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쿨투라 어워즈] “제게 제일 중요했던 거는 서스펜스였어요”: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2022 쿨투라 어워즈] “제게 제일 중요했던 거는 서스펜스였어요”: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 전찬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2.01 0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의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베테랑〉을 선정한 이후 6년만에 〈모가디슈〉로 류승완 감독을 다시 만났다. 지난 〈베테랑〉 인터뷰 때 ‘시간을 이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류감독의 바람대로 〈베테랑〉은 극장에서 1300만이 넘는 흥행 대박을 터뜨린 후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군함도〉 이후 4년만에, 류감독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긴 공백기를 거친 뒤 내놓은 〈모가디슈〉는 360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1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두루 받은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이 2022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영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편집자 주

전찬일(이하 전) 반가워 류감독. 어찌 지내는지?

류승완(이하 류) 신작 〈밀수〉 후반 작업하느라고, 연초부터 빡빡하게 지내고 있어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완성된 영화들도 대개들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아직 개봉은 기약할 수 없겠죠.

시차가 꽤 있긴 해도 〈밀수〉의 김혜수 염정아 조합이 〈피도 눈물도 없이〉(2002)의 전도연 이혜영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는데….

제가 오래간만에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를 만든다고 그 영화랑 연관을 지으신 분들도 있는데, 그렇다고 여성이나 성 정체성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에요. 캐릭터 중심의 앙상블 영화죠. 김혜수 염정아뿐 아니라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등 다른 여러 배우들도 등장하니까요. 물론 김혜수 염정아 두 배우의 지분이 크긴 하지만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피도 눈물도 없이〉도 그렇고 초기에 영화를 연출할 때는 만드는 솜씨도 엉성하고 영화에 접근하는 태도에서도 좀 건방진 구석도 있긴 했어요. 지금 보면 확실히 그때는 진짜 치기도 있었고, 그런 게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뭐 대단히 성숙해졌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인물을 다루는 태도나 접근 방식이랄까, 그런 것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한 것 같아요.

〈베테랑〉이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중 최고의 한국 영화로 선택되고 나서 2016년 3월 인터뷰할 때, 류감독이 “항상 시간을 이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모가디슈〉가 그런 영화로 남을까?

아직은 모르죠. 시간이 더 지나봐야 되겠죠. 영화를 만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저의 바람이지, 시간을 이기게 만드는 것은 저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 게 비평의 역할이겠지. 〈군함도〉만 해도 그래. 지난 인터뷰 때 류감독이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은 무엇보다 친일청산이 안 된 것이라면서 〈군함도〉를 만들게 된 이유로 그 문제를 짚었는데, 개봉 후 영화가 친일 논란에 휘말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지. 그로 인해 류감독은 큰 충격을 받았고,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전언까지 돌았지. 〈모가디슈〉도 마찬가지야. 소말리아 하면 우리는 그저 해적으로 악명 높은 나라 정도로 알고 있어왔는데, ‘모가디슈’가 소말리아의 수도요, 유엔 가입과 연관해 우리나라와 아프리카의 그 작은 나라가 그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라는 사실을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됐단 말야. 그런 점에서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모가디슈〉는 아주 주요한 영화적 기능을 한 셈이지. 그런 사실을 알리는 게 〈모가디슈〉를 만든 주된 목적은 아니잖아? 아마 소말리아, 나아가 아프리카 국가들은 세월이 흐르면 훗날 〈모가디슈〉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지 않을까, 싶어. 평단도 다름 아닌 그 점 때문에라도 영화를 높이 평가하게 될 테고…. 더욱이 〈모가디슈〉는,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면 대박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을 36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이어 2021년 박스 오피스 종합 2위를 차지했잖아.

〈모가디슈〉의 흥행 성적에 대해 많이들 아쉬워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결과에 전혀 불만이 없을 뿐 아니라 만족스러워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적용이 됐었고 일본에서 하계올림픽까지 열렸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개봉 첫 주만 해도 성공적 상황은 아니었어요. 아니, 절망적이었어요. 그러다 아프간 사태 영향도 있었고,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뜨는 등 차차 사정이 호전돼 갔죠. 영화를 찾아주신 그 관객분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모르겠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모가디슈〉를 통해서 하고 싶은 건 다 한 거죠. 

이 인터뷰 준비 차 〈모가디슈〉를 넷플릭스에서 한 번 더 봤는데, 처음 볼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더라고. 논란이 많았던 조인성 연기도 더 좋았고, 처음엔 듬성듬성 봐넘겼던 김윤석 연기의 디테일도 좋았고….

김윤석 선배가 연기를 진짜 잘한다고 생각되는 게, 연기를 뽐내지 않고 잘하는 연기를 대놓고 드러내질 않는다는 거에요. 배우는 으레 자신감을 갖고 연기해야 해서 연기를 하다 보면 어떤 지점에서든 폭발하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있기 마련인데, 김선배는 그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아요. 김선배의 톤을 보면 흔들림 없이 그 중간 톤을 잘 유지시켜 나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더 확실히 활개를 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밀양〉에서 송강호가 전도연을 잘 뒷받침해줬던 것처럼?

그것과도 또 달라요. 대화 장면들을 유심히 보시면 말과 말 사이에, 그러니까 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과 말 사이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루어지는 지점들을 누가 리드하고 있는가를 보면, 항상 김윤석 선배에요. 그러니까 허준호 조인성 김소진 등 그 누가됐건 침묵의 순간 자력을 계속 품고 있는 것은 김선배에요. 저는 그게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그 에너지가 너무 강력하면 상대 배우들이 죽어버리거든요, 그 기를 못이겨서. 김윤석 배우의 대단한 점은, 자신의 그 강력한 자력을 뿜어내면서도 상대방을 죽이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냥 다른 배우들을 받쳐 주는 것과는 또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조인성 배우도 저는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해요. 미남 청춘 스타로서의 어떤 이미지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하는데, 본인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의 최대치를 해냈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모가디슈〉와 관련해 제일 궁금했던 건, 소말리아까지 간 이유가 어떤 필요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군함도〉로 인해 받은 ‘상처’를 털기 위해서 가능하면 한국에서 먼 데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 였어. 

김지운 봉준호 임필성 세 감독이 〈모가디슈〉 아이맥스 버전 테스트 시사하고 나서, 지금 선생님께서 하신 그런 얘길 했다고 하더군요. 류승완이 왜 저렇게 멀리까지 가서 저 고생을 하면서 찍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라고.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들까?” 등을 자문하곤 해요. 어떤 계기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이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감독이라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잖아요? 직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상을 계속 현실화해가는 일이기도 하고, 꿈을 실현시키는 일이기도 하고, 예술적 창작 행위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을 만들 때, 의도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끌려서 가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점점 어떤 명확한 의도가 있는 거에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내가 이 영화를 왜 만들지?”, 라는 질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요. 영화 자체가 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번 인터뷰 때 류감독이 〈군함도〉 작업이 너무 힘들어 그런 영화는 마지막이다, 이제는 작은 영화를 만들겠다, 고 그랬는데 제작비가 250억인가 들어갔으니 〈모가디슈〉도 〈군함도〉 못잖았잖아? 규모도 그렇고 동원된 인력들을 보면, 그것도 외국 사람들과 함께 찍었어야 했으니 어느 면에서는 더 힘든 작업을 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

〈군함도〉가 더 힘들었어요. 모든 면에서 그랬어요. 명백하게 〈군함도〉를 만든 경험이 없었다면, 〈모가디슈〉를 못 만들었을 거예요. 〈군함도〉를 만들면서 군중 씬Mob Scene을 통제하고 쇼트 시간을 버티는 것 등을, 〈군함도〉를 통해 충분히 익힌 덕분이었죠. 〈군함도〉는 소재의 비극성과 역사적 무게감이 작업 내내 모두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반면 〈모가디슈〉는 소재가 가볍지는 않았어도, 그에 비해 덜 힘들었어요.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울 정도의 과정은 아니었어요. 다들 그래요, 모로코에 다시 가고 싶다고….

모로코가 촬영지로 인기 있다는 것은 많이 들었는데, 영화를 보며 하도 실감이 나서 나도 적잖이 놀랐지.

모로코가 좋은 게 아프리카 지역인데 스페인 등 유럽과 가까워서, 이를테면 영화를 찍는 내내 기계적 결함이 생기거나 했을 때 수리나 교환 같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데다, 광선이 일정하게 작용을 하니 계획대로 촬영을 할 수가 있어요.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문화들이 뒤섞여 있어 굉장히 흥미로워요. 우리가 촬영한 도시는 바닥의 흙이나 야자수 같은 거는 다 심은 거예요. 한데 건축 구조나 양식이 비슷하니까 상대적으로 편했어요. 

이번에 모로코가 영화 만들기에 참 매력적인 곳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주었지. 그나저나 조인성 캐릭터도 그렇고 안기부 묘사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았을까? 균형감을 잡는 데 성공했다고는 보지만….

실제로는 안기부 참사관은 없었어요. 한국대사관에는 외교부 소속 직원들만 있었는데, 취재를 하면서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 파견돼 근무했던 분들의 인터뷰나 기록들을 보고 영화에 활용한 것들이 많아요. 아프리카 같은 경우는 당시 북한이 외교적으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을 견제하면서도 내부 감시가 워낙 심해 되게 불편했다고 해요. 저는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어요. 그 내부 갈등들이….

그런 것들을 영화가 잘 드러내 준 것 같아. 특히 결말부에서. 그 균형감이 〈모가디슈〉의 가장 성공적 덕목 아닌가, 싶어. 자신이 처한 개인적 처지를 견지하면서도, 최소한의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그런 선택이 돋보였다고 할까. 〈모가디슈〉는 ‘팩션’인데 팩트와 픽션의 결합 정도를 구분해 말할 수 있을까?

〈모가디슈〉가 ‘실화’였다는 걸 부각시키려 했다면, 오프닝에 그런 자막을 띄웠겠죠. 저는 실화에 영감을 받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군함도〉를 하고 나서의 반작용일 텐데, 제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가 살다 보니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있다, 라는 강참사관의 대사예요. 팩션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과연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일까,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싶은 사실을 사실로 믿는 거지 그게 진짜 사실일까, 같은 근본적인 의문이 있어요. 그렇기에 사실과 진실에 대한 추구를 게을리해선 안 될 테고요. 저는 〈모가디슈〉에서 그때 그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만 집중했고, 제게 제일 중요했던 거는 서스펜스였어요. 영화는 제가 만드는 거고, 영화 안에 벌어지는 상황과 이야기들은 온전히 제가 창조해낸 세계잖아요. 그래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했을 때, 어쨌거나 생존자들, 그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한테 누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소재 자체가 지닌 특수함이 있으니까 겸손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죠. 

류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서스펜스는 잘 전달됐지.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가장 못마땅했던 건 영화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인 결말부의 추격 시퀀스에서, 영화의 비장미로 봤을 때 북한 구교환 캐릭터만이 아니라 좀 더 더 죽었어야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거였어. 총알이 그렇게 많이 난사되는데 말야. 

실제 사건에서 제게 가장 강렬했던 게 다름 아닌 그 점이었어요. 그토록 수많은 총탄이 쏟아졌는데도, 단지 한 명의 희생자밖에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적으로 다가섰죠. 영화에서는 제가 그 설명을 할 타이밍을 놓쳤던 건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당시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사실상 훈련 상태가 좋지 않았고, AK 소총의 명중률이 되게 낮아요.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런 설명들을 조금 더 했어야 했고,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몇 장면을 만들지 않은 건 제 불찰이었던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는 사실 그렇게까지 난사하는 걸 원하진 않았는데, 동원된 배우들이 모로코 현지의 전문 엑스트라들도 아니고 해서, 그 공포탄을 장착시켜놓고 아무리 순서대로 하려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촬영 시간은 정해져 있지, 말은 잘 통하지 않지, 불가항력이었어요 한다고는 했지만….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그래도 실감이 안 나더라고. 벤츠가 튼튼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한데 그런 건 있어요. 책과 모래주머니로 테스트해봤는데, 책은 위험해도 AK 소총이 모래주머니는 못 뚫어요. 혹시라도 전쟁이 나면 모래주머니가 최고입니다.

그 아이디어는 최고야. 지면이 제약돼 있어 인터뷰는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네. 코로나 요인도 있고 해 비대면 인터뷰를 했지만, 〈밀수〉 개봉 후 인터뷰를 다시 하게 된다면 그때는 대면으로 좀 더 길게 하자고. 바쁜데 시간 내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대학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 ㈜문화광장 대표 등도 맡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2008)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