨질 때 박종철(여진구)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한마디는 “엄마”이다.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동아리로 초청하여 광주항쟁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이한열에게 연희가 왜들 그렇게 잘났느냐, 가족들 생각은 안 하느냐며 항의하자 이한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음이 아파서”이다. 임금투쟁을 하다 화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날 같은 건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연희가 마지막에 거리에 나서는 것은 연희가 신발도 없이 혼자 버려졌을 때 운동화를 사들고 먼 길을 와주었던 해맑고 따뜻한 선배가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청년들을 통해 드러나는 정서는 ‘슬픔과 공감’으로 박처장이 지닌 ‘분노에 찬 가학성’과 대비된다. 

  이러한 정서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통해 대변된다. 연희가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라디오에서 녹음하려다 실패하는 노래가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청춘의 불안한 심경을 담고 있으면서도 무지개와 같은 미래와 서로 힘이 되어주는 연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유재하는 1987년 8월에 이 곡이 실린 첫 음반을 발표했고 11월 1일에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그가 떠난 이후 그가 남긴 유일한 음반은 신드롬을 일으켰고 1980년대 말 청년의 착한 영혼을 상징하며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손에 꼽는 명반으로 남았다. 영화에서 연희가 이 노래를 듣는 때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1987년 초봄이므로 실제로는 이 곡이 발표되기 전이다. 그럼에도 이 곡이 87학번 연희의 테마음악으로 쓰인 것은 1987년 젊은이들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채택되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리고 이는 이 영화가 이해하는,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1987년 청년의 감성을 전해준다.

  이 영화의 후반부가 ‘안이한 관습’, ‘관행에 탑승’, ‘신파적인 전개’ 등으로 대중성에 쉽게 편승했다고 비판받은 것은 이 부분이 지닌 센티멘털리즘에 기인하는 바 크다. 물론 청년을 순일한 존재로 보는 것은 과거를 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로 상정하고 그리움을 알리바이 삼아 현재의 타락을 합리화하는 오랜 관습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운 세 배우(여진구, 강동원, 김태리)를 통해 1987년의 젊은이를 비극적 순수로 그리는 것은 386세대에 대한 헌사로 보이는 면도 있다. 그러한 비판의 일리를 인정하면서도 놓쳐서는 안될 것은 이 영화에는 ‘청년의 순수’에 대한 깊은 믿음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젊음이 가질 수밖에 없는-흔들리기 쉽고 나약한 것, 혹은 센티멘털리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순수가 세상을 바꾸는 동력임을, 역사는 눈 맑은 젊은 이들에 의해 새 국면을 맞이함을, 그래서 1987년 폭압적 정권을 무너뜨린 힘의 출발점은 청년의 착한 감성이었음을, 그러므로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1987>은 말하고 있다. 

  5. 역사의 포갬과 부단한 균형 감각

  이러한 역사 인식이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1987>이 ‘역사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가해자를 지목했다. 이는 <택시운전사>가 현재의 광장으로 서둘러 옮겨오기 위해 1980년 5월 금남로에서 학살 수괴의 이름을 지웠던 것과 대비된다. <택시운전사>에서는 막판 택시 추격 장면을 통해 액션장르의 관습으로 급히 탑승하여 눈 내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비약했다. 그럼으로써 지난 10년 간 광주를 잊고 각자의 집 값 오르는 데 몰두했던 ‘우리들’에게 심리적 면죄부를 선사했다. 이것은 대중성을 빙자하여 역사를 기만한 위로의 방식이다.2 그러나 <1987>은 ‘뚜전뉴스’로 시작해 전두환 사진이 걸린 자리에서 공권력 회의가 이루어짐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는 전두환의 사진이나 ‘靑’자가 들어간 전화기에 머물고, 박처장의 상관들은 ‘청와대’와 ‘각하’를 자주 호명함으로써 그들의 배후에 전두환이 있음을 계속 누설한다. 박처장을 중심으로 읽었을 때 이 영화의 의도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것도 이 영화가 가해자에 주목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적 요소를 첨가하고 장르 문법을 도입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예컨대 이한열 역에 강동원을 기용하여 스타 페르소나를 이용하면서도 이한열의 죽음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연함으로써 강동원의 허구성을 최대한 상쇄한다. 이와 같이 주지된 사실과 관습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자칫 진부해져 버릴 수 있는 겹침을 감행하면서도 그 안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이 영화의 성취이다. 그것은 역사를 포개놓는 부분에서 가장 빛난다. 후반부에서는 1980년 5월과 1987년 6월이 여러 번 덧놓인다. 택시운전사들의 경적소리와 애국가 제창에서 광주가 환기되고, 이한열을 향해 최루탄이 직사될 때 금남로의 발포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영화는 일탈되고 왜곡되었던 민주주의의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이 있었고, 국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살인 정권이 1987년에 박종철과 이한열을 죽였다.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대통령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살인 정권은 되살아나 또 다른 악행을 저질렀음을 짚어낸다.

  이 영화가 1987년 이후의 절망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한 불안의 발로일 뿐이지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영화의 후반부가 신파적이고 진부하다는 평가는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이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관객 700만과 만날 수 있는 길을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는 지난 10년동안 이 영화에서 상기시킨 역사의 흐름을 떠올리지 않았다. 알고는 있어도 지난 일로 치워 두거나 외면했다. 이 영화는 역사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며, 우리가 잊었던 맥락을 되살려 지난 수십 년의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 그것만으로 <1987>이 최고의 역사영화는 될 수 없을지 모르나, 2017년 최선의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1. 김영진, 「상품, 예술, 계몽의 자리」, 『씨네21』 1140호, 2018.1.23. 77-79면 참조

2. 이에 대해서는 박유희, 「망각의 알리바이와 ‘우리들’의 참회」, 『문학들』 2017년 겨울호 (통권 50호), 문학들, 2017.12, 106-135면 참조.

박유희 _ narrative21@naver.c om
영화비평가이자 한국영화사 연구자. 영화사의 맥락과 서사장르의 관계망 안에서 현재 영화의 위상과 의미를 묻는 비평을 하고 있음. 『디지털시대의 서사와 매체』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1~5권(공저) 등의 책이 있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