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쿨투라 어워즈] 투명도 불투명도 아닌 것이: 시 「반투명」의 김민정 시인
[2022 쿨투라 어워즈] 투명도 불투명도 아닌 것이: 시 「반투명」의 김민정 시인
  • 오은(시인)
  • 승인 2022.01.26 2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투명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눈으로
그가 벽시계를 보고 있다.
오래 보느라 노려보는 거
그렇다,
한쪽은 어느 하나의 기면이라
신은 아침을 믿고 아침은 그를 믿어
그는 아직 신을 믿는다.
다만 아침은 아름다우니
그는 혼잣말을 내뱉는데
침대 아래로 손에 쥔 둥근 붕대가 미끄러진다.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팔로
휘적거리면서 그가 잡으려는데
집까지 굴러가는 테니스공이라 하고
십자로 칼집을 내었다 하니
식탁 의자는 여섯
다리는 넷씩이니까
도합 스물네개의 테니스공
하루 스물네시간 의자 발에다가
신겼다 벗겼다 하는 아홉살 자폐의 소년이 있어
저녁이면 그의 턱에 흰 수염이 새로 자란다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발로
차는데 그의 이불은 흘러내리지 않고
걸쳐진다,
헤이 거기 모자 바이 여기 모자
허공중의 모자는 아직 제 얼굴을 못 찾아
쀼루퉁한 입을 부풀려가며 기다리는 함박
눈.
그게 뭐나 되는 것처럼 밤새
눈이 내린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눈에
눈이 추위로 점점 커진다.
흰 침대보를 사물함에서 꺼내 터는 새벽
누구일까,
들었는데 팔이 긴 가면만이
저 눈을 감길 수 있다 한 이였는데.

- 《창작과비평》 2021년 봄호 

 


 

  김민정은 직진이었다. 그의 시선은 으레 꿰뚫고 나아가는 것이어서 그것을 받아 적는 시는 직구에 가까웠다. 테니스 코트에 메다꽂는 강력한 스매시와 네트에서 날렵하게 몸을 던져 라켓을 툭 가져다대는 푸시는 그의 장기였다. 속사포 같은 공격이 그의 주특기였던 셈이다. 지금까지 출간한 시집이 총 네 권, 작년 문예지 봄호에 발표한 시가 네 편, 삼삼함에서 사사로움으로 가는 길목이 딱 지금이었다. 아무리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해도 감정은 사사로울 수밖에 없고, 삼삼함에 간하는 마음 또한 별수 없이 사사로움에 기인하는 것일 테다.

  그사이 김민정은 최전방 공격수에서 발리와 드롭 샷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가 되었다. 2022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시’ 부문에 선정된 「반투명」은 기존의 김민정 시에서 약간 비껴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빨리 감는fast-forward’ 방식이 아닌 ‘천천히 되감는rewind’ 방식으로 쓰인 이 시는, 시간을 압착해서 순간을 만드는 데 능한 그가 순간을 팽창시켜 시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순간도 아니고 시간도 아닌 것이, 찰나도 아니고 영원도 아닌 것이, 투명도 불투명도 아닌 것이 병실에서, 창밖에서, 집 안에서, 마침내 시 속에서 펑펑 내린다.

  손에서 굴러떨어진 “둥근 붕대”는 유년 시절을 향해 천천히 굴러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이 내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는 일은 눈이 한다. 다행히 믿는 눈치다.

  오은(이하 오) 연초에 깃든 희소식입니다. 2022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시’ 부문에 김민정 시인의 「반투명」이 선정되었습니다. 축하하는 마음을 한발 앞서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김민정(이하 김) 예상치 못한 일이었어요. 작년 초에 시를 딱 네 편 썼어요. 앞으로 시를 쓸 수 있을까 없을까를 가늠하기 위해서 청탁을 받고 시를 썼어요. 결론은 “더 이상 못 쓰겠다”였습니다. 첫 시집을 냈을 때처럼 온몸으로 밀고 쓰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거든요. 저는 그렇게 쓰는 게 시여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오 쏟아붓는 시요?

  몸을 던지는 시요. 

   수상작 「반투명」을 읽고 최근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 2019)와 다른 방향으로 휘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선정 소식을 접하고 반문했다니까요? “제가 그런 시를 썼어요?”라고. (웃음) 「반투명」은 간결하고 논리적인 느낌의 제목이잖아요. 지금껏 제가 썼던 시의 제목과 너무 다르기도 하고. (웃음) 예전에는 10시간이 있으면 9시간 50분을 몸을 던지는 데 썼어요. 사람들이 활자가 빽빽하다, 읽기가 뻑뻑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게 저에겐 일종의 순수성, 시에 가하는 투명한 마음이었던 듯싶어요. 그래서 그렇게 쓰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어떤 변질된 느낌을 받았어요. 시에 몰두하고 시에 사력을 다하는 충실한 마음에서 멀어진 것 같아 시집 낼 때마다 “앞으로 난 안 쓸 거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던 거고요.

   다른 시인의 작품들을 볼 때보다 본인의 시를 볼 때 훨씬 더 엄격한 것 같습니다.

  내 시를 볼 때는 되게 막혀 있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집을 만들 때는 엄청 열린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문으로 들어온 사람이 다시 이 문을 찾았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때때로 저 문으로 들어오는 일이 생기면 반갑기도 하죠. 그래서 시집 만들 때는 확장되는 것 같아요. 열림의 유연성이라는 게 몸에 절로 새겨지는 것처럼

   작년 봄호에 발표한 네 편의 시를 다 찾아 읽어봤는데요, 저마다 결이 다르더라고요.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냈잖아요. 제게 일종의 기점이 되던 시기의 시들을 다시 쓰는 마음으로 썼어요. 첫 시집에서 네 번째 시집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면서요. 

   이번에 ‘오늘의 시’로 선정된 「반투명」은 두 번째 시집인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와 세 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 2016) 사이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맞아요. 두 번째 시집에서 세 번째 시집으로 가는 길목을 떠올렸어요. 그때의 몸 상태를 제가 너무나 잘 알잖아요. 시가 무서운데, 아닌 척하며 씩씩하게 행동했던 시기였지요. 공교롭게도 이 시를 쓸 때, 아빠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저는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었는데, 쓰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이 시를 쓸 수 있는 몸뚱어리가 아닌 것을요. 그런데 창비 편집자 김영선 님이 제게 계속 시간을 줬어요. 마치 하늘이 내린 사람처럼, 안 쓸 수 없게 만드는 부드러운 힘이 있었어요. 더는 늦출 수 없는 마감일에 “점심시간이니 다녀올 동안 쓰세요”라고 말씀하셨는데, 한 시간동안 마무리가 되더라고요. 여기 오기 전에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어요. 

   이 시에서는 붕대가 주요 모티브로 작용해요. 그 전까지는 깨지는 것, 꽝꽝 소리 나는 것, 돌처럼 단단한 것이 시의 씨앗이 되었잖아요.

  병원에 있으니까 당연히 아빠밖에 안 보이잖아요.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것 같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으면 병원의 시간은 정지해 있는 것 같으니까. 아빠가 놓친 게 돌이라든가 시계였다면 깨지거나 고장 나면서 끝날 텐데, 그게 하필 붕대였던 거죠. 상처 부위를 감아서 낫게 하는 붕대, 또르르 굴러가는 붕대, 세상 가벼운 붕대, 마침내 우리를 살리는 붕대. 굴러가는 붕대를 보는데, 굴러갔던 기억이 테니스공처럼 굴러왔어요. 아빠가 한때 테니스를 치면서 가르쳐줬던 것들이 있거든요. 무릎은 어떻게 구부려야 하고 공이 올 때 몸이 공보다 한 박자 앞서나가야 한다는 것들이요.

   일종의 리듬 만들기잖아요. 운동도, 시도.

  그렇죠. 그래서 공 끝을 봐라, 힘을 빼라 이런 말들이 어떻게 보면 시에 가까운 것이었지요. 시를 발표하고 별생각 없이 있었는데, 김승희 선생님께서 이렇게 시를 쓸 수 있는데 왜 지금껏 이렇게 안 썼느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이 시는 이 방식대로 쓰일 수밖에 없었구나 생각했지요. 현실하고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했던 모양이에요.

   그 당시의 몸을 떠올리며 썼다고는 하지만, 「반투명」이 시작詩作의 새 기점이 될 것 같아요. 투명도 불투명도 아닌 게, 다름 아닌 시 같기도 하고요.

  아빠가 쓰러지신 일이 어떻게 보면 저를 변하게 한 것 같아요. 그 ‘어쩔 수 없음’ 속에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도 있고요. 시를 써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게 반투명의 지점에 가닿게 만든 힘 같아요. 또 하나, 저는 자유로움을 놓친다고 느낄 때마다 번역 시집을 읽거든요. 반대로 너무 자유로웠나 싶으면 한시를 읽고요. 그게 어쩌면 투명과 불투명 사이를 오가다 반투명의 상태에 발을 들이게 해준 계기 같아요.

   김민정 시인이 기획한 문학동네포에지에는 「기획의 말」이 들어가잖아요. 그 종이가 또 트레싱지예요. 시집의 문을 여는 느낌을 주는 부분인데, 그것도 반투명이어서 놀랐어요.

  비치는 종이죠. 종이는 잉크를 빨아들이는 동시에 숨도 쉬어야 하거든요. 똑같이 비치는데 습자지하고는 느낌이 또 다르죠. 비친다는 사실은 붕대하고도 비슷해요. 틈을 통해서 살이 비치니까. 그 ‘비침’이 정직하게 살아요, 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여차하면 잘못 살 수도 있으니 종이를 보고 많이 배워요. 실제로 트레싱지는 잘못 구기면 손이 다치기도 하거든요.

   보이는 쪽에서 보이지 않는 쪽으로, 들리는 쪽에서 들리지 않는 쪽으로 향하고 있
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용수철을 떨어뜨렸겠지요. (웃음)

   떨어뜨리면 요란하니까. (웃음)

  그런데 한없이 가볍고 소리 없는 것을 쓰고 있구나, 아직할 말이 남아 있구나 이번에 느낀 거지요. 호명해주신 《쿨투라》와 동료 문인들에게 고맙습니다. 밤사이 동파되지 않도록 수도꼭지 살짝 틀어놓을 때가 있잖아요. 쫄쫄쫄쫄… 아직은 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야겠다고 느껴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언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보이지 않아도, 흘러버릴 걸 알면서도 좀 틀어놔야겠구나 해요. 

   붕대든, 공이든, 용수철이든 손에서 한번 빠져나가면 어디로 튈지, 흘러갈지 모르
잖아요. 그 상태로 계시면 됩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일전에 김민정은 “문학을 향한 제 열망과 욕심에 비해서 문학 본령의 구멍은 늘 너무 작았기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 같”(《PAPER》 2019년 가을호)다고 말했다. 먼 길은 오래 가야 하는 만큼, 도중에 지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이번 호명이 그에게 어떤 불씨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한편, 테니스에서는 득점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켜 ‘러브love’라고 일컫는다. 그의 시들을 떠올려보니, 어떤 스트로크를 구사하더라도 그가 친 공의 궤적은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이상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그는 이제 ‘공의 쓰임’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받으면 어떻게든 넘겨야 하는 공, 떨어뜨리면 어디로 튀어 오를지 모르는 공, 탄탄하고 단단한 상태로 단련되는 공. 김민정은 그 공을 가볍게 쥐고 다음 코트로 들어선다.

  그런 그가 올봄에 발표하기 위해 1년 만에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랠리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