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견딜 수 없는 슬픔, 그래도 견뎌진다는 것
[2018 오늘의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견딜 수 없는 슬픔, 그래도 견뎌진다는 것
  • 조재영
  • 승인 2018.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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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로너건 감독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더 픽쳐스

  이 영화를 생각하면 회색빛 이미지가 떠오른다. 초점 흐린 주인공의 눈빛,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을씨년스러운 바닷가 풍경은 하나로 뭉뚱그려져 흑백 영화처럼 아련하다. 머릿 속 이미지는 차가운데, 가슴은 뜨거워진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데도 가슴이 저릿하고, 겨울 바다의 거센 파도처럼 밑바닥에서 감정이 올라온다.

  이름도 낯선 미국의 한 해안가 마을 주인공의 사연은 마치 내 이야기인 듯, 이웃집 이야기인 듯 다가온다. 특별한 사연을 지녔지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뚜렷한 기승전결도 없다. 보통의 영화처럼 치유로 끝나는 결말도 아니다. 크나큰 슬픔을 겪은 남자의 삶을 차분하게 관조할 뿐이다. 

  우리는 남의 슬픔과 고통을 잘 알지 못한다.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산다는 것은 곧 지옥이고, 형벌일 수 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데, 우리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곤 한다. 이 영화는 치유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상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옅어질 지는 몰라도 낙인처럼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 말이다.

ⓒ더 픽쳐스

  두 남자가 슬픔을 견뎌내는 방식

  리 챈들러(케이시 에플렉 분)는 미국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를 하며 살아간다. 화장실에 물 새는 곳을 잡고, 막힌 변기를 뚫고, 쌓인 눈을 치운다. 그가 사는 곳은 반지하 방.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방이다. 그곳에 홀로 앉은 리는 감옥에 갇힌 수감자 같다. 무기력한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 힘 없는 말투는 그 스스로 세상과 등지고, 수형의 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리는 툭하면 화를 낸다. 입주민들로부터 무례하고,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쏟아진다. 결국, 관리소장에게 한소리를 들은 리는 화를 못 참고 술집에서 주먹다짐을 벌인다.

  세상과 담을 쌓은 의도된 자학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그의 양면적인 모습은 숨은 사연이 있음을 암시하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리는 형인 조 챈들러(카일 챈들러)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고향인 맨체스터바이더씨로 차를 몬다. 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형은 이미 숨졌다. 이혼한 형수는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겨울이라 땅이 꽁꽁 얼어 시신을 당장 땅에 묻을 수도 없다. 

  형의 유언장을 확인하던 리는 16살짜리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형이 자신을 지목한 사실을 알고, 큰 혼란에 빠진다. 이 대목에서 그의 아픈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드러난다. 그는 왜 그토록 후견인이 되기를 주저하는 걸까. 

  리도 한때는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와 세 아이를 둔 행복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한순간의 실수로 세 아이를 모두 잃고, 아내도 떠났다. 가해자인 동시에 최대 피해자인 그는 그의 행위가 ‘실수였다’는 이유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난다. 그때부터 형벌 같은 삶이 시작됐다. 고통과 슬픔을 가슴에 욱여넣고는 스스로 벌주듯 살아간다.

  그러나 가끔 불쑥불쑥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거친 욕설을 내뱉고, 싸운다. 리의 이런 행동은 사실 자신을 향한 분노이지만, 세상을 향해 ‘도와 달라’는 절박한 요청처럼 들리기도 한다. ‘너무 힘드니, 한번쯤 봐 달라’는 절규 말이다. 

  여기 또 한 명의 남자가 있다. 리의 조카 패트릭이다. 고등학교 하키부 주전 선수이자 록밴드 리더인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친구들과 모여 밴드연습을 하고, 여자 친구네 집에서 데이트를 한다. 그런 그가 냉동실 문을 여는 순간 발작을 일으킨다. 와르르 쏟아져 나온 냉동육들은 도로 집어넣어도 자꾸만 삐져나온다. 패트릭은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한다. 아직 땅에 묻지도 못하고 영안실에 보관돼있는 아버지의 시신이 떠올라서다. 실감 나지 않던 상실의 슬픔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불쑥, 느닷없이 찾아온다. 슬픔의 본모습을 가장 압축적으로 잘 드러내는 장면일 듯하다.

  장례와 후견인 문제로 잠시 한 집에 머물게 된 리와 패트릭은 쉴 새 없이 싸우고 상처 주는 말을 쏘아붙인다. 돌이라도 하나 날아들면 곧바로 성난 파도로 돌변해 주변을 삼킬 것처럼 둘 다 날이 서 있다. 두 사람은 과거에 다정한 삼촌, 조카 사이였다. 형이 굳이 아들의 후견인으로 동생을 지정한 것도 서로의 버팀목이 되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극작가 출신인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뛰어난 각본과 섬세한 연출로 특별한 서사 없이도 137분의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리를 바라보는 관찰자 시점은 생각할 여유를 주는 동시에 리에게 감정 이입을 하도록 만든다. 한 사내의 슬픔과 고통을 보면서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는 관객도 제법 있을 것이다.

  배우 케이시 애플렉은 리 챈들러 그 자체다. 슬픔과 분노, 죄책감 등 복잡한 내면을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밀도 있게 표현해냈다. 그가 아닌 리 챈들러는 상상이 안 갈 정도다. 지난해 아카데미는 그에게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겼다. 그가 성추문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많은 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애플렉은 2010년 다큐멘터리 <아임 스틸 히어> 제작 현장에서 여성 스태프를
성희롱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고소는 합의로 마무리됐으나, 애플렉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게 적절한지 논란이 일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편견 없이 온전히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나뭇가지에 새싹이 솟아오르고, 얼어붙은 땅이 풀린 봄날, 드디어 조의 시신은 땅에 묻힌다. 리와 패트릭은 장례를 치른 뒤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패트릭은 무심한 듯 공을 땅에 튀기고, 리는 이를 받아 되받는다. 카메라는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담는다. 리는 끝내 조카의 후견인이 되길 거부한다. 그러나 이들의 발걸음은 좀 더 가벼워 보인다. 작은 변화지만, 그래도 희망으로 읽힌다. 

ⓒ더 픽쳐스

  플래시백, 장소의 힘

  이 영화에는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리가 죽은 형의 소지품을 찾을 때, 고향 거리를 운전할 때, 변호사와 상담할 때 그의 과거는 불쑥 튀어나온다. 시시때때로 전환되는 플래시백은 리의 사연과 복잡한 심경을 보여준다. 그가 여전히 과거 속에 머물러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맨체스터바이더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국의 도시 맨체스터가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에섹스 카운티에 있는 작은 도시로, 영화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리에게는 추억이 깃든 고향이지만, 악몽의 장소이기도하다. 인구 5천여 명에 불과한 그 곳에서 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리가 나타나자마자 뒤에서 수군댄다. “저 사람이 리 챈들러야? 그 리 챈들러?” 모두가 그의 실수를 기억하고 전해 들어 알고 있지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겪은 일을 알아줄 사람은 없어요.” 고향을 아예 등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리는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도시 보스턴에 터를 잡고 고향 주변을 맴돈다.

  그러나 리의 맺힌 응어리가 풀린 곳은 결국 고향이라는 점에서 제목은 상징적이다. 슬픔은 괴롭더라도 직시해야 치유할 수 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마음의 응어리가 남지 않는다. 리가 고향 길거리에서 헤어진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를 만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새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은 랜디는 리를 만나 마음 속에서 수없이 되뇌었을 법한 말을 건넨다. “당신도 마음 아팠을 거야. 그럴 필요 없었는데, 못 할 말을 했어. 지옥에 가서 벌 받을 거야. 내가 잘못했어. 죽지 마. 사랑해. ”

  아마 랜디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남편에게 증오 섞인 모진 말들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 말들은 리의 상처를 후벼 파고 덧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응어리로 맺혔을 것이다. 랜디와의 해후 이후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한 리는 패트릭에게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는다. “난 이겨낼 수가 없어. 잊히지가 않아.” 그 슬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미어온다. 그래도 그가 여태껏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말이다. 그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희망과 긍정의 신호가 아닐까. 그렇게 삶은 살아지는 듯하다. 


조재영 _ fusionjc@yna.co.kr
연합뉴스에서 영화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음.

 

*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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