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쿨투라 어워즈] 세계로 뻗어가는 2022 오늘의 한국문화: 오늘의 시,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그리고 미술과 웹콘텐츠
[2022 쿨투라 어워즈] 세계로 뻗어가는 2022 오늘의 한국문화: 오늘의 시,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그리고 미술과 웹콘텐츠
  • 유성호, 홍용희, 허희, 유지나, 김민정, 강태규, 손정순
  • 승인 2022.02.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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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 전반의 이슈와 동향動向

유성호 안녕하십니까? 오늘 ‘쿨투라 어워즈’ 좌담은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졌던 우리 문화의 동향을 개괄적으로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큰 틀에서 검토함으로써, 현재 우리 문화의 지향이랄까 좌표랄까 하는 것을 성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우리 평단에서 가장 활발하고 역량 있는 현장 비평을 해오신 여러 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한국문화는 세계적으로 한류 붐을 일으키며 많은 성취가 있었습니다. 《쿨투라》가 설문을 통해 선정한 ‘오늘의 시,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목록을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분씩 활동 분야의 이슈나 동향을 말씀해주시지요.

오늘의 시 동향

홍용희 시 장르란 본래 작고 나직하고 의기소침한 생리를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사회 전면에 나서서 존재감을 과시하거나 주목을 받아본 적은 드물지요. 그런데 문제는 2021년 시단이 더욱 표나게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소통의 장이 위축된 탓일까요. 신진들의 새로운 목소리도 전면으로 울려 퍼지지 못했습니다. 이점은 새로운 세대의 서정이 미시적인 일상성의 물결 속에서 자신을 반추하고 사유하는 동심원의 언어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과도 깊이 연관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우리 시단이 공백기였던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세대에 걸쳐 제각기의 영역에서 “혼자의 넓이”를 확장하며 무심한 듯 다정하게 깊고 정갈한 화폭을 그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 권의 시집을 꼽으라면 이산하의 『악의 평범성』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높고 위태롭고 외로운 시적 삶의 진정성도 평가되지만 우리 시대의 어떤 화두를 머금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라고 했던가요. “악의 평범성”으로부터 스스로 성찰하기, 조금씩 벗어나기, 여기에 포스트 코로나를 향한 시대정신과 포월의 지혜가 있지 않을까? 여기에 우리 시의 새로운 도약과 출구를 기약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소설 동향

허희 제가 생각하는 ‘오늘의 소설 동향’은 2021년 한 해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동향은 공시적인 면 뿐만 아니라 통시적인 면을 함께 고려해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분기점이 되는 ‘사건’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2010년대 중후반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여전히 한국문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때 두 개의 사건이란 세월호 사건과 문단 성폭력 사건을 가리킵니다. 세월호 사건과 문단 성폭력 사건 이후 한국문학의 무게중심은 ‘윤리’로 분명하게 이동하였습니다. 이전에도 문학의 윤리는 언급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사건 경험을 전후로 하여 뚜렷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민족 · 노동 · 탈식민 등 거시 주제 안에서 문학의 윤리를 거론하였다면,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거시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문학의 윤리 자체를 전면화하는 흐름이 강화된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 기초하여 저는 오늘의 소설 동향을 논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 역시 오늘의 소설 동향을 파악하는데 주요하게 참조해야 할 요소임을 부인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문학계에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중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세월호 사건과 문단 성폭력 사건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단 성폭력 사건에 의해 촉발된 일련의 대응은 한국문학의 남성 질서를 재편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남성적 서사의 기반 위에 성립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구도에 균열이 생겨난 겁니다. 덕분에 계속 작품을 쓰고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기회를 얻지 못하였던 여성 작가들이 약진하였고, 과학소설과 퀴어소설 등 그간 문단문학 주변부에 위치하던 장르들이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쿨투라 어워즈 소설에 김초엽 작가가 출간한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가 선정된 결과도 이러한 오늘의 소설 동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오늘의 영화 동향

유지나 2021년 영화계는 재난영화라는 장르가 재난일상으로 다가오는 ‘코로나 블루’ 현상을 실감나게 해준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브레히트식 ‘거리두기’가 일상적 의무로 작동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가온 셈이죠. 그런 상황은 2020년에 이어 영화관에서 영화보기 문화를 OTT시대 영화보기 양식으로 홈시네마, 혼영 문화로 급변하는 현실을 보여준 셈입니다. 이런 거리두기 상황으로 관객이 70% 급감하는 동시에 방역비용 증가로 인해 서울극장이 문을 닫았고, 전국 1,100여 체인점을 가진 CGV도 전망이 불투명해진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30% 이상 영화관을 축소하는 등…. 이제 영화관을 주 공간으로 삼아온 영화문화는 4차 산업시대의 디지털 변혁을 맞이했습니다. 무성흑백영화에서 유성, 칼라, 디지털 기술로 변화해 온 영화기술사가 보여주듯이 영화는 예술이자 기술혁신에 가장 민감한 분야라는 점을 팬데믹 상황이 증명해낸 셈입니다.

영화산업은 위기를 맞이했지만, 영화관람을 중심으로 보면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회복을 기대하면서 2020년부터 개봉이 연기됐던 영화들이 2021년 들어서 연이어 개봉하는 양적 풍요를 보여주었는데요, 영화관 개봉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기존 양식을 넘어 영화관과 온라인에서 동시개봉하거나 온라인 개봉이 중심이 되는 변화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OTT 영화세상을 증명한 것이 지난 한 해에 벌어진 주목해볼 만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이런 형상을 증명하듯이 재난위기성 서사를 담은 작품들과 독립예술영화들의 개봉이 팬데믹 시기 이전보다 확대된 성과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오늘의 드라마 동향

김민정 2021년은 K-드라마의 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가슴 벅찬 해였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드라마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디지털 실크로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는데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마이 네임〉 〈지옥〉, 그리고 최근에 공개된 〈고요의 바다〉까지 많은 드라마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드라마의 세계 경쟁력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토종 OTT에서 선보인 드라마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은 역대 해당 OTT 가입기여도 최고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어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OTT 오리지널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공중파 드라마의 반격도 만만치가 않았어요. 한동안 지상파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로 암흑기를 보냈는데, 2021년 한 해 동안 사극으로 드라마 왕국으로 군림했던 시절의 저력을 과시했어요. SBS 〈연모〉와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이 그 주인공인데, 두 작품이 공통으로 여자 등장인물들의 주체적 선
택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MZ 세대의 관심사인 ‘정치적 올바름PC’을 전면에 내세워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막장드라마’ 또한 올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펜트하우스〉와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시즌제로 방영될 정도로 열광적인 호응이 있었어요. 여러모로 아주 풍요로운 2021년이었습니다.

오늘의 대중음악 동향

강태규 시야를 가린 팬데믹의 안개는 해를 이어 자욱했습니다. 대중음악계도 직격탄을 맞았죠. 지난 2년간 공연업계는 90% 매출 감소를 기록했습니다.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죠. 팬데믹의 규제는 공연의 지형도부터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이돌은 관객 없는 비대면 공연으로 전환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K-POP은 해외를 중심으로 앨범,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이어갔고 이제 팬덤을 공고히 구축한 주류 음악으로 안착했습니다. K-POP 음반 판매량은 전년 대비 42.9%나 늘어났고 수출도 2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국내 뮤지션들의 역주도 눈에 띕니다.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은 신인 이무진의 탄생은 또다른 희망의 신호탄이었죠. 3집 앨범 《시편psalms》을 발표한 정재일은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OST로 지구촌 음악 팬덤을 거머쥐었습니다. 팬데믹의 불안전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음악관계자들은 분주한 발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죠. 새로운 음악 플랫폼을 찾기 위한.

《쿨투라》와 한국문화

손정순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어렴풋이 보이던 오늘의 문화가 조금 선명해집니다. 10호만 내자고 결의한 《쿨투라》가 이번 2월호로 통권 92호를 맞았으며, 올 10월이면 통권 100호를 맞게 됩니다. 오늘의 문화동향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 제가 문화잡지를 창간하게 된 계기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03년 7월, 도망치듯이 프랑스 국제문화센터 Centre Culturel International de Cerisy-la-salle에서 열리는 일주일간의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파리에서 동서쪽으로 320여 ㎞나 떨어진 바닷가 작은 마을 스리지-라-살, 문화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성 castle에서 일주일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문 문화전공 교수와 학자들이 모여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의 열띤 세미나를 마치면 매일 저녁 만찬과 함께 댄스파티가 열렸습니다. 불어 한 마디 못하는 제게 떠듬거리는 영어와 자꾸만 엉키는 스텝은 이곳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도망치게 했습니다. 무작정 이탈리아로 넘어가 신·구도시들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시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라고 부르는 국제기숙사에 묵게 되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아직 한국관Maison de Corée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관Fondation Deutsch de la Meurthe에 묵었습니다. 본관에는 피아노가 있는 널찍한 홀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티를 하기도 하고 가끔 프랑스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넓은 도서관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한국 관련 책들은 물론 잡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당시 프랑스 시내의 주요 서점들을 둘러봐도 한국도서 번역본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그것마저 공인할 수 없는 수준 낮은 번역이라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파리의 서점에는 문화에 관한 서적과 잡지가 다양했으며, 특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문화 관련 교육책과 비디오들이 많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웠습니다. 어린이책의 경우 우수한 삽화(그림)와 아이들이 종이에 베이거나 다치지 않고 책과 뒹굴며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천으로 만든 책, 색깔과 명암, 원근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그림동화, 비디오 등은 제게도 미술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는 문화공부가 되었죠.

프랑스에서 돌아온 저는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을 지향하면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잡지가 한 권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곧바로 인문학자들과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틈이 날 때마다 떠나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 “문화잡지는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낭설과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아닌 문화전문지 창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간과 더불어 설문을 통해 한국문학과 한국문화를 조명하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소설, 영화』를 기획하고 최고작을 수상하여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문화 황무지에서 창간호 작업을 함께 훌륭하게 일구어주셨던 편집위원 강유정, 김서영, 강수미, 강태규 선생님께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토대를 닦아주신 덕분으로 쿨투라는 통권 51호(2018년 9월호)부터 월간으로 변환하여 지금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쿨투라는 뉴욕 러브페스티벌, 상해와 북경문화탐방, 런던한국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칸국제영화제,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 등 많은 국제문화행사에 공식 초청받거나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한국문화산업의 현장을 체감했습니다. 2010년 홍용희 교수님과 함께 미국 뉴저지주립대학 특강을 갔을 때, 당시 학생들이 한국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하고 Mr. Kim에 대해 질문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한류 붐으로 인해 대한민국을 모르는 세계의 대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파리 시테에도 한국관이 지어졌으며, 세계의 주요 문화예술행사에 한국문화가 빠지면 행사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이제 한국문화는 세계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참여했을 때 세계인들이 한국문화와 문화전문지 《쿨투라》에 대해 보여준 관심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고 감동적이었습니다.

2. ‘쿨투라 어워즈’ 수상작에 대한 평가

유성호 정말 많은 문화계 이슈들이 있었네요. 그 중심에 쿨투라가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설문을 통해 선정된 수상작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2022 쿨투라 어워즈’는 지난 한 해 동안 한국문학과 문화가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살펴보며 그 의미를 기념하는 상입니다. 2006년 《쿨투라》 창간 이후 시인, 소설가, 평론가, 출판인, 편집인으로 구성된 100명의 추천위원을 통해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소설, 영화』에서 수상작을 선정하여 장르별 시상과 단행본 출간을 해왔습니다. 최근 수상자로는 2020년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시 「스페어」의 안희연 시인, 소설 「완벽한 생애」의 조해진 작가, 2021년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 시 「가여운 거리」의 허연 시인, 소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은희경 작가가 있습니다.

올해부터 ‘쿨투라 어워즈’는 드라마와 음악 부문으로 그 분야를 확장하였으며, 《쿨투라》에 필자로 참여한 장르별 작가, 연구자, 전문가 100명을 추천위원으로 선정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설문을 집계한 결과 시 「반투명」의 김민정 시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의 김초엽 소설가, 영화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 드라마 〈D.P.〉의 한준희 감독, 음악 〈Next Level〉의 에스파가 쿨투라 어워즈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동안 쿨투라 기획·편집위원으로 꾸준히 참여해오신 선생님들께서 올해의 수상작을 어떻게 보셨는지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김민정 시인의 시 「반투명」

홍용희 김민정은 언어의 날실과 씨실로 창백한 병실 풍경을 「반투명」의 태피스트리로 짜고 있습니다. 어째서 “반투명”의 태피스트리일까요? 이 시의 씨눈은 여기에 있습니다.

병실 속의 “그”가 바라보는 건 “벽시계”이면서 “가면”으로 투영된 “신”입니다. 아름다운 아침이 다시 오고 있다는 것은 “가면” 속의 얼굴이 “신”일 것임에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물론 이것은 추정이지요. “신”은 투명하여 옆에 있어도 볼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가시적인 사물과 비가시적인 신이 만나 “반투명”의 질감을 직조하고 있습니다. 

병실의 “침대 아래로 손에 쥔 둥근 붕대가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팔로/ 휘적 거리지만” 환자 스스로는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몽환적인 상상이 열립니다. “붕대”는 스물네 개의 “테니스공”이 되어 그리운 집을 향해 굴러갑니다. 환자인 그는 “아홉살 자폐의 소년”이 되어 “의자 발”에 테니스공을 “신겼다 벗겼다” 합니다. 불투명한 현실과 투명한 환상이 만나 “반투명”의 직물이 만들어지는 현장입니다.

현실과 환상은 계속 이어집니다. “발로” “이불”을 차지만 “그”의 발은 이미 마비되어 뜻대로 움직여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몽상의 유영이 펼쳐집니다. “허 공중”에 떠돌던 “모자”가 “함박눈”이 되어 날립니다. 눈은 이내 추위가 되어 겨울밤을 붙잡지만, 그러나 “새벽”은 옵니다. 누가 “새벽”을 몰고 왔을까요. 유일하게 “저 눈을 감길 수 있”는 “가면”의 주인공, 즉 “신”이겠지요. 

사물/신, 현실/환상, 가시/비가시 등의 불투명과 투명의 대위적 계열체가 날실과 씨실이 되어 “반투명”의 태피스트리를 내밀하게 짜고 있는 현장입니다. 병실의 풍경은 이처럼 “반투명”으로만 그려질 수 있는 것이지요. 아니 사실은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다만 육신이 마비되는 치명적 상황에서만 있으나 보이지 않는 대상들이 새삼 제대로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 시가 끝난 여백의 자리에서 이런저런 말로다 하기 어려운 생각과 생각들이 다시 일어나 수런수런 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허희 2010년대 말부터 2020년대 초 한국소설을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여러 작가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김초엽 작가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데 다들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단과 대중 독자 모두에게 인정받는 소설가니까요. 그 이유로 여러 설명을 할 수 있겠지요. 제가 보기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쓰는 작품은 비유하자면 촉촉한 SF소설이라는 점입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소외된 존재들 간의 관계 맺기가 환기하는 윤리적 감성이 이러한 촉촉함의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인 『방금 떠나온 세계』에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번 작품들의 일관된 특징은 장애를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인지 공간」이라는 소설을 예로 들어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서 인지 공간은 공동 지식 구역을 뜻합니다. 개개인의 앎을 넘어 통합된 앎을 집적시킨 구조물인데요. 이곳에 들어오면 자연의 이치와 세계의 구조 등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됩니다. 

반면 숨겨진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지 공간이 개개인의 모든 기억을 축적하지 않는다는 점과 관련돼요. 불필요한 기억은 저장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때 곰곰 따져 물어야 할 것은 유용함과 무용함을 가르는 기준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거죠. 그러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 바로 ‘이브’입니다. 이브는 태어날 때부터 작고 약했는데요. 그로 인해 건강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인지 공간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이브는 이른바 정상인의 세계에 속할 수 없는 장애인의 은유인 셈입니다. 그런데 낙오된 이브야말로 인지 공간의 허점—진실을 간파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가령 세 개의 달 에피소드를 거론할 수 있겠네요. 이브가 사는 세계에서 달은 원래 세개였습니다. 한데 언젠가부터 세 번째 달이 하늘에서 사라져버렸는데요. 이후에 인지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애초에 달이 두 개였던 것처럼 인식합니다. 명백한 착오이죠. 오직 이브만 이와 같은 오류를 발견해냅니다. 이처럼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 김초엽 작가는 장애가 온전한 기능의 결함이 아니라 다른 감각의 발현이라는 윤리적 태도를 견지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

유지나 〈모가디슈〉는 무엇보다 현실과 영화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현실 토대 작품으로, 현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재난상황이란 점에 주목해볼만 합니다. 흔히 대중영화를 장르로 구분하는 여러 채널에서 이 작품을 ‘액션/드라마’장르로 분류하지만, 제 관점에서 이 작품은 재난상황이 두드러진 ‘스릴러’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 먼 과거도 아닌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내전으로 고립된 남북 대사관 사람들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소통하며 죽음을 무릅쓴 탈출극을 벌이는 상황을 심리극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로 그려냈습니다. 거대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고난도 제작방식으로 현장의 현실감을 살린이 작품은 대중오락성도 크지만, 그와 동시에 최근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사태,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두 차례 세계전쟁 후 탄생한 UN의 기능을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성찰하게 해주는 역사교육 효과를 흥미롭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플롯 구성상, 본격적 탈출극이 벌어지는 후반부 상황에서 벌어지는 심리극적 반전과 과격한 차량 추격씬 연출은 캐릭터 내면과 외부적 상황이 강력하게 조율되는 점에서 류승완감독 연출력의 절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특히 캐릭터들간의 관계에서, 대한민국 한 대사(김윤석 분)와 안기부 출신 강참사관(조인성 분)의 대립과 갈등, 이들과 북한측 림대사(허준호 분)와 태참사관(구교환 분)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타협도 주목해 볼 만한 심리적 서스펜스를 보여줍니다. 

한준희 감독의 드라마 〈D.P.〉

김민정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D.P.〉는 갑과 을의 수직적인 관계 위에 형성된 폐쇄적인 사회를 주요 모티프로 한다는 점에서 최근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 속 한국적 세계관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내는데요. 다른 드라마들과 결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안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자연스레 이동해요. 이병이 일병이 되고 일병이 상병이 되고, 상병이 병장이 되고…. 등장인물이 상위 계층으로 저절로 이동하면서 그 체제의 수호자가 되거든요. 데스 게임의 틀을 가져온 〈오징어 게임〉보다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이 훨씬 두드러져요.

그런 비극적 현실에서 저는 ‘한호열 상병’(구교환 분)의 존재가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한호열 상병은 유머와 위트를 특장점으로 삼는 캐릭터인데, 극 중 문제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나 에두르는 방식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와해하고 당사자들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요. 이제까지 한국 드라마에 이런 말랑말랑한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엄청나요. 사실 한호열은 군대에서는 상병, 군대 밖에서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기 때문에 힘의 피라미드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갑이거든요. 이제까지 이런 ‘갑’ 캐릭터가 한국 드라마에서는 없었어요.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죠.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갑, 나아가 아래가 아닌 위에서 시작되는 세계관 전복의 꿈을 꾸게 하는 이상적인 갑의 출현을 기대하게 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유독 애정이 갔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호열이 입에 달고 사는 ‘호랑이 열정’이란 자기소개도 범의 해 2022년에 딱 어울리는 혁명 구호가 아닐까 싶어요. 마침 올해 대통령 선거도 있고, 대한민국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어흥, 범 내려온다~!

에스파의 음악 〈Next Level〉

강태규 이렇게 개성적이고 한 눈에 사로잡아버리는 비주얼, 그리고 눈과 가슴을 동시에 두드리는 공감각적 사운드. 음악이 듣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보아야한다는 비현실적 인식을 공감하게 만드는 아티스트 그룹. ‘에스파aespa’. 2020년 11월 17일에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4인조(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 다국적 걸그룹입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가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죠. ‘현실 세계’의 멤버들과 ‘가상 세계’의 아바타 멤버들, 그들의 곁에서 서포트해주고 조력자 역할을 하는 ‘가상 세계’ 속의 신비로운 존재들이 그룹의 멤버로서, 현실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그룹으로 이미 세계적인 팬덤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발표한 곡 〈Next Level〉의 뮤직비디오는 2억뷰를 눈앞에 두고 있죠. 뮤지션의 인기는 역시 음악 안에 해법이 있습니다. 〈Next Level〉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며, 특히 ‘보여주는 음악’으로서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오늘의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으니까요. 〈Next Level〉은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Fast&Furious: Hobbs&Shaw〉의 OST를 리메이크 했습니다. 온전히 다른 향기의 곡이죠. 에스파 특유의 그루비한 래핑과 파워풀한 베이스리프가 온몸을 흔들게 하는 힙합댄스 곡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는 기존 팬덤과 글로벌 마케팅에 대한 지원 역시 에스파의 힘을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에스파를 보면서 극강의 아이돌 아티스트의 탄생의 기원을 떠올려 봅니다.

30년 가까이 축적된 K-POP 아이돌 기획시스템 기술의 성장과 노하우는 드라마와 같습니다. 실패를 거듭한 세월과 투자된 자금은 환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입니다. 아이돌 산업이 확장되면서 동시에 아이돌 멤버들의 개별적 성장도 동반됐지요. 아티스트로서 끊임없는 변모와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그룹의 멤버로서도 개별적 아티스트로서의 존재감을 동시에 장착하게 되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합니다.

그룹 에스파의 족적은 이제 시작입니다. 숨겨두었던 에스파의 이야기가 구현되면서 그들이 꿈꾸는 위엄한 제국이 가시화될 것입니다.

설문 통계, 오늘의 미술과 웹콘텐츠를 비롯한 기타 문화 장르

손정순 윤여정 배우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미나리〉(정이삭 감독)에서 시작해 〈Permission to Dance〉(방탄소년단), 〈Next Level〉(에스파)로 이어지고, 〈D.P.〉(한준희 감독), 〈오징어 게임〉(황동혁 감독)으로 마무리된 K-Culture의 2021년은 눈부셨습니다.

전 세계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는 지금, 《쿨투라》는 다양한 한국문화의 이슈들을 매호 테마로 다뤘습니다. 특히 〈아티스트 윤여정〉(85호), 〈BTS〉(89호) 특집은 《쿨투라》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획으로 국내외 독자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습니다. 본지는, 특히 지난해는 해외수출번역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국문과 영어 번역본을 함께 싣게 되었는데 번역 콘텐츠 또한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대외적으로 받았습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K-매거진의 위상을 제고하는 본지는 콘텐츠 수출과 홍보를 위해 “제73회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참석하였는데 그곳 현장에서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죠. 한글을 배우고 있다며 한글을 한자 한 자 읽어보는 외국인들,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으로 꼭 유학 가고 싶다는 현지인, 파본이어도 좋으니 《쿨투라》 잡지를 한 권만 판매해 달라고 조르는 한류 독자들, 한국 웹툰과 일러스트, 한국 미술 등 한국 아트산업에 대해 관심을 보인 이탈리아 바이어, 콘텐츠를 맞교환하고 싶다는 프랑스와 캐나다를 비롯한 수많은 잡지인들……. K-팝, K-드라마, K-무비, K-아트등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인 해외 방문객들로 한류를 뜨겁게 체감했던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문에는 오늘의 미술(작가들의 전시와 작품 활동)과 웹콘텐츠(웹소설, 웹툰 등)에 대한 문항도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집계 결과 미술부문은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안준 《온 그래비티On Gravity》, 이건용 《Bodyscape》, 이배의 《BLACK》, 웹콘텐츠에서는 배사과 〈장난감〉(웹툰), 싱숑 〈전지적 독자 시점〉(웹소설), 후로스트 〈변방의 외노자〉(웹툰), 〈장사의 신〉(유튜브) 등이 고른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심 끝에 최고작을 결정하지 못하였으며, 오늘의 미술과 웹콘텐츠는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또한 최근 대중성만을 쫓기보다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전문비평가들의 양상이자 문화의 흐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들을 잘 파악하여 내년 ‘쿨투라 어워즈’에 반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지 못했지만 방탄소년단의 〈Butter〉와 드라마 〈오징어 게임〉(황동혁 감독) 또한 문화예술 전문가들의 높은 추천과 지지로 최종 수상자 선정을 고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전문비평가와 문화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각분야의 최고작을 선정한 ‘2022 쿨투라 어워즈’야말로 한국문화 콘텐츠의 현재를 가장 잘 반영한 한류, 그 뜨거운 현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성호 감사합니다. 한 해의 문화를 짚어보는 ‘쿨투라 어워즈’는 좋은 한국문학과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한국 문화콘텐츠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소중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종합 문화전문지를 창간하여 통권 92회까지 한호도 결호 없이 발간해왔다는 사실이 기적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전문가 선생님들의 좌담은 오늘 우리 문화의 현재를 짚어보고 100호를 준비하는 《쿨투라》가 미래 문화를 전망해보는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획·편집위원 선생님들과 독자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좌담 참여
유성호  사회, 문학평론가, 본지 주간, 한양대 교수
홍용희  문학평론가, 본지 시 기획위원, 경희사이버대 교수
허희     문학평론가, 본지 소설 기획위원, 서울예대 강사
유지나  영화평론가, 본지 영화 기획위원, 동국대 교수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음반 기획자
김민정  드라마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교수
손정순  시인, 본지 발행인, 문화예술 기획자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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