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러빙 빈센트] 그림과 영화의 결합을 추구하며 고흐의 삶과 정신에 다가서기
[2018 오늘의 영화 - 러빙 빈센트] 그림과 영화의 결합을 추구하며 고흐의 삶과 정신에 다가서기
  • 곽영진
  • 승인 2018.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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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감독 '러빙 빈센트'
ⓒAltitude Film Distribution

  작년 11월 9일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 새해 들어 소위 아트버스터의 반열에 올랐고, 개봉 3개월을 맞은 시점부터는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러빙 빈센트>는 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1/4분기 아트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것을 포함,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낳았다. 더불어 중요한 의미도 생산해냈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화제, 고흐 숭배 현상

  먼저 국내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1853-90)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 그는 화가의 대명사뿐 아니라 예술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이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를 추모하며 발표한, 너무도 아름답고 슬픈 <Vincent>(1971)에 이어 이 땅에 새로 불게 된 고흐의 열기와 바람이다. <Vincent>는 <러빙 빈센트>의 OST에 주요 배경음악으로도 쓰였다. 허나, <Vincent>에 대해 7080세대가 아주 오랜 기간 품었던 사랑은 기실 예술가 고흐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가사의 뜻도 잘 모르고 들었던 노래와, 가수의 미성美聲에 대한 것이라 말해야겠다. 어쨌거나 빈센트에 관한 기념비적인 두 작품이다.

  <러빙 빈센트>가 죽음의 의혹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장르영화 전략을 취했음에도, 결국 후반부에 와서 (자살을 했든 혹은 타살이나 자살을 당했든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흐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작품의 메시지로 전해졌음인가? 영화 개봉 후 그의 생애에 대한 관심이 널리 대중들 사이에 고조되었다. 그림도 중요하지만 외롭고 고난에 찬 비극적 삶의 전개, 또 그런 가운데서도 멈추지 않던 불굴의 투혼과 예술혼. 불쌍한 사람들(민중)과 여자에 대한 진실된 사랑 등…. 이제 와서 전문가와 대중으로부터 애호되지만 당시에 그는 시대와 불화하고 ‘그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고흐는 오늘날엔 후기 인상파의 한 사람으로서 근대를 가로질러 현대 미술로 나아가려 했던 창조적 혁신가, 위대한 화가로 기록된다. 허나 화가·비평가 등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 그는, ‘과연 천재인가 아니면 노력형 수재인가’ 하는 의문도 없지 않고, ‘과연 전문가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인가’ 하는 견해도 있다.1

  영화 자체에 대한 국내 평단의 반응은 미국 등 해외에 비해 월등히 호의적이고 고무적이다. 이는 특히 한국과 일본의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지극한 고흐 숭배 현상과, 그의 삶과 예술에 있어 정서적 측면에 대한 강한 이끌림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Altitude Film Distribution

  영화(사)적 가치와 테크닉의 혁신성 문제

  <러빙 빈센트>는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디즈니의 <코코>등과 경합하면서 국제적인 화제를 낳았다. 그에 앞서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란 점에서 영화사적으로 의의를 지닌다. 화가가 남긴 명화들을 그 화가의 화풍에 실어 영화의 배경 및 인물, 이야기로 풀어낸 전무후무한 시도이고 영화가 시대의 풍속과 당시 예술계 그리고 실존 인물들을 그려내는 독창적인 방법을 구현하였다는 점에서도 미학성이 인정된다. 107명의 화가들이 2년여 동안 무려 62,450점의 유화 쇼트(매개每個 프레임의 이미지)를 나누어 직접 그려내는 등 ‘불가능’에 가까운 이 프로젝트의 완성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기간만 총 10년이 소요되었는데, 이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부연하면 이 작품은 수년간 그림과 영화의 결합을 열정적으로 추구한 젊은 감독이 영·미의 국제적인 메이저 제작사와 결합하고 투자와 배급 확보에도 성공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거대한’ 상업적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요컨대 상업영화를 겸한 예술영화다. 고흐의 주요 작품들을 CG 없이 특유의 강렬한 유화 필치筆致로 스크린에 구현한다는 놀라운 기획과 온라인 마케팅으로 제작 전부터 세계의 미술,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한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언더 더 스킨>(2013)의 제작자와 <블랙 스완>(2010)과 <스토커>(2013, 박찬욱)의 음악감독, <이다>(2013)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촬영감독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4천여 명의 유화 화가들 중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07명의 화가가 제작에 동참했다. 고흐 그림들의 재구성-재현에 있어 CG를 전면 배제한 것은 “고흐의 감정을 전달하고 정신을 제대로 느끼게하려면 실제 그림을 그리는(모사하는) 것이 옳다.”라는 감독의 입장과 의지 때문이었고, 그래서 고흐 특유의 붓질과 색채가 스크린에 ‘구현된’ 것이다.

  영화의 메인 연출가인 도로타 코비엘라(여, 폴란드)는 신진 화가 출신의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단편 <꼬마 우편배달부>(Little Postman, 2011)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3D 장편 <플라잉 머신>(2011)에서 부분 연출을 거쳐 <러빙 빈센트>의 각본·연출로 감독 데뷔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 휴 웰치맨이 영화의 공동 각본·연출에 이름을 올렸다.

  개봉 후 영화 자체에 대한 해외 평단의 반응은 미국, 영국 등에서 그리 높지만은 않았다. IMDB.com과 Rottentomatoes.com에 나타난 Top Critics등 6.2와 6.6의 전문가 평점 및 리뷰, 코멘트가 그 예다. ‘불만자’들은 제작 방식과 테크닉의 새로움은 어느 정도 인정하나 표현 효과의 적절성, 특히 스토리텔링 방식의 적절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Altitude Film Distribution

  스토리텔링의 이중전략 그리고 미술과 영화의 결합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자살인가 타살인가 하는, 죽음 이면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했다. 그런 가운데, 그의 유명 초상화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빈센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살았던 삶과 그가 보낸 일상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또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영화(사)적으로 보았을 때 전자, 즉 스토리텔링의 장르적 전략은 특별한 의의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자의, 스토리텔링의 형식적·방법적 전략은 특별하다. 부언하면, 우리가 일찍이 보았던 그리고 영화 감상 중에 보는 빈센트의 그림이 영화 속 풍경과 거리와 건물로 변하고 인물로 살아 움직이며, 또 그 인물들이 갈등 구조를 맺으면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진기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러빙 빈센트>에서 인물의 움직임은 개개의 씬을 사전에 직업 배우들이 연기하게 하고 그 라이브 액션에 시각효과가 결합된 화면을 사후에 동화動畵로 구현하는, 그러니까 촬영되고 조합된 화면을 캔버스에 영사한 후 붓질-채색으로 덧입히고 다른 배경그림과 합성도 하며 한 프레임 한 프레임씩 애니메이팅하는 제작 방식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는 ‘painting on cell’ 방식으로는 불가능하여 화가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PAWS(페인팅 애니메이션 워크스테이션)에서의 2년간의 작업으로 실현되었다. 한편, 캐스팅은 실제 인물의 사진이나 초상화와 닮은 배우들을 골라서 했고, 배우들의 연기 장면은 모션 컨트롤 시스템을 이용해 촬영함으로써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이 기법은 새롭지 않다. 

ⓒAltitude Film Distribution

  어떤 그림들이 모사되고 어떻게 재현되었나

  영화에서 빈센트의 모습은 그가 죽기 직전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의 시점(始點이자 時點)은 빈센트 반 고흐의 사후 1년, 그의 소울메이트나 다름없던 테오 반 고흐의 사후 6개월이기도 하다. 

  빈센트의 죽음을 추적하는 영화 주인공 아르망은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에서 그 조셉의 아들이며 <아르망 룰랭의 초상>에서 주인공이기도 한 아르망이다. 그를 연기한 배우는 영국의 더글러스 부스. 출연 분량이 적은 빈센트 역의 조연 배우로는 무명의 로버트 굴라직이 나온다. 

  아르망은 빈센트가 복부에 총상을 입고 죽기 전 10주 동안 머물렀던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 sur Oise의 라부 여관에 묵는다. 그는 여관 주인의 딸 아들린 라부(엘리너 톰린슨), 빈센트의 후원자이자 주치의인 폴가셰 박사(제롬 플린)와 그 딸인 마르그리트 가셰(시얼샤 로넌), 빈센트가 강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봤던 뱃사공까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빈센트의 놀라운 삶과 열정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오프닝은 표현주의적이면서도 일견 비非구상적 요소가 어린 <별이 빛나는 밤>으로 시작해, 낮인지 밤인지 판단할 수 없는 하늘의 짙은 청색이 화면의 반을 점하고 있는 <아를의 노란 집>을 지나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의 혼란스러운 얼굴로 넘어간다. 황홀한 초반 장면에 이어서 고흐가 아를(아를르)에 머물던 시절, 고갱과 즐겨 찾던 장소인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등장한다. 이처럼 짙은 파란색과 밝은 노란색의 강렬한 색채 대비는 물리적 세계에서 느껴지는 주관적인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그의 철학을 엿보게 해준다.

  편지를 전하기 위해 프랑스 아를을 떠나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베르 쉬르 와즈로 떠나는 아르망의 여정 속에서 관객들은 <오베르의 평원>, <까마귀가 있는 밀밭>, <오베르 쉬르 와즈의 교회>, <오베르쉬르와즈의 짚더미>, <비 온 뒤 오베르의 풍경>을, 이어서 <몽마르트르 언덕의 전망대>, <농가 근처의 건초더미> 등과 같은 고흐의 유명 풍경화를 만나게 된다. 한편 아르망은 고흐를 후원했던 미술 재료상인 탕기 영감과 고흐가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여관집 딸 아들린, 고흐의 주치의 폴 가셰, 고흐와 다소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처자 마르그리트 가셰 등을 만나 인간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관객들은 여기서 고흐의 대표작인 초상화 <탕기 영감의 초상>, <라부 양의 초상>, <피아노에 앉은 가셰의 딸>, <가셰 박사의 초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고흐의 작품은 130여 점으로 이 중 94점의 그림이 원작과 유사하게 재구성되고 표현되었다. 나머지 그림 또한 영화 속 시점에 맞는 풍광과 조명 그리고 스크린 비율에 맞는 프레임으로 변형되어 고흐 작품의 일부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시점이란 계절 및 시간대를, 스크린 비율이란 가로67×세로49cm의 캔버스와 동일하게 제작된 와이드 화면 비율을 말한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영화 속에서 장면화된 그림 이미지들이 고흐의 실제 그림이나 화풍과는 근사치에 머물고 또 앞·뒤 장면에서 반복하여 나오는 그림(또는 화면)의 인물 및 풍경이, 각기 다른 화가에 의해 그려짐으로써, 이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 때문에 미술 마니아들의 비판을 사기도 한다. 영화적으로는 유화가 주는 두터운 질감과 고흐적인 강한 붓터치의 압박감, 또한 추리극 분위기를 내기 위한 애니메이션 페이스의 빠른 속도감까지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이 있다.

  루저의 시선과 탈脫근대적 미학관

  고흐는 “나는 영원한 것에 관심이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에 깔린 영원함을 색채의 진동과 발광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라는 언술에도 나타나지만 <별이 빛나는 밤> 등 주로 초상화 이외의 작품들로써,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像을 전달하려는 탈근대적 미학관을 세상에 던졌다. 후기인상파적 이미지, 곧 심리적으로 주관화된 내면의 상이 지닌 한계마저 넘어서려 했던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일까. 아무도 아니다. 별 볼일 없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절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는 바닥 중의 바닥. 그럼에도, 이 모든 얘기가 사실이라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이 보잘 것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너무나도 외롭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무명의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스스로를 바닥 중의 바닥이라 규정하면서도 가슴에 희망을 품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관객의 마음을 저미고 눈시울을 적시는 그의 한때 다짐.

  <러빙 빈센트>에서 아르망의 대독代讀으로 흘러나오던 바, 이런 그의 말과 함께 영화는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리고 자화상을 그리는 빈센트의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난다.

곽영진 _ 7478383@hanmail.net
영화평론가이며 인문학강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전 (사)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문체부 국제영화제 평가위원,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 위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상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비디오소위원회 의장, 부천국제영화제·대종상·부일영화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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