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를 넘어 ‘ 공론장으로써 영화’로 나아가다
[2018 오늘의 영화 -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를 넘어 ‘ 공론장으로써 영화’로 나아가다
  • 전찬일(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
  • 승인 2018.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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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 '택시운전사'
ⓒ쇼박스

  광주항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 대참사 중 하나다. 주류 영화가 으레 드라마틱한 사건들에 눈독들이기 마련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 참사 속에 내재된 숱한 드라마들은 영화화에 제격일 법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중·상업·오락 영화로 한정하면, 소재의 비극성이 워낙 커 영화화하기 부담스러워서였든지 또 다른 이유들에서든지, 38년 가까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기획·제작돼 선보인 관련 영화는 기껏 2편에 지나지 않는다. 2007년에 선보인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와,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지난 2017년에 선보인 <택시운전사>(장훈)다.

  이 두 문제적 화제작들은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화려한 휴가>는 700만(이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참고)에 근접했다. 800만에 육박한 <디워>(심형래)에 이어 2007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2위였다. 어지간한 규모면 으레 1,000〜2,000개 스크린을 확보하곤 하는 최근의 배급 관행을 감안할 때, 최다 스크린 수가 550여개 밖에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일궈낸 700만이란 기록은 요즈음의 1,000만을 훌쩍 뛰어넘을 대성취라 할 만하다. 한편 <택시운전사>는 최종 1,218만여 명으로 2017년 종합 흥행 정상을 차지했다. 총 16편의 국산 천만 영화 중 <신과함께-죄와 벌>(김용화)에 앞서 15번째로 천만 고지를 돌파하면서, 전체 순위 11위에 올라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극화했다는 것 말고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으뜸 주인공이 택시기사란 점 등에서 두 흥행작은 적잖이 닮았다.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살면서 동생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광주 시민 민우(김상경)와,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통금 전에만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을 거금 1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식당에서 엿듣고는, 다른 기사에게서 독일 저널리스트를 가로채 서울에서 광주로 향하는 만섭(송강호)이 두 주인공이다. 하지만 몇 지점에서 두 영화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걸으며, 크고 작은 차이를 드러낸다.

  당장 영화가 다루는 시간적 배경부터가 다르다. <화려한 휴가>가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항쟁의 열흘을 포괄하는 반면, <택시운전사>는 항쟁의 이틀인 5월 20일과 21일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19일 도쿄에서 동료 저널리스트들에게 광주항쟁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20일 전격 한국을 찾아, 극적으로 서울을 거쳐 광주로 가 이틀동안 항쟁의 현장을 몸소 겪으며 기록하고, 그 기록을 갖고 만섭/사복 및 광주의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 등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해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이틀간이다.

  결정적 차이는 그러나, 비극을 그리는 시선에서 드러난다. <화려한 휴가>가 피해자, 즉 내부인의 시선에서 체험·전개된다면, <택시운전사>는 만섭과 힌츠페터 두 캐릭터의 제3자적, 외부인의 시선으로 묘사·진행되는 것. 다름 아닌 이 외부자 시선이 영화에 대한 비평적 평가나 호불호를 가르는 핵심적 요인인 바 치명적 약점이거나 최대 강점으로, 양가적으로 작용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광주의 한 문화기획자는 “<택시운전사>가 좀 더 피해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더라면 좋았을 것.” 이라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영화 평론가 황진미는 “어리둥절한 외부인의 시선 이상의 것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이하 포털 다음의 영화 편 참고)라면서 큰 유감을 표명했다. 허나 정반대의 진단들도 존재, 아니 훨씬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가령 “<군함도>는 휘청거렸고 <택시운전사>는 비상했다. 1000만 영화가 나왔지만 질과 양적 측면에서 작년에 미치지 못했다.”라는 요지의 “여름 극장가 ‘국내 빅4’ 성적표” 관련 기사(2017년 8월 24일 자 19면)에서 경향신문 기자는, “평범하지만 선량한 사람의 양심적 각성을 연기하는데서 늘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송강호의 호연” 외에 “외부인의 시선으로 1980년 광주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눈높이를 맞췄다”는 점 등 “영화 내적 요인이 정치권 인사들의 관람 같은 외적 요인과 잘 맞물렸다”며 <택시운전사>가 천만 고지를 넘을 수 있었던 비상의 요인들을 적절히 진단했다.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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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위 기자의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황진미가 ‘어리둥절’하다고 평한 그 외부적 시선이야 말로 <택시운전사>에 예상을 뛰어넘는 대성공을 안겨준 최대 변수였으며, 으뜸 영화적 덕목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화려한 휴가>와 대조적인 영화의 3자적 시선 덕에, 세상의 (거의) 모든 예술·오락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영화 미학적 거리가 확보됐고, 보다 폭 넓은 대중 관객들과의 공감의 폭과 깊이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그 외부 시선은 때론 만섭과, 때론 힌츠페터와, 때론 또 다른 3자적 캐릭터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대중 영화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극적 몰입을 가능케 한다. 거리감과 몰입을 동시에 선사하는 외부자 시선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그야말로 공감적 거리감과 비판적 몰입의 최적 사례로 손색없다. 극중 캐릭터들의 3자적 시선과 수용 층인 관객들의 시선, 그리고 감독을 포함한 영화를 만든 이들의 시선이 완벽하게 일치됐기에 가능해진 <택시운전사>의 영화 예술적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에 눈길을 주면 상기 외부자 시선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인 감이 없지 않다. 장훈 감독은 1975년 5월 생으로, 광주항쟁 당시 고작 6살에 지나지 않았다. (감독의 전언에 의하면) 게다가 그는 광주와는 무관한, 강원도 정선 태생. 학창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평소 광주항쟁에 남다른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300만에 달하는 ‘흥행 중박’과 제31회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및 감독상 등에 빛나는 비평적 개가를 거둔 <고지전>(2011) 이후 김기덕 감독과의 ‘불화’로 칩거에 들었던 그를 기획제작자인 박은경 더 램프 대표가 세상 밖으로 호출했고, 숙고 끝에 그 호출에 응한 것이다.

  <택시운전사>에 뛰어들며 감독은 광주항쟁 속으로 가능한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다. <화려한 휴가>처럼 피해자의 시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제작자 등 주변의 만류로 그 바람을 단념해야 했다. 부득이 외부인의 시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또 하나의 <화려한 휴가>’에서 ‘<화려한 휴가> 이후’로 비상하게 될, 멋진 결정이었다. 그저 광주항쟁 발발 당시 고작 여섯 살에 불과했던 비광주 출신 감독이 전하는 피해자 드라마였다면, 어찌 <택시운전사>만큼의 크고 깊은 신뢰감을 선사할 수 있겠는가. 만약 언제고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를 통합한 ‘<택시운전사> 이후’가 빚어져 선보인다면, 그 초석은 <화려한 휴가>가 깐 것이고 <택시운전사>가 그 초석을 더욱 굳게 다진 덕분일 게 틀림없을 터. 과연 그날이 올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필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해 제26회 부일영화상 본심 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부산일보 문화부 데스크가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 <택시운전사>를 열렬히 지지하던 모습을. 그는 광주항쟁이 단지 광주(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인) 모두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영화가 의미와 재미, 감동을 두루 곁들여, 설득력 있게 전하는데 성공했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택시운전사>가 ‘어나더 <화려한 휴가>’를 넘어 ‘포스트 <화려한 휴가>’로 승화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 자리에서 필자가 그 못잖게 좋아했던 홍상수 감독의 <그 후> 대신 <택시운전사>에 한 표를 던진 것도 그래서였다.

ⓒ쇼박스

  흔히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들 한다. 흥미롭게도 장훈 감독의 데뷔작도 김기덕 각본의 <영화는 영화다>(2008)였다. 하지만 늘 영화가 영화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를 넘어 시대에, 정치·사회·문화에 크고 작은 충격을 안겨주고 영향을 미친다. 반영 및 변형 등의 역할을 통해, 다소 멀리 <도가니>(2011, 황동혁), <완득이>(2011, 이한)부터 근자의 <아이 캔 스피크>(2017, 김현석), <1987>(2017, 장준환) 등에 이르기까지 그 예들은 수두룩하다. 예외없이 한 편의 영화를 넘어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써 영화까지 나아간 몇몇 사례들이다. <택시운전사>는 광주 망월동 묘역의 평상시 풍경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갔다지 않는가. 광주항쟁 및 광주를 향한 외부인들의 부채감·죄의식·어린 각성을 환기시키면서.

  이럴진대 <택시운전사> 말미에 등장하는 추격 시퀀스가 다소 촌스럽다고한들, 그렇게도 큰 흠일까? 시대가 세련되기는커녕 야만적일 대로 야만적이었거늘, 그때 그 사건을 다소 촌스럽게 연출했기로서니 그게 뭐 그리 비난 받을 잘못일까? 사실 필자는 상기 부일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송강호를 밀면서 끝내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으나, 만섭이 송강호의 최고 연기라고 여기진 않는다. 유해진의 연기도, 개인적 친분 탓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류준열의 연기도, 최상은 아니다. 플롯도 전작들, 그중에서도 <의형제>(2010)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촘촘하며 성긴 편이다. 플롯의 정교함이나 추동력에서도 <택시운전사>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이야기의 완급에서 영화는 세 전작들을 압도한다. 드라마투르기의 승부는 결국 드라마의 완급 조절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택시운전사>의 주요 미덕이다.

  성격화의 복합성에서도 영화는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쿨투라》 2017년 겨울호에서도 밝혔듯, 그와 관련 필자는 딸 바보 아버지로 세속적일대로 세속적이었던 ‘사적 인간’ 만섭이 힌츠페터 등과 함께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숭고한 ‘공적 인간’으로 승화돼 가는 극적 과정을, 그 과정에서 구현된 만섭/송강호의 입체적 표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만섭의 변화는 <1987>에서의 여자 주인공 연희(김태리)의 변화를 예고·선취하고 있다. 이래저래 <아이 캔 스피크>에 그 영예가 최종 낙착됐으나, <택시운전사>는 2017년의 최고 한국 영화로 부족함이 없다. <남한산성>이, <1987>이 그렇듯.

전찬일 _ chanilj@hanafos.com
영화평론가. 조선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공연과리뷰》 편집위원,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 저서로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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