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리틀 포레스트] 정신적 허기의 해소와 자신의 숲으로 귀향
[2019 오늘의 영화 - 리틀 포레스트] 정신적 허기의 해소와 자신의 숲으로 귀향
  • 문학산(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
  • 승인 2019.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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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플러스엠

우리는 모두 혜원이다

보르헤스는 ‘불멸은 시람들의 기억’ 속에 있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알무타짐을 찾아서〉라는 글에서 ‘알무타짐을 찾아서 나서는 순례자 이야기는 인간은 모두 자신을 찾는 순례자라는 사실’을 역설한다고 했다. 인간은 알무타짐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스스로가 알무타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순례에 마침표를 찍는다. 여행자는 목적지를 향해 여행의 길을 떠나지만 결국 도달한 것은 자신과의 대면이기도 하다. 결국 여행은 미지의 장소에 대한 기대로 시작하지만 여행자 스스로의 내면의 자아를 만나고 돌아온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임용고시를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 분)이 ‘자신은 이 세상의 땅 위에 자라는 어떤 식물이며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하는가’를 질문한다. 혜원은 임용고시에 실패하고 돌아온 여성이지만 영화 속에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은숙(진기주 분)과 대기업에 다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않아서’ 귀향하여 과수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재하(류준열 분)는 모두 혜원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들이 찾는 것은 각자의 알무타짐이지만,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자신만의 숲이다. 작은 숲은 이 작품의 주제와 풍경을 대변하는 단어다.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임용고사를 치르고 실패하여 낙향하는 것이 아니라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스스로 내면 독백을 통해 “나는 (서울에서) 여기로 떠나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돌아온 곳은 고향이자 엄마의 기억이 양파처럼 살아서 자라고 있는 곳이며 자신이 찾는 숲이 있는 곳이다. 제목 〈리틀 포레스트〉는 이 작품의 힌트를 함축하고 주제가 곶감처럼 열려 있다. 고향은 그녀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고향상실을 겪는 우리 모두의 본향이기도 하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정신적 허기를 달래는 방법

혜원은 고등학교 삼학년 때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서울에서의 아르바이트 생활과 임용고시 준비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다. 경제적인 이유는 아르바이트라는 임시직에 기대어 살아가는, 가뭄에 가지에 매달린 토마토로 전락한 서울 생활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인스턴트식품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녀의 삶은 청년 세대의 대표성을 지니며 서울에서 생활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 임시직으로 살아야하는 도시의 청춘이다. 고향에 도착하여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겨울의 배추밭에서 배추를 캐서 전을 만들고 수제비를 끓여먹는 일이다. 비로소 그녀는 안도하면서 귀향의 목적이 “배고파서 내려왔다”고 말한다. 이 배고품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배고픔과 정신적인 허기를 대변한다. 육체적인 배고픔은 아르바이트와 인스턴트 음식의 섭취로 요약된다. 이 배고픔은 고향에서 수제비를 끓여먹고, 떡을 만들어먹고 파스타를 만들고 가을의 밤 조림을 만들어 먹으면서 어느 정도 완화되고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정신적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정신적 허기는 고등학교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겪은 엄마의 가출이고 교원 임용고시를 함께 준비했던 남자친구와 불편한 관계 등으로 상존한다. 혜원의 정신적 허기는 차츰 차츰 음식을 통해서도 해소된다. 방향은 구조적 질문보다 개인적 해결 방식에서 찾는다. 이 지점이 첫 작품 〈세친구〉와 〈리틀 포레스트〉를 가르는 지점이다.

음식은 음식의 종류와 누구와 함께 먹느냐의 문제로 갈린다. 혜원은 유년시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여 속상해서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 엄마가 만들어준 크렘 브륄레로 기분을 전환하였다. 음식 치유의 마술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된다. 혜원과 은숙은 절친이지만 은숙의 부장의 뒷담화와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혜원이 적극적으로 공감하지 않았던 문제로 서로 갈등한다. 뒤틀린 은숙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혜원은 은숙의 근무처인 농협의 창구에 크렘 브륄레를 놓고 간다. 은숙은 요리를 한 스푼 먹으면서 그녀와 갈등을 해소할 의지의 표시로 미소를 짓는다. 음식은 상호간의 심적 갈등이라는 정신적 문제를 해소시켜준다. 은숙과 혜원은 재하의 여자 친구가 동네에 나타나자 상심한다. 은숙은 혜원에게 음식으로 기분을 풀어달라고 조른다. 혜원은 매운 떡볶이 조리법을 알려주면서 두 사람은 떡볶이 요리를 완성한다. 뒤늦게 방문한 재하는 두 여성의 얼굴이 상기된 것을 보고 무슨 일 있는 지 묻는다. 그들은 매운 떡볶이로 인해 표정이 바뀐 것이고, 청춘의 매운 감정의 몸살을 떡볶이를 통해 표현한다. 재하도 합류하여 음식을 먹으면서 땀과 눈물을 흘린다. 세 사람 사이의 어색한 감정은 음식을 통해 완화되고 감정의 허기를 지워가는 코믹한 장면이다. 음식은 마음의 갈등을 완화해주고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는 매개로 활용된다. 

또한 음식은 누구와 함께 먹느냐와 혼자 먹느냐라는 차이에 따라 정신적 허기를 가늠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혜원은 엄마와 둘이서 함께 요리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아버지가 부재했지만 그 부재의 자리를 음식과 엄마의 사랑이 채웠다. 서울에서 혜원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 혼밥으로 인한 정신적 허기와 패스트푸드로 인한 육체적 허기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고향 미성리로 내려온 다음에는 친구들과 팥 케이크를 나누어먹고 그 케이크가 엄마의 케이크와 어떻게 다른가를 변별할 만한 미감을 갖고 있는 재하가 곁에 있다. 그녀는 드디어 직접 요리해서 먹는 음식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유사가족인 친구로 인해 정신적 허기의 작은 공백이 채워진 것이다. 정신적 허기의 기원은 더 거슬러 가면 세상에 자신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이다. 친구 재하의 말대로 혜원은 아주심기를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아주심기는 양파를 기를 때 처음 모종에 심은 다음 기름진 땅으로 옮겨 심는 것이다. 아주 심은 양파는 겨울을 나게 한다. 이렇게 겨울은 난 양파는 단단하고 육질이 좋아진다. 혜원의 서울 이주와 다시 고향으로 귀향은 아주심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남편을 일찍 보낸 엄마에게 혜원이 보고 싶은지 묻는다. 엄마는 먹고 있던 토마토를 땅에 던지면서 ‘저렇게 던져 놓아도 토마토는 다시 열린다’고 말한다. 완숙된 토마토는 아무렇게 땅에 던져도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고 혜원은 내레이션으로 전한다. 그리고 토마토를 던지는 행위는 보고 싶다는 의미임을 알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음식은 정신적 허기의 치유약이면서 삶의 이치를 보여주는 교과서로 자리한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자신의 작은 숲을 찾아서

혜원은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다가 엄마의 기억을 반추한다. 그리고 숲속에서 내면의 대화를 통해 엄마의 숲이 간직하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다가 문득 떠오른 과거의 기억의 틈입으로 보여준다. 현재에서 곶감을 매개로 과거로 전환되면 혜원 엄마는 도시로 가겠다는 혜원의 의견에 대해 반대한다. 그리고 열린 곶감을 하나씩 주무르면서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혜원 엄마는 수능 시험이 끝난 얼마 후에 혜원이 네 살 때 내려온 미성리 집을 떠난다. 그녀는 딸 혜원에게 편지 남기고 간다. 그 내용을 겨울의 장면에서 비로소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준다. 혜원 엄마가 집을 떠난 이유는 ‘자신이 포기했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며 혜원이와 함께 오랫동안 미성리에서 살았던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싶었고 뿌리를 나게 하고 싶어서”라고 밝힌다. 혜원 엄마는 혜원이를 이곳 아름다운 자연 속에 아주심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혜원 엄마는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나겠다고 첨언해둔다. 비로소 혜원이는 엄마의 집을 떠난 이유를 헤아리게 된다. 혜원이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그녀의 깨달음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혜원이가 어린 시절 평온한 숲에서 엄마를 찾는다. 숲속에 난 길 위에서 혜원 엄마가 어린 혜원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 다음 장면에 성장한 혜원이 엄마의 자리를 대체하고 서서 엄마만의 숲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혜원이와 그녀의 엄마는 숲을 공유하는 쌍둥이 같다. 그녀는 엄마의 숲에 대해 전한다. 그것은 “그동안 엄마에게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이 엄마의 작은 숲”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내면 독백으로 관객에게 선명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녀가 찾을 숲은 엄마의 편지에 힌트로 제시되어 있다. 엄마는 편지에서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이곳에 너를 심어 두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혜원이의 숲은 엄마가 미성리라는 고향을 준비해둔 것이다. 혜원이는 서울에서 자신의 숲을 찾았지만 실패하였고, 정작 그녀의 작은 숲은 자신의 살고 있는 곳, 고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겨울에 떠난 다음 봄에 자신의 숲으로 돌아온다. 오구도 돌아오고 봄도 돌아오고, 친구들도 돌아온다. 그들은 고향에서 청춘의 숲, 그들만의 숲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 부산대영화연구소 소장,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장, 저서로 『10인의 한국영화감독』(2004), 『한국독립영화감독연구』(2012) 등 현재는 오즈, 알모도바르,히치콕, 지아장커 등 세계영화 감독을 연구 중. cinemhs@daum.net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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