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쿨투라 어워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간의 접촉: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소설가
[2022 쿨투라 어워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간의 접촉: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소설가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2.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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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대 한국소설을 어떤 식으로 논하든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있다. 그중 한명이 김초엽일 것이다.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출간부터 그녀는 한국소설의 중심부에 섰다. SF·여성·장애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다. 그러나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적어도 한국소설 안에서는 비주류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김초엽의 역할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녀가 낸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2021)가 2022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소설’ 부문에 뽑힌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SF·여성·장애를 키워드로 김초엽은 괄목할 만한 문학적 성과를 계속 쌓아가고 있다. 그녀는 성실하게 진화하는 소설가다.

  허희(이하 허) 먼저 축하 인사부터 드립니다. ‘쿨투라 어워즈’는 문화계 인사들의 설문을 종합한 결과로 선정되는데요. 그러한 만큼 작가님께도 의미가 특별할 듯싶습니다.

  김초엽(이하 김) 『방금 떠나온 세계』를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책인데 벌써 많은 분들이 읽고 기억해주신 셈이어서 기쁜 마음이 커요. 늘 지켜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데뷔작부터 워낙 큰 주목을 받으셨잖아요. 사람들의 기대가 힘이 되는 동시에 부담으로도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떤 마음으로 두 번째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쓰셨습니까?

  『방금 떠나온 세계』에 실린 작품은 전부 2019년, 2020년에 쓴 소설이어서 확실히 말씀하신대로 부담감이 좀 있었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일이 단지 행운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집필 의뢰도 가능한 다 받았고 마감도 많이 잡아놔서, 그런 부담감이 다작을 하게 된 원동력이자 동시에 압박이 되기도 했었어요. 다만 2021년 당시에는 아직 책으로 묶지 않은 여러 소설들이 적어도 저에게는 과거 작품보다 훨씬 좋은 글이구나, 하는 확신이 생겨났기 때문에 출간 무렵에는 별로 걱정이 없었고요.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 포착되는 ‘다른 감각’에 대한 사유는 작가님과 김원영 변호사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의 문제의식과 겹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 다.

  네 맞아요. 집필한 시기도 비슷하고 이어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다만 논픽션으로는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결론도 명료하게 매듭지으려고 했지만 소설은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보자는 생각이 좀 더 컸어요. 그래서 주제나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소설 관련해서는 너무 확고한 의견을 이야기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사이보그가 되다』는 2022년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수상작이기도 한데요. 작가님께서도 이 책에 실린 원고를 쓰면서 장애와 테크놀로지, ‘다른 감각’에 관한 공부와 생각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작가님의 소설 쓰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우선 공부가 굉장히 많이 되었고요. 소설을 쓸 때 주로 논픽션이나 소설 외의 다른 자료로부터 얻은 발상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확장해 소설로 만드는 편이어서 소설가로서의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렇게 논픽션 읽기-소설 쓰기가 긴밀하게 엮여 있는 방식에 대해 올해 에세이로도 좀 더 길게 풀어보려고 해요. ‘영향을 크게 미쳤다’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펴보면 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서점가에서는 ‘김초엽 열풍’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통계부터가 그래요. 『방금 떠나온 세계』, 『행성어 서점』(2021), 『지구 끝의 온실』(2020년 밀리의 서재판, 2021년 서점판) 모두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또한 놀라운 점은 작가님이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바로 얼마전에도 『므레모사』(2021)를 출간하셨습니다. 작가님의 글쓰기를 추동하는 원천은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2019-2020년쯤에 제 집필 속도를 과신한 나머지 너무 많은 마감을 잡아놨던 게 커요. 최근 출간된 단행본들은 대부분 재작년에 초고 작업을 어느 정도 해둔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2021년부터는 좀 더 제 속도에 맞게, 너무 빠르지도 않고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작업을 이어오고 있고요. 아무래도 이번에 여러 책을 내기 전까지는 아직 책 한 권을 낸 신인 작가에 불과하다보니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잘 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이후로 그런 마음들이 정리되고 ‘나 자신에게 좋은 이야기를 쓰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어요. 어차피 어떤 이야기를 써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제가 사랑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겠다는 마음을 앞으로의 추동력으로 삼으려고 해요.

   『방금 떠나온 세계』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인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집단 기억과 그 배타성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인데요. 

   인간의 뇌에 기억이 저장되는 방식이 ‘공간적’이라는 신경과학 연구를 다룬 기사를 읽고 쓰게 된 소설이에요. 기억이 공간적으로 저장된다면, 그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를 인간의 뇌보다 훨씬 거대하고 기하학적인 물리적 구조물로 옮겨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현대의 도서관, 혹은 데이터베이스를 시각화한 것 같은 느낌으로요.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출발했는데 당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가 장애학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배제’의 문제로 이어갔던 것 같아요. 단순하게 말하면 ‘정보에 대한 접근권’ 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지만, 일단은 그렇게만 해석되게 놔두고 싶지는 않아서 너무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았어요. 어떤 사람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게 될 수 있다, 그 여러 위치의 풍경을 조합하는 것이 우리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 이런 생각들이 담겼어요. 

   『방금 떠나온 세계』에 실린 또 다른 단편 「오래된 협약」은 적대적 타자와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환기하는 작품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인류 문명의 ‘금기’에 관한 탐색으로 이 작품을 쓰게 되셨다고요?

  음식 금기 문화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각 문화가 어떤 음식을 금기시하는지, 그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종교적인 이유이지만 실제로는 지리학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과 얽혀있다는 점을 소개하는 얇은 책이었는데요. 그 책을 보고 언젠가 음식 금기 현상을 SF적으로 해석하는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짧은 메모를 남겨두었어요. 「오래된 협약」에는 인류세에 대한 저의 생각,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지만 그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녹아들어간 생각들인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접촉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저에게는 완전히 공유될 수도, 완전히 포개질 수도 없는 세계들에 대한 탐구 자체가 『방금 떠나온 세계』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읽혔습니다.

  각각 다른 시기에 쓴 단편들이라 쓰는 과정에서는 잘 몰랐는데, 다 모으고 보니 공통적인 주제가 있더라고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촉’하려고 하는, 그 과정이 일종의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첫 접촉’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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