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 제주 본태박물관 & 현대예술가들
[미술관 탐방]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 제주 본태박물관 & 현대예술가들
  • 김명해 (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2.0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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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태박물관

2022년 신년, 제주의 호랑이 기운을 찾아간 두 번째 방문지는 본태박물관이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서 서쪽으로 약 25㎞를 달리면 제주별장마을 비오토피아 인근, 한라산  구릉지대에 본태박물관이 있다. 달리는 차 창밖 주변은 노랑과 초록빛으로 가득한 귤밭과 이름 모를 오름, 선명한 하늘이 제주만의 풍경으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광활한 대지에 잠깐씩 등장하는 세련되고 독특한 형태의 건물들도 눈에 들어오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방주교회,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으로 요즘 ‘핫 플레이스hot place’라 한다. 미술관을 탐방하며 다니다 보니, 미술관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물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고 그러다 건축가의 이름도 알음알음 알게 되었다. 안도 타다오Ando Tadao(1941- )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노출콘크리트에 빛과 물을 건축요소로 끌어들여 건축과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안도 타다오 만의 건축철학이 담겨있고 그가 설계한 국내 최초의 박물관이자 미술관이 바로 본태박물관이다. 박물관 이름인 ‘본태’는 불어로 ‘봉떼bonté’ 즉 ‘아름답다, 좋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자로 ‘본태本態’는 ‘본래의 형태, 아름다움, 본질’이라는 뜻으로 인류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함을 목적으로 2012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설립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본태박물관은 경사진 대지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긴 삼각·사각형의 간결하고 정제된 건물이 능선을 따라 층을 이루게 지어져 공간적 조화가 돋보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 연결된 담장은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담인지 구분이 없고, 곧게 뻗은 우리의 전통 담장과 담을 따라 잔잔히 흐르는 물길은 경건함이 느껴진다.

안도 타다오는 최대한 현지의 돌과 물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 물성을 살리면서 자연의 빛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취재하러 간 날 공기가 깨끗하고 날씨도 화창하여 맑은 하늘, 뭉게구름, 상큼한 바람, 눈부신 햇빛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박물관의 격格을 더 높여주었고, 건축가의 의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박물관의 설립자는 현대가의 며느리이자 고故 정몽우 현대 알루미늄 회장의 부인인 이행자(1945- ) 이사장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30여 년간 애정 어린 노고로 수집한 소장품을 통하여 한국공예의 새로운 미래가치를 탐구하고, 현대와 소통하며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국제사회와도 나누기 위해 박물관을 설립하였다고 한다.

ⓒ본태박물관 페이스북

강렬한 생동감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국 전통 수공예품들은 저를 언제나 즐겁게 만들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이 민속공예품들을 수집하는 즐거움 덕분에 힘든 세월을 견딜 수 있었죠.
  - 2013년 1월 《레이디경향》 인터뷰 중에서

이 이사장은 우리의 민속품과 공예품에 담겨있는 아름다움과 운치가 주는 매력에 빠져 수집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수집한 전통 생활용품과 수공예품은 현재 제1전시관에 《아름다움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상설 전시되어 있다. 2층부터 1층까지 한 획으로 이루어져 복도 없이 모든 공간이 차례대로 펼쳐지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공간으로 책장, 책탁자, 문갑, 서류함 등의 목가구와 담배함, 받침대, 좌등, 도자기 등의 일상용품, 자개농, 경대, 병풍, 반짇고리 등 화사한 규방물건들, 찬장, 뒤주, 소반 등의 주방가구, 선과 색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조각보와 자수가 놓인 복주머니, 장신구, 베개 등 민간공예품이 어마하게 전시되어 있다.

제1전시관이 전통을 품은 직삼각형의 공간이라면, 제2전시관은 현대를 품은 직사각형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높이에서 만나는 삼각과 긴 사각마당을 가진 두 공간은 동질감을 가지면서도 단의 차를 두고 만나 다양한 공간감과 느낌을 연출한다.

제2전시관은 입구부터 높은 천정이 압도적이며 주전시실로 연결되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신을 벗고 입장을 하는데, 마치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 듯 편안한 공간 속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

제2전시관 ⓒ쿨투라

1층 주요 전시 작품으로는 미니멀아트의 대표주자 프랭크 스텔라(1936- )의 1992년 조각품, 20세기 현대조각의 새로운 장을 연 안소니 카로(1924-2013)의 〈물결Wave〉, 대담한 색상과 특유의 ‘컷아웃cutout 기법’으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팝아트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1944- )의 〈불타는 입술Burning lips〉,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1881-1955)의 노동연작 〈건설노동자Les constructeurs〉,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늘어진 시계La montre molle〉, ‘LOVE’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1928-2018)의 〈희망Hope〉, 영국 조각가 데이비드 내쉬(1945- )의 〈두 개의 절단 모서리 기둥Two Cut Corner Columns〉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 ⓒ본태박물관

2층은 해프닝과 비디오 아트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작품 〈티비 첼로TV Cello〉를 비롯한 백남준의 작품들과 본태박물관 설계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는 스터디모형과 건축과정을 사진으로 모아둔 스틸 컷이 전시되어 있다.

제3전시관은 일본의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 쿠사마 아요이Kusama Yayoi(1929- )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대표작 〈호박Pumpkin〉 한 점과 〈무한 거울 방―영혼의 광채, 2008〉가 상설 전시되어 있다. 노란 호박모형에 검은 물방울무늬가 있는 〈호박〉은 점dot과 그물망net 무늬의 무한 반복과 증식·확산을 통해 ‘인간존재의 생성과 소멸’, ‘삶의 영원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빛을 발산하는 전구가 모빌처럼 불규칙적으로 매달려 있는 〈무한 거울 방〉은 사방이 거울로 감싸진 빛의 공간으로, 알록달록 색의 변화와 시선을 돌릴 때마다 펼쳐지는 매직현상은 우주 은하계의 한 부분인 것처럼 환상적이다. 점이 거울에 반사되어 끝없이 재생된 공간은 작지만 무한한 공간이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나의 의지를 불어넣고 싶다. 나의 예술을 종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 『501 위대한 화가』, 스티븐 파딩, 박미훈, 2009, 마로니에 북스

쿠사마 야요이는 어린 시절부터 환각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예술작품은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환각적인 이미지들을 쏟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를 사로잡는 그녀의 예술적 매력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위트와 유머, 공간을 삼켜 버리는 강렬한 색채와 투명하면서도 대담한 시각적 풍요로움에 있다. 현재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술을 넘어 영화, 패션디자인, 문학 등 예술범주의 다양한 매체들을 자유롭게 실험하며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Pumpkin ⓒ쿨투라

제4전시관은 우리나라 전통 상례를 접할 수 있는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상여와 꼭두의 미학〉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조선 후기 목상여와 꼭두(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를 관람 할 수 있어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제5전시관은 현재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정서가 깃든 불교 미술의 매력〉을 주제로 조선 후기의 불연, 용선대 등 몇 점 남아 있지 않는 희귀 유물과 동자상, 해태상 등 다양한 종류의 불교 유물 200여 점이 전시 중이다. 200평의 넓이와 높이 6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로 불교미술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제3-5전시관이 함께 있는 건물 옥상 루프탑에 오르면 저 멀리 산방산과 함께 제주 앞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하며, 루프탑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바라본 풍경 또한 강렬한 뷰포인트viewpoint를 연출한다.

걸스타인의 유토피아Euphoria ⓒ쿨투라

전시관 관람 후 야외로 나오면 조각공원과 호수가 있다. 호수가 가장 자리에는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 〈유토피아Euphoria〉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은 소소한 삶의 풍경들을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생활 속 풍경에 담긴 삶의 즐거운 에너지와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데이비드 걸스타인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도시의 모습과 그곳의 활력, 생기가 담긴 강렬한 원색조의 컷아웃cutout 철 조각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이스라엘 출신 팝아트 예술가이다.

하우메 플렌사의 Children’s Soul ⓒ쿨투라

호수를 끼고 있는 제1전시관 앞뜰에는 하우메 플렌사(1955- )의 웅크린 인물 모습을 한 작품〈Children’s Soul〉이 자리하고 있다. 작품 하단 부분이 열려 있어 사람들이 지나가며 사진을 찍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의 접근과 참여로 조각에 생기를 불어넣기를 바라는 조각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춤추는 집시gitane 모습을 자연과 작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몸짓형상으로 표현한 로트르 클라인 모콰이(1938- )의 조형작품 〈Gitane〉도 있다. 로트르 클라인 모콰이는 누보레알리즘 운동의 선두에서 혁명적 예술 활동을 지향했던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1928-1962)의 부인이자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뮤즈다.

ⓒ본태박물관

이렇게 제주 본태박물관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미학과 우리의 전통 공예품으로 빚어낸 소탈한 전시, 유명 현대 미술가들의 세련된 전시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두루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풍경은 육지에선 느낄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해 특별하다. 화산지형으로 형성된 섬이라는 것부터 한라산을 중심으로 듬성듬성 오름이 있어 심심하지 않고, 사방이 푸른 바다라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바다를 볼 수 있다. 서귀포로 가는 길에 마주하는 숲 터널은 지날 때마다 반갑고, 깊게 우거진 원시림 속에 있으면 검은 돌들이 트롤troll로 변신해 재롱을 부릴 것만 같은 상상을 해 본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에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은 바라만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지어진 미술관들이 많아 탐방을 하는 필자로서 흐뭇하며, 본태박물관에서 또 다시 호랑이 기운을 얻고 오늘도 힘차게 출발해 본다.

 

 


참고자료
본태박물관 http://www.bontemuseum.com
《레이디경향》 http://lady.khan.co.kr
『501 위대한 화가』, 스티븐 파딩, 박미훈, 2009, 마로니에 북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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